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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Lost, ABC, 2004~ ) B평

불규칙 바운드/TV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7.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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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C의 TV 시리즈 '로스트'에서 가장 의아한 점 중의 하나는 문제의 미스터리 섬에서 ‘육지의 정치’가 거의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부분이다. 일찍이 윌리암 골딩이 '파리 대왕(Lord of the Flies, 1954)'으로 지적했듯, 불시착과 표류로 인해 원시적 공동체로 돌아간 인간들이 생존을 갈구하는 와중에도 기어이 갖춰내고야 마는 것이 정치 시스템인 법인데, 어린 소년들조차도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권력에 '로스트'의 인물들은 비교적 초연한 편이다. 간혹 몇몇 주요 인물들의 의견이 상황을 주도하는 것을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그조차 실은 정치적 행위라기보단 반-정치적 행위에 가깝다. 다시 말해 권력을 견제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자체를 견제하는 것이란 뜻이다. 가장 주도적인 두 인물인 잭 셰퍼드(Jack Shephard, 매튜 폭스)와 존 로크(John Locke, 테리 오퀸)의 태도조차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이 중요시하는 것은 자신의 판단이고 신념이며 생존이지 힘과 세력 확장이 아니다.

 

  '파리대왕'의 독재 소년 잭과는 달리 닥터 잭 셰퍼드는 권력추구형 인물이 아니다. 오히려 끊임없이 희생 강박에 시달리는 인물이다. 잭의 남다른 면모는 'Pilot (Sep 22, 2004)'에서부터 이미 드러났던 바 있다. 참사의 아수라장 속에서 부상을 입고도 다른 사람들을 먼저 구해낸 다음에야 찢어진 자기 옆구리를 꿰메는 사람. 그야말로 잭의 헌신적 성격을 잘 드러내는 설정이라 하겠다. 그런 성격과 의사라는 직업이 어우러져 잭의 의견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이지, 애초부터 잭이 리더의 자리를 원했던 것은 분명 아니었다. 존 로크 역시 권력지향형과는 거리가 멀다. 사람들이 그의 의견을 중시하는 이유는 다분히 생존 본능적 차원에 위치한다. 존이 '가장 야생 적응력이 좋은 사람'이고, 위험한 정글에서 '같이 있을 때 가장 안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애초부터 존이 리더의 자리를 원했던 것은 아니었다. 둘은 가장 리더로 적합한 인물처럼 보이지만 같으면서도 다르다. 둘 다 비합리적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하며 개인의 만족을 위해 조직의 안녕을 꾀한다는 점은 같지만, 근본적으로 실현 방향이 다르다. 미스터리 섬에 대한 관점에서부터 그렇다. 잭은 섬을 재앙으로 보는 반면에 로크는 섬을 기적으로 여긴다. 잭은 현실적(과학적) 판단을 앞세워 헌신을 통해 물리적 탈출에 이르기를 바라고 로크는 직관적(신념적) 판단을 앞세워 모험을 통해 정신적 탈출에 이르고자 한다. 결국 잭은 로크를 '미친사람'이라 표현하고 로크는 잭을 '독재자'라고 부른다. 하지만 둘의 관계는 ‘잭과 랄프’라기보단 ‘멀더와 스컬리’에 가깝다. 대개는 이런 대립관계가 가장 중요한 갈등 축이 되어 정치를 작동시키기 마련인데, 이상하게도 이 작품은 그 부분을 의도적으로 헐렁하게 만들고 있다. 분명 흥미로운 부분이다.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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