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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킨의 페스티발 (Rifkin's Festival, 2020)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3. 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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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엔 (다시) 스페인이다. 우디 앨런의 49번째 장편영화 ‘리프킨의 축제’는 스페인의 해안도시 산 세바스찬을 무대로 주인공 모트 리프킨(월라스 숀)의 이야기를 다룬다. 예상대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익숙한 공식들이 반복된다.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나 창작적 위기에 봉착한 남자의 로맨틱 코미디. 빅 퀘스천, 훌륭한 유럽 영화, 예술가의 위기, 결혼 생활의 위기, 작가의 장벽(Writer’s Block), 하이브로우 테이스트(Highbrow Taste), 자기혐오, 심리 상담, 시네마 클래식, 재즈 클래식, 오픈-에어 카페, 도스토예프스키, 페데리코 펠리니, 스페인 화가, 오지만디아스 멜랑콜리아(Ozymandias Melancholia, 註1), 그리고 시지프스가 출석한다. 작업 멘트용 파라다이스 추천으로 보라보라(Bora Bora)라가 나와야 할 것 같은 순간에 코 롱(Koh Rong)이 등장하는 점을 제외하면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많지 않다.  

 
  뉴욕의 대학에서 영화를 가르치다 은퇴한 교수 모트 리프킨은 고집스럽고 냉소적이며 까탈스러운 노인이다. 그는 제임스 조이스나 도스토예프스키와 같은 소설을 쓰고 싶은 열망을 평생 간직하고 살아왔지만, 나이가 들고 몸에 이상을 느끼는 지금은 끝내 그 꿈을 이루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고 있다. 사실 그가 아내 수(지나 거숀)의 영화제 출장을 따라 스페인 행을 결정한 이유는 따로 있다. 젊고 아름다운 아내와 그녀가 프레스 투어를 담당하는 영화의 젊고 잘생긴 프랑스인 감독 필립(루이스 가렐) 사이의 관계를 의심하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는 필립의 영화를 대단히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데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시피) 자신의 전문성 및 예술적 소양에 대한 자부심과 젊은 남자에게 아내를 빼앗길 수도 있다는 질투심이 반응하여 나타난 고도의 땡깡이다. 하지만 (이 또한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시피) 그는 자신을 스페인까지 따라오게 만든 이 긴요 긴급한 사건의 맥락에서 간헐적으로 빠져 나와 홀로 (궁시렁거리면서) 아름다운 스페인 해안 도시의 곳곳을 배회한다. 셰익스피어, 미켈란젤로, 채플린, 펠리니, 도스토예프스키, 조이스, 고다르, 트뤼포, 베리만 등을 마치 비밀스러운 주문처럼 외우면서. 그러다 그는 가슴 통증을 염려하여 겸사겸사 병원도 찾는데 공교롭게도 예술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의사 로하스(엘레나 안야)를 만나게 되고, 여러 모로 말이 꽤 잘 통하는 그녀와 대화를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없는 증상마저 꾸며서 다시 병원을 찾아가는 주책을 서슴지 않는다. 이러한 일련의 소동 속에서 리프킨이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들, 그러니까 불안과 추억과 사랑과 질투와 회한과 열정과 체념 등은 그의 꿈이나 몽상 속에서 명작을 오마주하는 흑백영화의 한 장면으로 나타난다. 긴 이야기를 짧게 요약하면, ‘미드나잇 인 파리(우디 앨런, 2011)’에 ’스타더스트 메모리즈(우디 앨런, 1980)’‘디컨스트럭팅 해리(우디 앨런, 1987)’를 더하였는데, 다만 이제는 위대한 예술가가 되기를 꿈꾸기에 더 이상 젊지만은 않다는 내용이 되겠다.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에 도착하면서부터 영화처럼 꿈을 꾸고 몽상을 한다는 설정은 매력적이다. 영화제가 열리는 도시에서 자신만의 영화제를 연다고 생각하여도 낭만적이다. 하지만 그 이상은 잘 모르겠다. 조심스럽게 추측해 보면 모트 리프킨이 전형적인 우디 앨런의 페르소나이면서도 특유의 수다스러운 리듬감이 크게 떨어진다는 점이 일단 문제의 시작이 아닐까 한다. 전작의 인물들과 비슷한 행동 패턴을 보이지만 생동감이 부족하고 어딘가 모르게 뭉뚝하며 심지어 권태롭고 무기력하게 느껴지는 감마저 없지 않다. 물론 노년의 리프킨이 인생과 커리어의 마지막 순간을 늘 염두에 두고 있다는 설정이 그 이유일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종 낮게 유지되는 반응 에너지는 중반 이후 그가 새로운 로맨스의 희망을 꿈꾸는 과도하고 부담스러운 집착을 납득하게 만들기에 충분하지 않다. 과거 ‘앨런의 인물들’이 벌이는 이러한 모순된 행동들이 용인될 수 있었던 것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던 까닭도 있다. 노배우 월라스 숀의 데뷔작이 ‘맨하튼(우디 앨런, 1979)’이었음을 감안하면 두 할아버지에게 서로 의미있는 작업이기는 하였겠으나 아무래도 이 작품만큼은 감독 할아버지가 예전처럼 직접 메인 롤을 맡아 북 치고 장구 치는 편이 옳았을 것 같다. (물론 그 경우 마케팅 불지옥을 각오해야겠지만 사실 더 어려워질 것도 없는 상황 아닌가?) 어느 때보다 개인적인 이야기에 가까워 보이는데 굳이 다른 배우를 ‘서로게이트’로 쓰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2020년 10월에 스페인에서 이미 개봉하였지만 미국에는 약 15 개월 후인 2022년 초에 소수의 극장에만 걸렸다. 박스 오피스 성적은 커리어-로우이다. 비단 COVID-19 팬더믹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짐작한다. 월라스 숀과 (얼마 전 타계한) 더글라스 맥그라스 등 이전에 앨런의 영화에 단골 출연하였던 이들을 포함하여 네 사람 정도만 미국인으로 영미권 배우들이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대부분이 스페인을 비롯한 유럽 배우들이다 (註2). 비단 이 작품이 스페인을 무대로 하기 때문만은 아닐 거라고 많은 사람들이 짐작한다. 과거 출연료와 상관없이 슈퍼 스타들이 줄을 서던 시절을 생각하면, 이미 받은 출연료까지 서로 기부하겠다고 밝히는 지금의 상황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말 그대로 ‘오지만디아스 멜랑콜리아’다.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극작가로, 감독으로, 배우로, 제작자로, 또 음악가로, 활동한 그의 은퇴는 이제 정말 목전으로 다가왔다. 언론마다 보도가 엇갈리는데 이미 기정 은퇴한 것과 다름없다는 이야기가 있고 준비 중인 'Wasp 22'라는 가제의 50번째 장편영화가 마지막이 될 거라는 이야기도 있다.

 

(2023년 01월)

 

(註1) 영국의 시인 퍼시 비시 셀리(Percy Bysshe Shelley)의 소네트 '오지만디아스'를 언급한 것이다. 한때 대단한 번성을 누렸던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쇠락하여 덧없이 사라졌다는 비애감에, 우리가 삶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든 일들이 다 무용하게 느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스타더스트 메모리즈'에서 처음 등장하였고 이후에 '투 로마 위드 러브 (우디 앨런, 2012)'에도 등장하였다.

(註2) 프랑스인 영화감독으로 등장하는 루이스 가렐은 프랑스 사람이고, 리프킨의 마지막 몽상 장면에 깜짝 등장하는 (이 작품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는 독일/오스트리아 국적을 가졌다.   

(註3) 포스터의 그림은 일러스트레이터이자 디자이너인 조르디 라반다(Jordi Labanda)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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