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식목일을 돌려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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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디 식목일을 돌려주오

by 김영준 (James Kim)

  국민식수(國民植樹)에 의한 애림(愛林) 사상을 높이고, 산지의 자원화를 위하여 제정된 식목일은 매년 양력 4월 5일이다. 식목일이야 어디 도망가는 것은 아니니 늘 그 자리에 있건만, 매년 우리는 이 날이 공휴일이냐 아니냐 하는 것으로 논쟁을 벌여야만 했다. 이유인즉 다른 날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놀거나 혹은 놀지 않는데 반하여, 이 날만큼은 수시로 공휴일의 범주를 넘나든 통에 그 여부가 분명치 않았던 탓이다. 어디 한번 이 역사적 비극의 뿌리를 파헤쳐 보자. 식목일은 1949년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건'에 의하여 대통령령 공휴일로 처음 만들어졌다. 이후 11년 만인 1960년에 공휴일에서 폐지되었으나, 1년 만에 식목의 중요성 차원에서 다시 공휴일로 부활하였단다고 한다. 고로 50년대와 60년대를 통틀어 1960년 4월 5일 한 해만 휴일이 아니었던 셈이라 하겠다. 이후 1982년에 기념일로 지정되었으나, 1990년대 들어 다시 공휴일에서 제외되었다. 그리고 다시 새천년으로 넘어가기 직전에 공휴일로 포함되었다가, 최근 들어 다시 대통령령 제18893호 '관공서의 공휴일에 관한 규정 일부개정령'에 의하여 2006년부터 전격적으로 공휴일에서 제외되게 된 것이다. 이렇듯 식목일의 역사는 마치 전체 평균 이상의 실력과 전체 평균 이상의 사나운 팔자를 가진 야구선수가 30인 로스터에 포함이 되었다가 빠졌다가를 반복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흥미로운 것은 그렇게 결정된 사유이다. 그러니까 2006년부터 다시금 식목일이 일하는 날이 되어버린 이유 말이다. 언론에 보도된 내용에 따르면 다음과 같다.

 '행정기관의 주 40시간 근무제가 정착됨에 따라서 공직사회 및 사회 전반의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함'

 

이라고 이유가 밝혀져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정말로 모든 행정기관에 주 40시간 근무제가 정착되었는지는 며느리도 모를 일이지만, 같은 이유와 같은 맥락에서 내후년인 2008년부터 제헌절도 공휴일에서 제외될 계획이라고 한다. 식목일이야 워낙 어중띤 시기에 어중띤 모양새로 붙어 있어서 언젠가 이리될 운명이었거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이른바 Big 4 국경일중의 하나인 제헌절의 몰락은 사뭇 충격적이다. 식목일이 테리 멀홀랜드(지금은 또 어느 팀에 가 있는지 잘 모르겠음)라면, 제헌절은 최소한 그렉 매덕스(시카고 컵스)정도는 되는데, 둘이 같은 취급을 받은 셈이라는 건 말도 안된다. 정말 충격적인 일이다. 당연히 삼일절, 광복절, 제헌절, 그리고 개천절 등의 국경일은 가장 중요한 날들이다. 그래서 공휴일이었다. 반면 상공의 날이나 발명의 날에 관련 단체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까닭은 그 날이 법정 공휴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공휴일이 아니라는 것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하다는 뜻이기도 한다. 그러니 (과정을 좀 보태자면) 이제 우리나라는 나무도 중요하지 않고 법도 중요하지 않은 나라가 되어 버렸나 싶은 생각도 든다.

 

  물론 당연히 이런 반문이 가능하다. 양력 4월 5일이 휴일이라고 없던 나무가 생기냐? 양력 7월 17일이 휴일이라고 없던 법이 생기느냐? (응?) 물론 당연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 사람들이 그 날의 뜻깊고 소중함을 마음속 깊이 아로새기게 되느냐? 유감스럽지만 그것도 아일 것이다. 그럼 도대체 공휴일로의 식목일이 왜 필요한 걸까. '하루를 쉬다 보면 (혹은 쉬기 위해 그 하루를 기다리다 보면) 적어도 '무엇을 기념하기 위해 이러이러한 날이 존재하는구나' 하는 기본적인 인식은 하기 때문이니까? 그것도 너무 속 보이는 거짓말이다. 정말로 나무를 심으러 다니는 사람들도 있으시겠지만 대부분은 그냥 쉬는 날이 좋은 걸 수도 있다. (물론 그저 달력만 보고 살아가기 마련인 직장인에게 그 보다 더 확실한 이유는 존재하지 않으리라 장담한다.) 아무튼 다 이유가 있어 결정된 일이고 다 근거가 있어 내린 결론이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공직사회 및 사회전반의 열심히 일하는 분위기'까지 운운하는 바로 그런 올드한 분위기 말이다. 또한 일부의 선택적인 휴일이 너무 많다고 하여 무작정 모두의 보장된 휴일을 무작정 줄여나가는 것도 뭔가 이상한 접근법이다.

 

(2006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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