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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 한반도 희귀종족 보고서

낙농콩단/Season 6-10 (2006-201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6. 9. 17.

본문

반말족 (註1)
Religion: 한반도 전지역
Languages: 한국어
Related Ethnic Groups: 막말족, 생까족

  “며칠 전 반말족을 만났어요. 그는 자동차 앞좌석 유리를 내리며 길가던 저를 불러 세우고 물었지요. ‘야! 여기 낙성대가 어디야?’ 도대체 언제 봤다고 반말이람. 기분이 완전 퍽이나 상쾌해진 저는 낙성대와 완전 반대쪽 방향의 길을 가리켰어요. 그는 고맙다는 얘기도 없이 차를 몰고 연기처럼 사라졌고요. 덕분에 반대 방향을 가르쳐줬던 것에 대하여 전혀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게 되었는데요. 역시 반말족에게는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해줘야 하는 법인가봐요. (쌍문동 J씨, 28)” 오늘날 반말족이 날로 늘어나고 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사실입니다. 그래도 한때는 명색이 동방예의지국이라던 사회였는데 (정말?) 언제부턴가 아주 저급한 텔레비전 토크쇼에서처럼 생판 처음보는 사람에게도 제 나름 판단하여 마음대로 말을 놓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있습니다. 반말족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우리에게 존대 문화가 발달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존대의 체계가 갖춰지지 않았다면 반말은 하대와 비하의 뜻으로 기능할 수 없습니다. 존댓말를 두고 굳이 반말을 쓰기 때문에 그 의도를 궁금해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반말족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 깊숙히 퍼져있습니다. 그리고 당당해지고 있습니다. 어떤 아주머니는 길을 가로질려 달려오며 제게 꽥꽥 소리를 지르더군요. “광화문! 광화문!” 처음엔 택시를 잡는 줄 알았습니다. 알고보니 광화문이 어디냐고 묻는 반말족만의 방법이더군요.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자 그 분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몰라? 몰라? 왜 몰라?” 도대체 왜, 처음보는 사람에게 함부로 반말을 쓰는 걸까요? 

닫기족
Religion: 한반도 전지역
Languages: 한국어
Related Ethnic Groups: 정지선밀고들어오기족, 내리기전에타기족

  닫기족은 국내에 엘리베이터 보급이 급격하게 이루어진 80년대 초중반 이후로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열린 엘리베이터 문이 저절로 닫히기까지 불과 몇 초를 참지 못해 신들린 사람처럼 ‘닫힘 버튼’을 눌러댄다는 것입니다. 일단 처음엔 엘리베이터에 발을 들여놓기가 무섭게 ‘닫힘 버튼'을 누르고 (그래서 세이프 타이밍에 문틈에 끼어 졸지에 아웃이 되어버리는 선량한 피해자들이 생깁니다), 중간엔 남들 타고 내리는 시간이 아까워 닫힘 버튼을 누릅니다 (그래서 멀쩡히 잘 타고 올라와서 괜히 못내리는 피해자들도 생깁니다). 심지어 마지막에는 자기가 내리는 순간까지도 팔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길게 뻗어 굳이 ‘닫힘 버튼’을 눌러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정말? 그쯤이면 중증인데?) 그 순간 엘레베이터 안에 있던 사람들로서는 예상치 못한 호의에 당황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고마워 해야 하는 건지, 어쩌면 괜한 참견이라 기분 상해야 하는 건지, 알쏭달송 얼래벌래 아리까리하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입니다. 

  일부 닫기족들은 “단순히 버튼을 누르는 것이 전력 소모와는 상관 없다”는 주장으로 자신들의 행동을 합리화하고 있습니다. 타이머로 모터가 돌아가나 버튼을 눌러 모터가 돌아가나, 어차피 모터는 돌아가고 문은 한번만 닫히는 것이 아니냐는 말입니다. 물론 지극히 정당한 지적입니다. 과거 에너지 절약의 차원에서 ‘닫힘 버튼’을 누르지 말아야한다는 캠페인은 사실 대국민 우롱에 가까운 수준이었기는 합니다. 사전 봉쇄를 위헤 몇몇 빌딩 및 아파트에서 아예 ‘닫힘 버튼'을 뽑아버렸던 일들은 코미디 중의 코미디였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닫힘 버튼’을 정신 나간 사람처럼 눌러대는 행위가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 첫째는 공동체 의식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같이 탈 수 있을 사람들은 모두 탈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이 기본적인 예의이고 모두의 시간을 절약하는 길입니다. 고조부께서 숨이 헐떡헐떡 넘어가시기 일보 직전이라거나, 괄약근이 통제 능력을 잃어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라거나, 아르헨티나로 조기 유학 떠나는 애인을 당장 붙잡아야 한다거나, 원서나 공모 따위의 마감이 초침의 영역으로 들어가 똥줄이 타지 않고서야 굳이 어차피 닫힐 문을 일부러 급히 닫아가며 유난을 떨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둘째는 개별 행위로는 추가적인 전력 소모가 미미한 이러한 행위가 모이고 모이다보면 결국엔 에너지 낭비가 맞기도 하다는 이유에서 입니다. 충분히 탈 수 있었던 사람이 닫힘 버튼으로 타지 못했다면 그들을 위해 엘리베이터는 그 육중한 몸을 다시금 움직여 오르 내려야 합니다. 그때는 모터 한 번 움직이는 차원의 전력 소모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거대한 낭비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뭐, 그럼에도 닫기족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내린 사람 무안하고로 내리기 무섭게 바로 등 뒤에서 엘레베이터가 그 큰 입을 철컥 닫게 합니다. 뭐 그렇게 바쁜 일들이 많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내귀족
Religion: 한반도 전지역
Languages: 한국어
Related Ethnic Groups: 쩍벌족, 내안방처럼족

  내귀족들은 물론 귀족은 아닙니다. 하지만 귀족처럼 행동하기는 합니다. 이들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일터나 공공장소, 그리고 대중교통 이용시 MP3, PMP, DMB, 노트북, 붐박스, 전축 (응? 전축은 아닌가?) 기타 등등을 사용하되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절대 사용하지 않습니다. 죽어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알아들을만큼 볼륨을 크게 올려두고 자기 안방인듯 편하게 보고 듣고 리액션도 합니다. 그래서 내귀족입니다. 사실 이들의 심리는 오늘 소개드릴 많고 많은 종족 중에서 가장 별스럽고 변태적입니다. 이유인즉슨 이어폰을 끼지 않음으로 인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간다는 사실을 그들 스스로도 어느정도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귀족들은 중증의 나르시스트 아니면 극렬한 안티-소셜리스트인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이명, 난청 및 각종 감염을 우려하여 그랬다고 변명한다면 전자에 가까울 것이고요. 반대로 노 코멘트로 일관한다면 후자에 가깝습니다. (전자라면 항의를 해볼만 하지만 후자라면 피하는 게 상책입니다. 잔뜩 화가 나서 누가 시비 걸어주기만 기다리고 있는 중일 수도 있으니까요.) 흥미로운 것은 내귀족들이 자신있게 공공에 노출하는 자신의 문화 취향이 그렇게 고상한 편이라고는 말할 수 없단 사실입니다. 가만히 살펴보면 내귀족들이 공공장소에서 시간을 쪼개고 쪼개면서까지 열심히 보는 것은 대개 ‘간밤의 TV연예’, ‘마녀들의 수다’, ‘유한도전’, ‘무박삼일’, ‘상상마이너스’, ‘강심제’ 따위의 멍청하기 이를데 없는 오락프로그램입니다. 내귀족들이 듣는 음악은 대개 흡사 부두교 주술처럼 들리는 해괴하고 망측한 노래들입니다. 디트리히 슈바니츠나 레너드 번스타인이라면 이해를 하겠습니다. 로저 에버트나 오프라 윈프리 같은 사람들의 취향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 합니다. 하지만 버스나 지하철의 중고생, 대학생, 아직 철 덜든 직장인들이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속한 취향을 드러내지 못해 안달을 하는 걸까요? 내귀족의 급증은 기술을 누리고 숭배하는 방법만 강조했지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현상이라 진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급연족
Religion: 한반도 전지역
Languages: 한국어
Related Ethnic Groups: 골초족, 낮술족

  급연족들은 금세기 들어 급기야 열등 종족으로 분류되고 점점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흡연족의 일부 잔당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성격이 워낙 급한 나머지 (혹은 니코틴 중독이 너무나도 심각한 나머지) 흡연이 불가한 지역에서부터 담배부터 꺼내 물고 흡연이 가능한 지역까지 이동하면서 피워 나간다는 것입니다. 버스 하차시 교통카드를 찍기도 전에 이미 입에 담배를 물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하철 출구 계단을 빠져 나오기 시작하면서부터 담배에 불을 붙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다름 아닌 급연족인 것입니다. 물론 정확하게만 한다면 불 붙이지 않은 담배를 미리 주둥이에 물고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을 비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 다 그렇지만 흡연 허용 구역에 도착한 다음에 비로소 불을 붙이게 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급연족들이 첫 모금의 알싸함을 만끽하는 사이에 일산화탄소, 아세톤, 포름알데히드, 나프티라민, 메타놀, 피렌, 니코틴, 디메틸니트로사민, 좀약살충제, 제초제, 배터리, 배기가스, 벤조피렌, 청산가리, 톨루이딘, 암모니아, PVC, 산업용 우레탄, 비소, 페놀, DDT, 타르 등등의 칵테일이 지엄한 물리 법칙에 따라 뒤따라 오는 선량한 시민들을 덮치게 됩니다. 며칠 전 뉴스에 나왔듯이 간접 흡연으로 생긴 폐암은 잘 치료되지도 않는다는데 말입니다. 급연족들이 주위 사람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을만큼 충분한 공터나 흡연 구역에 다다르게되면, 보통 담배는 이미 다 태워져 달랑 꽁초만 남아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참으로 배려로 충만한 종족이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숭늉족
Religion: 한반도 전지역
Languages: 한국어
Related Ethnic Groups: 설레발족, 너무나간족

  “이로써 토건경제에 대항하는데 일조하게 되었기에 기쁘기 한량없다!” 한 선배님께서 여자친구되시는 분과 밤새토록 만리의 장성을 쌓으시고는 흐뭇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교와 토건경제 사이의 건강한 함수관계를 밝혀낸 우석훈 교수의 저 위대한 ‘서쿤이론’을 두고 한 말이었다고 합니다. ‘서쿤이론’을 기계적으로 이해하자면 건설경기는 주중에 살아나고 주말에 위축되는 패턴을 가지게 될 것이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나아가 성탄 전야와 발렌타인 데이에는 거진 빈사상태여야 하며 (평생을 이 나라에서 살았음에도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설날, 추석, 어버이날, 현충일, 광복절에는 활발하게 살아나야 한다고 너스레를 떨 수도 있겠습니다. 많은 정상적인 상식을 가진 분들은 ‘서쿤 이론’이 관심을 모으기 위한 일종의 찌라시 마케팅 전략임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만 문제는 저희 선배님처럼 나이 서른을 훌쩍 넘겨서도 그걸 또 곧이 듣고 자빠진 인간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옛말에 애들 앞에서는 숭늉도 못마신다고 했습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이해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자극에 대한 굴성운동만 과도히 발달한 오늘날, 그냥 웃자고 한 말도 이런 철부지 숭늉족들에게는 괜한 오해의 소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빠꾸족
Religion: 한반도 전지역
Languages: 한국어
Related Ethnic Groups: 갑질족, 도루묵족

  빠꾸족들은 뭐든지 한 번에 승인하고 허락해주는 것이 자신의 권위와 위엄을 손상시킨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단은 빠꾸를 먹이고 봅니다. “형편없네. 다시 해 와.” "이걸 지금 나 보라고 작성한건가? 아님 자네 애인이랑 시시덕거리려고 작성한건가?" "틀렸어. 마지막 기회를 줄테니 날 만족시켜봐." 때로는 이유가 있지만 때로는 별 이유가 없습니다. 몇 번을 빠구 먹이느냐에는 개인 차이가 있지만 빠꾸 횟수만으로 빠꾸족을 감별해낼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무수한 빠꾸를 거쳐 결국에는 최초 드래프트로 (혹은 거의 비슷하게) 돌아가게 된다는 부분입니다. 실컷 빠꾸는 빠꾸대로 먹여놓고 최초 의견과 최초 작성본으로 다시 돌아가간다니 이런 기가 막힌 일이 어디 있습니까? 돈 낭비에 시간 낭비죠. 백번 양보해 그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다듬어지거나 시행착오를 거치며 조금이라도 나아진 부분이 있다면 또 모르겠습니다. 항상 개고생 끝에 말짱 도루묵으로 돌아가고야 만다는 비극입니다. 그건 그냥 견디라는 뜻입니다. 내가 위고 니가 아래리까 알아서 기라는 뜻입니다. 그 가치 없고 명분 없고 영양가 없는 삽질로 인해 아랫사람 입장에서는 짧게는 몇 시간, 길게는 몇 주가 날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시간의 소중함에 엿을 먹이는 행위이지요. 심지어 빠꾸족 중에는 자기 가족들에게도 고약한 특성을 드러내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설마 그럴리가! 하지만 정말 그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빠꾸족들을 한 번이라도 겪어보신 분들이라면 가능성이 충분함을 부정하지 못하실 것입니다.

샤브족
Religion: 한반도 전지역
Languages: 한국어
Related Ethnic Groups: 짬짜면족, 오삼불고기족

  최근 웰빙열풍과 맞물려 우후죽순 샤브샤브 전문점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서 그간 숨어있던 샤브샤브 애호가들이 많이들 수면 위로 올라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샤브족은 약간 차이가 있습니다. 이들은 샤브샤브를 즐기기는 하지만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샤브샤브라는 요리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정리하자면 샤브샤브를 모르면서 샤브샤브에 환장하는 종족이 바로 이 샤브족인 것입니다.  

  샤브족의 특징을 몇가지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데치기보단 삶습니다. 그리고 삶는다기보단 푹 고아냅니다. 왜 고기를 얆게 썰어 내놓는지 생각도 안 해본 사람들이란 뜻입니다. 그렇게 먹을 거라면 샤브샤브를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정육점에서 고기 몇 근 끊어서 곰국처럼 푹 끓이면 될 일이고 사실 한반도에서는 국이나 탕이나 찌개라는 형상으로 아주 오래전부터 대부분의 고기를 그런 식으로 먹어 왔습니다. 둘째, 고기와 해물을 같은 냄비에 넣고 끓입니다. 맛의 조화라는 것을 생각해보지 않은 이 행위는 샤브족들에게는 전당이라고 할 수 있는 몇몇 프랜차이즈 샤브샤브 뷔폐를 통해 급속히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한반도에서는 뷔폐가 ‘니들 마음대로 갖다 먹어라’라는 뜻으로 잘못 알려져 있기는 하지만 이 샤브샤브 뷔폐는 컨셉트부터 잘못되어 이런 오해를 증폭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샤브족들은 해물탕에 소고기를 넣어 먹으라면 느끼하다고 못 먹을 사람들입니다. 소고기국에 새우와 오징어를 넣어 먹으라면 비리다고 안 먹을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샤브샤브라는 이름으로 고기 육수에 소고기와 새우, 오징어를 같이 때려넣으라면 좋다고 퍼 먹습니다. 뭐, 다 좋습니다. 자기가 좋아 먹겠다는데 그걸 간섭할 이유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샤브족들이 제조한 이 정체불명의 수륙양용탕이 선량한 시민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점이 문제입니다. 보기에도 역겹지만 냄새는 더 역겹습니다. 동시에 한 서른 테이블 정도에서 그런 짓을 하면 비위를 자극하는 냄새가 식당 밖 복도까지 진동을 합니다. 살짝 맡기만 해도 입맛이 뚝 떨어질만한 냄새입니다. 주위에서 샤브족들을 발견하시면 제발 말씀을 해주세요. 육지에서 나는 재료와 바다에서 나는 재료를 분리하여 요리하는 데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요. 

독설족
Religion: 한반도 전지역
Languages: 한국어
Related Ethnic Groups: 막말족, 입에걸레문족

  뷔폐만큼이나 한반도에 개념이 잘못 알려진 것이 바로 독설입니다. 한반도에서는 독설이라는 표현이 오디션 프로그램의 남발 이후 급격히 늘어났고 그제서야 곳곳에 기승을 부리던 사람들이 자신들을 독설족으로 규정하였습니다. 일단 짚고 넘어가자면 막말을 하는 것이 독설이 아닙니다. 욕을 하는 것이 독설이 아닙니다. 인신 공격을 하는 것도 독설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미 사회 전반에 퍼져있던 남을 헐뜯고 깎아내리고 상처주는데 혈안이 되어있던 사람들이 스스로를 ‘독설가’로 규정하고 꽤 멋진 것처럼 포장하는 작금의 분위기는 상당히 역겹습니다. 무분별한 독설 신드롬은 역설적으로 이 사회가 얼마나 공정성에 목말라있는지를 보여줍니다.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 대한 분노가 뒤틀린 판타지로 나타나는 것일 뿐입니다. 현실 세계의 자신이 상사에게 불려들어가 부당하고 무례한 비난을 받았을 때 '독설'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습니까? 그런데 텔레비젼 안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면  독설이라고 인식합니다. 아주 독특한 현상입니다. 독설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주위에서 독설을 운운하는 사람들은 수준과는 거리가 멉니다. 자칭 독설족들은 더더욱 그렇습니다. 

총대족
Religion: 한반도 전지역
Languages: 한국어
Related Ethnic Groups: 이문열족

  총대족 사람들은 스스로가 굉장히 공정한 사람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세계를 하나의 원으로 본다면 다름 아닌 자신이야말로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은 정확한 원심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물론 총대족이 아닌 사람에게도 객관적으로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만 총대족의 경우엔 "내가 나서서 균형을 잡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이 심각하다 못해 병에 가까운 수준입니다. 자신의 공정함을 과신하거나 자기에로의 강한 향심력을 원하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인데요. 이들은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계의 중심이 어느 한 쪽으로 치우쳤다는 생각을 하는 순간 극단의 늪으로 빠져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총대족과 총대족이 만나 말을 섞는 사태는 가급적 일어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 말할 수 있겠습니다. 많은 경우에 인터넷상의 토론이 지극히 감정적이고 지극히 소모적인 이유도 총대족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총대족들은 잭 세퍼드처럼 온갖 책임을 떠맡아, 잭 도나기처럼 모든 결정을 내리고, 잭 바우어처럼 돌진합니다. 결국 이들은 세계의 불균형에 한탄하다가 실패, 불화, 왕따, 암흑, 위협, 고독, 상실, 억압, 불안의 감정적 소용돌이 속에서 (註2) 괴로워하게 되는 경우가 보통입니다. 그들이 발산하고 폭주하는 실패, 불화, 왕따, 암흑, 위협, 고독, 상실, 억압, 불안의 감정 바이러스는 많은 선량한 보통 종족들의 인생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요. 따라서 이제는 이들 총대족들을 어떻게 우리 세계 안으로 포용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케이족
Religion: 한반도 전지역
Languages: 한국어
Related Ethnic Groups: 국뽕족, 심형래족

  마지막으로 한반도 전지역에 퍼져있는 이상한 (움파룸파 족에 버금가는) 종족에 대해 보고드립니다. 이들은 국제화에 대한 열병과 우리 것에 대한 환상이 짬짜면처럼 뒤섞여 구분을 못하는 이상한 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발 도상의 기억과 선진국에 대한 컴플렉스로 인하여 글로벌 무대에서 인정받고자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지고 있고 그 결과 성취를 이룬 것처럼 보이는 주체들이 나타나는 경우 그들과 자신을 분리하여 사고하지 못하는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우리나라 사람, 우리나라 회사, 우리나라 문화, 우리나라 사람이 만든 것, 우리나라 사람이 관여된 것이라면 소름끼칠 정도로 맹목적이고 무조건적인 경쟁 구도로 바라봅니다. 한 마디로 순전히 내셔널리티를 기준으로 개인 혹은 조직을 자신과 과도하게 동일시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정작 글로벌 시대를 주장하면서 정작 글로벌 마인드는 조금도 없다는 것이 이 사람들의 독특한 점입니다. 

  종종 이들은 케이족이라고 불리는데 아무 곳에나 케이(K)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것이 국제 사회에서 인정받기를 바라고 마치 스포츠 팬들처럼 맹목적으로 국내의 것을 응원합니다. (과거 이러한 성향이 가장 먼저 발현된 분야가 스포츠였기 때문에 나름 타당해 보이기는 합니다.) 올림픽과 같은 국제 무대에서 우리나라 선수가 좋은 성적을 올리기를 마치 의무처럼 온 국민이 두 손모아 응원하던 기억이 맹장처럼 진화하지 못하고 케이족들에게는 그대로 남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정부와 언론과 기업이 이들 케이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방법입니다. 정부는케이족들의 비이성적 세계관을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용하는 소위 애국심 마케팅은 비밀도 아닐 뿐더러 정말 잘 먹힙니다. 언론들은 적극적으로 이를 부추깁니다. 필요와 입맛에 따라 터무니없이 과장하거나 악의적으로 편집하는 것은 물론 없는 사실도 만들어냅니다. 인터넷의 발달로 정보 접근성이 향상되었음에도 한반도는 지정학적으로만이 아니라 정보의 흐름에 있어서도 여전히 섬이 아닌가 싶습니다.

(註1) 성석제, <재미나는 인생>, '내가 사랑한 반말족', pp.1113, (2004)
(註2) 강준만의 인간학 사전, 이문열편, 인물과 사상, 강준만 (2005)

(200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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