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러 맨 (Better Man, 2024) B평
by 김영준 (James Kim)‘로켓맨 (덱스터 플래쳐, 2019)’과 ‘보헤미안 랩소디 (브라이언 싱어, 2018),’ 그리고 ‘엘비스 (바즈 루어만, 2022)’를 합쳐놓은 듯한 마이클 그레이시의 신작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몇 가지가 있는데 역시 가장 결정적인 것은 로비 윌리엄스의 자전적 전기영화가 (벌써!) 가능한가 하는 부분이다. 악동 윌리엄스가 어느덧 지천명의 나이라는데 잠시 어지러움을 느끼지만 직장인도 아니고 팝스타가 자기 커리어를 돌아보기에는 조금 이른 시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제까지 대부분의 대중음악계 아이콘들에 대한 바이오픽 영화는 사후에 제작되거나 (물론 여기에는 업계 평균 수명의 문제도 있겠다) 어느 정도 은퇴를 준비하는 시점에 베스트셀러 자서전에 바탕해서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더구나 당사자가 제작자만이 아니라 배우와 목소리로도 크레디트에도 올라가 있어 더욱 묘한 느낌이 든다. 엘튼 존이 일흔이 넘어 만들어진 전기영화 ‘로켓맨’조차 자신이 소유한 영화사를 자신의 전기 영화 제작에 참여하게 한 대목에서 (팬심으로도)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 경우는 한술 더 뜬다.
‘배러 맨’에서 가장 화제가 될만한 부분은 역시 윌리암스를 침팬지로 대체한 점일 것이다. (어쩌면 창조론자들을 분노하게 만들지도 모르는) 이 비싸고 과감한 전략은 스스로를 ‘춤추는 원숭이’로 인식해온 윌리엄스의 시각을 반영하려는 의도라고는 하나, 윌리암스의 스타성과 그 포트레이트를 맡은 배우의 스타성 (혹은 장래성) 모두를 포기하는 선택일 수도 있었다. 테런 애저튼과 라미 말렉, 그리고 오스틴 버틀러 모두 대중음악계 슈퍼 스타들의 인생을 연기하는 경험을 통해 자신들도 스타의 자리에 올랐다. 하지만 여기서 윌리엄스/침팬지 역을 맡은 배우의 이름은 사람들이 기억하기도 쉽지 않게 생겼으니 딱한 노릇이기는 하다 (체스터필드 출신의 1992년생 조노 데이비스랍니다). 다만 ‘더 선’의 단골손님이었던 천방지축 악동이 ‘조금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여준다는, ‘진화하는 존재’로의 암시에 있어서는 그리 나쁘지 않은 아이디어였던 것처럼 보인다. 특히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침팬지처럼 인식하고 또 침팬지의 모습을 한 자신의 과거에게 끊임없이 쫓긴다는 흥미로운 설정은 나쁘지 않다.
감독의 전작이 ‘위대한 쇼맨 (마이클 그레이시, 2017)’이기 때문에 아무래도 비교가 될 수 밖에 없다. 전작이 P. T. 바넘을 위시한 수많은 미스핏들의 꿈이 공명하는 순간을 만들어내는 강렬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던 반면에 이 작품은 철부지 팝스타의 자기 비하와 자기애를 오락가락하다 타이밍을 놓치기만 한다. 그레이시가 본래 ‘로켓맨’의 감독으로 계약되었다가 교체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상당히 비슷한 톤의 장면도 있는데 비슷한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윌리엄스의 가족사처럼 같이 인간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부분도 없지 않지만 그 외의 많은 에피소드는 셀러브리티의 배부른 앓는 소리처럼 느껴져 사실 공감하기가 어렵기도 하다. 한편 뮤지컬로의 구성 역시 다소 들쑥날쑥하다. 런던 거리 한복판을 ‘Rock DJ’의 무대로 꾸민 다이나믹한 장면은 탁월하지만 그 나머지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사실 개봉 전 논쟁이 되었던 것처럼 윌리엄스의 히트곡만으로 쥬크박스 뮤지컬이 가능하느냐는 질문부터 쉽게 대답하기 어렵다. 윌슨 피켓의 파이팅 넘치는 앤섬과 (그와 아버지를 연결하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센티멘탈한 ‘My Way’를 제외하면 이 뮤지컬 영화에서 순수한 윌리엄스의 히트곡은 총 열 곡이다. 두 곡의 ‘테이크 댓’ 시절 히트곡과 솔로 데뷔 후 5년 사이, 그러니까 1997년 <Life thru a Lens>에서부터 2002년 <Escapology> 사이 네 장에 포함되어 있는 여덟 곡. 물론 다 좋은 곡들이지만 이제까지 전기영화가 만들어진 수많은 대중음악계 역사적 상징들의 강력한 플레이리스트와 비교하기는 조금 어렵다. 과거 그의 인기나 차트 퍼포먼스에 지역간 차이가 확연했다는 점도 유명한 사실이고, 특히 북미에서 상대적으로 성적이 저조한 대표적인 브릿팝 스타였다는 것도 영화 흥행에 위험 요소이기는 했다. 아니나 다를까, ‘배러 맨’의 박스 오피스 성적은 기대를 크게 하회하였는데 북미에서는 200만 달러에 미치지 못하였고 고향인 영국에서조차 800만 달러에 머무는 충격적인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2025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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