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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 (Cinderella, 2021)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1. 9.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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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정체불명의 신데렐라 각색 뮤지컬은 최근 디즈니의 라이브 액션 뮤지컬 재탕 시리즈들을 순식간에 명작 중의 명작처럼 보이게 하는 기적을 일으킨다. 사건 전개는 너무 엉성하고 선곡과 안무도 그리 성의가 있어 보이지 않는다. 타이틀 롤을 맡은 팝 스타 카밀라 카베요는 무대 위에서의 빛나는 매력과는 달리 배우 데뷔에 따라붙는 의문 부호를 말끔히 지우지는 못한다. 한편 이디나 멘젤, 빌리 포터, 제임스 코든, 미니 드라이버, 그리고 피어스 브로스넌으로 이어지는 화려한 올-스타 (서포팅) 캐스팅은 형편없고 단편적인 캐릭터 부여로 인하여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쓴 격에 머무르고야 만다. 무엇보다 황당한 건 성역할 고정관념 타파를 위한 동화의 현대적 재해석이라는 끔찍할 정도로 낡은 접근법이다. 그런 연유로 신데렐라는 재능있는 의상 디자이너 지망생이 되고 계모는 알고 보니 결혼을 위해 꿈을 접었던 불행한 여인으로 포장된다. (그렇다. 이 신데렐라와 계모의 대비는 사랑과 결혼을 위해 좋아하는 일과 커리어를 포기하지 말라는 대단히 혁명적인 메시지를 담기 위한 것이다.) 한편 왕은 권위 의식으로 가득한 가부장적 사고방식의 바보인데 왕비는 (가정과 왕국의 평화를 위해 인내하는) 지혜로운 #걸보스이다. 왕자는 왕좌에 관심이 없는 철부지고 (심지어 왕자는 전통적인 동화 속 미남이 아닌 데다가 코미디언 피트 데이비슨을 닮았다.) 공주는 (비록 여자로 태어나 왕위를 물려받을 수 없다지만) 나름 뚜렷한 비전을 갖고 있는 준비된 #걸보스처럼 묘사된다 (이 대목에서 어떻게 이 집안에선 딸만 금발인지는 조금 궁금하다.) 이런 식이다. 나머지는 예상한 대로다. 소름이 끼칠 정도다. 파란색과 분홍색으로 남아와 여아를 구분하는 인식이 정당 하냐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던 시대에나 유효했을 이슈를 굳이 2021년에 소환한 이유를 모르겠다. 그런 와중에 페어리 갓마더를 굳이 ‘패블러스’한 남성 캐릭터로 치환한 기가 차는 시도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나아가 이런 식의 동화 재해석이 늘상 동반하는 치명적인 오류, 즉 원전의 핵심 교훈을 망각하는 문제도 간과할 수는 없다. 다들 잊고 계셨겠지만 신데렐라는 내면의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여기 어디에도 내면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그렇다고 새롭지도 않고 유의미하지도 않다. 물론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들의 연대로 통쾌한 반란을 일으키는 것이 케이 캐넌이 천착해 온 주제임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녀의 개인적인 커리어 전체를 놓고 보아도 이 두 번째 연출작의 메시지는 ‘피치 퍼펙트(제이슨 무어 등, 2012-2017)’ 트릴로지 등에 비해서 훨씬 퇴보한 것처럼 보인다.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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