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미카고 (Schmicago, Apple TV+, 2023) B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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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미카고 (Schmicago, Apple TV+, 2023) B평

by 김영준 (James Kim)

  사실 ‘슈미가둔!(Schmigadoon!, Apple TV+, 2021)’은 여섯 에피소드로 구성된 리미티드 시리즈로 기획된 것이었고 따라서 이렇게 리턴하게 될 거라고는 생각을 하지 못하였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뮤지컬 ‘브리가둔(알란 제이 러너와 프레데릭 로우, 1947)’에서 토미와 제프는 뉴욕으로 돌아온 다음에도 ‘브리가둔’을 잊지 못하여 다시 스코틀랜드 하이랜드를 찾아 떠난다. 그러니 어쩌면 해피엔딩을 맞은 ‘슈미가둔!’의 커플 조쉬(키건 마이클-키)와 멜리사(세실리 스트롱)도 다시 ‘슈미가둔’을 그리워할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면 두 번째 시즌으로의 연장은 충분히 납득이 된다. 리미티드 시리즈가 시즌 단위 앤솔로지 구성을 취하게 되는 사례가 없는 것도 아니다. 라이언 머피의 장수 시리즈 ‘아메리칸 호러 스토리 (FX, 2011~현재)’와 그 시스터 시리즈인 ‘아메리칸 크라임 스토리 (FX, 2016~현재)’가 그러하였고 닉 피졸라토를 단숨에 스타 크리에이터로 등극시킨 ‘트루 디텍티브 (HBS, 2014~현재)’와 최근 놀라운 센세이션을 일으킨 마이크 화이트의 '더 화이트 로투스 (HBO, 2021~현재)'도 그러하였다. 처음부터 길게 이어질 것을 염두에 두지 않았어도 확장에 성공한 사례도 있다. 노아 훌리의 ‘파고(FX, 2014~현재)’의 경우, 최초의 제작 의도는 동명 영화 '파고 (코엔 형제, 1996)'의 TV 어댑테이션이었다. 하지만 큰 성공을 거두면서 리뉴가 되었고 두 번째 시즌부터는 동일 지역의 다른 시대로 무대를 옮겨다니면서 동일한 주제에 느슨한 연계성을 가진 새로운 세팅 위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러니 ‘슈미가둔!’에서도 안될 이유는 없다. 로저스와 해머스타인, 러너와 로우 이후의 시대 이후에도 뮤지컬은 계속되었으니 충분히 같은 소재를 새로운 세팅 위로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두 번째 시즌은 이렇게 만들어진다. 슈미가둔에서 돌아와 결혼식을 올리고 행복한 시절을 보내던 조쉬와 멜리사는 현대의 일상에 염증을 느끼고 다시금 고전 뮤지컬 속 총천연색 세계를 그리워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다시 슈미가둔을 찾아가지만 마을을 찾지 못하고 길을 잃는다. 마지막 순간 어둠 속에서 마을을 하나 찾는데 안개가 걷히며 드러나는 표지판은... 다른 이름으로 변해있다. 이 새로운 소도시 공간에서 슈미가둔에서 만났던 인물들은 이제 다른 캐릭터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농부의 딸은 클럽의 무희가 되어 있고 시장은 푸줏간 주인이 되어 있으며 학교 선생님은 클럽의 무대 진행자, 시장의 아내는 호텔의 마담, 목사의 아내는 고아원 원장, 의사는 경찰, 의사의 약혼녀는 변호사, 카니발 건달은 히피가 되어 있는 식이다.

 

  마을 이름이 의미하는 것처럼 이 두번째 시즌은 ‘시카고 (존 칸더와 프레드 앱, 1975)’를 비롯한 그 다음 시대의 뮤지컬을 소재로 삼는다. 크게는 ‘시카고’와 ‘스위니 토드 (시티븐 손드하임, 1979)’가 큰 축이고 여기에 ‘카바레 (존 칸더와 프레드 앱, 1975),’ ‘헤어 (제롬 라니, 제임스 라도와 게이트 맥더모트, 1967),’ ‘피핀 (스티븐 슈월츠, 1972),’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 (팀 라이스와 앤드류 로이드 웨버, 1971),’ ‘록키 호러 픽쳐쇼 (리처드 오브라이언, 1973),’ ‘드림걸즈 (헨리 크리거와 톰 이옌, 1981),’ '어 코러스 라인 (마빈 햄리시와 에드워드 클레반, 1975),' ’애니 (찰스 스트라우스와 마틴 차닌, 1976)' 등의 설정을 뒤섞어 현실과 환상의 파라고(farrago)를 이룬다. 프레드 아머슨이 빠지고 타이투스 버지스와 패트릭 페이지가 들어온 것을 제외하면 앨런 커밍, 크리스틴 체노웨스, 제인 크라코우스키, 애런 트베이트, 아리아나 데보스, 제이미 카밀, 도브 캐머런 등 주요 배우들은 거의 동일하다 (물론 마틴 숏도 깜짝 출연한다). 역사상 많은 TV쇼들이 증명하듯, 그리 완벽하지 않은 작품도 시즌을 거듭하며 고유의 패턴을 만들어가면서 점점 괜찮아지는 경우가 있다. 첫 번째 시즌이 아주 만족스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렇게 돌아오니 반가운 마음을 가지고 기대하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몇 가지 문제는 그대로 반복된다. 다소 성급한 판단이 김을 새게 만드는 경우가 그렇다. 가령 조쉬와 멜리사는 (자신들이 찾은 슈미카고라는 공간에) 과거 슈미가둔에서 보았던 인물들이 다시 등장한다는 사실 앞에서 거의 빛의 속도로 상황을 이해하고 게임의 법칙을 받아들인다 (생각해보면 이 커플은 처음 슈미가둔을 처음 발견했을 때에도 그랬다). 조쉬가 시장 등 슈미가둔에서 만났던 몇몇 인물에게 알은체를 하는데 (당연히) 그들은 조쉬를 전혀 알아보지 못한다. 의아해하는 조쉬에게 멜리사는 이렇게 지적한다. “뮤직 맨의 서턴 포스터에게 손을 흔들래? 모던 밀리에서 봤었다고?”라고. 이 소름끼치도록 정확한 지적은 (물론 마음에 드는 펀치 라인이지만) 그 타이밍에 있어서 이 작품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문제는 계속된다. 멜리사는 (고전 뮤지컬의) 다음 시대 뮤지컬 세계 안으로 자신들이 진입하고 있음을 사실상 직접 선언하고 직접적으로 레퍼런스가 되는 뮤지컬들을 열거하기까지 한다. 또한 보다 어둡고 범죄와 성에 대한 테마를 가지고 있다는 정확한 해석을 내어 놓는다. 불과 몇 분 사이에 벌어지는 일인데 너무 빠르다. 여전히 텔레비젼 스케치 코미디의 호흡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뮤지컬을 사랑하는 여자와 뮤지컬을 싫어하는 남자의 콤비 플레이 역시 여전히 명확한 차이를 만들어내지 못한다. 과거 ‘슈미가둔!’의 첫 시즌에 대하여 언급했던 것과 동일하다: ‘조쉬는 뮤지컬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리 싫어하지는 않는 것 같고 멜린다는 뮤지컬을 이해하지만 그리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런 와중에 현재의 인물들이 뮤지컬 장르의 고유 법칙과 충돌하며 벌어지는 일을 관찰하겠다는 본래 의도는 약해지고 오히려 훨씬 자극적으로 변한 스토리에 묻혀버리는 느낌이 든다. 또한 너무 많은 뮤지컬의 소재를 한 번에 몰아넣다보니 산만해지는 부분도 있다. 일단 시대적 배경부터 어그러진다. 20세기 초 쇼비지니스 세계와 70년대의 히피 세계와 19세기 중반의 런던이 동일 공간 안에 공존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자연히 (멜리사의 입을 빌어) 스스로 선언한 그 다음 시대 뮤지컬의 성격에 전혀 맞는 않는 사례도 등장하고 (애니?) 대충 겉핡기 식으로 때우고 넘어가는 꽤 아까운 사례도 생긴다. 가령 ‘애니’와 ‘스위니 토드’의 퓨전은 차라리 새로운 시즌의 무대로 기획되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고 일련의 록 뮤지컬들도 따로 모아서 그 다음 시즌을 위해 아껴놓는 편이 더 적합하지 않았을까 싶다. 이 TV 쇼의 크리에이터이자 작가이자 작곡가로 종횡무진하는 신코 폴은 이번에도 기존 뮤지컬 명곡을 노골적으로 패러디하는 작업을 진행하지만 이전 시즌에 비해 괜찮은 넘버가 훨씬 적다 (아마도 그 역시 멜리사처럼 고전뮤지컬의 밝고 행복한 세계를 더 좋아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크라트 클럽의 (킷 캣 클럽이 아니다) 스타로 분한 도브 카메론의 ‘Kaput’과 보드빌 시대의 걸그룹 무대를 연상하게 만드는 ‘Burstin’ Out’등이 ‘시카고’에 바탕한 설정에서는 괜찮다. 물론 결정적 하이라이트는 (그야말로 손드하임도 뒷목을 잡을만한) 앨런 커밍과 크리스틴 체노웨스의 ‘The Worst Brats in Town’과 ‘Good Enough to Eat’이다. 정말 마음을 먹고 패러디를 하겠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만들 수 있는 건가 싶어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 무한한 가능성을 이렇게 불완전하게 소모하고 마는 점이 안타깝다.

 

  자! 일단 규칙이 생겼고 패턴이 생겼다. 그러니 이 다음에 세 번째 시즌으로 연장하는 것도 결코 무리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앤드류 로이드 웨버? 디즈니 인 브로드웨이? 80년대와 90년대 뮤지컬들? 00년대와 10년대 뮤지컬들? 모두 다 가능한 이야기처럼 들리고 재미있을 것 같다. 특히 이 정도 레벨의 캐스트를 모아 놓았는데 말이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 시리즈가 리뉴를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다음 시즌에 대한 공식적인 계획도 없다고 한다. 다만 내년 오프닝을 목표로 ‘슈미가둔!’을 바탕으로 한 스테이지 어댑테이션이 준비되고 있다는 소식은 있다.      

 

(2024년 12월)

 

(註1) 사실 제목은 ‘슈미가둔! 시즌 2’가 되어야 하지만 리미티드 시리즈라고 간주하고 2022년 1월 한 번 글을 작성하였으므로 구분을 위해 포스트 제목에는 부제를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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