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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송 (Swan Song, 2021)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1.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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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벤자민 클리어리의 장편 영화 데뷔작 ‘스완 송’은 올해 마지막을 장식할 기대작 중의 하나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예상과는 조금 다른 뜻밖의 모습으로 완성된 듯하여 의아함이 남는다. 시한부 판정을 받은 남자가 남은 가족들(임신 중인 아내와 어린 아들)을 위해 자신의 복제인간으로 자신을 대체하려고 하는 과정을 그리는 이 작품은 다루는 내용의 무게감으로 보나 마허셜라 알리와 나오미 해리스, 그리고 글렌 크로즈라는 굵직한 이름으로 보나, 꽤 높은 체급의 영화일 것만 같은 형태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결과물은 어떻게 보면 21세기 버전의 ‘트와일라잇 존'이나 ‘어메이징 스토리즈’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블랙 미러’일 수도 있겠다)의 에피소드 하나에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 작고 경량한 단편처럼 완성되었다. 분위기는 정적이고 대사도 많은 편이라고는 할 수 없으며 세트는 상당히 간소하다. 전체 출연진이 겨우 여섯 명 남짓으로 주변 인물도 거의 없으며 서브 플롯이라고 할만한 것도 없다. 좋게 말하면 시적이고 압축적이고 절제된 거지만 나쁘게 말하면 아직 이야기에 살을 덜 붙인 상태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런 선택에 나름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불필요한 이야기와 불필요한 자극을 두서없이 우겨넣은 뚱뚱하고 형편없는 영화들보다는 이런 단순 명료한 구성이 더 강력한 매력을 지니는 경우도 많다. 긍정적인 요소로 작동한 부분도 있다. 가령 사이언스 픽션의 소품 장치들과 지금의 일상적인 모습을 적절히 융화시키는 묘사는 깔끔하고 경제적이다. (맞춤형 상황 적응이 가능한) 서비스 로봇, (이어포드와 연동하는) 증강 현실 콘택트 렌즈, (입출력 장치가 필요하지 않은) 완전 버츄얼 데스크톱, (운전자가 필요하지 않고 웨어러블 디바이스만으로 작동되는) 완전 자율주행차, 글렌 클로즈의 의상 (응? 이건 아닌가?) 등은 적절히 '가까운 미래'라는 설정을 환기하게 하지만 피로감을 주지 않는 수준이다. 동시에 아날로그적 요소들(남자의 직업은 디자이너인데 여전히 종이와 연필과 펜과 물감을 사용하여 작업하고 작업실에는 종이책과 레코드가 쌓여있다)이나 문제의 바이오 벤처 연구소를 둘러싼 압도적인 자연의 아름다움을 적절히 활용하여 조화와 균형을 잡으려는 시도 역시 인상적이다. 

 

  하지만 인간의 잠재 의식까지 복제하여 완벽한 카본 카피를 만들어 내는 (아마도 아주 가까운 미래에 가능하지는 않을) 기술의 실현을 이야기 전개의 핵심 설정으로 삼는 한 온전히 장르로부터 이탈하는 것에는 무리가 있다. 가령 이 작품은 분명 사이언스 픽션의 오래된 주제 중 하나를 다루는 것처럼 보이는데도 기술적 경이 내지 공포, 철학적 사유, 윤리적 딜레마 등 장르 고유의 키워드를 다루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대신 모든 이야기를 지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로 수렴시킨다. 남자의 갈등은 순수하게 (가족에서 자신의 자리를 스스로 희생하려는) 자신의 고통과 (자신의 죽음이)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남길 고통 사이를 숭고하게 저울질할 뿐이지, 복제 인간이 그의 자리와 역할이 아닌 존재적 의미와 영혼까지 대체할 수 있느냐 혹은 과연 그것이 진정으로 가족들을 위한 선택이냐에 대한 질문은 거의 지워져 있다. (심지어 복제 인간의 역할이 향후 얼마나 그의 기대에 부합할지에 대한 판단 근거도 없는 상태임에도 - 남자는 연구소의 겨우 세 번째 복제 케이스라고 설명되고 있으므로 - 영화는 이것이 남자의 마지막 옵션임을 전제하고 시작한다.) 이러한 맥락 위에서 이 작품은 죽음을 앞둔 남자의 내적 갈등이라는 고순도 드라마에만 집중한다. 거짓말 조금 더 보태면 다른 영화들이 보통 큰 예산을 들여 해내는 일을 마허셜라 알리로 커버했다고 한들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그만큼 주인공과 주인공의 복제 버전을 오가며 미세한 차이를 전달하는 그의 능력은 정말 경이로우며 그로 인해 비로소 이 작품이 가능했을 거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이연결이나 윌 스미스가 두 명이라고 액션도 재미도 두 배가 아닌 것처럼, 마허셜라 알리가 두 명이라도 드라마가 산술적으로 두 배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를 짜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고 그렇게 올릴 수 있는 체급에도 한계가 있다. 전술한 것처럼 40분 분량의 TV 앤솔로지 시리즈의 에피소드 하나나 40분 이하의 단편 영화가 아니라 거의 두 시간 분량의 장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까다롭고 난이도 있는 주제를 지워버리기보다는 어느 정도는 함께 다루는 영리한 전략이 어느 정도 동반되었어야 시너지를 일으킬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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