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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4. 생태영웅 김똘똘전

낙농콩단/Season 6-10 (2006-201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6.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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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슈퍼 히어로에 다양성이 결여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성실한 영웅이 있었고 태만한 영웅이 있었으며, 친근한 영웅이 있었고 까칠한 영웅이 있었다. 또한 위선적 영웅이 있었고 위악적 영웅이 있었는가 하면, 고독한 영웅이 있었고 사랑받는 영웅이 있었다. 그러나 모두가 간과한 사실이 있으니, 바로 환경에의 염려다. 사실 슈퍼 히어로들은 그 성격과는 무관하게 선악의 무질서를 바로잡기 위해서 세상의 무질서도를 상승시키는 실수를 부지불식간에 범해왔단게 엄연하달 수 밖에 없는 부분일테다. 클라크 켄트, 브루스 웨인, 토니 스타크, 브루스 배너...... 도시 파괴자라는 점에서는 그들과 악당 사이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들은 단기적으로 세상을 구했을런지 몰라도 장기적 관점에서는 구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여전히 지구의 평균온도는 올라가고 있으며 오존층의 구멍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양심만큼이나 점점 넓어져가고 있지 않은가. 따라서 멀리 내다보는 혜안을 지닌 지속가능한 영웅질을 추구하는 지혜로운 슈퍼 히어로가 필요한 때다. 그런 영웅이 당장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닥터 I.C. 위너 (I. C. Wiener)는 세계 최초의 친환경적 슈퍼 히어로를 제안하며 다음과 같은 과제계획서를 작성했다.

 

○ (전략) 이와 같이 환경에 친화적인 슈퍼 히어로는 본 연구단에 의해 세계 최초로 제안하게 되는 것으로 수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기계, 전자, 컴퓨터, 수학, 물리학의 융합적 연구를 통해 완성된 것으로 향후 수출 대체 효과는 물론 나아가 세계 평화에 지대한 이바지할 것으로 사료됨.


  이게 뭔 소리람. 에휴, 이 놈의 이공계식 몹쓸 싸구려 주술호응.


*


  김똘똘은 생태영웅 제 1호로 완성되었다. 2022년 봄의 일이다. 겨울잠에서 깬 개구리가 꿈틀꿈틀 일어날 경칩을 전후하여 김똘똘 역시 세상에 첫 선을 드러낼 준비를 마쳤다. 비록 혈액 대신에 코카스가 흘렀고 내장 대신에 회로 기판이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었지만 겉모습만큼은 영락없는 진짜 인간 같았다. 특히 '브로크백산'과 '엄친아민나트륨', '요구르트화메틸마그네슘', '먹지말고피부에양보하-3-하보양에부피고말지먹', 그리고 '맨땅에헤딩하고있다늄'의 다중 가교로 만들어진 인공 피부는 진짜 사람의 그것처럼 생생하고 탱탱하기 그지없었다. 인류 최초로 만들어진 로봇-인간 (인간처럼 생긴 로봇)의 완벽한 자태와 고운 피부에 닥터 위너 휘하 연구팀의 인간-로봇 (로봇이나 다름없이 생활하는 인간)들은 만세 삼창을 불렀다.
- 내 이상형이야. 아무리 봐도 잘 생겼어.
  요모조모 뜯어보면 꽤 미남인 김똘똘의 얼굴에 여성 연구원들은 자기들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마저 토해냈다.


  물론 김똘똘이가 빵판에서 일어나지 못함을 알게되기 전까지였다.
- 아니 갑자기 왜 그러지?
  완벽하게 계획되고 완벽하게 설계되어 완벽하게 제작 완성된 김똘똘이 일어서지 못한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눈동자도 빛에 반응하고 신진대사도 원활한데다가 소변까지 선명하고 상쾌한 오렌지색인데. 팀원들은 휴게실 자판기에 기대 아미노산, 미네랄, 비타민 C가 함유된 코카스를 마시며 원인 탐구에 주력했다.
-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부터 세워놓은 채로 만들 것을 그랬나봐요. 괜히 눕혀놓고 만들어서.
  하지만 건장한 스무살 남성의 체격조건에 맞춰 설계된 김똘똘이 스스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없을리가 없었다.
- 그냥 기중기를 가져와서 일으켜 세울까요?
- 아니,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야? 그럼 매일 아침마다 우리가 그 짓을 하잔 말이야? 저 스스로 혼자서도 잘 일어나는 법을 배워야지. 그리고 70 킬로그램짜리 남자 하나를 억지로 일으키는데 기중기까진 필요하지 않아. 지렛대라면 모를까.
  닥터 위너는 신경이 날카로워진 나머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분위기가 남극의 빙하처럼 꽁꽁 얼어붙은 바로 그 때, 미스 리가 호떡 집에 불이라도 난 듯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 선생님, 섰어요. 똘똘이가 섰다고요.
  순간 닥터 위너를 비롯한 남성 연구원들의 얼굴이 빨개졌는데 그 이유가 무엇이었는지는 알고 싶지도 않고 굳이 알려하기도 귀찮다. 여하튼 그들은 랩 코트 자락을 바람처럼 휘날리며 똘똘이가 누워있는, 아니 이제 서있을 실험실로 달려갔다. 김똘똘은 언제 무슨 일이나 있었냐는듯 태연하게 콜라캔을 밟아 지그러뜨리고 있었다. 물론 아무 것도 걸치지 않은 채로.
  그는 말했다.
- 지금 분리수거 중이라능.
  그리고 또 이렇게도 말했다.
- 엄마, 엄마.
  때부터 김똘똘은 자기가 눈을 뜨고 일어났을 때 가장 먼저 인식한 미스 리를 엄마라고 부르며 졸졸 따라다니기 시작했다. 사실상 김똘똘의 모든 것을 고안해 낸 장본인이자 명색이 '차세대 환경친화 슈퍼영웅 개발사업단'의 단장인 닥터 위너는 똘똘이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엄마라고 부르는 것에 적잖이 비아냥이 상했지만 얼굴에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한편 닥터 위너의 팀원들은 그저, 어쨌든 똘똘이가 서줘서 다행이라는 표정이었다.


*


  휴우, 오래들 기다리셨습니다. 여러분들께 생태영웅 김똘똘을 소개합니다.


Real Name: 김똘똘 (슈퍼 영웅 최초로 실명 인증)
Category: 에코-히어로 (정식 과제명에 의하면, 차세대 환경친화형 슈퍼영웅)
Location: 서울특별시 도봉구 쌍문동 633-1 세림빌딩 B-201호 (보증금 육천에 월세 팔십오)
First Appearance: 사건파일 #1. 서울특별시 구로구 가리봉동 음식물 쓰레기 무단 투척 사건.
Created By: 닥터 I.C. 위너 (차세대 환경친화 슈퍼영웅 개발사업단장)
Team Affiliations: 차세대 환경친화 슈퍼영웅 개발사업단 전속
Power: 김똘똘의 힘은 인간이 딛고 살아가는 이 땅에서 출발한다. 인류에게 땅은 곧 삶의 터전이요 생명력의 근원이었으며 풍요와 재생의 상징이었다. 어머니 대지(Mother Nature)로부터 끌어모은 힘에 바탕하여 그는 지구를 병들게하는 나쁜 (삐리리)들을 엄정히 까부순다. 그건 한편으로 생태영웅 김똘똘의 원천이 무한히 넓과 깊음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지구가 병이 들어가는만큼 그의 힘 또한 줄어들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Main Villains: 황소 개구리, 큰 입 베스, 파랑볼우럭, 폐기물 무단 방류자, 쓰레기 무단 투척자, 습관적 노상방뇨자, 습관적 분리수거 미시행자, 엽기도 아닌 때 사냥 즐기는 엽기적인 자, 골프 즐기는 자, 기타 생태 개념 미장착자.
Blood Type: 피가 아닌 코카스가 흐름. 위급시 수혈이 아닌 코카스 정맥 투여 요망.
Origin: 생태영웅 김똘똘의 존재는 윌리엄 워즈워드(영국, 시인, 1770∼1850) 시구의 한 부분으로 설명을 대체할 수가 있다. '그리고 나는 느꼈다. 고양된 사고의 즐거움으로 나를 뒤흔들어 놓는 어떤 존재를/ 그것의 거주지는 지는 해의 광선이며, 둥근 대양이며, 살아 있는 대기이며, 푸른 하늘이며, 동시에 인간의 마음인 자연 속 깊숙히 배어 있는 어떤 것에 대한 숭고한 느낌을/ 모든 사유의 주체를 움직이며, 모든 사유의 모든 대상체들을 움직이는, 그리고 모든 존재를 뚫고 흐르는 동력, 그리고 영혼을. (윌리엄 워즈워드, '틴턴 애비(Tintern Abbey) 위쪽으로 몇 마일 거리에서 쓴 시’ 중에서)'
Mother: 미스 리 (차세대 환경친화 슈퍼영웅 개발사업단 전속 사무원, 순전히 최초 인지의 대상이라는 이유로)


*


[2023년 5월. 사건파일 #.00365. 두웅습지 황소개구리 절멸 작전]

  간밤 대동단결의 회식으로 숙취가 채 풀리지 않은 생태영웅 김똘똘. 그는 모닝케어 한 방으로 새 사람으로 거듭난 다음,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로 출발한다. 그는 운전을 하고 그의 제작자이자 기획자이자 정신적 아버지인 닥터 I.C. 위너는 뒷좌석에 비스듬히 기대 앉아있다.

  김똘똘은,
- 자동차가 환경에 미치는 악영향과 생태영웅된 우리의 막중한 책무를 생각할 때 자전거로 태안까지 가야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라 닥터 위너에게 제안했으나 아직까지 술기운으로 머리가 지끈지끈하신 그의 창조주께서는,
- 개수작하지 마라. 아직까지 골이 울리는데 자전거는 뭔 놈의 자전거.
라며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덜렁 차 키를 맡기셨다. 세상에 보스의 차를 운전하는 것만큼 후덜덜한 일이 세상에 또 있을까. 인간-로봇들이 가장 싫어하는 일이 바로 그것이듯 로봇-인간들에게도 그건 차마 못할 일이다. 일일 운전자 보험을 들어놓고도 어째마음이 놓이지 않아 김똘똘은 다리를 부들부들 떤다. 그러면서도 혹시 자기가 이 거대한 기계 덩어리를 서투루 조작하여 환경을 해치지나 않을까, 어쩌면 보험으로 커버가 되지 않는 사고를 치지 않을까, 그리고 명색이 세계 최초로 제안된 생태영웅이 이래도 될까 싶어 마음이 심히 무겁다.

  황소개구리와의 대결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가을에도 그는 황소 개구리를 잡겠다며 전국의 습지를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축축한 물에 빠지고, 나무 밑둥에 걸려 자빠지고, 개구리 떼에 뒤덮여 버둥거리고, 방심하다가 후방에서 스물스물 다가온 뱀에게 물리고, 그 뱀이 다시 어떤 황소 개구리에게 잡아먹히고, 그가 다시 그 황소 개구리를 붙잡아 들통에 밀어 넣고, 이런게 바로 먹이사슬과 생태계의 오묘한 조화로구나 감탄을 금치 못하매 멍때리다가 서서히 늪에 빨려 들어가고. 당시 닥터 위너는 김똘똘의 그 치열한 순간들을 빠짐없이 파나소닉 루믹스 DMC-L10으로 찍어 자기 미니홈피에 올렸다.
- 박사님, 쪽팔리게 그게 뭐에요? 지워주세요.
  그러나 닥터 위너는 완고하게 그의 창조물이자 제자를 꾸짖었다.
- 짜샤, 그게 다 추억이야. 추억.

  당시 황소 개구리들을 우겨넣었던 여섯 개의 들통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얼추 봐도 백 킬로는 넘겠던데. 그게 다 어디로 갔을까? 그는 닥터 위너의 충실한 노예, 대학원생 마이크 로치 (Mike Rotch)에게 그 행방을 물었으나 역시 묵묵부답. 다만 달도 휘영청 밝던 어느 날 밤 혼자 출출해 야식으로 순살 치킨을 시켜먹다가 낯선 튀김옷에서 문득 느껴진 내 숙적의 향기에, 아, 일단 튀겨지면 그 정체를 도통 알 수 없는 것이 세상 만물의 이치로구나, 슬프기도 하고 속이 울렁거리기도 하여 꺼이꺼이 목놓아 울었을 뿐이다.

*


- 똘똘아. 우리 해장하고 가자.
  닥터 위너의 말에 그는 조심스럽게 핸들을 꺾어 충북 최고의 해장국집인 <삼할매집>으로 들어간다. 삼할매는 지존할매, 원조할매, 백발할매를 가리키는 말로 그만큼 이 무주공산인 해장계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고수들이라는 뜻이다. 삼할매는 젊은 시절 3인조 댄스그룹으로 활동하던 인연으로 맺어진 사이라고 했다. 저 파파 할머니들이 핫 팬츠를 입고 격렬하게 몸을 흔들었음을 김똘똘은 상상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다만 닥터 위너는 과거의 아릿한 기억이 있어 할매들을 보며 입맛을 쩝쩝 다신다.
- 박사님, 그런데 정말 궁금한 것이 하나있습니다.
- 뭔데?
- 전 명색이 슈퍼 영웅이잖아요.
- 차세대 환경친화 슈퍼영웅이지. 밖에 나가선 항상 그렇게 정식으로 말하고 다니는거다.
- 알겠습니다. 아무튼요. 저는 슈퍼영웅인데 왜 이렇게 특별나지 않은거죠? 김똘똘은 퉁퉁 부은 채로 말한다. 그건 깨나 고민스러웠단 표정이다.
- 뭐가?
- 전 말입니다. 새처럼 하늘을 날지도 못하고요. 치타처럼 빠르게 달리지도 못해요. 코끼리처럼 크지도 않고요 고양이처럼 재빠르지도 못해요. 하다 못해 손에서 거미줄도 나가지 않아요. 로봇이라고는 하는데 개구락지 몇 마리 잡고나면 체력이 후달려요. 길에다가 담배꽁초 버리는 고등학생들이랑 드잡이질을 하다가 늘씬하고 시원하게 얻어맞은 적도 있잖아요. 박사님도 기억하시겠지만 그때부터 제가 나사가 풀렸죠.
- 기억하다마다.
- 그런데 일반적으로 슈퍼영웅이라고 하면 그런 인간이 같지 못한 다른 종들의 장점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런데 저에겐 그런 점이 하나도 없어요. 사실 박사님이랑 큰 차이가 없잖아요. 이 안에 빵판이 들었고 코카스가 흐른다는 사실만 빼면 말입니다. 전 그게 답답해요. 제게 더 큰 힘이 있었더라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을게 아닙니까. 왜 저를 이렇게 만드셨어요. 이렇게 나약하게 만드셨냐고요.
  김똘똘은 답답한듯 가슴을 탕탕친다. 그러나 그의 창조주 닥터 위너는 별 같잖은 소리 다 듣겠다며 <삼할매집>의 자랑 '지존탕수볶음마파두부치즈베이컨해장국'을 훌훌 들이키며 땀을 뺀다. 아, 얼큰하고 개운하다.
- 짜샤. 인생이란게 원래 그런거야. 죄다 복불복이지.
  그러나 여전히 김똘똘은 입을 큰 입 베스마냥 뾰로퉁하게 내밀고 있다. 이에 닥터 위너는 호탕하게 웃는다.
- 짜샤. 넌 로봇이지만 인간에 가깝잖아. 도구를 활용하면 되는 거야. 날개가 없으면 비행기를 타면 되고, 빨리 못달리면 자동차 타면 되고, 몸집이 작으면 헬스장에 다니면 되고, 키가 작으면 깔창을 두 개쯤 깔면 되고, 재빠르지 못하면 그건 그냥 그렇게 살고, 손에서 거미줄이 안 나가면 손에서 거미줄 나가는 놈을 돈 줘가며 부리면 되고, 그게 인간의 생존법이야.
- 그럼 굳이 슈퍼영웅일 필요가 없잖아요. 모든 인간이 다 할 수 있는 일인데.
- 짜샤, 그래서 슈퍼 영웅은 고독한거야.

  그러나 김똘똘은 오늘따라 쉽게 수긍할 눈치가 아니다.
- 게다가 그런 인간의 욕심 하나 하나가 결국 지금과 같은 생태계 파괴의 원흉이 아니겠어요? 높이, 빨리, 많이의 욕심이 없다면 인간은 지구를 지금처럼 엉망진창으로 개판치지 않았을 겁니다.
  성질 급하기로는 올림픽 챔피언 감인 닥터 위너는 더는 못참고 버럭 화를 낸다.
- 보자보자하니까 짜식이 어디서 창조주를 가르치려 들어. 입 다물고 '원조슈퍼수프림케이준생태스파이스해장국'이나 먹지 못해. 그런 투정은 엄마한테나 가서 하는거다.
  엄마란 차세대 환경친화 슈퍼영웅 개발사업단 전속 사무원인 미스 리를 가리킨다. 한때 닥터 위너는 똘똘이가 자기가 아닌 미스 리를 엄마라고 부른단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했더랬다. 그러나 이제 어느 정도는 극복한 모양이다. '아빠'라는 대체적 역할을 발견하고 부터서다.
- 그런데 아빠는 엄마랑 왜 같이 살지 않아요? 그럼 정말 좋을텐데.
  이렇듯 생태영웅 김똘똘은 어느 순간 두 살 아기의 정신 연령으로 돌아간다. 이에 닥터 위너는 화들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고 목소리를 맞춰 말한다. 아주 조심스럽게.
- 임마, 내가 밖에서는 아빠라고 부르지 말랬지. 공식적으로 난 너의 창조주고 너의 고용주야. 너희 엄마는 너의 창조주도 아니고 너의 고용주도 아니니 아무데서나 그렇게 부르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어. 괜찮아. 그런데 너희 엄마와 나는 결단코 아무 사이도 아니야. 너희 엄마는 나의 피고용인일 뿐이라니까. 너희 엄마의 고용주가 나인데 창조주는 내가 아니야. 너에게 너희 엄마가 엄마고 내가 아빠일테니 엄마와 아빠가 결단코 아무 사이가 아니라는 사실이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너도 이제 다 컸으니 이 관계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거야, 짜샤.

  닥터 위너는 방금 자기가 똘똘이에게 한 말이 무슨 얘기였는지, 앞 뒤가 맞기는 한 건지, 자기 스스로는 이해할 수 있는 말이었는지 골똘히 생각하는 중이다. 그러다 생각의 영역이 미스 리에까지 미쳤다. 아, 미스 리! 그는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생태영웅 김똘똘의 탄생의 순간을. '선생님, 섰어요. 똘똘이가 섰다고요'라고 외치며 뛰어 들어오던 미스 리의 모습을. 그 장면만 기억해내면 자동-리로드되는 이 묘한 흥분감이란 도대체가, 야발라가히기야, 하이루라, 하이루라. 그는 어쩐지 몸의 한 곳으로 피가 홀랑 몰리는 느낌이 들어 어색한 듯, 흠흠, 헛기침하고 찬 물을 들이킨다. 한편 생태영웅 김똘똘은 풀죽은 표정으로 '원조슈퍼수프림케이준생태스파이스해장국'을 휘휘 젓는다. 숟가락에 통통한 생태가 걸렸다. 역시 <삼할매집>이고 역시 원조할매다. '얼리지도 말리지도 않았다면 믿을 수 있겠니?'라는 광고 카피 그대로다. 생태영웅 김똘똘은 생태를 입에 넣는다. 살살 녹는다. 그래 이 맛이야. 바로 이게 진짜 생태지. 동태도 명태도 북어도 아닌 진짜 생태인 것이다.


*


The Goal: 새로이 제안되는 환경 친화적 슈퍼영웅, 에코-히어로의 최종 목표는 인간의 마음을 포함한 자연계의 모든 존재를 하나의 ‘영혼’으로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인간으로 하여금 인간은 물론 인간이 아닌 자연계의 모든 존재들과도 평등하고 조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것이다.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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