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제임스 테일러 <Covers> B평

불규칙 바운드/음악과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9. 6. 11.

본문

  물론 올해 최악의 앨범 자켓 중 하나로 선정된 이 야릇한 몽타주에 찬성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 할아-오빠(61세)가 전성기 지난 슈퍼스타가 어떻게 지고한 아티스트의 반열로 가치를 유지할 수 있는지, 그 모범답안을 화보 아닌 음악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전설적 싱어 송라이터의 사상 최초의 커버 앨범, 그 이름도 심플한 <Covers>의 상큼한 가치는 그렇게 입증된다. 자신이 꾸준히 공연에 포함시켜오던 명곡 레퍼토리를, 그리고 평소 아껴오던 고전 명곡을 모아서 고유의 정갈함으로 재구성한 이 앨범으로 그는 가뿐하게 명반 위에 명반을 한장 더 얹었다. 대중들은 변치 않는 사랑으로, 평단은 그래미 2개 부문 노미네이트로 노장에게 화답했다.


  제임스 테일러라면 언뜻 태어나 채 걸음마를 떼기도 전부터 그렇게 어쿠스틱 기타 한 대를 연인품듯 안고서 나긋하고 낭랑하게 속삭이는 컨트리/포크 계열의 부드러운 노래만 했을 거라는 환상을 가지기 쉽지만 의외로 그에게도 록삘로 충만한 질풍노도 낙장불입의 청년기가 있었다. 애플 레코드에서 발매된 그의 1968년도 데뷔 앨범을 들어보면 깜짝 놀랄 정도로 찐해서 ‘브라보, 브라보, 아빠의 청춘’과 같은 느낌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이런 말 참 쑥스럽고 송구하지만 그것이 노장께서 평생 유일하게 말아 잡수신 앨범이다. 이후 지금 우리가 기억하는 모습으로 변신한 그는 정규앨범으로만 플래티넘을 열 장을 기록했다. 심지어 1977년의 <Greatest Hits> 앨범은 히트곡 컴필레이션임에도 불구하고 무려 1,100만장이나 팔린 것으로 집계되었다. 정규앨범과 컴필레이션, 그리고 라이브 앨범을 모두 합치면 앨범 세일즈가 3,300만장에 이른다. 평생동안 빌보드 싱글차트 탑 텐 안에 든 곡이 통산 네 곡이고 넘버 원 싱글이 ‘You've Got a Friend(1971)’ 달랑 하나임을 감안하자면 인기에 비해 차트 퍼포먼스가 저조했다고 해야할까 아니면 실속이 만점이라고 해야할까. 그만큼 그는 꾸준히 오랫동안 부침없이 사랑받은 영웅이다.

  "무엇이 그런 영광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라는 질문도 이쯤되면 부질없어 보인다. 5년도 10년도 아닌 무려 40년을 이어온 기록이니 말이다. 때문에 순간의 기록에서는 한번도 천하를 제패하고 호령해 본 적이 없을지언정 그는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레전드이고 한 세대를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다. 사실 찬란하게 빛났던 영웅들이 그만큼 빛도 빨리 잃어갔던 것에 비해 그의 시장 점유율 상실은 유난히 더딘 편이다. 여전히 판이 무섭게 팔린다. 팬 베이스가 '센추리 딕셔너리(Century Dictionary)'만큼 두껍다는 얘기겠지만 이 또한 가히 반-센추리에 가까운 시간동안 쉼 없이 꾸준히 현역에서 땀흘리며 뛰어온 노장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일 것이다. 다시 한 번, "무엇이 그런 영광을 가능하게 한 것일까?"라는 질문은 역시 부질없지만 오늘의 이 앨범에 이르러 참 많은 것을 깨닫게도 만들어준다. '제임스 테일러=이지 리스닝'이 일반화된 생각이지만 그의 음악은 언제나 Easy한 수준의 보컬만으로 평가하기에 무리가 많았다. 고로 그의 보컬을 꾸미는 수사는 '평이한'이 아니라 '적절한'이 되어야 옳을 것이다. 어쩌면 그 나머지는 조화의 힘일 것이다. 때문에 어떤 면에서 제임스 테일러의 오늘은 비단 그 혼자 일구어낸 것이라기 보다는 그가 속해있는 씬, 그리고 그의 동료들이 받은 시간의 세례가 함께 담겨진 결과물이라고 봐야 옳을런지도 모른단 뜻이다. 


  특히 이 앨범 <Covers>의 경우 1950~1960년대의 명곡들을 평균 연령 55.3세의 노련한 세션맨들과 함께 재해석하는만큼 그 의미가 남다르다. 그래미를 반하게 한 머릿곡 'Wichita Lineman(지미 웹, 1968)'을 비롯, 'Why Baby Why(조지 존스, 1955)', 'It's Growing(템테이션즈, 1965)' 등에서도 확인 가능하듯 이렇게 천부적 감각과 기술적 정교함을 겸비한, 찰진 궁합의 수준작은 결코 근래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재료부터가 그 자체로 '유산'이나 다름없는 명곡들이었음 사실이지만, 그 시절의 공기와 호흡을 기억하는 프로 음악가들의 숱한 세월과 경험에 바탕하지 않았다면 오늘의 이런 환상적 결과물은 불가능했을 것이란 점에서 이 앨범은 일개 수준작이기 이전에 문자 그대로 '위대한 유산'의 반열에 올려야 마땅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9년 06월)

반응형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