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왓 위 두 인 더 새도우스 (What We Do in the Shodows, FX, 2019~ ) B평

불규칙 바운드/TV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2.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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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세기의 TV는 20세기 TV에 걸려있던 제약을 마음껏 해제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하면 안되는 리스트는 없는 것 같고 심의 따위는 사전에나 나오는 단어가 되어버린 느낌이다. 스트리밍 서비스로의 골드 러쉬는 자연히 프로그램의 총량을 크게 늘였다. 정말 요즘 같아서는 어지간한 기획이 다 프로그램 제작까지 이어지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옛날에는 ‘스트레잇-투-시리즈(Straight-to-Series)’ 오더를 받는 것이 훌륭한 경력을 가진 스타 크리에이터들과 프로듀서들에게나 가능한 특권이었고 일 년에 몇 번 일어나지 않는 말 그대로 ‘사건’이었는데 요즘은 거의 모든 쇼가 그런 기회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하지만 그 결과 정작 창의적인 TV 쇼가 늘어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자유로워진 만큼 더 좋은 쇼가 많아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측면에서 ‘왓 위 두 인 더 새도우(FX, 2019~현재)’는 오늘날 가장 창의적이고 독특한 TV 쇼 중 하나라고 할 만하다. 한 마디로 표현할 방법이 없다. FX의 감식안이나 프로덕션 노하우가 ‘브랜드’로 자리잡을 만큼 경이적이라 믿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사실 처음 시놉시스를 보았을 때는 조금 당황했었다. 여간해서 성공하기 어려운 컨셉트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파일럿을 보는 순간 그 생각이 틀렸음을 바로 깨닫게 되었다.


  ‘왓 위 두 인 더 새도우’는 오늘날의 뉴욕 스태튼 아일랜드의 저택에서 생활하는 세 뱀파이어 난도르 (카이밴 노박), 란슬로 (매트 베리), 나지아 (나타샤 드미트리우), 에너지 뱀파이어 콜린 로빈슨 (마크 프록시), 그리고 난도르의 휴먼 파밀리어 기예르모 델 라 크루즈 (하비 길렌)에 대한 모큐멘터리이다 (註1). 원래 이 아이디어는 2014년에 타이카 와이티티와 제레미 클레멘스가 만든 동명의 저예산 뉴질랜드 영화에서 출발했다. 이 두 뉴질랜드 출신 영화제작자는 웰링턴 교외에 사는 네 뱀파이어 룸메이트에 대한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그들 자신이 직접 뱀파이어로 분하여) 깜짝 성공작을 만들어 내었다. 몇 년 후 미국에서 이를 바탕으로 한 TV 쇼 제작이 거론되기 시작했고 스콘 루딘과 폴 심즈 등 빅 네임들이 총괄 프로듀서로 합류했다. 이들은 ‘현대 사회의 뱀파이어에 대한 모큐멘터리’라는 큰 틀을 유지하되 무대를 미국 뉴욕의 스태튼 아일랜드로 옮겼고 (훨씬 더 그럴듯한) 뱀파이어 캐릭터들을 새로 만들고 구체적인 배경을 부여했다. 원작 영화에서 기본적인 세팅은 가지고 왔으나 세부적인 요소에 있어서는 대대적인 확장을 거쳤다. 사건의 전개 역시 네 가지 갈래로 나누어졌다. 첫 번째는 모든 캐릭터가 포함된 공통의 스토리, 두 번째는 뱀파이어 부부인 란슬로와 나지아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 세 번째는 뱀파이어 마스터와 휴먼 서번트인 난도르와 기예르모를 중심으로 한 스토리, 마지막 네 번째는 에너지 뱀파이어인 콜린 로빈슨을 중심으로 한 스토리. 


  이 작품의 매력은 뱀파이어 캐릭터와 그들이 지금의 사회에서 겪는 해프닝 사이의 미묘한 간극에 위치한다. (이렇게 구체적일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의) 수많은 문서와 그림 등 페이크 자료들이 삽입된다.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이 이전 생에 어떤 인물이었고 ‘크리쳐 오브 더 나잇’으로 변화한 이후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설명한다. 하지만 정작 카메라에 담기는 오늘날 그들의 생활 모습은 공포스러움과 거리가 멀어 보인다. 오히려 인간미가 엿보인다는 점에서 아이러니가 빚어진다. 그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알게 된 이웃집 남자를 굳이 해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파밀리어의 엉뚱한 실수를 감싸주기도 한다. 처녀 총각의 신선한 피를 원하지만 자신들이 깜짝 놀래켜 해친 이들에게는 죄책감을 느낀다. 웨어울프와 좀비들에는 태연하게 대처하는데 유령은 무서워하고 저주 스팸 메일을 받으면 패닉 상태에 빠진다. 500년 전 옛 연인을 여전히 그리워하고 760년 전 조국이 지금은 사라졌다는 사실에 좌절한다. 그들은 파밀리어 없이는 빨래와 청소와 쇼핑조차 하지 못하여 허둥댄다. 자기들끼리 상대를 해친다는 의미로 쓰는 ‘왝(Whack)’이라는 표현도 마치 어린이들이 ‘shut-up’을 대신하여 ‘shush’을 사용하는 듯한 뉘앙스에 가까워 웃음을 참기가 어렵다. 이런 면을 보면 호러 시트콤의 역사를 되짚어 올라가 ‘The Munsters (CBS, 1964~1965)’나 ‘The Addams Family (ABC, 1964~1966)’등의 성공과 공유하는 지점이 있다. 


  여기에 더해지는 첫번째 조커는 휴먼 파밀리어 기예르모의 역할이다. 무려 11년에 걸쳐 자신의 마스터인 난도르를 모시고 있는 이 청년은 언젠가 (안토니오 반데라스의 뒤를 잇는 히스패닉) 뱀파이어가 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다. 그는 난도르를 비롯한 세 뱀파이어들을 위해 저택을 관리하고 수리하고 청소한다. 처녀 총각의 신선한 피를 구해다주며 식사 후 뒤처리까지 도맡아 한다. 그는 이 작품의 유일한 21세기 인물로 카메라 앞에서의 인터뷰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이야기를 털어놓는 유일한 인물이며, 사실상 그 저택에 사는 과거의 망령들이 현대 사회에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예르모는 초현실적 존재를 숭배하는 보통의 음침한 인물들과는 거리가 멀다. 외모도 행동도 순박하고 엉뚱하다. 그런 이유로 난도르는 늘 기예르모를 구박하지만 실상은 기예르모가 난도르를 보살피는 쪽에 가깝다. 오스만 제국의 용맹한 전사와 밀레니얼 세대 히스패닉 집사 사이의 이 독특한 마스터-서번트 관계는 세르반테스의 '돈 키호테'를 연상시키는 요소와 묘하게 비틀어 놓은 브로맨스 코드의 결합으로 완성된다. 또한 기예르모의 캐릭터에는 '핑크 팬더(블레이크 에드워즈, 1963)' 자크 클루조 경감 혹은 가제트 형사 스타일의 코미디가 함께 장착되어 있다. 그는 늘 사건의 주변부에 있으려고 하는데 본의 아니게 사건의 중심으로 휘말려 들어가고 얼결에 상황을 해결하는 결과를 낳는 것이다. 

  
  한편 두번째 조커는 에너지 뱀파이어 콜린 로빈슨이다. 이 설정은 (전통적인 개념의) 뱀파이어 세 사람의 플롯과 차별화되는 새로운 소재로 이야기를 확장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註2). 진지하고 지루하고 말 많고 계산적인 네 번째 룸메이트는 일반 직장을 다니며 이중생활을 영위하고 있다. 그는 동료와 부하직원들을 지루하게 만듦으로써 생명력을 흡수한다. 그는 아는 것도 많지만 그만큼 한 번 말을 시작하면 멈추지 않는다. 이는 에너지 뱀파이어가 피 대신에 생명력을 흡수하고 자연히 낮에도 활보가 가능하다는 점에 착안한 설정이다. 마침 포맷이 모큐멘터리이기 때문에 이 부분에서 ’디 오피스(NBC, 2005~2013)’와 같은 워크플레이스 시트콤의 느낌이 나는 재미도 각별하다 (다들 직장에 에너지 뱀파이어 하나쯤은 있으시지 않은가? 註3) 콜린 로빈슨의 이런 특성은 직장에서 퇴근하고 돌아와 다른 뱀파이어들과의 생활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흥미로운 지점을 만들어 낸다. 싱글 카우치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다가 룸메이트들의 일에 참견하기 시작하고 잔소리를 멈추지 않는 그는 마치 패밀리 시트콤 시대의 특정 인물 혹은 특정 세대를 상징하도록 어느 정도 의도된 것처럼 보인다. 출생 시기로 보면 1920년대경에 태어난 미국인일 것으로 추정되는 그가 손윗사람처럼 행동한다 (註4). 다른 뱀파이어들은 그의 지루하게 반복되는 수다에 짜증을 내고 그와 어울리는 것을 피한다. (이 관계를 네번째 시즌에서 역으로 뒤집는 방식 또한 절묘하다.)


  이와 같은 세심한 설정과 독특한 캐릭터 구성이 이 쇼의 성공을 이끌 일차적인 요소이다. 코미디는 영리하고 '팽'타스틱(FANG-tastic)하며 뱀파이어를 연기하는 배우들은 (마치 이 역할을 위해 오랫동안 송곳니를 갈아온 것처럼) 하나 같이 인상적인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이후 크리스틴 샬을 서포팅 캐릭터로 투입하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최초 디자인되었던 캐릭터 사이의 케미스트리를 유지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동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처음 몇 시즌 동안 쇼의 기본적인 세팅들을 활용하고 난 다음에도 이 쇼가 계속 빛날 수 있는 원천은 예상을 뛰어 넘는 실험적인 면모에 있다. 모큐멘터리 시트콤 포맷을 바탕으로 환상과 현실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듯한 분위기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기술이 상당히 흥미롭다. 이러한 맥락에서 때로는 스태프와 카메라맨을 초현실적 존재 앞에 노출시키기도 하고, 리얼리티 쇼의 경계를 파괴하고 들어가기도 한다. 심지어 가상의 리얼리티 쇼를 이중으로 엮어 일종의 액자 구조를 만드는 과감한 시도도 서슴지 않는다. 오늘날 더 많은 창작의 자유라는 것이 주어진다면 바로 이렇게 활용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마저 든다. 한편 브람스토커의 '뱀파이어(1897)'에서부터 출발하여 '노스페라투 (F. W. 머나우, 1979)''뱀파이어와의 인터뷰 (닐 조던, 1994)'를 거쳐 '블레이드 (스티브 노링턴, 1998)''반 헬싱 (스티븐 소머스, 2004)'까지 대중 문화 레퍼런스를 버무려 활용하는 방식도 마음에 든다. 특별 게스트도 아주 화려한데, 틸다 스윈튼, 웨슬리 스나입스, 에반 레이첼 우드, 더그 존스, 닉 크롤, 프레드 아미슨, 데이브 바티스타, 크레이그 로빈슨, 마크 해밀, 스콧 바큘라, 데이비드 크로스, 소피아 코폴라, 그리고 짐 자무시 등이 예상치 못한 순간에 등장하여 즐거움을 준다 (註5). 

 

(2022년 12월)

 

(註1) 파밀리어(Familiar)는 초현실적인 존재를 섬기며 그들을 돕는 인간이다. 서번트(Servent)라고도 한다. 

(註2) 사이킥 뱀파이어라고도 한다. 블러드가 아닌 생명 에너지를 흡수하는 형태의 뱀파이어다. ‘데이 워커’이기 때문에 낮 시간에 활보하는데 다른 뱀파이어들과 다르게 문제가 없다. 

(註3) 사실 콜린 로빈슨을 연기하는 배우 마크 프록시는 '던더 미플린'의 직원이기도 했다. 3년 동안 19편의 '디 오피스' 에피소드에 출연했다.

(註4) 세 뱀파이어의 출신 배경을 보면 13세기 오스만 제국 전사(난도르), 15세기 집시(나지아), 17세기 영국 귀족(란슬로)이다.

(註5) 기예르모 델 토로의 남자, 더그 존스는 고대의 뱀파이어 '배론'으로 분장하고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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