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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니 베넷 & 레이디 가가 <Love for Sale> B평

불규칙 바운드/음악과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1. 1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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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니 베넷 할아버지의 80년이 넘는 커리어의 시작에는 빙 크로스비와 프랭크 시나트라가 있었고 마지막에는 레이디 가가가 있었다. 다시 말해 그 시대 ‘어른’들이 경계의 눈길을 보내는 타락한 대중음악의 원흉들과 항상 함께 해오신 분이라는 뜻이 되겠다. 그럼에도 토니 할아버지와 레이디 가가와의 협업은 다소 의외처럼 느껴지는 감이 없지 않았다. 처음 그 소식을 들었을 때 귀를 의심했던 기억이 난다. 이제까지 할아버지가 온전히 한 앨범을 함께 녹음한 파트너들을 보면 연주자로는 카운트 베이시, 빌 에반스, 빌 찰랩, 데이브 브루백 등이 있었고 보컬로는 K.D. 랭과 다이애나 크롤 등이 있었다. 레이디 가가는 이 카테고리에서 꽤 거리가 있는 가수이다. 세 겹의 폼파도르 가발이나 불 뿜는 브래지어, 그리고 라텍스, 버블, 생고기로 이어지는 드레스 트릴로지를 기억하면 할아버지와의 듀엣을 좀처럼 상상하기가 어렵다. 그런데도 이번이 두 번째 협업이고 할아버지의 은퇴 앨범으로 의미도 있다. 언젠가 레이디 가가는 먼저 협업을 제안한 쪽이 할아버지라고 주장한 바 있다. 먼저 다가와 “너는 재즈 싱어야”라는 말씀을 해주셨다고 했다. 그 말을 곧이 믿기가 어려워 할아버지의 가장 최근 전기를 꺼내 찾아보았는데 일단 “우리 같이 앨범을 녹음하자”는 말씀을 먼저 하셨다고는 적혀있다 (註1). 토니 할아버지가 직접 그렇게 말씀하셨다면 토를 달 수야 없겠다.


  사실 스테파니 조앤 안젤리나 제르마노타(레이디 가가)와의 첫 번째 듀엣 곡 녹음은 2011년 <Duet II> 앨범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레이트 아메리칸 송북에서 골라낸 열아홉 곡을 열아홉 팀의 후배 뮤지션과 함께 녹음하였던 2006년의 <Duets: An American Classic> 앨범의 후속작이었다. 이때 레이디 가가는 로저스 앤 하트의 ‘The Lady Is a Tramp (로저스 앤 하트, 1937)’를 함께 불렀고 (그녀의 보컬 스타일을 생각하면 꽤 잘 어울리는 선곡 아닌가!) 이것이 인연이 되어 2014년 첫 듀엣 앨범 <Cheek to Cheek>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번에 7년만에 다시 두 번째 듀엣 앨범 <Love for Sale>을 녹음한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리처드 로저스, 조지 거쉬인, 콜 포터, 제롬 컨, 지미 반 호이젠 등 다양한 작곡가의 곡을 고르게 섭렵했던 전작과 다르게 콜 포터의 곡만으로 채웠다는 점이다. 토니 할아버지가 그 사이 2015년에 피아니스트 빌 찰랩과 제롬 컨의 곡들을 기념하는 앨범을, 2016년 다이애나 크롤과 조지 거쉬인의 곡들을 기념하는 앨범을 녹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마도 대장정의 마지막으로 콜 포터의 곡들을 기념하는 앨범을 기획하며 레이디 가가를 다시 호출하신 듯하다. 사실 전작에서 그녀가 재즈보컬리스트로 보여준 깜짝 놀랄만한 강점과 깜짝 당혹스러운 단점들을 생각하면 이것은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시도이기는 하다. 특히 쇼 툰으로 여성 캐릭터에게 주어졌었던 빠르고 경쾌하고 심지어 유혹적인 요소를 담고 있는 곡들 (이를테면 ‘I’ve Got You Under My Skin (콜 포터, 1936)’이나 ‘I Get a Kick out of You (콜 포터, 1934)’ 등)만 생각해보아도 퍼포먼스에 강한 그녀의 장점이 드러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결과는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장점도 전작 <Cheek to Cheek> 앨범과 비슷하고 단점도 비슷하다. 곡에 따라 빅 밴드 오케스트라와 소규모 앙상블을 오가며 잘 정돈되고 모범적인 사운드가 만들어지고 그 위에서 서로 다른 스타일의 두 보컬리스트의 매력이 묘하게 조화를 이룬다. 다만 레이디 가가가 의외의 순간에 내는 뜻밖의 소리는 여전히 낯설게만 들린다. 레이디 가가는 예상대로 확실히 업 템포 곡에서 강하고 토니 할아버지는 서정적인 발라드 곡에서 대단한 위압감이 있으시다. 이 앨범의 듀엣 곡 중에서 2번 트랙 ‘Night and Day (콜 포터, 1932)’의 밋밋함은 다소 불만족스럽고 반면 10번 트랙 ‘Dream Dancing (콜 포터, 1941)’의 소박함은 마음에 든다. 한편 고령인 토니 할아버지가 언제부턴가 예전과 같은 넓은 보컬 레인지를 소화하지는 못하시는 점에 있어서는 늘 슬픈 마음이 들었지만, 이번만큼은 전작들보다 더 숙연할 수 밖에 없다. 물론 사실상의 은퇴 앨범이기도 하지만 특히 이 녹음 기간에 알츠하이머 투병 중이셨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정확하고 자연스러운 해석과 노련한 연출을 순간적으로 이끌어 내시는 것을 보면 대가가 긴 세월에 걸쳐 이룩한 내공에 경외감을 갖지 않을 수가 없다.

 

(2021년 12월)

 

(註1) ‘Just Getting Started,’ 토니 베넷, 스콧 사이먼, Harper, November 15,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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