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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네트 (Annette, 2021)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1. 10.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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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탠드 업 코미디언 역할의 아담 드라이버? 뭔가 이상한 것 같으면서도 그의 독특한 인상과 싱거운 말투를 고려하면 꽤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사실 그는 어지간한 역할에 어지간히 어울리는 묘한 매력이 있다.) 오페라 소프라노 역할의 마리옹 코틸라르? 어쩐지 더 좋은 선택지가 있을 것 같으면서도 그녀가 과거 에디트 피아프, 빌리 프리챗, 그리고 루이사 콘티니 역할을 연기했다는 점을 복기하면 안 될 이유를 애써 찾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가끔 출연작을 제비뽑기로 고르는 듯 한 느낌이 들어 그렇지 사실 그녀의 연기에 두고 토를 달기가 어렵지 않은가.)

 

  레오 카락스의 무려 9년만의 신작에서 그나마 이해가 가는 것은 여기까지다. 농담이 아니다. 참말이다. 나머지는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모든 선택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기 마련일 텐데 이 다크 유니버스의 ‘라 라 랜드 (데미언 셔젤, 2016)’에서는 그 이유가 명확하게 드러나는 부분을 도저히 찾을 수가 없다는 점에서 혼란스럽고 혼란스럽다 못해 사실 무섭기까지 하다. 물론 팝 듀오 ‘스팍스’가 준비하던 컨셉트 앨범을 영화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는 점도 감안하기는 해야겠지만 익숙하지 않은 방식의 성기고 분절된 전개는 때때로 시적이라기보다는 다소 악의적인 장난처럼 느껴진다. 어디에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우선은 뮤지컬이라는 형식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아트 록과 스포큰 워드의 사이 어딘가에 위치한 스팍스의 음악으로 과연 뮤지컬이 가능한지도 갸우뚱한데 그런 마당에 저음 장인 카일로 렌(아담 드라이버)과 공학 석사 하워드 왈로위츠(사이먼 헬버그)가 가장 많은 노래를 소화해야 하는 세 역할 중 두 역할을 맡았다는 것이 말 그대로 충격과 공포다. (누가 봐도 이는 마리옹 코틸라르가 독박쓰기에 딱 좋은 구도처럼 느껴진다.) 

 

  신기한 것은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는 이 작품의 내용이 사실 그렇게 난해하지는 않다는 사실이다. 앞의 절반을 놓고 보면 LA 셀레브리티 남녀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아이를 갖지만 서로의 커리어가 엇갈리며 서서히 갈등이 자라난다는 내용이다. 단지 전개 방식이 우리가 선호하는 잘 다듬어진 매끄러움과 거리가 있을 뿐이다. 가령 전술한 것처럼 이 부부의 배경이 지닌 극명한 대비(직설적이고 즉흥적이며 때로는 위악적인 희극과 은유적이고 정형적이며 대개는 고결한 비극)는 분명 어떤 의도가 있어 보이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 의도에 대하여 설명하거나 암시하지 않으며 심지어 상상할 수 있는 여백마저 남겨놓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부부의 사랑의 결실인 어린 딸 아네트의 존재에 대해서도 당혹스러운 상황이 반복된다. 뜻밖에 아네트는 (태어나는 장면부터) 목각인형으로 묘사되는데 이 마땅히 구미가 당기는 퍼즐의 단서를 제공하는데 이 작품은 놀랍도록 무심한 태도를 보인다. 심리적인 현상으로 보든 초자연적 현상으로 보든 마음대로 해석하라는 식의 방치다. 따라서 기승전결이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고 헐겁게 분리되어 버리는 느낌마저 든다. 여기에 서로 이질적인 요소의 부자연스러운 교차 전환(고전 뮤지컬과 필름 느와르, 코미디 공연과 아리아, 인디 영화와 블록버스터, 아날로그적 자기 파괴와 디지털 아포칼립스 등)이 해체를 가속화하고, 그것으로도 모자라 쇼 비즈니스 가십 기사에 미투 무브먼트에 소셜 미디어 홍수까지 끼워 넣음으로써 급기야 여러 이야기의 조악한 콜라주 혹은 느슨한 옴니버스처럼 보이게 만드는 순간까지 도달한다. 그 결과물은 분명 이상하고 이해하기가 어렵다. 때로는 산만하기까지 하다. 다만 어디서도 쉽게 접하지 못할 독특하고 낯선 경험을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할 수가 없을 것 같다.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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