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장식지 이마해치
by 김영준 (James Kim)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여우가 챙긴다. 비슷한 말로는 발장식지 이마해치(撥長食之 爾馬奚馳). 즉, 먹기는 파발이 먹고 뛰기는 역마가 뛴다. 세상에는 곰이 넘은 재주로 돈을 벌어들이는 머리 좋은 여우들이 있다. 조직에서 성공하는 사람은 아이디어를 처음 내는 사람이 아니라 그런 남의 아이디어들을 쓱싹 모아다가 윗사람한테 공식적으로 최종 보고하는 사람이다. 마찬가지로 블로그에도 이런 종류의 블로그가 있다. 새로운 컨텐츠를 생산하는 게 아니라 이미 생산된 남의 컨텐츠를 수집하는 블로그다. 혈액형에서부터 연애백서, 사주궁합, 영화 속 명대사, 영화배우 화보집, 드라마 명장면, 인터넷 만화, 심지어 남이 써놓은 글까지. 싸이월드와 네이버 블로그 이래 '퍼가요'가 웹페이지 인기의 척도가 되는 세상에서 이런 류의 종합선물세트는 꽤 인기가 좋다. 그들 중 더러는 인기 블로그의 반열에 오르기도 한다. 결국 '남이 퍼가고 싶은 컨텐츠를 얼마나 많이 퍼다가 모아 놓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되는 셈이다. 어쩌면 관심을 끌만한 것들을 모으고 걸러내는 기술 또한 나름의 능력이라면 능력일런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곳들이 우수한 블로그나 홈페이지로 평가받는 사태는 그리 바람직하지 못하다. 고민과 노력이 결여된 무차별적 컨텐츠 사냥만으로도 접근성의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시스템은 매우 부당하다. 그렇다면 온라인 세계에서 여우가 아닌 곰으로의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그 답을 구하기 위해서는 컨텐츠의 정의란 무엇이며 그 영역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 만약 검색 엔진이 독창적인 컨텐츠를 구분해낼 수 있다면, 그리고 그 종합적 결과를 바탕으로 사이트를 총체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면, 다시 그 결과를 검색 결과에 반영할 수 있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 무차별적 컨텐츠 사냥에 오히려 어드벤테이지를 줌으로써 이런 행태를 사실상 조장하는 한국식 포털 사이트들의 자정 노력도 필요하지 않은가 싶다.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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