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코파이를 부셔먹지 않았으면 좋겠어
by 김영준 (James Kim)얼마 전 한 친구가 물었다. "넌 어떤 스타일이 좋은데? 소위 이상형 말이야" 나는 순간적으로 여러 가지를 조건들을 떠올렸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모두 전혀 일반적이지 않은 것들이었다. 그중에서 첫 번째로 떠오른 것은 단연 초코파이였다. 물론 이상하게 들릴까 봐 입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초코파이를 부셔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상형이란 무릇 이런 사람이어야 해'라고 말하는 소망치고는 상당히 소박한 편이지만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조건이다. 부셔 먹는다는 것이 사실상 뭉개서 먹는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초코파이는 뭉개진다. 실로 대한민국의 제과 역사에 굵직한 획을 하나 그려 넣은 히트상품 초코파이의 유일한 단점이 있다면 바로 형편없을 때까지 뭉개질 수 있다는 것이다. 혹자는 '다른 과자는 그렇지 않으냐?'라고 이의를 제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과자를 뭉개보지 않았으니 단정 짓긴 어렵지만 다른 과자의 경우는 뭉개서 주무르면 완전히 가루가 나서 흩어지거나 뭉개지더라도 어느 정도의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의 초코파이는 마시멜로우 때문인지 끈적끈적한 흑갈색의 덩어리로 고스란히 변해버린다. 어쨌거나 시각적인 차원에서는 질량 보존의 법칙이 엄연히 성립함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더 큰 문제는 초코파이를 꼭 그렇게(!) 만들어서 먹고야 마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이다. 왜? 라고 끊임없이 자문해 보지만 도대체 그 이유를 알 수가 없다. 몇 번 염색체 어딘가에 '초코파이를 뭉개서 먹는 유전자'가 있고 그것이 발현하여 초코파이를 먹는 방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보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이다. 뭉개진 초코파이의 외관을 고려할 때 미학적인 이유는 아닌듯하고, 그렇다고 끈적끈적한 덩어리가 먹기 좋을 리는 없으므로 실용적인 이유도 아니다. 그래서 한 번은 초코파이를 뭉개서 먹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대체 왜 그렇게 먹느냐고. 그의 대답은 이랬다.
"맛이 더 부드러워지거든"
'과연 그럴까?'하는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직접 뭉개서 먹어볼 용기가 없으므로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 맛이 얼마나 부드러워질는지는 모르지만 - 정갈하고 완결된 모양을 지니고 있던 초코파이를 뭉개고 뭉개서 떡을 만드는 행위 자체는 그리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 실제로 초코파이를 뭉개는 것을 몇 번인가 본 적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끔찍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굉장히 심오했다. 고작 초코파이를 뭉개는 것이 심오해 보일 수 있었던 이유는 마치 조물주에 의한 소우주의 탄생을 지켜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 과정은 대략적으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먼저 보송보송한 진공포장으로 안온하게 감싸져 있는 초코파이를 꺼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그것에 강한 힘을 행사하여 외형을 무너뜨린다. 그다음에는 정신없이 뭉개고 또 뭉갠다. 색깔이 완연히 나타났을 무렵에는 템포를 늦추어 적당한 때가 될 때까지 손으로 주무른다. 적당한 때가 오면 - 그때가 언제인지는 모르겠다. 초코파이를 뭉개어 먹는 사람들만이 직감적으로 알 수 있는 시간인듯하다 - 포장을 뜯고 카오스적 외형을 취하고 있는 끈적한 덩어리를 꺼내어 입에 넣는다. 비위가 약한 사람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버거울 정도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자. 나는 초코파이를 부셔 먹는 사람은 어쩐지 싫고, 그 사람이 여자라면 끔찍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초코파이를 부셔먹는 사람은 아무리 완벽하더라도 이상형이 될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 차라리 초코파이를 싫어하는 사람이라면 기호의 문제로 납득해 나갈 수 있을텐데 초코파이를 부셔서 먹는 사람과는 타협의 여지가 없다. 도무지 손 쓸 수가 없는 심각한 문제인 것이다. 물론 남녀가 만나서 초코파이를 먹을 일이란 상당히 드물기 때문에 '이상형' 운운하는데 그런 조건을 붙이는 것은 우스운 일일수도 있다. 하지만 장기적인 시각으로 볼 때 초코파이를 부셔 먹는 버릇은 도무지 숨길수가 없는 것이다. 알게 되기까지 하루가 걸릴 수도 있고, 이레가 걸릴 수도 있고, 삼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설사 알게 되더라도 얼마동안은 눈을 감고 귀를 막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국은 곱디고운 초코파이의 원형이 지극히 원시적이고 원초적인 덩어리로 엔트로피가 높아지는 과정을 지켜보지는 못할 것이다.
너무 편견이 타이트하게 박혀 있다고 누군가는 질책할런지도 모르지만 초코파이란 그런 것이다. 곱게 빚어진 원형의 초콜렛, 부드럽게 초콜릿과 마주하는 비스킷, 그리고 중앙에 위치한 매력의 원천 마시멜로까지 겹겹이 층을 이루고 있을 때에만 비로소 초코파이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누군가 또다시 이상형의 조건을 물어보더라도 나는 '초코파이를 부셔서 먹지 않았으면 좋겠어'라고 말할 것이다.
(2002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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