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수의 신비: 제로
by 김영준 (James Kim)에갈렘 세되는, 모두의 존경을 받는 대신관 겸 남작으로 '수(數)의 대수도원'을 이끈다. 그는 세상 누구도 범접해보지 못한 높은 '수의 경지'에 다다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든 기사들이 그를 존경하고 모든 수도승들 역시 그를 존경한다. 모든 기사 겸 수도승들 또한 그를 존경한다. 그에게 존경을 바치지 않는 사람들은 기사나 수도승 어느 쪽에도 포함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다. 물론 기사도 수도사도 아닌 사람들도 (하다못해 농부나 어부나 농부 겸 어부나 심지어 천민들까지도) 그를 떠받들어 모신다. 따라서 에갈렘 세되는 명실상부한 수도(數都)의 지배자요 모든 이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수도(修道)의 종착역이다.
에갈렘 세되가 얼마나 깊은 수까지 꿰뚫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의견은 분분하되 논쟁은 없다. 일반 시민들의 수 체계가 그만한 경지에 이르지 못하는 탓에 그의 드높은 경지를 추상적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관계로 벌어지는 일이다. 메르뉴브(Mernubs) 스트리트(註1)에서 청과전 겸 어물전을 벌이는 사만다와 그 앞에서 어물전 겸 청과전을 벌이는 사이먼의 대화를 잠시 들어보자.
- 에갈렘 세되 대신관 겸 남작께서는 분명 4보다 높은 수를 아실꺼야.
수를 4까지 깨우친 사만다가 말했다.
- 4보다 높은 수가 과연 일상생활에 필요하기나 할까? 나는 사실 잘 이해가 안가.
역시 수를 4까지 깨우친 사이먼이 말했다.
- 나 역시 평생 메르뉴브 스트리트에서 장사를 했지만 4 이상의 수가 필요한 경우를 보지 못했어.
- 맞아. 이 거리의 모든 청과(靑果)는 위대한 법에 의해 한 묶음에 네 개로 정해져 있잖아.
- 당연하지. 넷은 완전한 짝이요 생명의 균형을 유지하는 수니까. 테이블도 다리가 네 개일 때 가장 안정적이고 수레도 바퀴가 네 개일 때 가장 잘 굴러가지. 어디 그 뿐인가. 남녀가 만나 화목한 가정을 이루면 두 아이를 낳아 네 명이 될 때 가장 보기 좋은 법이야. 그래야 인구가 늘지도 줄지도 않아 균형이 맞으니 그게 바로 자연의 섭리 아니겠어?
- 난 가끔 학자나 수도승들이 찾아와 손을 완전히 펴보이며 '여보게, 사과를 이만큼 주시게'라고 하는 게 이해가 가지 않아. 왜 '한 묶음을 주고 하나 더 주시게’ 혹은 ‘네 개에 한 개를 더 주시게’라고 말하지 않는거지? 설명에 아무런 문제가 없는데 말이야.
- 맞아. 그러고는 꼭 덧붙이더라. ‘자네는 이 수를 깨우쳤는가?’라는 식으로.
- 뽐내려는 거지. 자기들이 우리보다 더 많이 안다는 걸.
- 재수없는 밴댕이, 소갈딱지, 좀생이 양반들 같으니라고.
⁃ 그런데 너도 사과를 팔아?
⁃ 당연하지. 청과상인데. 그러면 그러는 너도?
잠시 사이가 어색해진 사만다와 사이먼은 수를 4까지 깨우쳤으나 5라는 수의 존재를 모르지는 않았다. 말하자면 사과 사과 한 묶음에 한 개를 더하면 4보다 1만큼 많은 새로운 수가 된다는 사실까지는 어렴풋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다만 5에 담긴 4 더하기 1 이상의 오묘한 진리를 깨우치지 못했을 뿐이다. 그런 그들에게 5는 독립된 개념이 아니었다. 그런 것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정말?) 백 번 양보하여 설령 있다고 한들 훨씬 효용성이 떨어지는 숫자일 거라고 그들은 생각했다. 때문에 4 이상의 수를 하나 더 안다고 젠체를 하는 사람들이 못마땅하게만 느껴졌다. 모든 수의 가치가 동등한가? 천만의 말씀, 만만의 쿵떡이다. 두 발로 걷는다고 모든 사람의 가치가 동일하지 않은 것처럼 숫자에도 분명 '더 가치있는 것'과 '덜 가치있는 것'이 있다. 그들의 가치관으로는 4가 더 가치있는 수였고 4+1 혹은 5라는 것은 (만약 그런 것이 있다면) 실용적이지도 독창적이지도 필수적이지도 않은 뭐랄까, 옵션이요 우수리같은 존재였다.
- 아니 도대체 대신관 겸 남작께서는 그 많은 수를 알아서 어디에 쓰신다지?
- 몰라. 네 개 단위 아연판을 세 겹으로 둘러싼 이중내화 금고 안에 넣어 놓고 누구도 접근할 수 없도록 경비대를 세우다나봐.
- 이중내화금고? 대단하네. 도대체 그 까짓걸 누가 원한다고 말이야.
*
그들의 말은 사실일까? 바람 결에 날려온 소문 그대로 대신관 겸 남작 에갈렘 세되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수를 이중내화 금고에 가두어 보관하는 걸까? 그렇다면 그 이유는 왜일까? 대신관 겸 남작의 대변인 겸 비서실장 트루아앵(註2)은 사적인 자리에서 그 질문을 받았을 때 이렇게 답했다. 물론 '수(數)의 대수도원'의 대변인 겸 비서실장으로 함부로 소문의 진위를 입에 담을 수는 없기에, 오프 더 레코드를 전제로 한 말이다.
- 모든 수는 잠재된 힘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것을 올바로 이끌어내느냐의 여부는 순전히 수를 이해하고 사용하는 이의 역량에 달려있습니다. 만약 반 윤리적인, 혹은 반 체적인 인물의 손에 이 아름다운 수의 힘이 들어가 잘못된 방향으로 힘이 쓰여진다면 세상은 극심한 혼란에 빠져들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대신관 겸 남작께서는 그 점을 무척 염려하고 계십니다.
- 그렇다면 열두 겹의 아연판과 이중내화 금고의 존재여부를 인정하시는 겁니까?
- 그렇게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역시 투르아앵은 아주 노련한 대변인 겸 비서실장 (그의 직책은 프레스룸을 벗어나면 '비서실장 겸 대변인'으로 공수 교대가 이루어진다) 이었다.
- 에갈렘 세되까지는 얼마나 높은 수의 경지에 이르신 것입니까?
- 오! 형제여! 감히 제가 상상할 수 없는 단계라 뭐라 말씀드릴 길이 없군요. 관념적으로는 어떻게 이해한다고 치더라도 대관절 그 무한함을 어떤 형상의 말로 표현해야할지…
그렇다면 대변인 겸 비서실장께서는 얼마나 많은 수까지 이해하고 계십니까?
- 형제님께서는 저의 하찮은 수의 지평을 감당하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역시나 투르아앵은 고도로 숙련된 대변인 겸 비서실장이었다.
식은 땀을 닦으며 대변인 겸 비서실장의 방으로 돌아온 트루아앵은 로브를 벗어 벽에 걸고 푹신한 의자에 몸을 기댔다. 근자에 이르러 유난히 수의 비밀에 궁금증을 지닌 자들이 몹시 늘어났다는 생각이 들어 불안함을 떨칠 수가 없었다. 사실 이 모든 것은 신관 겸 기사 오블레옹의 배신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는 무려 9 더하기 9까지의 수를 깨우친 사람이었고, 지금 트루아앵의 자리 (대변인 겸 비서실장 혹은 비서실장 겸 대변인의 위치)에서 위대하신 에갈렘 세되를 보필하던 사람이다. 어떻게 그런 높은 경지에 오른 사람이 변절을 할 수 있는 것이지? 17의 경지에 머물러있는 트루아앵은 도무지 그 사실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가 의문을 표하자 에갈렘 세되는 쓸쓸한 얼굴로,
- 트루아앵, 사람이 아는 게 너무 많으면 미치광이가 될 수도 있느니라. 우리가 수에 관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전파하지 않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수가 커지면 위험도 그만큼 커지는 법이다. 큰 수를 잘못다루면 더욱 큰 화를 입게 되는 법이니라. 오블레옹은… 좋은 동지였지만 끝까지 함께 갈 그릇은 되지 못했던게야.
라고 말했다.
- 대신관 겸 남작이시여! 명심에 명심을 거듭하겠습니다.
그 후로 트루아앵은 17 이후의 수를 알고자하는 헛된 욕심을 버리기로 마음 먹었다. 욕심이 화를 부르기 마련이니! 제 깜냥으로 감당할 수 없는 진리를 머리에 억지로 우겨넣으려는 행위가 사람을 미치게하는 것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적당한 때가 되면, 에갈렘 세되는 그에게 9 더하기 9를 가르쳐 줄 것이다. 그 은밀한 때를 알고 있기에 에갈렘 세되는 수의 수도원장으로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고 트루아앵은 몸과 마음을 바쳐 그를 보필하고 있는 것이다.
*
에갈렘 세되는 자신의 최측근으로 열둘의 신관 겸 기사를 두었다. 이들은 '수의 대수도원'을 이끌고 관리하는 온갖 정무를 맡아보는 동시에 에갈렘 세되의 안위를 목숨걸고 지켜내는 임무를 수행한다. 영광스러운 자리다. 모든 신관 겸 기사들이 이 '열두 수호자들'에 들고자 하는 목표 아래 지식과 무예의 연마를 거듭한다. 한 때 '열두 수호자들'의 좌장 격이었던 오블레옹이 빠진 뒤, 에갈렘 세되는 맛디아라는 문도(門徒)를 새로 선발, 빈 자리를 채워 넣었다. 맛디아는 그들의 오랜 전통에 따라 눈을 가린 채 밧줄을 목에 매고 가슴에 칼을 댄 다음, 긴장한 표정으로 열두 수호자들의 선서를 읽었다.
- 수는 곧 정의요, 진정한 권력이다.
그에게는 '열두 수호자들'의 상징인 12 더하기 12인치의 자와 석공의 망치가 주어졌다. 트루아앵은 옥타브, 시스탱, 두쟁 등 절친한 동료들과 함께 '열두 수호자들'의 새로운 동지를 축복해주었다. 모두가 입을 모아 소리 높여 노래를 불렀다.
"하나면 하나지 둘이겠느냐, 둘이면 둘이지 셋이겠느냐, 셋이면 셋이지 넷은 아니야."
이로써 그들은 다시금 완전한 수 12를 채웠다. 여기에 에갈렌 세되를 합하면 그들은 모두 열셋이 된다. 통상 12가 완전수라면 13은 초월수를 뜻한다. 이는 에갈렘 세되의 초월적 위상을 의미한다. 또한 수의 대수도원이 피라미드 모양의 정사각뿔인 것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 정사각뿔의 점과 면을 더하면 13이며 정사각뿔의 점과 선을 더해도 13이기 때문이다. 13은 촌부들이 감히 도달하기 어려운 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개 평생 10의 경지를 넘지 못한다. 진리의 탐구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실제 그들의 생활 속에서 큰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들에게는 그저 다섯 손가락으로 충분할 정도의 셈만이 가능하면 되는 것이다. 운이 좋은 사람들은 7까지는 깨우친다. 7은 하늘의 수와 땅의 수의 결합으로 완성된 아름답고 행운이 깃든 수다. 음계가 도레미파솔라시도의 7음으로 이루어졌고 비 온 뒤의 무지개가 빨주노초파남보의 7색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7을 깨우친 인생은 무난하고 행복하지만 세상의 이치와 작동 원리를 통달하는 경지까지는 아니다. 10을 넘고 11을 넘고 12를 거쳐야 소위 말하는 '인텔리'의 레벨이 된다. 이들은 대개 신관 겸 기사, 법관 겸 학자다. 오직 인텔리들만이 '열두 수호자들'의 존재를 이해하고 후일 '열두 수호자들'이 될 수가 있었기에, 사실상 세계는 이들의 손아귀에서 돌아가고 있는 것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었다. 에갈렘 세되가 가로되, 수의 전파는 결코 평등하지가 않으나니, 자연히 이와 같은 계층 구조는 밑변이 넓고 상부로 갈수록 좁아지는 '피라미드' 식의 형상으로 완성되게끔 되었다.
세상을 범주화하길 좋아하는 인텔리들은 수의 지평에 따라 계층의 이름을 붙였다. 먼저 다섯 이하의 수를 이해하고 있는 장삼이사들을 '젠타일'이라고 불렀다. 그리고 다섯 이상의 열 혹은 열하나 이하의 수를 이해하고 있는 중상계층을 '옵스큐(註3)'라고 불렀다. 그리고 가장 큰 고비라는 12의 경지를 넘어선 자신들이 '인텔리'가 그 위에 위치했다. 그들은 스스로를 '에그헤드'라고 낮춰 부르기를 즐겼는데, 그런 자조와 자학 또한 오직 인텔리들만이 가질 수 있는 기질이라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각 급의 위원회를 구성하고 피타고라스와 유클리드, 데카르트, 가우스를 '수학의 4대 성인'으로 모시며 그들의 위대함을 기리기 위한 모든 종류의 행사와 의식을 열었다. 세계의 차상부를 구성하는 이들에게 있어, 인생의 가장 큰 목표는 보다 높은 수적 경지를 맛보는 것이었다. 이들은 여섯 더하기 일곱이나 일곱 더하기 일곱을 넘어서기 위해 끊임없이 지적 탐구에 매진하고 학술회와 토론회에 열중했지만, 그 중 15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은 고작 천 명 중 하나도 될까말까였다. 그 '하나'만이 바로 '열두 수호자들'에 들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되는 행운아 - 트루아앵, 옥타브, 시스탱, 두쟁, 그리고 이번의 맛디아까지… 모두가 그런 단계를 거쳐 오늘의 영예로운 자리에 이르른 인물들이다.
*
'열두 수호자들'의 주된 임무는 어떻게 하면 '젠타일'과 '옵스큐'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것인가에 대한 부분이다. 그래야 '수의 대수도원'이 지닌 영광스러움에 감히 그 누구도 대적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인텔리'들은 '그들의 지식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각계각층에서 '젠타일'과 '옵스큐'들이 평생 '젠타일'과 '옵스큐'로 남도록 무형의 압력을 꾀한다. 이와 같은 분법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것이지만, 그들이 그렇게 믿고 그렇게 나섬으로 인해 차츰 계급화로 굳어지는 것이다. 에갈렘 세되가 손수 주창한 신세기 질서의 중심안 - '구스타보 독트린'이야말로 이 일련의 작업의 중심에 있다고 해야할 것이다. 그 내용인 즉슨, 평범한 시민들 중 누구도 9 이상의 숫자를 깨우칠 필요를 느끼지 못하게 만들자는 것. 평생 5 더하기 5가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우민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들에게 좋다는 사실은 말하자면 입만 아픈 것이었다.
한번 젠타일은 영원한 젠타일로 남도록!
한번 옵스큐는 영원한 옵스큐로 남도록!
열두 수호자들'에게는 많은 지배 전략이 있다. 그 중 하나가 광대다. 17의 경지에 오른 옥타브는 도시의 모든 광대들을 관리했다. 광대는 언뜻 '젠타일'의 부류에 속해있을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모두가 열 이상의 수를 셀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눈과 귀를 현혹시키는 재주로 시민들 누구도 에갈렘 세되의 정사에 관여치 못하도록 세뇌를 시킨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무기는 안보다. 16의 경지에 오른 두쟁은 공공연히 시민들을 불안으로 몰아넣는 풍문을 퍼뜨렸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바다 너머에 피보나치들의 나라가 있다'라는 말. 주제 넘게 '수의 비밀'을 캐내려다가 그만 미쳐버렸다는 이 흉폭한 괴물들의 나라는 사람들에게 수에 대한 경외감과 두려움을 동시에 심어주는데 아주 제격인 작전이었다. 두쟁은 민심이 동요할 때마다 '피보나치 소문'을 십분 활용해 이상 기운이 확산되는 것을 막아내고는 했다. 즉 안심시키거나 겁을 주거나, 두 가지를 적절히 배합하는 것이야말로 체제를 효과적으로 유지하는 비결 중의 비결이었다. 마지막으로 안심을 안심으로, 겁을 겁으로 올바르게 감지하는 것이 불가능하도록 만드는 방법이 또 있다. 시스텡은 지하의 검은 조직, 모브를 비호하여 은밀하게 환각제의 유통을 방조했다. 시민들은 법적으로는 금지되어 있는 그런 향정신성 의약품을 마음만 먹으면 허가가 없이도 어렵지 않게 구할 수가 있었다. 나른한 도취에 빠진 시민들은 어떻게 세계가 돌아가는지, 수의 대수도원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심지어 자신들의 눈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그만큼 에갈렘 세되와 '열두 수호자들'의 지배력은 막강했던 것이다. 그들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때부터 이어져왔다는 이 막중한 '임무'에 대해 단 한 번 어떤 의문도 품지 않았다. 그래야 세계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에갈렘 세되의 말씀 또한 의심해선 아니될 것이라고 여겼다. 그리하여 '열두 수호자들'은 동료의 배신 이후에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
그 다음은 베르베르의 이야기를 통해 당신도 알고 있는 그대로다. 에갈렘 세되는 트루아앵 등을 불러 염소같기도 하고 영양같기도 한 고대의 유물 그림을 하나 건네주고 조사를 지시했다. 그게 동물을 그린 것이 아닌 667700996이라는 어마어마한 수를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된 트루아앵, 시스탱, 옥타브, 두쟁은 에갈렘 세되와 담판을 지으려고 했다. 에갈렘 세되가 그들에게 숨기는 사실이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에갈렘 세되는 그들이 발견한 진실을 부정했고, 그들의 요청을 거부했다. 사람을 풀어 그들을 잡으려고 했다. 하여 그들은 저 멀리 파르밀로 도망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에갈렘 세되가 그들을 잡아들이기 위해 신관 겸 기사 뱅상을 보낸 일은 그 다음의 이야기다. 베르베르는 이 일을 기술함에 있어, '10의 수호자들'에게 받은 위협 때문인지 뱅상 사건의 전후맥락의 대부분을 생략해버렸다. 하여 나는 그간 나름대로 수집한 기록과 증언을 토대로 이와같이 재구성한 사실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앞서 이야기한 원리주의 단체 '10의 수호자들'의 뿌리가 된 '열두 수호자들'의 임무란 무엇이었나? 에갈렘 세되는 어째서 20 너머에 무한한 수가 있음을 알면서도 숨겼는가? 트루아앵의 무리가 어떻게 갈등을 빚게 되었는가? 상기 질문들은 뱅상 등장 이전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러한 기록을 임의로 (또 최근의 유행에 편승하여) ‘수의 신비 : 제로 (Le mystère du chiffre: Zéro)’라고 칭하기로 한다. 한편 베르베르는 뱅상이 이단의 지도자가 된 다음의 이야기 또한 많은 부분을 이유없이 생략하거나 애써 축소해버렸다. 여기에 대한 사실 또한 마찬가지로 후일 기회가 닿는다면 공개할 계획을, 나는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전에 '10의 수호자들'의 끈질긴 추적을 뿌리쳐야 하겠지만 말이다. 지금 내가 급한대로 휘갈겨 적어 우체통에 던져 넣을 이 기록을, 만약 당신이 접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건 분명 하늘의 도우심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의 힘이 워낙 강하고 조직적이어서 누구의 눈에도 띄지 못한 채 세상에서 사라져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2008년 11월)
(註1) Inspired by Bernard Werber
(註2) Numbers의 애너그램.
(註3) Obscurantism(몽매주의)에서 따온 말. 'Obscurantist policy'라고 하면 '우민정치'라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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