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의 텔레비젼을 이해하는 방법
by 김영준 (James Kim)미국의 칼럼리스트 아트 버크윌드(Art Buchwald)는 텔레비젼의 해악성을 지적하며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긴다. "텔레비전은 한 가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 바로 두 번째 페이지가 없다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듯, 이는 책과 비견할 수 없는 텔레비전의 속성을 꼬집은 것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두 번째 페이지’라는 말에서 ‘두 번째’에 방점을 찍으면 그것은 이후 수반되는 사고 과정 전방에 대한 포괄적인 은유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즉 현재만 있고 미래는 생각하지 않는 텔레비젼의 속성 말이다. 이는 생산자 집단과 소비자 집단 모두에게서 골고루 해당된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사람도 ‘두 번째 페이지’를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고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사람 또한 딱히 ‘두 번째 페이지’를 기대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이 단순화 과정이 극대화되는 것이 바로 '명절의 텔레비전'이다. 민족의 4대 명절 중 하나라는 추석에 이르러 우리가 텔레비전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뼈아픈 실망감이다. 1년에 한두 번, 참 어렵게 모여 앉은 가족들 앞에서 평소보다 많은 것을 보여주어야 하는 텔레비전은 되려 평소만도 못한 질의 무책임한 ‘특집프로그램’을 양산한다. 인기 프로그램의 짜깁기 재방송이 난무한다. 온갖 소란스러운 선발대회가 열린다. 연예인과 아나운서 그리고 스포츠 스타가 청군 백군으로 나누어 장기자랑을 한다. 또한 낯 뜨거운 사랑의 짝짓기를 한다. 요즘엔 초등학생 운동회에서조차 유치하다고 꺼려할 법한 일들이 하루 온종일 벌어지는 곳이 바로 명절의 텔레비전이다. 평소라면 적어도 하루 종일은 허락될 수 없는 그 난봉질이 '명절 특집'이라는 신성한 이름 아래 가능해지는 것이다. 몇 년 전, 한 오락프로그램이 추석특집으로 남녀연예인의 성대결 씨름 장면을 내보낸 적이 있었다. 말이 좋아 씨름이지 실은 어떻게든 일단 상대의 엉덩이가 바닥에 먼저 닿게만 하면 이기는 해괴한 게임으로, 자연히 서로의 몸을 만지는 등 남녀 간의 적절치 못한 모양새가 연출되었다. 문제는 제작진이 그걸 별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적절치 않은 상황에서 ‘음미하듯’, ‘군대 가는 선물로’등의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표현들을 자막으로 내보냈다. 심지어 남성 진행자는 제작진을 향해 ‘나도 한번 하게 해주세요’라고 애원하고 나섰다가 시청자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지금은. 뭔가 달라 졌을까? 유감스럽지만 아닌 것 같다. 명절만 넘기면 되는 단발성 일회적 특집 프로그램들이 여전히 브라운관을 메우고 있다. 하루에 비슷비슷한 청백전만 열 번쯤, 비슷비슷한 장기자랑도 열 번쯤, 비슷비슷한 선발대회도 열 번쯤 하는 모양새다. 하루 종일 말 그대로 <가족 오락관>이다. 특집이라는 이름 아래 <미녀들의 수다>는 <미남들의 수다>로 둔갑한다. 원래부터 존재 이유가 의심스러웠던 그 프로그램은 주한 외국인 남성들을 내보내기가 무섭게 그 저질스러운 삼류 정체성을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한다. 우리가 외국인들의 서툰 한국어로 ‘연애할 여자와 결혼할 여자가 따로 있다’ 따위의 소리를, 혹은 음담패설에 준하는 잡담을 듣고 앉아 있을 타당한 이유 따위가 있을까? 사실 <미남들의 수다>니까 게스트 패널을 여성 연예인으로 교체하는 정도의 단순한 사고방식이 바로 그 저속한 프로그램의 한계다. 그보다 조금 더 이른 시각에는 여장을 한 남성 연예인들의 시상식,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프로그램이 방송되었다. 언뜻 이것은 여장을 해도 남자가 저렇게 예쁠 수 있구나 하는, 혹은 기존의 미인대회의 상업성과 외모 지상주의를 풍자하는, 참신하고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는 듯 하지만 천만의 말씀. 이건 요즘 유행하는 '남장 여자'와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다. 언제 반응(웃음)이 터지는 지를 보면 답이 나온다. 여성스럽게 차려입은 그들이 자기도 모르게 남성으로의 본색을 숨기지 못했을 때다. 이건 아주 질 낮은 희화화다. 만약 '성적 소수자'들이 이 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면 아마 모욕당하는 느낌을 받지 않았을까? 이젠 그런 면에서 너그러운 시각 정도는 공유할 수 있는 때가 되었는데도 텔레비젼이 나서서 성숙하지 못한 시선을 부추기고 있는 모양새다.
우리는 내년 구정의, 혹은 내년 추석의 텔레비젼에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 이번과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또다시 '특집'의 이름을 달고 나올 것임을 이미 알고 있다. 식상한 틀은 유지하되 내용면에서는 더 단순해질 것이고 어쩌면 더 자극적이 될런지도 모른다. '온 가족이 보고 즐길 수 있는' 따위는 허울 좋은 명분일 뿐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을 것이 뻔하다. 사실 우리 중 누구도 '온 가족이 보고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에 대한 해답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에게는 그런 개념 자체가 존재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텔레비젼이 지켜줘야 할 최소한의 기준선이 어디인지는 알고 있다. 오랜만에 모여 앉은 가족들이 민망스러움에 얼굴을 붉혀야 하는 것이 명절의 텔레비젼이라면 과연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2002년 0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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