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로 앤 스티치 (Lilo and Stitch, 2025) B평
by 김영준 (James Kim)생각지도 못한 일이다. 디즈니가 과거 흥행 애니메이션들을 많은 제작비를 들여 라이브-액션으로 다시 만드는 전략으로 재미를 보고 있다고는 하지만 ‘릴로 앤 스티치 (크리스 샌더스와 딘 드보이스, 2002)’가 그 대상이 될 거라고는 예상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이 과거 디즈니 제 2의 (혹은 관점에 따라 제 3의) 암흑기 당시 박스 오피스 성적을 선방한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80년대 말에서 90년대 말까지의 르네상스를 이루었던 라인업과는 작품성은 물론 흥행력에 있어서도 비교할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뮤지컬 애니메이션도 아니었기 때문에 (앞선 사례들처럼) 하나의 컨텐츠를 클래식 애니메이션 영화, 스테이지 공연, 그리고 라이브-액션 영화로 돌아가면서 포맷의 다변화를 추구할 명분도 실리도 없다. 2002년작이면 아직 그렇게 아웃데이트되었다고 보기도 어렵고 소재와 내용 또한 다시 만들어서 특별히 크게 업데이트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 더구나 라이브-액션이라지만 스타 파워의 장착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도대체 어디에 스타 배우가 들어가겠는가? 릴로? 아니면 스티치?) 외계인 스티치는 어차피 컴퓨터 그래픽스의 힘을 빌려야 하니 결국 애니메이션과 실사의 결합 형태를 취할 수밖에 없기도 하다. 과거에는 이러한 반반치킨 포맷을 ‘라이브-액션 애니메이션’이라고 구분하여 지칭하였는데 사실 많은 영화에 CGI 캐릭터가 들어가는 요즘에는 이런 구분 자체도 무의미하다. 그러니 결국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릴로와 스티치’를 굳이 다시 만들어야 하나? 원작 그대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여전히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다만 조금 다른 이유에서 놀라운 부분이 있다. 예상보다 훨씬 와일드하기 때문이다. 만화적 허용을 현실처럼 보이는 공간으로 가져올 때 빚어지는 경계가 상상 이상으로 낯설고 심지어 공격적이기까지다. 어린이 눈높이와 성인 눈높이의 중간지점을 마법적으로 찾아내는 디즈니의 고유한 강점마저 흔들릴 정도다. 일단 컴퓨터로 다시 만들어진 스티치와 기타 에얼리언들의 캐릭터 디자인부터 한 몫을 한다. 스티치, 닥터 줌바 주키바, 에이전트 플리클리 모두 너무 징그럽다. 과거 '소닉 더 헤지혹' 대참사만큼 충격적이지는 않더라도 이제 스티치는 그렘린과 에얼리언의 퓨전처럼 보인다. 릴로 역시 예전처럼 단순히 말괄량이처럼 생각되지 않는다. (어린아이에게 이런 이야기는 조심스럽지만 주의력 결핍... 아무튼 상담이 필요하지 않은가 싶은 정도다.) 따라서 과거 귀여웠던 이 말썽꾼 콤비도 이제는 거의 빌런에 가까운 파괴적 에너지를 발산한다. 보고 있노라면 진이 빠지고 지친다. 피로감이 대단하다. 기타 원작에서 건드린 부분들은 대개 더 좋지 않다. 가령 코브라 버블스와 같은 애초에 잘 디자인된 캐릭터를 굳이 해체하여 반쪽짜리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쉬운 부분이다. 꽤 인기 있는 캐릭터였던 캡틴 간투의 존재도 지워졌다. 릴로의 언니 나니에게도 디즈니 특유의 ‘낭랑 18세’ 내러티브를 강화하면서 또 하나의 주인공으로 만든 부분도 사족이라면 사족이다. 결과적으로 23분이나 더 길어졌는데 내용은 더 얄팍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2025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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