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글이 있는 빵집
by 김영준 (James Kim)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 동네 빵집에는 베이글을 팔지 않는다. 한 정거장 떨어진 같은 빵집에서는 베이글을 파는데 말이다. 똑같은 간판을 걸고 똑같이 물건을 공급받을텐데 우리동네 빵집에는 하필이면 왜 베이글이 없는 것일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기야 베이글이 우리나라에서 그렇게 많이 팔리는 종류의 빵도 아니고 보면, 우리동네의 빵집은 베이글 대신에 다른 종류의 빵을 더 들여오기로 정했을 수도 있다. 또한 인근 아파트 주민을 대상으로한 시장조사의 결과 '이 동네 주민은 도무지 베이글을 좋아하지 않는군'하는 결론을 내렸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베이글 하나가 없다는 것은 아주 사소한 일처럼 보인다. 어쩌면 충분히 있음직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 베이글이 있고 없는 사소함이 내가 굳이 한 정거장이나 떨어진 빵집까지 다녀오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이다.
베이글이라는 빵은 유대민족의 전통 빵에서 유래했다고 하는 제법 역사가 오래된 빵인데 (물론 그런 사실까지야 굳이 중요하지 않다) 어쨌든 도너츠를 닮은 모양새는 비록 세련되지 못했지만 그 담백한 맛에 있어서는 일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달거나 느끼하지도 않기 때문에 먹을 것을 그다지 즐기지 않는 나도 한 자리에서 두세개를 먹는 것이 가능하다. 앙금이 들어있는 단팥빵이라면 상상도 하기 어려운 일이다. 담백한 맛의 이유는 밀가루와 이스트, 그리고 소금 이외에는 순전히 잡다한 재료가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단 음식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참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다. 이렇게 연간 50여개의 베이글에 소비하는 나에게 어른들은 어른들대로,
- 무슨 애가 입맛이 저래? 저렇게 질긴 빵을 좋아하다니!
친구들은 친구들 대로,
- 완전 입맛이 노인네 아니야? 아무 맛도 나지 않는 빵을 먹다니!
라고 하지만 그것은 베이글의 담백함에 매료되어 보지 않았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또한 그 심심한 맛이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여러가지 다른 것들을 곁들여 먹는 방법도 있다. 잼이나 치즈, 버터, 아니면 반을 갈라서 야채를 끼워넣고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이렇게 운신의 폭이 넓은 빵이 또 있을까. 소보로라면 절대 가능하지 않을 이야기이다. 실제로 미국에는 건포도를 넣은 레이진 베이글, 버터를 넣은 버터 베이글, 계란이 들어간 에그 베이글, 캐러웨이 씨앗을 섞은 호밀 베이글, 계피가루를 넣은 시나먼 베이글등 다양한 베이글들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한다.
다만 아쉬운 것이 있다면 밀가루와 이스트, 그리고 소금밖에 들어가지 않은 이 빵을 육백원이나 받는다는 사실이다. 종전에는 오백원이었는데 최근에 백원이 더 올라갔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도대체 들어가는게 뭐가 있다고 자꾸 가격이 올라가는지 모르겠다. 요즘에는 우리나라에도 수입 베이글 전문점이 많이 생겨났다고도 하는데 서울 끄트머리 구(區)에 있는 우리 동네에서 그런 호사를 기대하기는 힘들고 그냥 그럭저럭 적당한 수준에서 만족하며 지내고 있다.
베이글과 연관된 이상한 이야기도 하나 있다. 내가 그 한 정거장 떨어져 있다는 빵집에 가는 날마다 어김없이 소나기가 내린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내가 빵집에 '점심은 먹기 싫고 너무 너무 베이글이 먹고 싶을때'여야 비로소 가보기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거기에는 날씨의 영향도 제법 있어서 5분만 걸어도 하늘이 시계방향으로 돌아갈것 같은 더운 날씨에는 감히 길을 나설 생각을 하지 못한다. 그러다보니 적당히 선선하여 십오분 정도는 유유히 걸어다닐만한 날씨에 보다 많이 가보게 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어쨌거나 그때마다 소나기가 내린다는 사실은 참으로 기이(奇異)한 일이 아닐수가 없다. 한번은 친구에게 이렇게 남다른 속사정을 털어놓은 적이 있었다.
- 이상한 일이야. 내가 베이글만 사러가면 비가 오니 말이야.
친구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 지금 장마철이잖아.
정말 그랬을수도 있다.장마철에는 시도때도 없이 비가 내리는 법이니까. 하지만 나는 겨우 장마철이기 때문에 네 번이나 그런 우연이 반복되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네 번이나 베이글을 사러갔을때 소나기가 내렸다면 거기에는 보다 진지하고 보다 심각한 이유가 존재할 것이다. 이를테면 세상의 베이글 숫자를 줄이는데 일조하는 나에게 베이글의 신(神)이 - 그런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 진노하였다던가, 아니면 늘상 오백원짜리 베이글만 사가는 내가 탐탁지 않았던 빵집의 신(神) - 이런 것은 더더욱 있을 턱이 없지만 - 이 심통을 부린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2002년 0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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