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회사 텔레비젼 광고를 이해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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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회사 텔레비젼 광고를 이해하는 방법

by 김영준 (James Kim)

  화재회사의 텔레비전 광고는 놀랄 만큼 전형적인 구석이 있다. 대부분이 비슷비슷한 스토리를 내어 놓는다. 하기야 생각해보면 전형적이니까 화재회사 광고이지 전형적이지 않으려면 화재회사 광고일 필요가 없는 것이기는 하다. 그렇다고 불만이라는 것도 아니고 구태여 내가 불만을 가질 이유도 없다. 그냥 그렇다는 것이다.

 

  화재회사 텔레비젼 광고의 전형성이란 이런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자동차로 인해(혹은 관련된) 위험에 처하게 되는데 우연히 특정 화재 직원이 그곳을 지나가다가 진실된 도움을 주게 된다는 식이다.

 

  동부화재가 언젠가 내보내던 광고의 내용은 이렇다. 비가 억수로 내리는 날 한 가족이 자동차를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무슨 이유에선지 자동차의 라이트가 나간다. 가장으로 분한 배우 전광렬은 나머지 가족을 차 안에 둔 채 비옷을 입고 나와 본네트를 열고서 살펴보지만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민중의 병을 다스리는 데는 반신의 경지에 올랐던 명의 허준도 고장난 자동차에는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그때 어디선가 불빛이 비치더니 기적처럼 동부화재의 자동차가 다가와서 선다. 그리고는 이 광고의 하이라이트가 등장한다. 그의 어린 딸이 얼굴을 번쩍 들이밀며 차마 주체할 수 없는 반가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어? 동부 아저씨다."

 

  나는 이 아이의 확실한 브랜드 충성도에 대해 여전히 궁금증을 가지고 있다. 평시에도 동부화재를 마음 속 깊이 아껴오지 않았다면 그 태도가 이처럼 화고하고 분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폭우 속에서도 동부화재 직원을 단박에 알아볼 리가 없는 것이다. 물론 사실 이는 너무도 일반적이지 않은 상황이어서 다소 놀랍기까지 하다. 상식적으로 어린아이가 화재회사 브랜드에 선호 따위를 가질 이유는 어디에도 없기 때문이다. 어린아이는 차도 없고 있어도 몰 수가 없다. 사업상 건물을 소유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해운업체를 꾸리고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하필 화재보험에 관심을 가질 필요도 없다. 과장하자면 이는 어린아이가 증권맨들을 보고 "어머, 펀드매니져님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나 진배없다.

 

  그런데 곧이어 부녀지간이 아닐 가능성을 의심해 보아야 할 단서가 등장한다. 전광렬이 바로 난감한 표정으로 우리 차는 동부화재가 아니라고 (가입되어 있지 않다고) 말하는 장면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아부지는 동부화재 가입자가 아닌데 딸내미는 뼈속부터 ‘동부걸’로 동부화재에 강한 브랜드 충성도를 가졌다? 아이가 그냥 순수하게 화재업과 손해보험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을 다시 검토해 보아야할까? 혹시 이 부녀가 가족이 아니라 고용주와 운전 기사의 사이 같은 것은 아닐까? 그러거나 말거나 동부화재의 직원은 오지랖 영웅의 전형을 충실히 답습한다. 단숨에 자기차의 라이트를 빼서 끼워주는 것이다. 고마워 몸 둘 바를 몰라하는 가족들에게 그는 말한다. "차보다 사람이 먼저죠!" 가족들은 마치 위험에 빠진 지구를 구원하고 하늘 저편으로 날아가는 슈퍼맨에게 (고마워요 슈퍼맨!) 손을 힘차게 흔드는 사람들처럼 진심을 다해 동부화재에 고마움을 표현한다. 그리고 잠시 잃었던 행복을 라이트와 함께 되찾은 자동차는 동부화재 차와 나란히 달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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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반일들의 경험담을 차례차례 극화하는 방식의 텔레비전 광고를 선보이던 LG화재의 것도 흥미롭다. ‘베스트 극장’ 혹은 ‘드라마 시티’의 60분 단막극 분량을 30초라는 시간적 제약 하에 밀어 넣는 격으로 굉장히 박진감이 넘친다. 눈 깜짝할 사이 기승전결을 축약시켜서 주파하고 골인하며 낭랑한 목소리로 브랜드를 다시 한번 각인시켜 주는데 불과 30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 그야말로 TV 광고라는 형식의 위대함을 새삼 느끼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그 중 한 에피소드를 기억해 보자. 병원으로 향하던 산모의 자동차가 고장 난다. 생과 사의 외줄을 넘나드는 그 급박한 순간에 기적처럼 LG화재 직원이 나타난다. 저런 일들만 가득하면 어디 화재회사 서비스 직원을 해 먹을까 싶지만 산모는 어디에나 있을 수 있으니 그 부분의 논리적 타당성은 일단 패스하자. 어쨌든 LG화재 직원의 각고 노력으로 119가 달려오고 산모는 병원에 무사히 도착한다. 그는 대기실에서 초조해하는 아이 아버지에게 커피를 권한다. "아직도 안 가셨어요?"라며 되려 미안해하는 아이 아버지. 바로 그때 간호원이 계란형의 얼굴을 들이밀며 무사히 아이를 낳았음을 알린다. 만세! 만세! 만만세! 투철한 애프터 서비스 정신을 가진 LG화재 직원은 산모의 퇴원 이후에도 선물을 사들고 집으로 찾아가고 부부는 반갑게 맞아준다. 그는 주민등록에 잉크도 마르지 않았을 몸도 가누지 못하는 새로 태어난 생명에게 네가 태어나기까지 자신의 혁혁한 무훈이 있었음을 한껏 강조하며 "내가 네 삼촌이야"라고 말한다. 아시다시피 삼촌과 화재회사의 직원은 서로 겹칠 수 없는 '역할 모델'이 아니다. 정말로 그가 아이의 삼촌이라도 되는 게 아닐까 격렬한 의문이 순간적으로 솟구치는 대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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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다고 불만이라는 것도 아니고 구태여 내가 불만을 가질 이유도 없다. 그냘 그렇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장에서 직접 뛰며 차량정비 긴급서비스를 하는 직원분들의 노고를 깎아내리는 것도 아니다. 단지 어째서 화재회사 광고는 이런 구성일 수밖에 없을까 궁금할 뿐이다. 

 

(2002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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