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전설이다 (I Am Legend, 2007) B평
by 김영준 (James Kim)인류 최초의 남자 아담의 이름에는 히브리어로 '사람'이라는 뜻이고 인류 최초의 여자 이브의 이름에는 히브리어로 '생명'이라는 뜻이 있단다. 하나님이 이브를 창조한 이유는 이렇다. ('혼자 있는 것이 대략 좋지 않으니 그를 위하여 돕는 자를 지으리라') 혼자 있는 것이 대략 좋지 않은 건 지상 최후의 남자 로버트 네빌 (윌 스미스)에게도 마찬가지다. 물론 최후의 아담은 최초의 아담보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다. 안락하고 따뜻한 좋은 집도 있고, SUV도 있고, 충성스런 개도 있고, 텔레비젼도 있고, DVD플레이어도 있고, 전축도 있고, 러닝머신도 있고, 거실엔 반 고호의 그림이 있고, 원한다면 세계의 중심 뉴욕의 모든 문명이 다 그의 것이다. 게다가 원작과는 달리 해 떨어진 뒤에만 좀비가 등장하니, 적어도 낮 동안에는 아무도 그의 뉴욕을 건드릴 수 없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의 삶은 꽤 풍족해 보인다. 진짜 미안하지만 그의 삶은 그다지 위험하거나 긴장되어 보이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그는 투정을 부린다. 좀비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사람이 그리워서다. AM 라디오로 끊임없이 생존자를 찾고 개와 다정히 이야기를 나누며 상점마다 마네킹을 세워 홀로 역할극을 한다. 관건은 좀비가 아니라 고독이고 고립이며 결핍이다. 혼자있어도 사람은 '사람'이나 혼자 있다면 사람에게는 '생명'이 없다. 파국은 좀비로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닌 그 스스로가 뼈 속 깊이 스며드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함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맞다. 남부럽지 않을 모든 물질문명의 정수를 그의 곁에 두고 있음에도. 그걸 다루기 위해 이 작품은 원작에서의 '나는 전설이다'라는 외침이 지니는 의미를 윤색한다. 허나 헐리우드 본연의 외양 속에서 리처드 매드슨이 던져준 실존적 고민은 축소되거나 한없이 깊이가 얕아졌다. 빈센트 프라이스 주연의 '지상 최후의 남자(우발도 라고나, 1964)'가 보였던 그런 위엄과 인간의 존엄성은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가 없다. 오로지 윌 스미스의 개인기만이 남아 추레하고 앙상하게 '나는 전설이다'라고 외친다. 그 '전설'의 의미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던 '전설'과는 다른 뜻일테다.
(2008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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