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 콜린스 - Going Back (2010) B평
by 김영준 (James Kim)한때 전국을 풍미했던 <필노래방>. 그것 참 신기하지. 프랜차이즈도 아닌데 같은 이름이 유별나게 많은 걸까? 그 이름의 연원을 두고 많은 가설이 농담처럼 오고 갔었던 때가 있었다. 가요팬들은 대개 조용필의 '필'에서 따온 이름이 아니겠느냐는 의견이었고 팝송팬들은 대개 필 콜린스의 '필'에서 따온 이름이 아니겠냐고 반박했다. 대한민국의 지정학적 위치와 한국어라는 언어의 특수성을 고려하자면 아무래도 전자 쪽이 더 설득력 있다 말할 수 있겠으나 중요한 것은 이 반진담 반농담 해프닝 속에 숨어있는 필 콜린스의 위상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턴가 이상하게 '한물 간 옛날 발라드 가수' 정도로 인식되고 있지만 사실 'The Billboard Hot 100 Top All-Time Artists'에서 22위에 랭크되어 계신 몸이다. 뿐만 아니라 지구상에 딱 세 사람 밖에 없다는 '밴드 커리어에서 1억 장, 솔로 커리어에서 1억 장'의 기록 보유자이고 말이다. 굳이 기억을 더듬어보지 않더라도 이 양반 커리어 하이 찍을 당시 국내에 몰고 온 파장이 적지 않다. 이후 가요에서 이상하게 업계 평균보다 세련되고 업계 평균보다 섹시한 음악이다 싶으면, 어김없이 필 콜린스의 숨결이 느껴지는 경우가 많았다. (세계적 대가로부터 영감을 받은 정도이면 다행인데 상당수는 위험한 경계를...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쉽게 말해 우리가 사랑했던 옵하들이 대부분 이 옵하 팬이었던 셈. 월트 디즈니가 영화음악가 아닌 대중가수에게 사운드트랙의 지휘권을 넘긴 경우도 엘튼 존을 제외하면 필 콜린스가 유일하다. 정말 '타잔 (케빈 리마 & 크리스 벅, 1999)'은 작품 자체는 그냥 그랬어도 음악만큼은 디즈니 역사상 다섯 손가락에 들어갈만큼 일품이었다 (註1).
80년대 폭풍처럼 전설을 쌓아올린 후 90년대 이르러 <Both Sides>, <Testify>와 같은 준척급 음반을 내고도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며 일선에서는 밀려났지만 '제네시스'의 일원으로, 또 영국이 자랑하는 싱어 송라이터 필 콜린스의 이름을 걸고 월드 투어는 계속되는 중이었다. '타잔'의 성공에 힘입어 '타잔'의 브로드웨이 버전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하지만 오른쪽 귀 청력을 읽은 후 현저한 어려움을 겪었고 작년에는 척추 탈골로 수술까지 받으며 더 이상 드럼과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불가능해진 상태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은퇴 수순을 밟아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그는 8년 만에 신보를 세상에 내놓았다. 그 자신의 음악에 자양분이었던 60년대 모타운과 소울 스탠다드를 컨셉트로 밥 배빗, 에디 윌리스, 레이 모네트의 조력을 더해 30곡 이상을 녹음하고 그중 18곡을 추려내는 거대한 작업을 이뤄낸 것이다. 트랙 리스트를 딱 보는 순간, 무릎을 치며 "이거야 말로 교과서다"는 말이 나오게 만드는 위대한 선곡은 말할 것도 없지만, 녹음 또한 교과서적이라 해도 좋을 만큼 감탄스러울만치 고전의 백미를 잘 살려 이루어졌다. 비록 드럼을 치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데는 어려움을 느낄지 몰라도, 그의 보컬에는 여전히 젊은 시절과 별 차이가 없는 활기와 감성이 묻어난다. 좋은 앨범이고, 교과서적인 앨범이고, 굳이 '의외로 머리숱이 풍성했던 열세 살 때의 사진'이 실려있지 않더라도 여러 모로 의미가 적지 않은 앨범이다. 하지만 이 작품이 그의 마지막 프로젝트가 될 가능성은 아주 높아 보인다. 이미 몇몇 인터뷰를 통해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작업을 하지 않을 것임을 고백하며 사실상 은퇴선언을 했기 때문이다. 또 한 시대의 영웅이 무대에서 퇴장하고 있기에 더욱 더 추억과 경의를 담아 간직할 필요가 있는 소중한 작품이다.
(2010년 10월)
(註1) 이에 자극받은 드림웍스가 비슷한 시너지를 기대했던 '스피릿(켈리 애스버리 & 로나 쿡, 2002)'의 사운드 트랙을 브라이언 아담스가 너무 안일하게 자기 EP처럼 ('한스 짐머의 경음악 선물로 더욱 빛나는' 따위의 카피가 달려 있을 법한!) 만들어버렸던 경우와 비교하자면 확실히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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