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크에 초가 세 개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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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크에 초가 세 개인 이유

by 김영준 (James Kim)

  대학교 3학년 때 일이다. 내내 국가연구소에만 계시다가 새로 부임하신 Y교수님이 처음 맞으시는 5월 15일 스승의 날. 과에서는 과 대표의 주도 하에 Y교수님 모르게 간소한 축하 준비를 했다. 강의 시작 전에 미리 교탁에 케이크를 가져다 놓고, 초를 꽂고, 성냥을 켜고, (촛)불을 붙이고, (전등)불을 끄고, 난리 법석으로도 모자라 법석 난리를 피웠다. 이윽고 도착하신 Y교수님. 잠시 상황 파악이 되지 않아 멍한 표정을 지으시더니만 이윽고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신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가 이런 게 난생 처음이거든요. 기분이 묘하네요." 어둠 속의 학생들이 합창하듯 외친다. "교수님, 케이크에 촛농 떨어져요. 빨리 끄세요." "알겠습니다. 근데 이거 불어서 끄면 되는 건가요?" Y교수님의 일렁거리는 세 개의 촛불을 힘차게 불어 끄신다. 새까맣게 타버린 심지에서는 아지랑이 같은 연기만 찌르르. 이때를 놓치지 않고 과 대표가 득달같이 뛰어나가 교수님의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린다. 이 감격적 과정을 지켜다보던 우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스승의 은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 볼수록, 정말 오래간만에 들어보는 것이어서 새롭게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Y교수님 또한 정말로 기분이 좋으신 듯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담고 계셨기에, 잘하면 혹시나 어쩌면 만약에 달콤한 휴강의 축복이 온누리에 퍼져나가는 기적까지도 기대해 볼 만하겠다 싶었다. 

 

  더없이 유쾌한 표정으로 케이크를 자르시던 Y교수님. 갑자기 뭔가 의아한게 있으신 듯 고개를 갸웃거리신다. "그런데… 초가 왜 세 개예요? 물어봐도 돼요?" 우리는 일제히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회비를 걷어 케이크를 샀다는 것도 알았고 카네이션을 준비했다는 것도 알았는데, 초를 몇 개 준비했는지는 몰랐기 때문이었다. 사실 생일 케이크도 아니고 초를 몇 개 꽂는다는 기준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닐 텐데, 그럼 누가 케이크에 초를 꽃은거지? 서로가 서로를 돌아보기 시작했다. 네가 했니? 아냐. 그럼 네가 했니? 아닌데. 그럼 누가 했지?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 바로 그때 크지도 않고 작지도 않게, 그리하여 아주 적당하게 어디선가 들려왔던 누군가의 대답. 

 

- 3학점 짜리 과목이라서… 

 

(2005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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