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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언즈 (Billions, Showtime, 2016~2023) B평

불규칙 바운드/TV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3. 10.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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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빌리언즈’의 체급은 왜 몇 년째 제자리 걸음인가? 분명 의아한 일이다. 프리미엄 TV 쇼의 파워하우스로 추앙받는 쇼타임에서 방영하고 폴 지아마티와 데미언 루이스를 중심으로 중량감 있는 배우들이 대거 포진했다. 성공한 두 알파 메일이 이 자신의 무리를 이끌고 혼신의 쇼다운을 벌이는 구조인만큼 갈등 구조가 강렬하다. 소재 선택도 나쁘지 않다. 헤지펀드는 그간 텔레비젼에서 중점적으로 다룬 적이 없는 만큼 이목을 집중시킬만 하며, 정치 권력과 자본 권력의 모럴 해저드를 다루는 만큼 적당한 사회 비판적 메세지도 장착할 수 있다. 풍부한 문화적 레퍼런스와 샤프한 대사도 갖췄다 (특히 지아마티가 연기하는 척 로즈가 쏟아내는 찰떡 같고 꿀떡 같은 고급 비유의 행진은 정말이지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심지어 운도 따랐다. 테일러 메이슨(아시아 케이트 딜런)이라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캐릭터는 갑자기 툭 튀어나와 순식간에 이 시대의 논-바이너리 캐릭터를 상징하는 지위를 얻었다. 한 마디로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춘 것이다. 그런데 결과는 신통치 않다. 에미와 골든글로브에서 단 한 차례 지명된 적이 없다. 심지어 그 아래 급 시상식에서도 수상 경력이 전무하다. 쇼타임, 지아마티, 그리고 루이스의 조합이라면 당연히 닥치고 대권을 노려야 할 상황인데 세미-파이널은 고사하고 쿼터-파이널조차 가기 어려운 모양새이니 이거 황당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같은 시기 방영된 또 다른 블랙 코미디 ‘석세션(HBO, 2018~2023)’이 영광을 싹쓸이한 점 역시 상당히 뼈아픈 부분이다. 


  ‘빌리언즈’의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보인다. 먼저 눈에 띄는 한 가지는 시대적 흐름과 맞아 떨어지지 않은 부분이다. 일단 내용상 성공한 남성들의 파워 게임을 다루고 있는데 거의 남학생 클럽을 연상하게 하는 그들만의 세계는 사실 오늘날 시청자들이 정서적으로 호감을 가질만한 요소는 아니다. 여성 캐릭터들이 보조적인 포지션에 한정되는 점 역시 지금 시대에 가점 요인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한동안 흑과 백이 분명하게 나누어지지 않는 캐릭터들이 유행이었지만 이제는 신선한 전략이라 하기도 어렵고, 이들의 (완전히 좋은 사람도 아니고 완전히 나쁜 사람도 아닌) 특성이 되려 메세지의 선명성을 반감시키는 측면도 있다. 물론 핑계없는 무덤이 없다고 시대적 흐름만을 탓할 문제는 아니다. 첫 시즌의 매서운 위용이 사그라들고 난 다음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한 매끄럽지 않은 만듦새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대사는 정말 샤프한데 흐름은 전혀 샤프하지 않다. 장면 장면은 영리한데 하나로 이어 놓으면 그리 인상적이지 않다. 출렁거림도 심하고 종종 스스로 흐름을 끊어 먹는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고, 공격과 수비가 교대되며, 장군과 멍군을 반복하는 구조라는 점은 충분히 이해할만 하다. 하지만 흐름을 뒤엎는 하나의 사건이 바로 다음 에피소드에서 빈번하게 뒤집하는 식의 전개는 쇼의 주제나 성격이나 혹은 포맷을 감안하면 다소 이례적이다. 지아마티와 루이스의 1라운드가 마무리 된 다음 (다이어트에 성공한) 지아마티와 코리 스톨의 2라운드로 리뉴얼을 하는 전략은 언뜻 그럴 듯하게 보인다.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다. 이미 쇼의 스타일에 내재된 문제, 즉 대결의 강도만 점층적으로 높여가는 방식이 한계에 다다랐기 때문이다. 그래서 ‘빌리언즈’의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는 웬디 로즈(매기 시프)의 절반의 성공 혹은 절반의 실패이기도 하다. 그녀는 로즈의 아내이자 액설로드가 신뢰하는 퍼포먼스 코치로 두 남자 사이에 위치하며 아슬아슬한 균형을 잡고 두 남자의 충돌을 막는 완충지대를 형성한다. 하지만 그녀가 도덕적 우위를 상실하는 순간에 사실상 본연의 역할은 무너지고 함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어가는 결과만 남는다. 


  메인 캐릭터들의 강렬한 매력과 비교하자면 보조 캐릭터들의 소품에 가까운 기능도 문제다. 특정 에피소드를 위해 만들어지거나 심지어 바뀌는 경우도 있고 끊입없는 변절과 배신의 이합집산의 과정에서 캐릭터의 성격이 오락가락하는 현상도 나타난다. 큰 역할이 있는 것처럼 등장했다가 별 이유 없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다. 거의 작가가 다른 에피소드에서는 캐릭터 성격도 매번 달라지던 시절의 ‘글리(FOX, 2009~2015)’를 연상하게 만든다. 심지어 최고의 히트 캐릭터인 테일러 메이슨조차 큰 맥락에서는 이 문제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황금만능주의에 경도된 셰계와 대비가 되었던 이 젊고 순수하고 영리한 마이너리티 청년은 어느 순간엔가 작은 엑설로드처럼 변해 버린다. (그런데 이 쇼는 이 과정을 그다지 비극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로즈의 멘티 브라이언 코너티(토비 레오너드 무어)가 자신과 멘토의 이상이 일치하지 않음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액설로드의 멘티 메이슨도 액스캐피털 안에서 비슷한 역할을 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이후 전개된 방향은 예상과 전혀 달랐다. 

   

  (사실 모든 TV 쇼가 그렇지만) 첫 시즌에는 의도가 비교적 명확했다. 척 로즈에게는 (개인적인 야망도 있지만) 금융계의 모랄 해저드가 사회 정의를 훼손하는 현실을 바로잡겠다는 이상이 있었다. 바비 엑설로드는 자수성가로 왕국을 세운 업계의 록스타이지만 부의 정점에서 그가 보이는 니힐리즘적 성향은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서 이 구도가 어그러지고 서로 법의 경계를 농락하면서 주제는 희미해진다. 문제 의식은 오간데 없고 사적 감정에 의한 개싸움만이 남는다. 첫 시즌 피날레 에피소드 마지막 장면에서 로즈와 엑설로드가 격론을 벌이던 장면에 이 작품의 정수가 담겨 있다면 과연 시리즈 피날레를 맞은 지금, 그 대사들의 무게감이 과연 얼마나 남아있는지 의문을 가져볼 필요가 있다.


   물론 어쩌면 지난 7년 사이에 텔레비젼 밖 실제 세계도 달라진 부분은 있을 듯 하다. 20세기 역사를 관통하여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까지 이어진 과도한 부의 집중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는 아이러니하게도 10년대를 기점으로 사그라들기 시작하여 COVID-19 팬더믹 기간을 거치며 완전히 희미해졌다 (롱 코비드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의 하나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은 더 많은 것을 가지려고 하는 탐욕을 그리 나쁘게만 보지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는지 모르겠다. 일례로 인물들의 옷과 액세서리 가격과 그 총합을 함께 보여주는 기법을 활용한 여섯 번째 시즌의 네 번째 에피소드 ‘Burn Rate’는 TV 쇼 제작진과 시청자들의 문제 의식이 함께 마비되어 버렸다는 증거처럼 보인다.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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