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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8. 바라춤의 소리

낙농콩단/Season 6-10 (2006-201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6. 6.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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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당은 작았다. 어른 걸음으로 열 발자국이면 왼편 끝에서 오른편 끝까지 닿을 정도였다. 축축하고 눅눅한 공기가 향내에 녹아들어 어지럽게 흘러나왔다. 그건 성스럽다기보다는 쓸쓸하고 외로운 느낌이었다. 법당의 중앙에는 불상이 있었다. 부처의 눈은 가늘고 길게 찢어져 있었고, 귀는 턱까지 흘러 내려와 있었다. 모든 것을 자비로이 보듬겠노라는 인자한 입매에는 반대로 아무 것도 보듬지 않겠다는 냉엄함도 담겨있었다. 자비와 냉엄은 처음부터 한 배에서 나온것이었을까. 수행에 수행을 거듭하여 부처가 된 인간 싯다르타는 도대체 무얼 할 줄 알고, 또 도대체 나에게 무얼 해 줄 수 있는가를 따져 물어보건만 역시 대답은 없다. 그를 받치고 있는 제단은 소박하면서도 화려하다. 이름모를 목공은 예민한 칼날을 세워 몸을 구불거리는 용을 그렸다. 만개한 연꽃도 그리고 도깨비도 그렸다. 두 마리의 용은 온 몸을 좌로 우로 구불거리며 용솟음쳤다. 입에는 여의주가 물려있는데 그 눈매가 두려울 정도로 사나웠다. 그러고보니 법당 안의 모든 것이 그렇다. 부처와 무슨 보살과 무슨 왕들의 눈매가 모두 그렇다.

  제는 오후 한 시쯤 시작되었다. 그날 따라 태양이 하늘 꼭대기까지 솟았다. 온도계의 수은주도 덩달아 하늘을 쳤다. 노스님은 부처의 맞은 편 문으로 드나들지 말라 호통을 쳤다. 그의 주글주글한 이마는 온통 땀으로 범벅이었다. 땀인지 물인지 모를 액체가 노스님의 둥근 얼굴을 타고 흘렀다. 제를 올리는 법당 안에는 에어컨을 켜는 법이 없었다. 에어컨이라는 기계가 내는 인위적 소리가 사람의 소리와 영의 소리를 방해한다 했다. 제는 소리의 의식이다. 스님들은 무슨 뜻인지도 모를 경을 끝도 없이 읊었다. 그건 끝날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고 끝도 없이 이어졌다. 그 소리는 때때로 높았고 때때로 낮았으며, 때때로 맑았고 때때로 탁했다. 또한 때때로 엄했고 때때로 서러웠다. 저 소리는 종이에 적힌 글이 먼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인지 아니면 소리가 있어서 종이에 적힌 글도 있어지게 된 일인지 알 길이 없는 노릇이었다. 사람이 울리는 소리야 귀로 들을 수 있는 것이건만 영의 소리는 도대체 무엇으로 들어야 한단 말인가. 에어컨을 꺼도 영이 울리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세 명의 스님을 포함해 마흔 남짓한 사람이 들어찬 조그만 법당은 한증막처럼 뜨거워졌다. 소리는 숨막히는 폭염을 헤쳐야 했다.

  스님은 셋이었다. 하나는 두꺼운 안경의 피부가 거칠거칠한 노승이었고, 다른 하나는 마흔쯤 되어보이는 동글동글한 인상의 젊은 승이었으며, 나머지 하나는 여승이었다. 모두가 땀을 흘렸다. 법복은 여러겹의 천으로 되어 있었다. 서양식 정장으로 온 몸을 꽁꽁 감싼 우리도 땀을 흘렸다. 검정은 본디 열을 잘 흡수하는 색이라 했다. 더운 공기탓에 비처럼 땀이 흘러도 감각이 없었다. 초에 불을 놓다가 손을 데어도 아무 감각이 없었다. 장마철을 나며 물기를 머금없던 성냥은 고약하게 비틀어져 있었다. 성냥의 꼭지를 타고, 그 몸통을 따라 내 검지와 엄지에까지 내려온 불은 너무 작고 약하여 아무런 느낌도 주지 못했다. 이미 태양은 법당 밖의 세상을 온통 태우고 있었다. 그 커다란 화염의 뜨거움에 비하면 성냥불의 뜨거움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노승은 부처의 맞은 편에 서서 소리를 했다. 노승의 소리는 법당 위로 곧게 올라가서 넓게 퍼졌다. 퍼지는 소리가 차가워 몸을 떨었다. 그 소리에 맞춰 나머지 두 젊은 스님은 춤을 추었다. 그게 바라춤이라 했다. 모든 악귀를 물리치고 마음을 정화하는 춤이라 했다.

  바라는 청동의 악기다. 청동은 알루미늄과 주석을 섞어 만든다. 양손에 바라를 든 두 스님은 거짓말처럼 똑같이 움직였다. 둘이 추는 겹바라라 했다. 바라는 몸의 앞쪽에서 처음 마주했다. 그 때 '채앵'하고 긴 소리가 났다. 모양이나 원리에 있어서 서양의 심벌즈와도 닮았지만 실은 그 소리가 크게 다르다. 바라의 소리는 악기의 소리라기 보다는 금속이 물리적으로 부딪히는 소리처럼 느껴진다. 고상한 음율이 담긴게 아니라 단순하고 직선적 파열의 음이다. 스님들은 한번 크게 부딪쳐 소리를 낸 바라를 비스듬히 비벼가며 머리 위로 올린다. 바라는 위에서도 마주하고, 머리 뒤에서도 마주한다. 손목은 현란하게 돌아간다. 마주함과 마주함의 사이를 도는 그 움직임이 다른 생각을 놓아버리게 한다. 손목은 팔에 달렸다. 팔은 어깨뼈에 의해 돌아간다. 어깨뼈는 몸에 붙어 있다. 꼬이고 돌고, 꼬이고 도는 저 움직임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 수가 없다. 그 사이에도 끝없이 바라는 '채앵, 채앵' 소리를 낸다. '채앵' 소리가 둘이라 겹바라다. 조그만 법당을 메우는 노승의 소리도 끝이지 않는다. 목에서 소리를 내는 이나, 몸으로 소리를 내는 이나, 소리를 내지 않는 이나 땀으로 흠뻑 젖었다. 동그랗게 뭉쳐진 물방울이 법당의 나뭇바닥에 후두둑 떨어졌다. 그게 물인지, 땀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인지 알 길이 없었다.

  땀이 흘러내리는 까닭은 몸이 체온을 조절하기 위해서라 했다. 영리한 사람의 몸이 뜨거운 외부온도에 적응하기 위해 피부로 물을 내보낸다는 것이다. 그 물을 사방에 흘리며 스님들은 법당을 돌았다. 까만 넥타이로 목을 조아매고 까만 양복을 뒤집어쓴 우리도 그 뒤를 따랐다. 어른 걸음으로 채 열걸음도 안되는 좁은 법당을 마흔 명의 사람이 돌았다. 땀이지 물인지가 원을 그리며 휘날렸다. 손을 모으고 스님의 뒤를 따르다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촛불에 의지한 법당 안의 어두움에 익숙해지다 바깥을 바라보면 눈이 부셨다. 그 하얀 눈부심 뒤에는 화염같은 팔월의 태양이 있었다. 법당의 조그만 문은 모두 세 개였는데, 그 중 가장 앞에 있는 첫번째 것만 열려 있었다. 모든 눈부심은 그리로 쏟아져 들어왔다. 나는 작은 문 뒤로 일렁이는 커다란 불길을 바라보며 화장을 생각했다. 엘레베이터만한 작은 문에 관을 밀어넣고 하얀 방진복에 하얀 마스크로 무장한 사람이 나타나 기계적으로 인사를 한다. 하얀 장갑을 낀 두 손을 펼쳐보이고 허리를 깊히 숙이는 그 모습이 너무 작위적이라 거부감마저 인다. 이윽고 문이 닫히고 작은 전등이 들어와 화장이 시작되었음을 알린다. 불길은 작은 문의 뒤에서 남몰래 치솟아 올랐다. 몇 겹의 벽이 가로막고 있는데도 열기가 전해져 이마에 땀이 솟았다. 그 날과 닮은 오늘의 여기서도 법당의 작은 문의 너머에서 태양이 작열한다. 법당을 돌고 돌던 스님들은 춤을 추며 새하얗고 뜨거운 법당의 바깥으로 나아갔다. 불의 향연을 헤치며 나아갔다.

 

(2006년 0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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