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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맨더 인 치프 (Commander in Chief, ABC, 2005-2006) B평

불규칙 바운드/TV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6.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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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킨지 앨런(지나 데이비스)은 대통령이다. 그냥 대통령도 아니다. 미합중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대통령이 여성이라면 문제가 될까? 이 드라마를 보자면 그렇다. 그리고 그녀는 단 한 시즌만에 사라졌다. 한 남자의 아내로, 세 아이의 어머니로, 한 나라의 수장이자 자유 세계의 지도자로 이제까지 어떤 여성도 해내지 못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낸 결과치고는 참혹하다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맥킨지 앨런은 과연 매력없는 캐릭터였을까?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그녀에게는 적절한 시련도 있었고 적절한 극복 의지도 있었다. 전임 대통령이 잔여임기를 2년이나 남기고 병사해버린 와중에 물려받은 대통령 자리라는 정통성 문제, 공화당 소속도 민주당 소속도 아니기에 비빌 언덕이 마땅치 않다는 세력 기반 부재의 문제, 백인 남성 중심의 워싱턴 정가에서 학자 출신의 여성으로 버텨내어야 한단 편견의 문제 등 정치 드라마로 충분한 동력은 갖춘 설정이다. 여기에 세 아이를 키우는 어머니이자, 졸지에 역사상 유래가 없는 퍼스트 젠틀맨, 즉 영부군이 된 남자의 아내라는 인간적 면모가 더해진다. 상황 자체는 결코 녹록치 않다. 매 에피소드가 터프 세이브 상황이다. 오히려 너무 주인공을 궁지로 몰아넣는 게 아닌가 싶어 안쓰러울 정도다. 아이러니한 것은 바로 그런 부분이 이 시리즈의 긴장감을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가장 큰 원흉이라는 사실이다.

  쉽게 말해서 맥킨지 앨런은 슈퍼 우먼이다. 기성 정치인들의 무시, 하원의장 네이션 템플턴(도널드 서덜랜드)의 권모술수, 전 대통령을 따르던 내각의 주요 인사들의 일제 사표, 영부군으로 권력을 누리고 싶어 안달이 난 남편 로드 캘로웨이(카일 세커), 평범한 학창생활을 잃어버린 첫째 아들과 둘째 딸, 아직도 엄마가 필요한 막내딸, 남미에서 살해된 DEA요원들,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 테러에, 허리케인에, 유조선 난파에, 정상인이라면 진작에 미쳐버릴 상황에서도 그녀는 의연하게 대처한다. 그 어떤 압박에도 물러서는 법이 없고 아무리 피곤해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다. 정말 맥킨지 앨런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 그녀는 당파를 넘어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고 자기에게 사임을 권고한 장본인인 짐 가드너(헨리 J. 레닉스)을 자신의 비서실장으로 삼는데 성공했다. 과거지사를 넘어 지난 대선 당시 상대진영의 부통령 후보였던 버핏 장군까지 새 부통령으로 데려왔다. 사사건건 그녀를 방해하는 최대 정적의 정치 생명을 끊어놓을 비장의 카드를 충직한 부하 직원의 프라이버시를 지켜주기 위해 포기한다. 어디 그 뿐만인가? 미국에게 개기는 나라들에겐 무력을 불사해서라도 따끔한 맛을 보여준다. 결정적으로 이 냉철하고 강단있는 자유세계의 지도자는 밤마다 잠든 막내딸의 머리를 어루만져주는 따뜻한 어머니로, 또 한 남자의 아내로 변모한다. 정말 완벽하다. 어쩌면 이 보다 더 완벽한 대통령은 존재할 수 없을런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거다. 그러다보니 모든 에피소드가 유사한 구성 아래 단선적으로만 흐르게 되는 사태가 벌어진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이런 식이다.

① 앨런은 새로운 의지를 가지고 있는 '여성' 대통령이고, 그 의지는 기존 정치판의 구도에 반한다.
② 하원의장 네이션 템플턴으로 대표되는 구(舊) 주류 정치세력은 앨런에게 사사건건 제동을 걸고 갈등이 발생한다.
③ 그러나 앨런은 너무나 확고한 의지를 지닌 대쪽같은 사람이기 때문에, 결코 부패한 질서와 타협하지 않는다.
④ 끝내 적까지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모든 사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해결한다.

  '정치적 프로타고니스트 (Protagonist)'라는 점에서 맥킨지 앨런은 명작 정치물 시리즈 '웨스트 윙 (The West Wing, NBC, 1999-2006)'의 조슈아 바틀렛 대통령(마틴 쉰)과 차이가 없다. 둘다 말도 못할 이상주의자라는데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조슈아 바틀렛은 자기가 이상주의자임을 아는 사람이고 앨런 맥킨지는 모르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조슈아 바틀렛은 자기 한계와 결점을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었고 앨런 맥킨지는 몰랐거나 무시했다는 것이다. 조슈아 바틀렛의 역사는 실패의 기록이지만 앨런 맥킨지의 기록은 성공의 기록이다. '커맨더 인 치프'의 모든 실패는 맥킨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맥킨지에서 끝난다. 심지어 이 철의 여인은 심지어 실패하는 순간에조차 실패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웨스트 윙'은 정치를 필요악처럼 규정하는 이상한 작품이었다. 민주주의는 완벽한 체제가 아니고 그걸 구현하는 제도와 시스템은 더더욱 완벽한 체제가 아님을 잘 알았기에, 그들은 정치의 미묘한 생리를 생동감 넘치게 구현할 수 있었다. 또한 독설, 풍자, 자조를 통해 울림있는 공감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렇기에 '웨스트 윙'은 애초부터 분업의 드라마였고, 결국엔 분업의 드라마로 완성될 수 밖에 없었다. 바틀렛 대통령에게 웨스트 윙의 보좌진들은 현실과의 타협점을 모색할 수 있는 통로였고 웨스트 윙의 보좌진들에게 바틀렛 대통령은 이상을 실현하기 위한 카드였을 뿐이다.

  하지만 '커맨더 앤 치프'의 앨런 맥킨지는 다르다. 제목 그대로 '최고 사령관'이다. 보좌진들이 할 일이 없게 만드는 최고 사령관. 전형적인 원 톱의 드라마다. 혼자 모든 것을 다 짊어지고 가는 그 기세가 얼마나 무섭도록 넘치는지, 비서실장의 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퍼스트 젠틀맨은 점점 가정주부화 되어 차라리 ABC의 '위기의 주부들 (Desperate Housewives, ABC, 2004-2012)'에라도 출연해야 할 판이고, 최대 정적인 하원의장은 하루가 다르게 노쇠해져 가는 모습을 보인다. 게다가 이 의욕 넘치는 슈퍼-대통령-각하께서는 일주일에 한번씩 직접 기자들을 데리고 파격적인 질의 응답 시간까지 가진다니, 신출내기 수석 대변인은 할 말도 없고 할 일도 없다. 그녀는 적이고 아군이고 완전히 압도한다. 그러니 정치가 사라진다. 동시에 극의 긴장감도 사라진다. 이 작품의 메인 오프닝 화면을 다시 떠올려보라. 창밖을 바라보며 고뇌하는 미합중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맥킨지 앨런의 뒷모습을 말이다. 어쩐지 무거워 보이는 어깨. 너무 많은 짐을 지고 있는 어깨. 터미네이터의 뒷모습이라도 믿을 강철 여인의 어깨. 바로 그 부분에 앨런 맥킨지가 조슈아 바틀렛이 되지 못한 이유가 있다.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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