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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 아이 멧 유어 마더 (How I Met Your Mother, CBS, 2005~ ) B평

불규칙 바운드/TV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1.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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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에피소드: Season 1 Episode 1 "Pilot" 등

  2005년부터 CBS에서 방송되고 있는 인기 TV 시리즈 How I Met Your Mother'의 얼개는 대강 이렇다. 

  때는 바야흐로 2030년. 주인공 테드 모스비(조시 래드너)는 자기 아이들을 불러다 놓고 “아빠가 젊었을 적에 말이야 너희 엄마를 어떻게 만났느냐면……” 하는 식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빠의 옛날 이야기 속에는 엄마를 어떻게 만나고 사랑했는지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다. 그렇다. 어찌된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2030년 테드의 아이들은 자기 엄마가 누군지 모르고 자란 상태임을 짐작할 수 있다. 테드 역시 아이들의 곁에 있는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비디오, 혹은 2030년에 걸맞는 영상 저장 매체에 녹화된 상태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으니 말이다. 어찌된 영문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물론 언젠가 밝혀지기는 할 거다. 하나의 에피소드가 끝날 때마다 아이들은 묻는다. “그럼 그 분이 우리 엄마인가요?” 텔레비전 속 아버지 테드는 어김없이 이렇게 대꾸한다. “아니, 너희 엄마 이야기는 조금 더 들어야 나온단다.”

  그렇게 6년이 흘렀고 136편의 에피소드가 방영되었다. 스물 일곱의 테드 모스비가 서른 셋이 되었는데도 아이들 엄마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 뻔뻔스럽게도 여전히 테드 모스비는 이렇게 주장하고 있다. “조금만 더 들으면 너희 엄마 이야기가 나온단다.” 육 년 전 파일럿에 "It's a Long Story" 라는 대사가 있었더랬지. 새삼 모골이 송연하다.

  90년대까지만 해도 TV 쇼와 시청자간 이런 식의 밀고 당기는 게임은 유쾌하고 즐거운 것이었다. 5년이고 10년이고 즐겁게 참아줄만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나도 모르게 속이 부글부글 끓는다. 사회의 변화 속도가 예전 같지 않아 그런지 여간 쉽지가 않다. 어쩌면 그만큼 우리가 인내하는 법을 잊어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테드 모스비의 아이들도 대단하다. 제 어미를 알고 싶은 본능이야 당연한 것이겠으나 136번이나 변죽만 울리는 아버지 앞에서 냉정을 유지하는 그 인내가 대단하다. 지금까지 테드가 떠들어댄 시간이 얼추 2,720분이다. 60분짜리 비디오테이프로 녹화되어 있다면 45.3개 분량이다. 120분짜리 비디오테이프라면 22.7개 분량이다. 4.7GB DVD에 녹화하는 경우, 비디오 압축률, 오디오 압축률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그래도 최소 십수 장의 블랭크 미디어가 필요할 것이 분명하다. 

  더구나 2720분은 사이 사이 따라붙었을 약 1,400여분 분량의 광고 시간이 포함하지 않은 결과다. "얘들아, 너희 엄마에 대해 알고 싶지? 그럼 채널 고정하고 이어지는 커머셜을 놓치지 말렴." 테드 모스비가 그 아이들의 아버지인지, 아니면 홈쇼핑 호스트인지 의심해보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다. 만약 이 광고 시간을 감안하여 다시 계산한다면 2030년 테드 모스비의 아이들은 약 4,080분 동안 쇼파에 앉아있었단 이야기가 된다. 자그마치 68시간이다. 이 쇼가 한 시간짜리가 아닌 것이 천만 다행한 일이다. 그런데도 이 순수한 아이들은, 이따금 입을 삐죽거리고 있을지언정 비교적 순순히 쇼파에 앉아 아버지(그것도 녹화된 영상에 불과한 아버지)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다. 나라면 진작에 리모컨이나 꽃병을 텔레비젼에 집어던졌을 것이다. 저장매체가 비디오 테이프라면 헤드를 부수고 필름을 가위로 잘라 바닥에 뿌리고 침을 뱉었을 것이고, CD나 DVD라면 데이터 사이드를 칼로 그어버린 다음 불을 당겨 태워버렸을 것이다.

*

  시즌 6가 종영된 이 시점. 이쯤되면 우리 시청자들도 기다릴만큼 기다렸다고 생각한다. 이제 우리는 테드 모스비의 일생의 연인이자 남매의 엄마가 될 미지의 여인에 대해 성급한 추측을 단행해 볼 수 밖에 없다. 단언하건대 18세-49세 시청률이 좋게 나오는 이상 이 쇼가 먼저 결말을 실토할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미 두 시즌이 추가로 계약에 들어간 상황. 당분간은 이 따위 변죽 울리기가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앓느니 죽지. 아무리 서투르고 허황된 추측도 결코 아깝지 않으리라 믿는다.

  테드 모스비의 이야기 속 단서를 따라가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신디의 룸메이트였느니, 테드의 첫 강의날 그 자리에 있었느니, 그 학교에서 경제학 전공하던 학생이었느니, 노란 우산 사건과 연관지어져 있다느니 등등. (아니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런 식으로라면 우리는 그 인간 손아귀에서 끝까지 놀아날 수 밖에 없다. 요즘 들어 간혹 테드 모스비가 '레드존'보다 더한 놈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니까. 고로 판을 뒤집을 필요가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가장 좋은 단서는 역시 아이들이다. 제 아무리 기발한 전개라도 자연의 섭리까지 거스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A. 나이 프로파일링

  2030년 장면에서 테드의 아이들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 사이로 보인다. 종종 테드의 나레이션이 야하고 더럽고 선정적인 전개를 자체 검열하는 것으로 보아 (“그 다음 이야기는 너희들에게 들려주기 적합치 않을 것 같구나.”) 10대 후반쪽일 확률이 높다. 실제 테드 모스비의 딸 역할을 맡은 배우 린지 폰세카는 1987년생으로 첫 촬영 당시 열아홉 살이었고, 아들 역할의 배우 데이비드 헨리는 1989년생으로 첫 촬영 당시 열일곱 살이었다. 대충 어림잡아 그 즈음으로 보면 맞으리라고 생각한다. 2030년에 아이들이 십대 후반 무렵이 되려면 2011년에서 2015년 사이에는 태어났어야 말이 된다. 아무리 서구 청소년들의 발육상태가 좋다한들 이 아이들이 열다섯 살보다 아래라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그러니 아무리 느슨히 잡아도 2015년이 마지노선이다. 다시 말하자면, 설사 테드 모스비가 2006년이나 2007년이나 혹은 2008년에 일찌금치 아이들 엄마를 만났더라도 실제 아이들이 태어다는 시점은 2011년 이후가 될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이다. 

B. 인종 프로파일링

  사실 좀 애매한 구석이 있긴 하다. 워낙 인종의 전시장인 나라다보니 어떤 유전자 칵테일이든 마음만 먹으면 그럴 듯하게 말 되게끔 유도해갈 수 있다. 또 반대로 말이 안되게 하려면 또 얼마든지 그렇게 몰아갈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요컨대 우리는 테드 모스비의 유전자 지도를 완성하지 못했다. 다만 그럼에도 석연찮은 구석이 있기는 하다. 이를테면 두 아이에게서 서로 다른 대륙의 냄새가 난다는 점이다. 특히 딸내미. 실제 테드 모스비의 딸 역할을 맡은 배우 린지 폰세카는 반쯤 포르투갈의 피가 섞인 미국인이다. 과거 'Desperate Housewives (ABC, 2005 ~ )'에서 연기했던 딜런 메이페어는 루마니아 출신으로 밝혀졌었고, 최근 'Nikita(CW, 2010 ~ 현재)'에서 분하고 있는 알렉스는 러시아 출신인 것으로 설정되어 있다. 묘하게 그 동네 냄새가 나는 미국 여자애라는 이야기인데, 유대계 미국인처럼 보이고, 심지어 2030년의 목소리조차 유대계 미국인인 테드 모스비에게 이런 유전자가 잠복해 있었으리라 생각하기는 어렵다. 우리는 이미 테드 모스비의 양친을 모두 만나보았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아들놈도 엄밀히는 제 아비와 정리해야 할 문제가 있지만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이 녀석의 경우는 오히려 제 누나의 존재와 나란히 설명되어야 하기에 복잡할 뿐이지, 애초부터 단독으로는 변수가 되지 못한다.

  따라서 가장 직관적인 설명은 딸내미가 물려받은 유전자가 애 엄마쪽에서 흘러왔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조이 피어슨(제니퍼 모리슨)은 첫 등장부터 뻥카처럼 보였다. 테드 모스비와 조이 피어슨이 결혼하여 서로에게 신실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가졌는데, 저런 딸이 나올 확률이란 정말 희박한 것이기 때문이다. 닥터 스탤라 진먼(사라 챌크)쪽이 그나마 가능성이 조금 있었고 차라리 로빈 슈바츠키(코비 스멀더스)쪽이 말이 될 수 있었다. 피부색, 모발색, 홍채색, 두상, 체형, 인종 특유의 아우라 등이 모두 명쾌히 설명되지는 않아도 굳이 끼워맞추겠다는데 반박할 재간은 없기 때문이다. (최소한 코비 스멀더스나 사라 챌크는 가족적 근원을 유럽에 두고 있는 캐나다 출신 배우들이었다.) 사실 이 쇼의 제작자들도 그런 부분을 다 감안하여 캐스팅을 하지 않았을까 추측한다. 허나 제니퍼 모리슨은 조금 달랐다. 막연히 얼렁뚱땅 자연의 신비 운운하기에 좀 설명해야 할 부분이 많았다. 어차피 다음 시즌도 보장된 상태에서 어느정도 볼 카운트에 여유가 있었으니 그냥 한 번 유인구를 뿌려 본 셈 아니었을까 싶다. 먹히면 좋고 안 먹히면 말고, 뭐 그런 식으로.

  이 시점에서 아이들의 엄마 역할로 절대 출연할 수 없는 배우들의 목록을 작성해 볼 수 있어서 기쁘다. 할리 베리, 매기 큐, 새논 엘리자베스,아니샤 나가라잔, 윤진 킴 등.

*

  물론 함부로 장담할 수는 없다. 완벽한 프로파일링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가령 입양 카드를 꺼내들면 나이 프로파일링을 얼마든지 비껴갈 수 있다. 테드 모스비가 불임이거나, 미지의 여인이 불임이거나, 혹은 둘 다 불임이어서 어린 아이를 입양해 키웠다는 식으로 기구절창할 주장을 하면 2015년이 아니라 2020년까지도 충분히 시간을 벌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인종 프로파일링에도 한계는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생각은 인공수정. 입양보다 한 술 더 떠서 인공수정의 가능성까지 도입한다면, 린지 폰세카의 (이국적인 미로 가득한!) 맥심 화보 따위의 논리적 결함은 간단히 내파하고 지나갈 수가 있게 된다. 테드 모스비가 불임이거나, 미지의 여인이 불임이거나, 혹은 둘 다 불임이어서 기증받은 정자, 난자, 혹은 수정란 풀 세트로 두 차례에 걸쳐 아이를 얻었다면, 이보다 더 미묘한 상황이라도 얼마든지 명쾌히 설명될 수 있을 것이다. 기본적인 쇼의 설정과 이제까지의 정황상 그럴리는 없겠지만, 심지어 테드 모스비가 극적인 성적 지향성의 변화를 겪으며 보다 모던한 형태의 가족을 꾸린다고 해도 얼마든지 유연하게 설명 가능한 여지가 생긴다. 더구나 가까운 미래에 인공수정 관련 시장이 보다 발달하고 관련 규제는 보다 느슨해질 것이라는 예측은 아서 C. 클라크나 아이작 아시모프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에이브러햄 생명센터가 문을 닫았지만 몇 년 안에 또 다른 사설 배아은행이 난립할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만약에 이 쇼가 정말 정말 정말 짭짭해져 2015년 이후에도 계속 리뉴얼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정말 정말 정말 그런 짓을 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사실 아무리 연 단위로 리뉴얼되는 시리즈물이라고는 해도, 작품의 완결성을 생각해 볼 때 아직 아이들 엄마가 될 인물이 등장하지 않았다는 (혹은 그렇게 추정된다는) 사실은 문제가 있다. 추리물도 관객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인물이 범인으로 밝혀져야 재미나고 짜릿한 법이지, 생판 나오지도 않던 인물이 엔드 크레딧 올라가기 5분 전에 범인으로 밝혀지면 그냥 골 때리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게 된다. 테드 모스비 입장에서는 충분히 기승전결을 갖춰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노라 자부하겠지만 우리가 보기에 이 놈은 지난 6년 동안 그냥 저 하고 싶은 연애 이력 자랑질만 한 것 뿐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런 것 같다. 이제와 보면 꼭 이야기가 2005년에서 시작할 필요도 없었다. 아이들에게 엄마 이야기를 들려주기 위해 그 이전까지 여친들과의 연애지사를 죄다 끄집어내야 한단 사실도 언뜻 납득하기가 어렵다. 본래 테드 모스비라는 캐릭터의 설정이 '일생의 연인과 단란하고 화목한 가정을 이루길 꿈꾸는 남자'였다는 점에서 이제는 사뭇 오싹하기까지 하다. 인지 부조화를 의심해보아야 할 시점이다. 

  고로 의문은 이거다. 저 아이들이야 지네 아빠가 지네 엄마에 대해 떠들어대고 있으니 설령 길고 지루하더라도 주의를 기울여 들어보아야 하겠지만, 도대체 우리는 왜 그 이야기를 6년에 걸쳐 듣고 앉아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것도 무려 1,400여분에 이르는 광고 시간까지 참아가면서 말이다. 

(2011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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