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142. 스팍과 커크

낙농콩단/Season 11-15 (2011-201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1. 5. 22.

본문

  스팍과 커크. 스타트렉 오리지널 시리즈의 주인공들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최근 23세기 들어 새로 만들어진 두 종의 물질에 붙여진 이름이다. 물론 스타트렉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결정된 사안은 맞다. 이 두 가지 물질에는 재미있는 성질이 있다. 두 가지 물질을 가까이 두면 단순 합산을 능가하는 상당한 크기의 에너지가 발생한다는 점이다. 섞을 필요도 없다. 그냥 가까이만 두면 된다. 밀봉 용기에 들어 있는 상태여도 상관이 없다. 어지간한 두께는 뚫고 나가서 서로 만나기 때문이다. 견우 직녀도 울고 갈 일이다. 당연히 이들도, 이들이 발산하는 에너지도 보이지 않는다. 보이진 않는데 분명 그 자리에 있기는 하다. 그렇기에 스팍과 커크를 처음 다루게 된 사람들은 공포심에 사로잡힌다. 당연하다. ① 눈으로는 보이지 않음에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② 그 자리에 있으면서 엄청난 에너지를 뿜어내기 때문이다. ③ 그 에너지가 사람의 몸에 영향을 (대갠 위험한 영향을) 미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종의 청결 강박이 생긴다. 손을 씻고 씻고 또 씻는다. 맨 손으로 만진적이 없는데도 말이다. 옷도 매일 세탁한다. 장갑과 신발도 여러 개를 준비한다. 그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공기 샤워실을 들락거린다. 그래도 충분히 깨끗해진 것인지 알 수 없으니 불안이 가실리 없다. 역시 위험한 물질은 노골적으로 위험한 특질을 보이는 것이 자연의 순리 아닌가 싶다. 유독하면 색이든 냄새든 맛이든 느낌이든 뭐든 역시 수상하게 인식되어야 제격이지 당최 이렇게 알 수가 없어서야.


  커크는 저돌적이다. 일단 저지르고 본다. 불같다. 반면 스팍은 냉철하다. 천상 분석가다. 마치 물같다. 우리의 새로운 에너지원도 같은 맥락선 상에 있다. 커크는 불이나 다름없고 스팍은 물이나 진배없다. 커크는 불처럼 방사하고 스팍은 물처럼 방사한다. 커크와 스팍이 가공할 에너지를 내는 것은 함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커크만 있을 때, 혹은 스팍만 있을 때의 에너지를 편의상 1이라고 한다면 둘이 함께 있을 때 발산하는 에너지의 크기는 10의 12승에 이른다. 거의 미쳐 날뛰는 수준이라는 얘기다. 때문에 연방법에서는 이 두 가지 물질을 항상 5미터 이상 떼어놓고 보관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따로 떼어놓으면 그나마 덜 위험하다는 뜻인데, 실상 틀린 말은 아니다. 가까운 거리에 일체 차폐막이 없이 스팍이 존재하는 경우 인체가 받는 영향은 겨우 뼈가 삭는 정도로 알려져 있다. (과연 별 게 아니다.) 한편 일체 차폐막 없이 커크로 인해 인체가 받는 영향은 겨우 피가 타는 정도로 알려져 있다. (역시 별 게 아니다.) 그런데 이 두 종이 5미터 안쪽에 함께 발산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약간의 불임 가능성과 약간의 발암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팍과 커크를 따로 운반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상식 중의 상식이다. 두 종 물질을 동시에 여행 친구로 삼았다간 백오십억분의 일 확률로 불임이 되기 십상이다. 혹은 평균 수명까지 생존한다고 가정할 때 3명 당 1명 꼴로 암에 걸릴 가능성이 생긴다. 그렇기에 스팍과 커크는 따로 격리하여 운반해야 하는 것이다. 따로 운반하면,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최악의 경우라봐야 기껏  뼈가 삭고 피가 타는 일 정도 일어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원칙을 준수하지 않는 자가 있다면? 바보이거나 멍청이거나 그닥 더 이상 살고 싶은 생각이 없는 자가 분명할 것이다. 

  허나 마이크 로치(Mike Rotch)는 바보 비슷한 것이긴 해도 바보는 아니다. 멍청이라는 중평이 자자하나 멍청이 또한 아니다. 삶의 의욕을 말할라치면 "장가도 못 가보고 죽을 순 없어"라는 게 그의 강한 신념이었다. 교육도 받았다. 이론도 듣고 실습도 마쳤다. 누구도 그에게 왼손엔 스팍을, 오른손엔 커크를 든 채로 칠렐레 팔렐레 밖을 쏘다니라고 가르친 적이 없다. 대중교통 이용 권장이 아무리 바람직하다고는 하나, 누구도 그와 스팍과 커크 셋이 함께 지하철에 오르는 것을 반기지는 않을 것이다. 원칙을 말하자면 이렇다. 스팍과 커크를 운반하는 경우에는 트레일러 두 대가 필요하다. 각각 분리하여 작은 갈색 유리병에 넣고, 다시 밀폐용기에 밀어 넣고, 다시 15 cm 두께의 납용기에 넣은 다음, 선적용 나무 상자에 넣고 콘크리트를 들이부어 놈들이 바깥으로 빠져나오는 일이 없도록 한 다음, 지게차를 동원하여 트레일러에 통째로 실어야 한다. 그리고도 엄격한 시간 차를 두어, 하나가 오늘 출발했다면 다른 하나는 내일 출발하게 하는 게 정석이다. 괜한 유난을 떠는 게 아니라 정말 어떠한 경우에도 두 놈이 가까이 있을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마이크도 작은 갈색 유리병은 준비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후 작업 방식은 조금 달랐다. 크린랩을 끊어 유리병을 감쌌고 라텍스 글로브로 한 번 뒤집어 씌웠다. 마지막으로 알루미늄 호일로 둘둘둘 말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것들을 두 개의 맥도날드 종이 봉투에 나눠 넣었다. 그는 정말로 그렇게 스팍과 커크를 운반할 생각이었다. 맥도날드 종이 봉투가 필요한 까닭은 본부를 나서는 순간까지 사람들 눈에 띄지 않기 위함이었다. 누구도 점심시간에 맥도날드 봉투를 들고 돌아다니는 사람을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기발해! 그는 스스로가 대견스러웠다. 하지만 맥도날드 봉투 1번(스팍)과 맥도날드 봉투 2번(커크)를 5미터 이상 격리한 채 이동할 방안만은 찾지 못했다. 아시다시피 인간의 신체 사이즈와 구조로는 그런 견적이 나오지 않는다. 물론 사람이 하나 더 있다면 가능한 일이지만 지금 이 대목에서 그런 가정은 옵션이 아니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왼손에 1번 봉투를 오른손에 2번 봉투를 들고 길을 나서는 대범한 선택을 했다. 그는 현재 상태로 걷는다고 하였을 때, 1번 봉투와 2번 봉투의 사이에 자연스럽게 어떤 신체 부위가 위치하게 되는지를 깨닫고는 잠시 망설였다. 그는 잠시 태권도 검은 띠답게 낭심보호대를 떠올리기는 했지만 글쎄…….

  납판도 뚫는 놈들에게 소용이 있을리가.

  이쯤되면 마이크의 정체가 알쏭달쏭하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는 바보는 아니다. (바보 비슷한 것이긴 해도.) 또한 멍청이도 아니다. (멍청이라는 중평이 자자하지만.) 그는 지금 자기가 이 극도로 위험한 물질들을 운반하는 방식이 스타트렉 법 위반임을 알고 있다. 두 놈이 같이 있으면 필경 사단이 난다는 사실도 충분히 알고 있다. 바보이거나 멍청이거나 미친 것도 아니다. 죽거나 혹은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한 상황을 원하지도 않는다. 그럼 뭘까? 반사회적성격장애자? 테러리스트 혹은 테러리스트에게 포섭된 내부변절자? 테러리스트의 협박으로 이적행위를 하게 된 비운의 주인공? 알 자지라? 아님 STO (Soldier of the One)? 아니다. 사실 마이크는 스팍과 커크 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연구원이다. 마찬가지로 스팍과 커크 연구센터에서 일하는 연구원인 그의 보스가 운반을 지시했다. 그는 보스의 지시에 따라 스팍과 커크를 운반하고 있을 뿐이다. 그럼 보스의 지시에 따른 것 뿐인데 왜 맥도날드 봉투로 위장을 해서 빠져나간 것인가. 그건 정식 운반 절차를 밟지 않은 밀반출이기 때문이다. 그럼 왜 정식 운반 절차를 밟지 않았는가. 그 이유는 모른다. 보스가 시켰을 뿐이다. 아랫사람답게, 지금 마이크 로치는 까라니까 까고 있을 뿐이다. 그럼 이제, 

  보스의 정체가 알쏭달쏭하다. 그 역시 스타트렉 법 위반임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두 놈이 같이 있으면 필경 사단이 난다는 사실도 당연히 알고 있을 것이다. 세상에는 많은 바보 멍청이 보스들이 있지만 마이크 로치의 보스는 그 정도까진 아니다. 그럼 뭘까? 반사회적성격장애자? 테러리스트 혹은 테러리스트에게 포섭된 내부변절자? 테러리스트의 협박으로 말미암아 부하에게 이적행위를 시키게 된 비운의 주인공? 알 자지라? 아님 STO (Soldier of the One)? 아니다. 그는 단지 옛 보스의 긴급 요청을 받고 스팍과 커크를 꿔주려는 것 뿐이다. 알고 보면 목적지도 스타트렉 팬픽 센터(SFC)다. 늘상 스팍과 커크가 소비되는 곳이다. 매일 백만톤이 생산되고 백만톤이 소비된다. 그럼 왜 정식절차를 밟아 운송 전문가들의 손에 맡기지 않는 것인가. 그건 순전히 돈과 시간 때문이다. 보스에게는 돈이 없고 보스의 보스에게는 시간이 없다. 정식절차를 밟으면 돈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린다. 보름도 더 걸린다. 보스는 그 돈을 감당해 낼 수가 없고 보스의 보스는 그 시간을 기다릴 수가 없다. 그럼 보스의 보스는 왜 스타트렉 팬픽 센터 내에서 스팍과 커크를 빌려 쓸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인가. 스팍과 커크를 매일 사용하는 곳인데 말이다. 그 이유는 보스도 모른다. 또 어떤 정치 싸움과 신경전이 작용하고 있는 거겠지. 아랫사람답게, 마이크 로치의 보스 역시 까라니까 까고 있을 뿐이다. 노인네 지랄하기 전에 (보스의 표현을 빌자면) 당장 그쪽으로 보내야 하는데 방법이 없으니, 급한 마음에 마이크를 시켜 스팍과 커크를 직접 들고 가게끔 시킨 것이다. (맥도날드 종이 봉투에 넣어서 말이다.) 물론 위험하지만 싸고 빠르니!

  마이크가 고래 싸움에 등 터진 새우임은 분명하다. 위험물질을 들고 정말 지하철로 이동하겠다는 생각이 비상식적이기는 하지만, 출장비도 안 나오는 판에 어쩌면 그 정도는 이해할만한 처사인지도 모른다. 택시로 스타트렉 팬픽센터까지 간다면 족히 6~7만 에너지 크레디트(화폐 단위 - 역자 주)는 나올 것이다. 물론 걸어서 갈 수도 있다. 삼일 낮 삼일 밤이 걸려도 도착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려울 뿐이다. 그래서 대중교통을 이용하겠다? 이를테면 지하철? 왼손엔 스팍을 오른손에는 커크를 들고? 맥도날드 종이봉투로 위장하여? 미친 소리처럼 들리지만 거기까지는 좋다. 하지만 그로 인행 약간의 불임 가능성과 약간의 발암 가능성을 공유해야 하는 선량하고 무고한 시민들은 또 다른 문제다. 뼈가 삭고 피가 타고 있을 시민들에게 그는 진심으로 미안한 마음을 가졌다. 특히 자신의 왼쪽에 앉은 사람, 오른쪽에 앉은 사람, 그리고 자기 앞에 서서 가는 사람, 그의 앞을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들, 그가 앉은 칸을 타고 내리는 모든 사람들, 기타 등등.

  아아! 여러분! 댁들 인생을 두고 러시안 룰렛을 해서 미안합니다.

  숙연한 마음으로 그는 맥도날드 봉투를 여미었다. 스팍과 커크를 들고 지하철에 오른 대범한 그라지만 차마 문제의 맥도날드 종이봉투를 무릎에 올려놓지는 못했다. 마음 같아서야 다른 칸에 멀찌감치 갖다 놓고 싶지만 그랬다가 누가 주워가기라도 하면 안 될 일이다. 신나게 욕을 먹고 징계도 받을 것이다. 아홉시 뉴스에 나올지 모른다. 심야 뉴스에 다시 나올지도 모른다. 다음 날 아침에 또 나올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스타트랙 법 위반으로 고발당하고도 남을 것인데 그러면 뉴스에 나온 정도는 걱정할 일도 아니게 될 것이다. (보스나 보스의 보스가 고발 당할까? 아마 아닐 것이다. 그 망할 놈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딱 잡아 떼겠지.) 도리가 없었다. 맥도날드 종이 봉투 하나는 왼발 옆에 내려놓았고 다른 하나는 오른발 옆에 내려놓았다. 5미터 이상 떼어놓아야 하는 놈들인데 기껏해야 40센티미터 간격? 알루미늄판은 물론 철판도 납판도 뚫고 방사하는 놈들인데 당연히 맥도날드 봉투쯤은 일도 아닐 것이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쩐지 종아리가 뻐근하고 발목이 시큰거리는 것 같았다. 무릎이 쑤시고 허리가 욱신거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리는 없었다. 볼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냄새를 맡을 수도 없고, 느낄 수도 없는 놈들이다. 설령 뼈가 삭고 피가 타들어가다한들 당장 어떤 형태의 감각으로 다가올리 만무하다. 십수년은 지나봐야 비로소 영향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자기 주변의 사람들을 둘러 보았다. 누군가와 수다를 떨거나,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거나, 책을 읽거나, 꾸벅꾸벅 졸고 있거나, 아마 그들은 지금 이 순간 온 몸으로 뭘 흡수하고 있는지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하긴 거꾸로 말하면 이런 이야기도 된다. 이 무고한 군중 가운데는 우리 대단하신 마이크 로치와 마찬가지로 비밀을 간직하고 지하철에 오른 사람들이 있을 수도 있다. 마이크 로치와 그의 맥도날드 봉투가 지극히 평범하게 보이는 것처럼, 위험이 실제 위험처럼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은 법이다. 누구의 가방에도 스팍과 커크, 혹은 그에 준하거나 그만큼은 아니어도 여전히 위험하고 불안정한 물질이 들어 있을 수는 있는 것이다. (C4 폭탄이나 탄저균이나 우라늄 235, 뭐 그런 것들 말이다.) 누군가와 수다를 떠는 이의 손가방에, 휴대전화로 게임을 하느라 정신 없는 이의 주머니에, 가만히 집중하여 책을 읽는 이의 백팩에, 꾸벅꾸벅 졸고 있는 이의 신발 밑창에 무엇이 들어 있을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지금은 마이크 로치가 무고한 시민들에게 위해를 입히는 입장에 있지만 반대로 언젠가는 그 또한 부지불식간에 그런 피해를 당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뼈가 삭아가고 피가 타들어가는. 

  스팍과 커크를 다뤄보면 반쯤 철학자가 된다. 보이지 않아도 거기에 있는 것이 놈들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6개월쯤 지나면 세계, 인간, 사물, 가치, 현상, 운명, 모든 것을 의심하게 된다. 놈들은 거기에 있는가? 나는 어떻게 그들을 인식할 수 있는가? 인식은 어떻게 형성되며 어떻게 참임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로부터 어떻게 지식을 취할 수 있는가? 나아가 신은 존재하는가? 만약 존재한다면, 그 양반은 어쩌자고 이런 골때리는 물질을 내리셨는가!

*

  드디어 도착했다. 스타트렉 팬픽센터가 있는 10호선 오덕역이다. (왜 아니겠는가?) 마이크는 재빨리 내린다. 마치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그러나 순간 승강장으로 뛰어 내려오던 남자와 부딪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젠장, 젠장, 젠장. 깜짝 놀라 그는 맥도날드 봉투부터 (중요하디 중요한!) 챙기려고 했지만 순간적으로 숨이 탁 막했다. 남자가 들고 있던 검정색 비닐봉지에 사타구니를 맞았기 때문이다. 아이고! 순간 그는 별을 본다. 머리를 맞지도 않았는데 별이 보인다. 문제의 남자도 깜짝 놀라 그 옆에 주저앉았다. 물론 그 사이 열차는 문을 닫고 떠나버렸고.
- 이봐요, 아저씨. 괜찮으세요? 
- 어유!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마이크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빽 질렀다.
- 미안해요. 괜찮으세요? 
- 지금 내가 괜찮아 보입니까?
  그는 울상을 지어보였다. 엄살이 아니었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다면 낭심보호대도 유용할 뻔 했지 뭐야!)
- 하필이면 거길 맞아서 어떡하죠?
- 아파 죽겠네. 그건 그렇고 조심 좀 합시다. 당신 때문에 스팍과 커크가 깨질 뻔했잖아.
- 스팍과 커크가 뭔데요? 혹시 그쪽 지금 맞은 거기, 그 뭐랄까 중요한 두 친구들 말하는 은밀한 표현, 뭐 그런 건가요?
- 뭐요? 무슨 친구들이요?
  남자는 그의 사타구니를 가리켰다. 
- 그건…… 아무튼 관둡시다. 
  스타트렉도 모르는 사람들과는 말을 섞을 가치가 없는 것이다. 마침 다음 열차가 도착했다. 그가 남자에게 물었다.
- 그건 그렇고 그 봉지엔 뭐가 들었답니까? 꽤 묵직해보이는데.
- 그냥…… 개인적인 겁니다. 됐어요. 가던 길 가세요.

  그 말만 남기고 남자는 떠나 버렸다. 마이크 로치는 다시 한 번 이런 생각을 했다. 누구의 가방도 보이는 그대로 믿을 수 없는 게 아닐까? 그는 스팍과 커크를 들고도 쉰하고도 여덟 개의 정거장을 지나왔다. 아무도 모르게 말이다. 남들도 그러지 못하리란 법도 없다. 도대체 무슨 수로 해로운 생각과 마음과 물질을 분간해 낼 수 있단 말인가. 방금 남자의 검정색 비닐 봉지에 어떤 개인적인 것이 어떻게 들어있을지 누가 무슨 수로 알 수 있단 말인가.

  참! 맞다! 퍼뜩 정신을 차린 그는 맥도날드 종이봉투 1번과 맥도날드 종이봉투 2번을 챙겼다. 유리병이 깨지지 않았기를 간절하게 바랐지만 예감이 좋지 않았다. 급히 라텍스 장갑을 끼고 손을 넣어 만져보니 감촉은 더욱 좋지 않았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는 인정해야만 했다. 깨진 것이다. 갈색 유리병이. 그냥 깨진 정도가 아니었다. 박살이 났다. (스팍!) 다른 맥도날드 종이봉투에 손을 넣어보았는데 그쪽도 마찬가지였다. 완전 박살이 났다. (커크!) 필경 스팍과 커크가 새어나갔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새어나가는 중일 것이다. 그는 침착하려고 노력했지만 침착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내 알게 되었다. 당최 보이지 않고 맡을 수 없고 들을 수 없고 느낄 수 없다는 것이 이런 경우에는 장점일 수 있다는 사실을. 조용히 사라진다면 누구도 이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보스는? 보스의 보스는? 에라 모르겠다. 조금 그게 문제인가! 미안하지만 당분간 오덕역 승강장을 지나치는 모든 사람들은 미처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스팍과 커크가 반응하며 방출하는 에너지를 온 몸으로 맞게될 것이다. 그러면 백오십억분의 일 확률로 불임이 되거나, 혹은 평균 수명까지 생존한다고 가정할 때 3명 당 1명 꼴로 암에 걸릴 가능성을 갖게될 것이다. 스팍이나 커크, 둘 중 하나만 운반하다가 깨뜨렸다면 그저 뼈가 삭거나 피가 타는 정도였을텐데 하필 둘 다 한꺼번에 가지고 오느라……. 댁들 인생을 두고 러시안 룰렛을 하여 대단히 미안한 일이었지만 그는 내색할 수도 고백할 수도 없었다. 이 사실이 밝혀지면 그는 스타트렉 법 위반으로 수 광년은 족히 징역을 살게될테니 말이다.

  커크는 저돌적이다. 일단 저지르고 본다. 불같다. 반면 스팍은 냉철하다. 천상 분석가다. 마치 물같다. 우리의 새로운 에너지원도 같은 맥락선 상에 있다. 커크는 불이나 다름없고 스팍은 물이나 진배없다. 커크는 불처럼 방사하고 스팍은 물처럼 방사한다. 커크와 스팍이 가공할 에너지를 내는 것은 함께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둘이 함께면 꼭 무슨 일이 벌어진다. 어김 없이 무슨 일이 벌어진다. 

(2011년 05월)

반응형

'낙농콩단 > Season 11-15 (2011-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146. 위켄드 업데이트 2  (0) 2011.09.11
145. 결혼만은 안돼요  (2) 2011.08.14
141. 슈피겔 임 슈피겔  (2) 2011.04.24
140. 세번째 클론  (0) 2011.03.27
137. 파라다이스 로스트  (2) 2011.01.02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