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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 세번째 클론

낙농콩단/Season 11-15 (2011-201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1. 3.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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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육실은 지하 깊은 곳에 있었다. 내려가는 길은 차갑고 가파른 나선형 돌계단으로 이어져 있었고 그 끝은 항상 악마의 아가리처럼 입을 벌리고 그를 기다리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언제나 그랬다. 아담은 버드나무 바구니의 내용물 다시 한 번 확인해보았다. 우유병, 모닝빵, 비타민, 그리고 기저귀. 필요한 것은 모두 갖춰져 있었다.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같은 걸음을 두 번 하고 싶지는 않았다. 특히나 오늘 같은 날은 이 끔찍한 계단을 두 번 내려오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계단 아래로는 긴 복도가 이어졌는데 사육실은 복도의 좌우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었다. 그가 관리해야 할 곳은 7번 사육실로 복도 끝 마지막 방이었다. 나머지 여섯 개 방은 두꺼운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무거운 원통형 자물쇠가. 매달려 있었으며 한 번도 그는 안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7번 사육실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문을 밀었다. 삐걱, 녹슨 경첩이 힘겹게 벌어지며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었다. 그는 가장 먼저 사육실을 빠르게 둘러봄으로써 기저귀 차림의 어린아이 다섯이 모두 있음을 체크하였다. 하나, 둘, 셋, 넷, 그리고 다섯. 그 사이 아기들은 아장거리며 그를 향해 다가와서 바짓가랑이를 잡고 매달렸다. 혹시 누가 이 장면을 사진으로 남긴다면 ‘퇴근한 아버지를 반기는 아이들’ 따위의 제목을 붙였을지도 모르겠다.
- 그래, 안녕? 잘들 잤니?


 그는 오래된 우유병을 치우고 신선한 우유병을 내려놓았다. 빵 그릇도 가득 채워주었다. 침대도 정리해주었다. 마치 그렇게 움직이도록 프로그램 되어진 로봇처럼 하루 세 번 순서대로 반복하는 작업이었다. 다음은 기저귀. 그는 클론을 하나 하나 안아 기저귀 교환대에 올려놓고 면밀하게 상태를 확인했다. 벗겨낸 기저귀를 바구니에 던져 넣고 오물로 축축해진 클론의 몸을 유아용 물티슈로 잘 닦아주었다. 물론 베이비 파우더를 고르게 발라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어 순식간에 엉덩이를 살짝 받쳐 들고 새 기저귀를 채워주었다. 손놀림이 제법 익숙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아이들에게 알약을 한 알씩 먹여주었다. 따라 나오고 싶어 안달하는 듯한 표정의 아이들을 애써 떼어내며 그는 문을 닫았다. 아이들의 눈동자. 그에게 뭔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만 같은 그 눈동자들이 잊혀지지가 않았다. 세차게 머리를 흔들어 그 생각을 털어냈다. 지금. 당장은 올라가서 해야할 일이 있었다. 바로 아이들의 상태를 보스에게 보고하는 일이었다.

 

*


  클론 2호는 완전한 실패였다고 들었다. 기대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왔다는 것이다. 굳이 새로운 클론을 들여온 보람도 없이 말이다. 트레이가 이곳에 도착한 것은 딱 그 무렵이었다. 그는 클론 2호의 결말을 보지는 못했지만 상당히 참혹하게 실패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그 전에 클론 1호를 사용한 실험들이 있었다고 하는데 마찬가지로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실패한 실험이었다는 정도만 알았다. 누구도 그 이상은 알려주지 않았다. 과정이며 결과에 대해 단 한 장도 기록으로 남아있지 않았다. 닥터 이시무라는 그에게 그런 세세한 내용을 말해준 적이 없었다. 아마도 말해줄 필요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단지 그는 그의 실험이 다섯 마리의 클론이 하나의 그룹을 이루는 것으로 설계되어 있음을 알려주었고 새로 배달된 다섯 마리의 클론 3호가 7번 사육실에 있다며 열쇠를 건네주었을 뿐이다. 


  트레이는 사육실을 빠져 나와 사무실로 돌아왔다. 뜯어내듯 장갑과 마스크를 벗어 폐기물 상자에 던져 넣었다. 아무데나 내팽개친 실험복은 마치 유령의 껍데기처럼 보였다.

 

  ‘반점이 나타났어. 결국에는.’


  그는 클론 아이들의 몸에 빨갛게 일어난 작은 크랜베리 크기의 반점들을 떠올렸다. 이 사실을 닥터 이시무라에게 알려야 했다. 보스가 이 사실을 알면 실험군이 준비되었다며 당장 치료제 투여를 시작할 것이다.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고의로 보고를 지연할 수는 없다. 그러면 닥터 이시무라는 클론 3호들에 투여할 약물을 증량할 것이다. 클론 아이들의 몸에 빨간 작은 반점들이 일어날 때까지.  그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마찬가지로 뻔했다. 더구나 보고하지 않아 실험을 미루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었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상태가 계속된다면 보스는 이 클론 3호도 마찬가지로 폐기할 것이고 (폐기란 가스실에 넣고 생명을 빼앗은 다음에 소각해버릴 이야기다) 클론 4호든, 클론 5호든, 뭐가 되었던 새로운 모델을 들여와서 같은 짓거리를 반복할 것이 분명했다. 어떤 선택을 하던 큰 그림에서 클론 아이들의 운명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 것이다. 그는 비누로 손을 씻으며 씁쓸하게 웃었다.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군.’ 

 

  실험에 사용되고 폐기되는 것과 실험에 사용되지 못해 폐기되는 것. 그가 무슨 권능으로 어느 쪽이 낫고 어느 쪽이 낫지 않음을 대신 결정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떤 저울로 그 고통을 대신 계량할 수 있겠는가? 물론 클론들은 신의 창조물이 아니니 그런 점을 애써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같은 이유로 고통을 느끼지 못할 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과학자로의 양심이 있다면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이야기다.

 

*


  트레이가 클론 3호들을 애뜻하게 여기는데는 사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그는 클론 아이들이 자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저런 바보같긴! 하지만 우리는 이 사실을 이해해야한다. 트레이는 지금 혼자다. 고향에서 아주 멀리 멀리 떨어진 루마니아에서 일하는 중이다. 닥터 이시무라는 일본 사람이다. 닥터 이시무라의 영어는 형편없다. 두 사람 사이에서 중간에서 소통에 기름칠 해 줄 사람도 없다. 팀의 나머지 한 사람은 러시아인 약제 전문가 이고르 스미노로프로 나름 영어를 쓰기는 하는데 어느 지방인지도 모를 지역 방언에 심각하게 오염된 영어다. 고로 셋이 모이면 의사소통에 대재앙이 일어난다 (물론 결론은 언제나 바디 랭귀지다). 트레이의 입장에서 보자면 그 사람들을 대하는 것이나, 말 못하는 클론 아이들을 대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것이다.


  두번째 이유는 닥터 이사무라의 실험에 사용되는 클론들은 사람으로치면 5살 여자아이에 해당하는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무렵의 여자아이들은 사랑스럽기 마련이다. 이 곳에 오기 전까지 트레이는 이런 실험 설계가 가능하리라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그가 알고 있는 클론 모델들이란 대개 우악스럽게 생긴 민머리 성인 남성들이었다. 대량 복제된 유전 형질을 받아 시험관에서 태어난 무개성의 존재들. 초점없는 눈동자와 무가치한 영혼을 지닌 개체들. 이처럼 어린 여자아이를 모델로 만든 클론은 태어나서 본 적이 없었다. 물론 클론 실험만으로도 여러 나라에서는 이미 사회적 논란거리다. 그런 마당에 어린 여자아이 클론을 만들어 실험에 사용하겠다는 발상은 대단히 위험한 발상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여기는 루마니아의 중서부 트란실베니아다. 그것도 깊고 깊은 숲속의 고성이다. 세계의 상식과 세계의 도덕이 닿지 않는 곳이다.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오직 신만이 아실 것이다.


  클론 3호들은 예뻤다. 다섯이 하나 처럼 예뻤다. 다섯 쌍둥이 인형 같았다. 발그스레한 뺨이 말도 못하게 사랑스러웠다. 클론 3호들은 작았다. 손도 작고 발도 작고 입도 코도 작았다. 그러나 눈만큼은, 눈만큼은 결코 작지만은 않게 느껴졌다. 그의 말을 빌자면, 뭔가 말하려는 듯한 눈이었다. 클론들은 말을 하지 못했다. 성대가 없이 태어나기, 아니 합성되어 만들어지기 때문이었다. 과거의 클론들은 감정이 없었다. 여기 오기 전까지 그가 알던 클론들 역시 감정이 없었다. 드러내고 표현하는 방법을 몰랐다. 온순한 게 아니었다. 돌이나 쇠처럼 반응이 없었던 것이지. 그에 반해 어린 여자아이 클론들은 정말 온순하다. 감정도 있다. 다만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모를 뿐이다. 어리고, 성대가 없이 만들어졌기 때문에. 허나 실험자가 그 감정을 읽어낼 수 있는 여지는 충분했다. 살짝 건드리기만해도 움찔 놀라 사육실의 구석으로 도망갈 때, 작고 가냘픈 몸을 한껏 움츠려 바들바들 떨고 있을 때, 콩알 같은 눈동자에 원망과 두려움으로 가득 찬 눈빛이 서려올 때, 트레이는 마음이 아파오는 것을 느꼈다. 사실 예전과 같이 마네킹처럼 보이는 클론들이 실험하기는 훨씬 편하고 좋았다. 지금은…… 아! 어찌 저 사랑스러운 천사들로 실험을 한단 말인가! 그 악명 높은 요제프 멩겔레라고 오더라도 함부로 바늘을 꽂지 못할것이다.

 

*


  모두에게 보스가 있다. 트레이의 보스가 닥터 이시무라라면 닥터 이시무라의 보스는 쩨페쉬 백작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보스란 돈 주는 사람을 말한다. 쩨체쉬 백작이 닥터 이시무라에게 돈을 주는 이유는 백작의 딸 때문이다. 백작에게는 딸이 하나 있다. 클론 3호들과 마찬가지로 다섯살이라고 들었다. 그 아이가 몹쓸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이다. 남들처럼 좋은 병원을 찾아다니는 대신에 백작은 돈으로 전담 의사를 사서 선대로부터 내려온 자신의 고성으로 데려웠다 (향간에는 백작의 딸이 앓고 있는 병이 다소 특이한 것이어서 어느 병원도 선뜻 나서지 않아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백작은 고성의 지하실을 개조했다. 성탑도 개조했다. 별채도 개조했다. 지하실은 클론 사육실이 되었고 성탑은 닥터 이시무라의 연구실이 되었으며 별채는 부검실이 되었다. 닥터 이사무라는 백작의 딸과 똑같은 체형과 나이의 클론을 특별 주문한다. 한 번에 다섯 마리씩. 그래서 백작의 딸과 똑같은 희귀병의 발병을 유도하고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가 직접 개발한 치료제를 시험하고 있다. 그리하여 트란실베니아 깊은 숲속의 고성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바깥 세상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세계의 상식과 세계의 도덕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읍내에 흉흉한 소문이 돌게 하는 원인 중의 하나는 닥터 이시무라다. 마른 장작을 연상케하는 체구의 이 삐쩍마른 일본인 사내는 인상이 썩 좋지 않다. 소름 끼칠 정도로 홍조를 띄는 민머리, 두꺼운 뿔테 안경 뒤의 작고 음흉한 눈, 툭 튀어 나와 움직이는 턱관절의 조합은 호감을 주는 외모와는 거리가 멀다. 외모만큼이나 정 떨어지는 것은 이 남자의 이력이었다. 닥터 이시무라가 과거 벌였던 사건 사고들을 보면 미친 과학자이자 미친 의사, 혹은 미친 의사이자 미친 과학자라고 밖에는 해석이 되지 않는 일들이 많았다. 하나만 얻기도 쉽지 않은 '미친 의사'로의 명성과 '미친 과학자'로의 명성을 모두 가졌다는 점이 백작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런 인간 밑에서 일하게 될 줄 알았다면 트레이는 이곳에 오지 않았을 것이다. 

 

*

  사육실은 방 하나에 클론을 다섯 마리를 가두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다섯마리 이상 한 방에 넣어서는 안된다고 했다. 트레이는 하루에 세 번 그 방에 물과 식사를 넣어주었고, 여섯 번 청소를 해주었으며, 아홉 번 이상 밤낮없이 들여다보며 클론 아이들이 무사한지를 확인했다 (7번 사육실의 비밀번호는 그래서 369였다). 또한 일주일에 두 번 변기를 청소해주었다. 아무리 천사처럼 생긴 아이들이라고 하지만 대소변을 제대로 가려주길 바라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특히나 클론 아이들은 공장에서 바로 출하되었기 때문에 다섯살이어도 배변 훈련이 전혀 안된 상태였고, 그래서 종종 삽과 수레와 대걸레가 필요했다. 트레이는 기저귀 빨래도 했고 이불 빨래도 했다. 닥터 이시무라는 면 기저귀를 싫어했다. 아랫 사람 생각해서라도 가급적 일회용 기저귀 쓰면 얼마나 좋겠는가. 바깥 세상에는 하기스도 있고 팸퍼스도 있단 말이다. 허나 닥터 이시무라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일 것이나 표면적인 이유는 정성이었다. 실험엔 정성이 필요하다는 뜻. 편한 길도 부러 어렵게 가는 정성. 

“노 팜퍼스. 노 하기스. 익스파리먼트 니이즈 신서리티.”

  트레이가 기저귀 세탁 업무의 과중함을 호소할 때마다 닥터 이시무라가 강조하는 말이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영어 발음으로. 그래서 늘 트레이는 기저귀 빠는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무리 깨물어 주고 싶을만큼 귀여운 애들이라고 해도 똥 기저귀에서 냄새가 나지 않을리는 없다. 분명 먹인 건 우유와 빵 밖에 없는데 클론들의 신진 대사가 어떻게 다른 건지 악취가 말도 못했다. 더구나 그가 모르는 사이에 닥터 이시무라가 클론 아이들의 몸에 뭘 주사했는지도 사실 의문이었다. 미처 알지 못하는 유독물이나 그 부산물, 그리고 대사되는 과정에서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는 물질들이 죄다 그안에 섞여있을 거라 생각하면 적잖이 찝찝하기도 했다. 비닐 장갑을 끼우고 라텍스 장갑을 다시 끼우고 다시 고무장갑까지 끼웠어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았다. 기저귀를 모아 쇼핑 카트에 실었다. 어느 대형 쇼핑몰에서 훔쳐 온 것처럼 보이는 카트였다. 한쪽 바퀴가 불안정해 달칵달칵 소리가 났다. 똑같은 힘으로 밀면 항상 조금씩 오른쪽으로 꺾였다. 


  트레이는 세탁실로 향했다. 세탁실은 언제나 표백제 냄새로 진동을 했다. 머리가 새하얗게 포맷되는 느낌이었다. 집게를 들어 기저귀를 하나씩 세숫대야에 옮기고 물을 틀었다. 쏴아. 붉은 흙탕물이 쏟아졌다. 또 시작이군. 오래된 고성의 수도 시설은 형편없었다. 전기 시설만큼 형편없었다. 일주일에 하루 이틀은 핏물처럼 보이는 흙탕물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아야 했다. 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기저귀를 주물렀다. 클론 아이들의 배설물이 물에 풀어지며 떠올랐다. 젖은 기저귀의 냄새는 고약했다. 마스크를 썼음에도 코가 떨어져 나가는 듯 했다. 하수구로 흘려보내고 다시 물을 받았다. 완전히 헹궈내야 해. 싫지만 어쩌겠어. 스피커에서 모차르트의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가 흘러나왔다. 잡음이 심해 꼭 고장난 세탁기 소리 같았다. 클론 아이들의 정서 함양을 위해 사육실에 하루 열두 번 틀어지는 것이었다. 모차르트는 벌써 정각 두 시가 되었음을 의미했다. 여섯 시가 되면 닥터 이시무라가 보고를 원할 것이다. 사육실로 자주 내려오지 않는 닥터 이사무라는 항상 트레이를 향해 보고를 받았다. 시간이 별로 없었다. 마음을 정해야 했다. 무거운 마음을 안고 축축한 계단을 올라갔다. 발 밑이 미끌거렸다. 고성의 지하에서는 언제나 습기가 뱀처럼 기어다녔다. 문득 뭔가가 지켜보는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등골이 서늘했다. 여기에 오고부터 유독 자주 그런 느낌을 받는 듯했다. 몸이 허해졌는데 자주 놀랐다. 발걸음이 빨라졌다. 횃불은 불안하게 흔들렸다. 그래 맞아. 두려움은 천천히 자라나는 법이다. 그리고 공포는, 느릿느릿하게 다가오는 법이다.

 

*


  네 시가 되었다. 다시 모차르트가 흘러나왔다. 고성은 고요하여 섬뜩했다. 모차르트마저도 음울하게 들렸다. 어니 어쩌면 모르지. 모차르트 음악이 원래부터 그런 면을 지녔던 것인지도. 트란실베니아의 숲 속 한 가운데 위치한 이 낡고 묵은 성. 이 안에 살아 움직이는 자는 사람 다섯과 클론 아이들 밖에 없었다. 성의 주인인 쯔페쉬 백작, 그의 딸 (아직 이름을 몰랐다), 닥터 이시무라,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 그리고 트레이 자신.

 
  트레이는 다시 지하실로 내려갔다. 두 시간에 한 번 꼴로 클론 아이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었다. 하루에 몇 번 확인해야 하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계약서에 적혀 있었을텐데 계약서를 읽고 서명한 것이 마치 백만년 전의 일처럼 느껴졌다. 사육실 복도는 좁고 어두웠다. 붉고 엉성한 파이프가 혈관처럼 지나갔고 군데군데 드러난 케이블은 흡사 괴물의 촉수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어울리지 않는 시멘트 바닥이 더더욱 차가웠다. 흙 바닥보다 냉기가 더 빠르게 올라오는 듯했다. 얕은 물을 걷는 것처럼 발목 근방이 찰랑거렸다. 벌집처럼 보이는 환기구 구멍에서 흘러나온 묵은 그림자가 불길하게 횃불을 흔들었다. 


  복도를 걸으며, 그는 생각했다. 백작의 딸에 대해. 밝혀지지 않은 병을 품고 사는 여섯 살 어린 아이에 대해. 트레이는 백작의 딸은 본 적이 없었다. 닥터 이시무라는 봤겠지. 어쩌면 닥터 이고르 시미느로프도. 그들이 하려는 일은 백작의 딸이 가진 병을 클론 아이들에게 똑같이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여러가지 약제를 시험해 무엇이 약이 되고 무엇이 독이 되는지를 알아보기 위함이다. 말하자면 클론 아이들은 임금의 식사를 미리 맛봐야 하는 시종 같은 존재였다. 아! 트레이는 그 날을 잊지 못했다. 그가 이곳에 오고 3일째였다. 클론 3호들에게 약물을 투여했던 날이다. 닥터 이시무라는 두꺼운 주사기를 들고 나타났다.

- 테이크 오프 데얼 클로우즈.
  발음 참 거지 같네. 그는 조심조심 쑥스럽게 차례차례 클론 2호 아이들들의 빨간색 스웨터를 벗겼다. 명주실 같은 금발머리가 나풀거렸다. 우유 냄새가 났다. 기분 나쁜 우유 냄새가 아니다. 고소하고 사랑스러운 우유 냄새다. 너희는 정말 천사로구나. 닥터 이시무라는 황당하다는 듯 그를 타박했다.
- 올! 올 테이크 오프! 팬츠 투!


  개 놈의 새끼. 트레이는 속으로 욕을 퍼부었다. 다시 클론을 하나씩 안아 바지를 벗겨서 내려놓았다. 기저귀 차림으로도 여전히 클론 아이들은 뒤뚱뒤뚱 천진하게 잘도 돌아다녔다. 닥터 이시무라는 이제 되었다는 듯 주사를 준비했다. 정체 모를 약물이 맺힌 주사바늘이 백열등 아래서 섬뜩하게 번쩍였다. 닥터 이시무라의 지시에 따라 트레이는 클론 아이들을 하나씨 안았다. 꽉 잡으라고 했다. 자세가 나오지 않았다. 클론 아이들도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좀처럼 얌전히 있지 않았다. 닥터 이시무라는 첫 번째 클론 3호의 팔에 주사바늘을 가져다대었다. (팔에 주사를 놓는데 어째서 바지까지 벗기라고 한거지?) 바늘은 스폰지처럼 부드러운 살을 파고들었다. 미끄럼틀을 타는 것처럼 양잿물 빛깔의 액체가 밀려 들어갔다.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나빠졌다. 첫 번째 클론 3호의 초콜렛 같은 눈망울에 눈물이 가득 차올랐다. 클론들은 소리를 낼 수 없었다. 목을 울려 아픔을 토로할 수 없는 괴로움이 고스란히 전해져왔다. 순간 트레이는 그런 생각을 했다. ‘정말 지옥이라는 곳이 존재한다면 바로 여기가 아닐까?’ 순서는 같았다. 이 곳에서의 모든 실험이 그러한 것처럼, 반복, 반복, 반복, 그리고 끝없는 반복이었다. 두 번째 클론 2호도, 세 번째 클론 2호도, 네 번째 클론 2호도, 다섯 번째 클론 2호도. 다섯 마리의 클론 2호가, 똑같이 왕방울만한 눈에 서러움을 그렁그렁 담고 있는 풍경이 트레이의 머리를 뒤흔들어 놓았다. 마음이 무거웠고 또 아팠다. 하지만 어쩔 것인가. 바늘을 빼앗아 닥터 이시무라의 목을 찌르기라도 할 것인가? 아니면 앞을 막아서서 저 아이들 대신 자기에게 다섯 방 모두 놔달라고 소리칠 것인가? 다시 그 날로 돌아간다고 한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래서 더 비참한 기분이 들었다.

 

*


  깜빡깜빡 발작하는 형광등이 예사롭지 않았다. 사실 형광등은 있으나 마나 한 것이었다. 전력 수급이 원활하지 않은 이 곳에서 당연한 일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마냥 횃불에만 의존하는 것도 가능하지는 않은 일이었다. 아직도 뾰족한 수를 생각해낼 수 없었다. 여섯시가 되기 전이었지만 트레이는 한 번 더 사육실에 내려가 보기로 했다. 버드나무 바구니 안에 숨겨두었던 트로피카나 주스와 츄파춥스를 넣고 보자기로 덮었다. 닥터 이시무라가 알면 싫어할 일이다. 클론 3호 아이들을 예뻐하는 트레이는 닥터 이시무라 몰래 이런 식으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 몰래 먹을 것을 숨겨다 나눠주는 것은 물론, 인형이나 장난감을 가져다 넣어주기도 했다. 간혹 시내에 나갔다가 따뜻해보이는 베개나 침대보, 혹은 예쁜 아동복을 발견하면 어김없이 싣고 돌아오는 그였다. 이 또한 닥터 이시무라가 알았다간 크게 경을 치고 말 일이었다. 


  심지어 트레이는 클론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인 적도 있다. 햄버거 말이다. '고기를 먹이지 말아라.’ 닥터 이시무라가 첫날부터 신신당부한 규칙이었다. 인사도 제대로 나누기 전에 그 다짐부터 받아야 했다. 그러나 트레이가 보기엔 괜한 걱정 같았다. 클론 아이들은 고기를 먹을 수도 없었다. 씹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치아라고는 작고 불안하게 보이는 몇 개 뿐이다. 우유병 꼭지도 간신히 무는 아이들이 무슨 고기를 먹겠는가. ‘그럼 뭘 먹입니까?’ 닥터 이시무라는 우유나 많이 먹이라고 했다. 우유 말고는 빵이나 있으면 먹이라고 했다. 빵도 우유가 듬뿍 들어간 것만 먹이라고 했다. 트란실베니아 숲속 한 가운데서 매일 빵을 무슨 수로 구한단 말인가. 트레이는 직접 빵을 구웠다. 다만 항상 지시대로 우유만 들어간 빵을 만들지는 않았다. 남들 모르게 건포도나 블루베리, 해바라기씨, 혹은 젤리나 쿠키나 작은 초코칩을 넣기도 했다. 그런 날이면 조금 더 애뜻한 마음이 되어 간식 시간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고는 했다. ‘어쩜 오물오물거리는 게 너무 귀여워.’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클론 아이들에게 햄버거를 먹였던 것은 의도하지 않았던 일이다. 점심시간이 빠듯했던 트레이가 사육실에서 먹던 것을 조금씩 떼어 나누어주었을 뿐이다. 미처 고기라는 인식도 하지 못했다. 먹이고 나서야 아차 싶은 마음에 주위를 돌아보았다. 한 번 먹였다고 뭐가 어떻게 되겠어? 클론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이면 안되는 이유는 여전히 미스테리였다. 한 번은 닥터 이시무라에게 물었더니 성장이 촉진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실험체가 너무 빨리 자라버리면 실험을 망친다는 것이다. 근거는 없는 이야기지만 아이 상태로 출하된 클론이 성인 상태로 출하된 클론보다 빨리 자란다는 소문은 들었다. 어떻게 얼마나 빨리 자라는 건기 궁금했다. 사람에게 일 년이 클론에게는 몇 년에 해당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었던 기존의 클론들에겐 그런 개념이 없었다. 대개 사람으로 치면 35세 정도의 신체조건을 유지하도록 디자인 되었으며 수명 또한 겨우 2년이었다. 


  닥터 이사무라의 설명을 듣고부터 트레이는 악몽을 꾸었다. 일주일에 한두 번씩 반복되는 같은 꿈이었다. 꿈 속에서 그는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보라색으로, 또 우유색으로, 또 자주색으로 엷은 안개가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호수를. 안개 속에는 클론 3호가 있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정확하게 다섯 마리였다. 트레이는 그 아이들을 안아주었다. ‘여기서 뭣들 하고 있어. 삼촌, 아니 엉클이랑 같이 집으로 돌아가자.’ 순간 머리 위로 깃털을 흩뿌리며 검은 새떼가 지나갔고, 클론 3호들이 한 마리씩 성장하기 시작했다. 팔도 다리도 길어지고, 들어갈 데는 들어가고 나올 데는 나오고. 이제 내려다보는 것은 어엿한 숙녀가 된 다섯 마리의 클론 3호였다. 그 대목에서 항상 그는 소리를 지르면서 꿈에서 깼다.

 

*


  여섯시를 오분 남기고서야 트레이는 마음의 결정을 내렸다. ‘오늘은 그냥 넘기는 거야.’ 닥터 이시무라는 항상 강조했다. 일 분 일 초가 아까우니 클론 상태에 대한 보고는 신속 정확히 해달라고. 작고 빨간 반점이 나타나면 바로 연락을 해달라고. 그러나 트레이는 하루를 벌어야 했다.그가 하루쯤 얼렁뚱땅 넘긴들 닥터 이시무라는 모를 것이다. 어차피 그 미친 의사 겸 미친 과학자는 지하 사육실에는 잘 내려오지 않았으니까. 하루만 막으면 되었다. 내일은 금요일. 오늘 목요일 오후 여섯 시에 보고를 하면 성질 급한 닥터 이시무라는 내일 아침 여덟 시에 클론 아이들에게 치료제를 넣어보려고 안달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토요일 자정이 되기 전에 클론 3호 실험은 끝을 보게 될 것이고 살아남는 아이들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금요일 오후 여섯 시에 보고를 하면 닥터 이시무라는 어쩔 수 없이 주말을 넘겨 다음 주 월요일 오전 여덟시에 치료제 투여 실험 준비를 지시할 것이다 (그 망할 놈이 자기 주말 근무에 엄격하다는 것은 불행 중 다행 아닌가!) 그러면 주말동안 시간을 벌 수 있다. 아무리 못해도 48시간을 벌 수 있다.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만 잘 따돌리면 된다. 그 인간만 사육실을 기웃거리지 않으면 된다. 그러면,

충분히 준비를 해서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트레이의 숨이 가빠졌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다. 꽤 오랫동안 맛보지 못한 긴장감이었다. 떨리는 마음을 애써 태연히 억누르고 그는 사육실 바닥에 앉았다. 클론 아이들이 다가와서 그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그가 발라준 뽀송뽀송한 베이비 파우더 냄새가 코 끝에 아른거렸다. 서로 그의 무릎을 차지하려고 밀고 당기고 떼썼다. 그 모습이 몸서리치도록 귀여웠다. ‘어쩜 너희는 그렇게 사랑스럽니?’ 트레이는 클론을 한 마리씩 안아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이대로 시간을 멈출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트레이는 굳게 마음을 먹었다. ‘괜찮아. 겁먹지 마. 삼촌이 지켜줄께. 누구도 절대 너희에게 해꼬지 할 수는 없을거야.’ 


  그는 결연히 사육실을 나섰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자물쇠를 바꿔 달았다. 만약 일이 틀어져 누가 사육실쪽을 어슬렁거릴 경우를 대비해서다. 다시 모차르트가 흘러나왔다.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 여섯시라는 뜻이다. 바카르디를 한 잔 마시고 성탑을 올라갔다. 현기증이 났다. 똑똑, 두 번 문을 두드리고 닥터 이시무라의 방에 들어갔다. 닥터 이시무라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붉은 반점이 나타났는지만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닥터 이시무라는 알았다고 했다. 피곤하니 나가보라고 했다. 방문을 닫고 돌아나오는데 손에 땀이 흥건했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거야. 괜히 나 혼자 찔려서 이런 기분이 드는 거겠지.’ 종종 걸음으로 다시 계단을 내려오기 시작했다. 

  성탑에 이르는 나선형 돌계단은 섬뜩하리만큼 차가웠다. 신발을 신었음에도 얼음 위를 걷는 기분이었다. 너무 추워서 입김조차 단단히 얼어버렸다. 그의 짐작이 맞다면 이전 그룹의 클론 1호와 클론 2호는 그가 오기 전 실험에 사용되었다는 다섯살 클론 아이들은 아이들은 치료제 투여 실험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폐기되었던 것이 분명했다. 부검실에서 닥터 이시무라와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가 하는 이야기를 엿들은 것이 있었다. 그들은 클론들을 해부하여 치료제가 왜 듣지 않고 클론들이 사망하였는지 원인을 찾으려고 했다. 끔찍한 이야기지만 그 작은 장기들도 하나 하나 적출하여 냉동 보관하였던 것으로 보였다. 만약 그가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클론 3호 아이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은 운명을 맞게 될 것이었다. 소름이 오싹 돋았다. 숨이 찼다. 걸음이 빨라졌다. 계단을 내려와 사무실로 들어갔다. 누가 따라오기라도 하는 듯 황급히 문을 걸어 잠갔다. 가쁘게 숨을 몰아 쉬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했다. 언제나 힘들다. 미친 과학자 밑에서 일하는 것은. 

 

*


  금요일. 트레이는 아침 일찍 일어났다. 동유럽의 낯선 태양이 미처 그의 방으로 쏟아져 들어오기도 전이었다. 토요일 새벽의 거사를 위해서는 준비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준비하지 않아도 될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준비해야만 했다. 모차르트가 울려퍼졌다. 아침 여섯 시라는 뜻이다. 서둘러 씻고 사육실로 내려갔다. 사육실 옆 창고를 열었다. 그곳에는 카트가 있었다. 그는 찬장을 뒤져 방수포를 찾아냈다. 그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먼지를 털어내고 주름을 펴서 카트 바닥에 깔았다. 카트 양쪽 옆면도 막았다. 적당한 크기로 잘라 덮개도 만들었다. 그는 혼자 몸이 아니었다. 어린 아이 다섯을 데리고 트란실베니아의 울창한 숲을 빠져나가야 했다. 도구가 필요했다. 그가 평소 빨래 바구니로 사용하던 쇼핑 카트는 탁월한 해결책였다. 한쪽 바퀴가 시원찮기는 하지만 그 정도 크기면 클론 아이들을 태우고 식량과 생필품, 그리고 옷가지까지 챙길 수 있을 것이었다. 다시 모차르트가 흘러나왔다. 그 사이 두 시간이 지났다는 뜻이다. 


  아침 점검을 위해 사육실로 향했다. 낡은 지하실의 작은 틈에서 맑은지 탁한지 알 수 없는 물방울 하나가 떨어져 그의 이마를 적셨다. 문을 열었다.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가 얼씬거렸던 흔적은 없었다. 얼씬거렸다고 해도 자물쇠가 바뀌어 있으니 열지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안도의 한숨을 짧게 쉬고 트레이는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왔다. 클론 아이들을 하나씩 일으켜 깨워 씻겼다. 깜찍한 이마에서부터 발그스름한 볼, 그리고 갸날픈 목 구석구석까지 꼼꼼히 닦아주었다. 다음은 기저귀였다. 어김없이 전 날 밤에도 대소변을 못가린 아이들이 있었다. 적지 않은 양의 크리넥스와 물휴지와 수건과 걸례가 필요하였다. 오물을 모두 모아 빨래통에 담았다. 매일 반복해도 쉽지 않은 일이지만 그 날만큼은 힘들지 않았다. 빨래통을 바깥에 내다놓고 보송보송한 기저귀를 채워주었다. ‘알아. 개운하지?’ 그는 클론 아이들의 눈에서 많은 걸 읽을 수 있었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이미 많은 교감을 나누고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은 아침이었다. 트레이는 클론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 우유를 먹여주었다. 그가 처음 이 곳에 왔을 때에 비하면 정말 능숙한 자세였다. 물티슈를 꺼내 하얗게 변한 개구장이들의 입술을 닦아주는 것도 있지 않았다. 뭐랄까, 마치 그는 기계처럼 움직였다. 어떤 작업을 하는 사이에도 동시에 그 다음 작업을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다시 모차르트가 나왔다. 벌써 열 시라는 뜻이었다. 배부르게 먹여놓자 클론 아이들은 움직임이 둔해졌다. 모차르트도 소용없는 듯했다. 뭐 모차르트 효과? 웃기고 있네. 트레이는 클론 아이들의 이마에 차례차례 뽀뽀해주고 사육실을 빠져나왔다. 시간이 없었다. 더 빠르고 신속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몸이 생각을 따라가질 못했다. 아! 도와줄 사람이 한 명만 있었다면! 그는 주방으로 향했다. 빵을 만들어야 했다. 얼마나 필요할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최소한 시내에 도착할 때까지는 버텨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생각에 시내는 안전한 길이 아니었다. 일단 루마니아 밖으로 빠져나가야 한다고 보았을 때 시내는 가장 가까운 국경지대와 반대쪽에 위치했다. 일단 헝가리로 가야해. 그리고 나서 오스트리아로 도망쳐야지. 오스트리아라니! 그는 이 목숨을 건 탈주가 마치 로버트 와이즈의 1965년작 고전 '사운드 오브 뮤직'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다. 이스트, 설탕, 소금, 분유를 섞고 계란을 풀어 반죽하였다. 냉장고를 열었다. 어제 배달된 우유 5리터가 있었다. 우유는 위험하다. 우유는 상한다. 아무리 서늘한 지역이라고 해도, 아무리 밤에 출발한다고는 해도, 냉장 보관 않은 상태에서 기한을 장담하기 어렵다. 행여냐 상한 우유를 먹여 숲 한 가운데서 배탈이라도 난다면 그것도 큰 일이다. 성공적인 탈출의 첫번째 조건은 일단 아프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냥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기도 아려운데 아픈 아이들을 데리고 도망치는 건 곱절로 어려울 수 밖에 없었다. 식료품 창고를 열었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다면 일주일 후에도 끄덕없을 먹을 거리가 필요했다. 이를테면 통조림 같은 것 말이다. 창고에는 통조림이 많았다. 물론 클론 아이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닥터 이시무라와 닥터 이고르 수미느로프를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아쉬운대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모차르트다. 열두 시. 트레이는 다시 기계적으로 사육실에 돌아가 클론 아이들의 기저귀를 체크하고, 모닝빵을 스무 개 더 꺼내놓고, 우유를 먹여주었다. 그리고 점심에 한 알씩 먹이는 비타민을 수면제(로제럼)로 바꿔치기 했다. 밤에 도망치려면 낮부터 좀 재워두어야 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조그만 아이들이라고는 하더라도 졸음에 취해서 허우적거리는 아이들을 다섯이나 데리고 도망칠 재간은 없었다. 물론 깨어있으면 깨어있는대로 위험이 따르기 마련일 것이나, 그래도 그 편이 차라리 감수할 만한 것인지도 몰랐다. 다시 주방으로 돌아온 트레이는 발효가 끝난 반죽을 철판에 팬닝하여 오븐에 집어넣었다. 빵 굽기에 이력이 난 그였음에도 이렇게 많은 양을 한 번에 굽는 건 처음이었다. 결국 이 계획의 관건은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의 눈에 띄지 않고 거사를 진행시킬 수 있느냐에 달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닥터 이시무라는 클론 아이들이 있는 사육실에 거의 내려오지 않았으니 (지금 키우는 아이들이 클론 2호인지 3호인지도 기억 못할 수도 있다) 변수가 될 수 있는 건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 뿐이었다.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는 트레이와 조금 다른 차원에서 클론 아이들을 애뜻하게 생각했다. 좋지 않은 방향으로 말이다. 언젠가 닥터 이시무라 모르게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가 사육실에 내려온 적이 있었는데 클론 아이들의 빨간색 스웨터와 카키색 팬츠, 그리고 기저귀까지 벗기게 했다. 처음에 트레이는 그것이 실험체의 변화를 직접 확인하고 싶은 실험자의 열망 때문이라고만 생각했다. 하지만 트레이가 러시아인 약제과학자의 눈에서 꿈에 볼까 두려운 것을 발견하면서 그 생각은 대단히 잘못된 것으로 판명이 나고 말았다. 욕망. 실험과는 관계 없는. 그 날 이후 트레이는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를 볼 때마다 속에서 뭔가 뜨거운 것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기회만 된다면 반드시 때려 눕히겠다고 벼르지 마지 않는 중이었다.


  다시 모차르트. 두 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 D장조. 두 시였다. 오늘 트레이는 세탁실에 들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오물과 기저귀, 수건과 걸레가 모두 빨래통을 들고 밖으로 나갔다. 신선하다기보단 차가운 공기가 그의 폐로 밀려들어왔다. 그 맛은 자연적이라기보단 원시적이었다. 그는 도망칠 계획을 세운 방향과 반대로 걸어가며 삼십 분 간격으로 기저귀를 하나씩 던졌다. 너무 작위적인가 싶어 방법을 바꿨다. 한 번 기저귀를 던졌으면 그 다음에는 수건이나 걸레를 던졌다. 닥터 이시무라와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가 뒤늦게 추격에 나설 경우를 대비한 일종의 혼란계였다. 시계 바늘이 네 시를 가리킬 때까지 그는 한 방향으로 걸었다. 네 시에 클론 아이들을 확인해야 했지만 한 번쯤은 괜찮을 것이다. 그리고 어차피 수면제 때문에 누가 업어가도 모르게 잠들어 있을 것이 뻔했다. 네 시부터는 흔적을 남기지 않고 거꾸로 걸어 고성으로 돌아왔다. 여섯 시가 되기 전에 도착하기 위해 조금 서둘러야만 했다. 여섯 시는 성탑에 올라가 닥터 이시무라에게 보고를 해야할 시간이다. 클론 아이들에게 붉은 반점이 생겼다고 하면 닥터 이시무라는 다음 주 월요일 아침 여덟시에 실험을 시작하자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 그는 토요일 새벽에 클론 아이들을 데리고 도주할 것이고 월요일 아침까지 48시간 이상을 벌 수가 있게 된다.

 

*


  성탑에 오를 땐 언제나 현기증이 났다. 똑똑, 두 번 문을 두드리고 닥터 이시무라의 방에 들어갔다. 닥터 이시무라는 인사도 하지 않았다. 붉은 반점이 나타났는지만 물었다. 그는 대답했다. 오늘 아침에 발견했다고. 닥터 이시무라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정말이냐고 몇 번을 되물었다. 개 놈의 새끼. 천사같은 어린 것들에게 병을 유도하고서 천만금을 얻은 남자처럼 좋아하는 꼴이라니. 트레이는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의외의 변수는 여기서 생겼다. 닥터 이시무라가 내일 아침, 그러니까 토요일 오전 8시에 치료제를 넣자고 준비를 지시한 것이다. 트레이는 다시 한 번 현기증을 느꼈다. 더듬거리며 내일은 토요일이라고 말했다. 닥터 이시무라는 건성을 대꾸했다. “쏘 왓?” 입이 바짝 말라왔다. 전혀 계산에 넣지 못했던 일이다. 저 미친 의사 겸 미친 과학자 놈은 한번도 자기 주말 시간을 챙기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까.


  계획이 틀어졌다. 최소 48시간을 벌고 시작하기도 이젠 어려워졌다. 성탑에서 내려오는 트레이의 걸음은 불안했다. 몇 번을 발을 잘 못 디뎌 넘어질 뻔했다. 초조함의 공기가 나선 모양의 계단을 따라 흘렀다. 뼈가 저릴 정도로 추웠는데도 이상하게 식은 땀이 났다. 어쩌지? 지금은 저녁 여섯 시. 내일 아침 여덟 시까지는 겨우 열네시간이 남았다. 지하실로 뛰어내려가 카트를 꺼냈다. 밀면서 뛰었다. 그의 발이 닿는 곳마다 고였던 물이 튀어 올랐다. 카트의 한 쪽 바퀴가 사시나무 떨듯 흔들거렸으나 신경쓰지 않았다. 복도 굽이 굽이마다 급커브를 반복했다. 시간이 없었다. 당장 출발해야만 했다. 조금이라도 필요하겠다 싶은 것들은 닥치는대로 집어 넣었다. 필요가 있을지 없을지 판단이 서지 않는 것도 무조건 다 집어 넣었다. 기저귀. 얼마나 필요할지는 아무도 모로는 일이다. 그는 60매 들이 묶음을 두 개 던져 넣었다. 그 이상 넣기엔 공간이 부족했다. 옷가지. 오래 생각할 필요 있나. 있는대로 다 가져가야지. 꼭 가져간 옷을 다 입히진 못해도 추위를 견디는데 도움이 될 것이었다. 다음으로는 주방으로 달려갔다. 식료품 창고를 열어 통조림을 찾았다. 과일이 들어간 것으로 다섯 개를 골라 카트에 담았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부족할 것 같아 다섯 개를 더 담았다. 육포를 찾았다. 볼 것 없이 카트에 담았다. 아! 육포도 고기는 고기지. 절대 클론 아이들에게 고기를 먹여서는 안된다던 닥터 이시무라의 당부가 생각났다. 하지만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아침에 만들어 두었던 5일분의 빵을 봉지째 던져넣었다. 맞다! 우유! 냉장고를 열고 5리터 들이 우유를 카트에 넣었다. 역시 던져넣다시피 했다. 만약 그 자리에 누군가 있어 트레이의 모습을 보았다면 신경질적인 주부가 장을 보는 그림을 떠올렸을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사육실 앞에 도착했다. 바꿔치기한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안은 조용했다. 모두 자기 침대에서 깊이 잠들어 있는 중이었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모두 있다. 다행이다. 트레이는 잠든 클론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 카트에 넣었다. 고소한 우유 냄새가 코를 찔렀다. 사랑스러워. 금실처럼 나풀거리는 머리칼은 너무 부드러워 자꾸만 쓰다듬고 싶어졌다. 그는 다시 한 번 소리 내어 다짐하였다. 엉클이 꼭 너희들을 지켜줄께.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계적이라고 해도 좋을 반응이었다. ‘준비 완료!’ 트레이는 힘차게 카트를 밀어보았다. 생각보다 무거웠다. 하자가 있는 한 쪽 바퀴가 심하게 삐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쉽지 않겠어. 두 다리에 힘을 주고 다시 밀어보았다. 닥치는대로 담았던 오만가지 것들이 그 안에서 달그락거리며 새로운 위치를 찾았다. 클론 아이들도 졸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자기들끼리 엉키고 부딪히며 꺄르를 웃음 소리를 내었다. 조금만 참아주렴, 얘들아. 엉클이 꼭 너희들을 구해줄께.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트레이의 수정된 계획은 다음과 같았다. 실험 전 날 밤이 되면 닥터 이시무라와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는 약제실에서 나오지 않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음 아침에 실험을 시작한다면 새벽 내내 약제실에 있었다. 더구나 갑자기 내일 아침에 실험 계획이 잡혔으니 오늘 밤 늦게부터 그 안에 처박혀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들이 만든 치료약은 합성을 시작한 후 여섯 시간까지만 유효했다. 일단 공기에 노출된 후 체내에 주입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섯 시간이 지나면 활성을 잃어버리게 되어 있었다. 아침 여덟 시에 주사 시간을 맞추기 위해서는 새벽 두 시 이후에 작업을 시작해야 할 것이다. 이른 저녁부터 한숨 자 둘 확률도 있다. 그들은 실험 10분 전에 트레이에게 전화를 할 것이다. 실험 5분 전에서야 사육실에 내려와 볼 것이다. 대강 아침 여덟 시는 되어야 트레이와 클론 3호 아이들이 사라졌음을 알 수 있을거라는 뜻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아침 여덟 시까지 최대 열다섯 시간을 벌 수 있게 된다. 트레이는 생각했다. 그만한 시간이라면 어디까지 도망칠 수 있을까? 분명 주말 내내를 벌 수 있었던 최초 계획의 48시간에 비하면 턱없이 촉박한 시간이었다.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의 머리통을 부수고 떠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까웠지만 지금은 이것 저것 따질 여유가 없었다. 일단 저지르기로 마음 먹었으면 뒤돌아보지 말고 강공으로 밀어붙여야 했다. 아침에 만들어두었던 방수포 덮개로 카트 위를 덮었다. 혹시라도 찬 바람이 들어갈까봐 구석구석 꼼꼼하게 막아주었고 바람에 날려 떨어지지 않도록 네 군데 구멍을 뚤어 노끈으로 쇼핑카트 살에 묶었다. 

 

*


  숲은 밤공기가 찼다. 한겨울처럼 맹렬히 춥다기보단 서서히 젖어들어가 떨게 만드는, 그런 면이 있었다. 쇼핑카트는 덜컹거렸다. 불안한 한쪽 바퀴가 내심 마음에 걸렸다. 카트를 덮은 진청색 방수포 아래에서는 클론 아이들이 달그락거렸다. 클론 3호. 똑같이 생긴 다섯 쌍둥이 여자 아이들. 트란실베니아의 깊고 어두운 숲은 친절히 길을 일러주지 않았고 트레이는 길을 몰랐다. 단지 고성으로부터 어느 방향이 헝가리쪽 국경인지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이곳에 온 이후로 그는 숲 밖으로 세 번 밖에 나가보지 못했다. 세 번 모두 브라쇼브인지 피테슈티인지 하는 도시에 가서 장을 봐왔는데 그나마도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의 감시 하에서였다. 그 망할 러시아인 과학자는 그의 눈을 가린 상태로 삼십여분을 걷게 했고 어디선가 트럭에 태워 한 시간 정도 달린 후 (정확하지 않다) 시장에 도착한 이후에나 눈가리개를 풀어주었다. 만약을 대비해 고성으로 돌아가는 길이나 알려달라고 그가 물었을 때,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는 능글맞게 웃으며 씻지도 않고 사과를 덥썩 씹어먹었다. 그리고는 서툰 영어로 엿이나 먹으라고 대꾸했다. 그러니 트레이라고 숲을 빠져나가는 길을 알리가 없는 것이다.


  언덕에 이르러 트레이는 다시금 고성을 돌아보았다. 마치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이라곤 살지 않았던 것 같은 느낌에 소름이 돋았다. 그럼에도 한편으로 저 높은 곳에 뚫려진 커다란 창, 지금 이 깊은 밤 유일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저 차갑고 높은 고성의 그 창은, 불현듯 묘하고 묘한 의외의 예감을 그에게 심어주었다. 닥터 이시무라의 방이 아니다. 실험실도 아니다. 트레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위치의 방이다. 백작의 딸. 한 번도 만나보지 못했건만 트레이는 그 아이를 진심으로 동정했다. 그 아이 때문에 희생되도록 운명지워진 클론 아이들을 생각하면 물론 화도 났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생각도 들었다. 백작의 딸은 사람이다. 지금 그가 데리고 도망치고 있는 클론 아이들은, 어쨌든 클론이다. 클론의 살은 고분자로 직조된 가짜 살이고 클론의 피는 적혈구 혼합 용액을 바탕으로 합성된 가짜 피다. 마리 당 110불이라고 들었다. 수요만 있다면 얼마든지 생산 가능하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그가 하고 있는 일은 사람의 생명 대신에 클론의 생명을 살리는 일이기도 했다.


  세 시간을 쉬지 않고 숲을 달렸다. 그러고보니 트레이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일했었다. 클론 3호 아이들에게 수면제를 먹여 재웠었지만 정작 자신은 5분도 눈을 붙이지 못했던 것이다. 피로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쉴 수 없었다. 내일 아침 여덟시가 되기 전까지 되도록 멀리까지 가야했다. 트레이는 살며서 방수포를 들추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렇게 흔들리는 와중에서도 클론 아이들은 새근새근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었다. 신기한 일이었다. 오프 로드 레이싱의 와중에 카트 안이 많이 덜컹거렸을텐데. 기저귀 묶음과 모닝빵, 통조림, 육포, 5리터 들이 우유병, 개어 놓지 않은 옷가지…… 저 아수라장 안에서도 천사처럼 잠들 수 있다니. 그는 문득 클론 아이들 이마에 뽀뽀를 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오늘은 굿나잇 키스도 하지 못했잖아.’ 그러나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날은 춥고 그는 이미 지쳐 있었으며 남은 여정에 대한 부담도 컸다. 다시 한 시간을 더 걸었다. 길이 험하고 어두웠다. 잘 보이지 않았다. 눅눅한 수풀이 그의 다리를 휘감았다. 눈치없는 나뭇가지가 그를 찔렀다. 적막한 어둠은 이미 그의 마음 깊은 곳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진작부터 반항의 기미를 보이던 카트 한 쪽의 바퀴는 계속 말썽이었다. 때로는 너무 뻑뻑했고 때로는 너무 헐거웠다. 항상 그가 원하는 것보다 심하게 꺾였다. 쇼핑 카트를 밀면서 나아가기에는 더더욱 그랬다. 여기는 거대한 쇼핑몰의 아케이드가 아니다. 쇼핑 카트를 밀고 다니라고 만든 길도 아니고 심지어 사람 걸으라고 만든 길도 아니다. 이따금 발 밑이 무너져 내렸다. 어느 한 순간도 평탄한 길이 없었다. 몇 번이고 경사진 아래쪽으로 카트가 밀려내려가 십 년을 감수해야 했다. 중력에 저항하느라 영쪽 어깨가 뻐근하게 아파왔다. 매번마다 힘을 제대로 받치지 못해 무릎도 시큰거렸다. 그러는 사이에 길도 잃어버렸다. 애초에 잘 알지도 못하고 출발한 길이기는 했지만 이제는 그나마도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지구는 둥그니까, 서쪽으로만 계속 걸어가다보면, 헝가리 국경이 나오겠지, 라고 생각했다니. 정말 멍청하지 않은가. 그러고도 클론 아이들을 안고 보드라운 뺨에 뽀뽀하며 ‘너희들을 꼭 구해줄께'라며 몇 번이고 다짐했다니!


  개울가에 이르러 트레이는 멈추었다. 드물게 평탄했고 드물게 하늘이 트여있는 곳이었다. 카트가 굴러가지 않도록 넓고 단단한 돌을 바퀴 앞에 받쳐 넣었다. 달빛에 비친 개울물이 반짝거렸다. 손을 씻고 대강 얼굴을 씻었다. 허리춤에 차고있던 물통을 꺼내 목을 축였다. 한번쯤 클론 아이들 상태를 봐줄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보통은 한밤중에까지 확인하지는 않았다. 그냥 잘 자고 있겠지, 하고 생각하면 된다. 그리고 대개는 정말, 그냥 잘 자고 있다. 오늘은 좀 특별하다. 낮잠을 다섯시간이나 재우기도 했고, 안온한 사육실이 아니라 울창한 숲 한 가운데에 있는 중이다. 출하되어 내내 온도와 습도가 적절히 조절되고 있는 공간에서만 살아온 클론 아이들이 야생의 거친 환경에 영향을 받지 않을지도 신경을 써야만 했다. 방수포와 카트를 묶어두었던 한쪽 끈을 풀렀다. 다른 한쪽 끈도 풀렀다. 방수포를 걷었다. 평평한 곳을 골라 돌멩이를 골라내고 바닥에 깔았다. 캠핑이라도 온 기분이었다. 클론 아이들은 반쯤 깬 상태였다. 달빛이나마 안으로 쏟아지자 몸을 뒤척였다. 두 마리는 눈을 비비며 일어나 앉았다. 하품도 했다. ‘어쩌면 밤새 조용히 재우기는 무리였는지도 모르지.’ 아이들을 쓰다듬으려다가 트레이는 자신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을 발견했다. 고약한 냄새가 올라왔다. 방수포로 깔아놓은 쇼핑 카트의 바닥이 축축했다. 저런, 오줌이다. 방수포여서, 바깥으로 새어나가지 않고 안에서 고였다. 뜯어진 봉지의 모닝빵은 모두 버려야 했다. 일부러 챙겨왔던 옷도 다 젖었다. 따로 챙겨온 기저귀도 아래쪽에 쌓여있던 건 축축했다. 큰일이었다. ‘그러니까 하기스나 팸퍼스를 쓰자니깐.’ 그는 닥터 이시무라를 원망했다. 


  트레이는 서둘러 짐을 빼내고 카트 바닥을 닦았다. 그 과정에서 나머지 클론 아이들도 잠을 깼다. 얘들아 좀 비켜봐. 뒤뚱거리는 폼이 심상치 않았다. 한 마리를 안아 땅바닥에 깔아놓은 방수포에 눕혔다. 느낌이 묵직한 게 아니나 다를까, 카고 바지를 벗기고 기저귀를 풀러보니 내용물이 묵직했다. 만약을 대비해 하루 종일 배부르게 먹여놓았더니 참 결과가 정직하기도 하지. 그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라텍스 장갑을 꺼냈다. 평소 같았으면 그 위에 비닐 장갑도 끼우고 고무 장갑도 끼우고, 몇 겹을 끼웠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상황이다. 서둘러 일을 진행했다. 비닐 봉지 하나에 헌 기저귀를 집어 넣었다. 배설물을 닦은 물휴지도 집어넣었다. 베이비 파우더를 바르고 엉덩이를 두 번 두들겨 주었다. 곧이어 능숙하게 새 기저귀를 꺼내어 채워주었고 다시 바지를 입혀서 다시 번쩍 안아서 쇼핑 카트에 올려 주었다. 자, 다음. 두 번째 클론 3호의 기저귀를 같은 방식으로 갈아주었다. 그렇게 총 다섯 번을 반복했다. 아주 정교하게 설계된 기계라고 하더라도 그만큼 이 일을 잘해내지는 못할 것이다.


  헌 기저귀와 오물, 그리고 사용한 라텍스 장갑을 담은 봉지를 단단히 묶어 쇼핑 카트 아래쪽에 매달았다. 아무데나 버리고 갈 수는 없었다. 닥터 이시무라와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의 추격을 뿌리치기 위해 반대쪽 숲에 미끼를 뿌려놓았으니 이쪽으로는 흔적을 남겨선 안되었다. 더구나 야생동물이 많은 곳이다. 특히 이 숲은 유럽 최대의 불곰 서식지 가운데 하나다. 냄새 풍기며 돌아다니는 것도 좋지 않겠지만 가는 길마다 생리현상의 증거를 아무데나 뿌리고 다니는 것도 추천할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이어서 트레이는 새 기저귀 묶음 중에서 젖은 것과 젖지 않은 것을 분리했다. 적당히 젖은 것은 방수포 바닥에 깔았고 (또 오줌이 새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많이 젖은 것은 개울말에 간단히 빨아 따로 비닐봉지 하나에 모았다. 앞으로 어떻게든 쓸 일이 생길지 누가 알겠는가. 다행히 수마를 입지 않아 바르고 보송보송한 새 기저귀들은 바닥이 아니라 통조림으로 층을 만들어 그 위에 두꺼운 이동용 골덴 바지 몇 개를 개켜놓고 그 위로 쌓아놓았다. 클론 한 마리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우유를 가리켰다. 트레이는 다시 우유 먹이기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다섯 마리의 클론 아이들을 하나씩 안아서 먹이고 다시 내려놓았다. 지칠대로 지친 탓인지 평소보다 아이들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기저귀 갈아줄 때에도 이렇게 무거웠었나? 클론 아이들의 이마에 뽀뽀를 해주었다. 생각만큼 순조롭지는 않단다. 세상 모든 일이 그렇지. 하지만 걱정하지마. 엉클이 반드시 너희를 데리고 이 숲을 빠져나갈테니.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를 말똥말똥 쳐다보는 클론 아이들의 표정이 알아들은 것 같기도 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곱고 가느다란 금발이 그의 손 위에서 물결처럼 찰랑거렸다. 일단 여길 빠져나가면 예쁘게 빗어줘야 할 것이다. 깜찍하게 갈래 머리로 땋아줄 수도 있을 것이다. 휴, 그나저나.


너희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트레이는 외로웠다. 길은 멀고 험했고 그에게는 의지할 곳이 필요했다. 오직 의무감만이 그를 움직이게 하는 동력이었다. 방수포로 카트를 단단히 덮고 다시 카트 손잡이를 힘주어 잡았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북극성이 보이지 않았지만 그는 북극성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마음을 굳게 먹고 서쪽으로 카트를 밀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한 방향으로만 전진하리라. 한층 짙어진 숲의 어둠이 그의 마음을 가렸다. 한층 깊어진 숲의 추위가 그의 몸을 떨게 했다. 여전히 길은 잃은 상태였다. 카트 바퀴는 불쾌하게 덜컹거렸고 그에 박자를 맞추어 나뭇잎이 바삭거렸다. 울창한 숲 높은 곳에서부터 휘돌아 내려온 바람이 늑대의 울음소리를 내었다. 그래도 그는 앞으로 전진했다. 정말로 불곰이 나타났을 때까지.
  불곰을 만나고 트레이가 처음 한 일은 뒤돌아 도망치는 것이었다. 황급히 쇼핑 카트를 돌렸고 뒤돌아보지 않고 밀었다. 카트의 크기와 무게를 생각하면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크고 작은 나무들이 바람처럼 스쳐갔다. 정신이 혼미했다. 그렇다고 쇼핑 카트를 밀고 뛰는 사람이 곰보다 빠를 수야 없을 것이다. 크고 작은 긁힘과 찔림 끝에 드디어 오른쪽 어깨가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졌다. 얼마나 아팠는지 그 이후로는 모든 물리적 충격이 간지럽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쉬지 않고 뛰었다. 충분히 뛰었다고 생각했을 때 문제의 바퀴가 드디어 사단을 냈다. 찹쌀떡처럼 뭉그러졌다가 총알처럼 튀어나갔다. 균형을 잃은 카트는 곡예 묘기를 하는 스턴트 카라도 되는 것처럼 기울여진 채로 앞으로 나아갔고 굵고 오래된 나무에 부딪히며 뒤집어졌다. 트레이는 십 분쯤 지난 후에 일어났다. 옷이 식은땀으로 젖어있었고 바지 아래가 축축하기도 했다. 창피한 일이다. 하기스나 팸퍼스가 필요한 건 클론 아이들만이 아니었군. 쓰게 웃으면서 그는 상처를 살펴보았다. 베이고 긁히고 찔린 상처가 온 몸 곳곳에 가득했다. 오른쪽 어깨를 제외하면 곰에게 당했다기보단 질주의 와중에 숲의 여러가지 장애물과 스치면서 생긴 상처같았다. 당장 그 자리에서 상처를 어찌할 도리는 없었다. 클론 아이들이 괜찮을지를 먼저 살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방수포를 묶은 끈을 풀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의외로 아이들은 멀쩡했다. 조금 헬쓱해진 감은 있었지만 귀엽고 앙증맞은 얼굴 그대로였다. 아마도 제대로 먹지도 못한 채로 밤 길에서 긴장 상태로 몇 시간을 보내서 그런 거겠지. 다만 다섯 마리가 옹기종기 웅크리고 있는 카트 안은 좁아보였다. 출발할 때는 그 오만가지로 가득 찬 속에서도 좁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는데 말이다. 트레이는 클론 아이 하나를 안으려고 하다가 망설였다. 오른쪽 어깨가 너무 아팠기 때문이다. 능숙하고 안전하게 아이를 안아줄 자신이 없었다. 그는 바닥에 주저 앉았다. 어쨌든 다 무사했으니 다행이지. 그리고 허기를 느꼈다. 자신도 배가 고플 수 있음을 드디어 알게 된 것이다. 


  그는 카트 안에서 통조림을 찾아내었다. 그러나 통조림에는 따개 필요했다. 젠장. 그런 기본적인 확인도 하지 않다니. 다시 카트 안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의 손이 오고갈 때마다 클론 아이들은 반대 방향으로 피해 움직이는 바람에 무게가 한 쪽으로 실려 카트가 기우뚱했다. 서로 부딪히고는 꺄르르 웃었다. 나름의 놀이인 것 같았다. 드디어 육포를 찾았다. 이미 뜯어진 상태였다. 개본 부위가 들쭉날쭉한 것이 이빨로 물어 뜯은 것 같았다. 언제 뜯어졌지? 설마 이 말괄량이들이? 하지만 싶이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일단 그는 커다란 육포 조각을 꺼내어 입에 넣고 씹었다. 뭔가 영양분이 있는 것 같은 것이 목구멍을 넘어가니 그제야 살 것 같았다. 


  클론 3호 아이 하나가 그의 팔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어깨를 가리켰다.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괜찮아. 얘야. 보기보다 안 아파.’ 클론 아이는 계속 그의 팔을 잡아 당겼다. 안아 달라는 뜻 같았다. 팔을 뻗어 들어올려주려다 깜짝 놀랐다. 저 혼자 알아서 카트 밖으로 나오려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설마! 방수포를 바닥에 깔고 클론 아이를 잡아서 그 위에 눕혀 놓았다. 어깨가 떨어져 나갈 것처럼 아팠다. 그래서 그런지 누워서 버둥거리는 클론 아이를 혼자 힘으로 통제할 수가 없었다. ‘얘야, 평소처럼 좀 얌전히 있으렴.’ 클론 아이들은 너무 커졌다 (혹은 그가 작아졌거나). 클론 아이들은 힘이 너무 세졌다 (혹은 그가 약해졌거나). 


비타민? 비타민을 먹이지 않은지 하루가 지났다.
두 시간마다 듣던 모차르트? '모차르트 효과'가 정말 있는 거란 말이야?
고기? 육포 봉지가 뜯어져 있었다. 얘들이 좀 뜯어먹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설마 그렇다고?
우유? 이런 상황치고는 충분히 먹였잖아!


  뭔가 아주 쉽고 간명한 해답이 있을 것 같으면서도 생각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았다. 어느새 다섯 마리의 클론 3호 아이들이 모두 카트 밖으로 나왔다. 들어 안아 밖으로 꺼내 준 것은 하나였으니 넷은 제 발로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클론 아이들은 트레이를 둘러쌌고 뼈가 부셔져 피와 살이 드러난 오른쪽 어깨를 잘게 뜯어먹기 시작했다. 어깨 한 곳에 다섯 마리가 매달리기는 조금 무리지. 왼쪽 목과 배에 새로이 신선한 상처가 만들어졌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작고 연약하게만 보였던 클론 아이들의 치아이건만 이제는 적어도 트레이의 살을 뜯어내기엔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그는 보았다. 얕게 깔린 보랏빛 안개를. 깃털을 뿌리며 저 높이로 날아가는 검은 새떼를. 그 순간 트레이가 느꼈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하지가 않다. 만족, 연민, 증오, 사랑? 어쩌면 그 모든 것이 반죽된 느낌이었는지도 모른다. 감정이란 빵과는 달라서 그 재료가 무엇인지 분석하기가 쉽지가 않았다. 빵처럼 레서피만 안다고 조합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너희들 그거 아니?
꿈에도 색깔이 있다는 걸.
어느 순간 사라지기 시작했는데 그게 언제부턴지 모르겠어.  

 

*



  일요일 오후 13시 40분. 닥터 이시무라와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는 트레이의 사체를 찾아내었다. 
- 세번째 클론도 실패인 것 같지? 
- 그렇군요.
  트레이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달리, 그들 사이의 의사소통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 어쩌자고 저렇게 마음이 여리게 만들어졌을까?
- 그러게나 말입니다.
- 다음 모델에서는 어디를 고쳐야지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 모르겠어. 일단 이걸 좀 치우자고. 냄새가 지독하군.
  그들은 트레이가 가지고 왔던 카트를 발견했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된 트레이의 몸을 바디백에 구겨넣고 그 안에 던져 넣었다. 짜증이 났던지 닥터 이시무라는 카트를 신경질적으로 걷어찼다.
- 그나저나 이 꼬맹이들은 어디 갔을까요?
- 모르지. 어떻게든 잡아와야지.
- 그런데 닥터 이시무라. 다시 생각해봐야지 않겠습니까? 클론을 세뇌시키는 것 말입니다.
- 말도 안되는 소리. 귀여운 여자아이라고 꽁깍지를 씌워 놓아야 수시로 들어가서 밥도 먹이고 배설물도 치워주는 거지. 솔직히 말했다간 무섭다고 사육실 근처엔 얼씬도 하지 않을껄. 
- 하긴 그건 그렇죠. 저만 해도 혼자 들어가려면 오금이 저리는데.
- 게다가 클론 놈들에게 우리가 실제 뭘로 실험하는지를 알려주면 그것도 골치 아파.
- 어디 도망가서 폭로하기라도 하면 큰일이죠. 유럽 의회에서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안이니까요. 
- 그래 네번째 클론이 도착하기 전에 한 번 같이 고민을 해보세.
  닥터 이시무라와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는 걸음을 옮겼다. 트레이의 바디백이 담긴 카트에 밀고. 한 쪽 바퀴가 없는 카트는 4분의 3박자로 균형을 잃었다. 오 분쯤 걸었을까. 갑자기 닥터 이고르 스미느로프가 탄성을 질렀다.
- 어! 저기 있습니다! 닥터 이시무라. 우리 침팬지들이 저기 있어요. 다섯 마리 전부요! 

(2011년 03월)

# Inspired by Philip K. Di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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