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렉 어르신을 달래는 방법에 관하여
by 김영준 (James Kim)달렉(Dalek) 어르신은 한동안 꾸준히 화가 나 계셨다. 공산당에게 나라를 빼앗겨서 미래가 없다고 하루에도 몇 번씩 분통을 터뜨리셨단 말이다. 심지어 나라에 자주 불이 나는 것도 대통령을 잘못 뽑아서 그런 거라고 주장하셨다. 몇 번인가 나는 그 말씀이 논리적이지 않음을 지적하였으나 (산불은 대개 건조한 날씨와 부주의한 인간의 합작품이다) 어르신은 들을 생각이 없으셨다. 불 같이 화를 내시며 너도 기어이 빨갱이 편을 들겠다면 ‘엑스터미네이트(exterminate)’ 시키겠다고 으름장을 놓으셨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면 나는 이런 상상을 하고는 했다. 대통령 아저씨 그 양반이 하루 일과를 마친 야심한 시각에 ‘허허, 이제 퇴근해볼까요’라며 집무실을 나와 상의를 어깨에 걸치고 숙소로 향하다가, 수행원을 물리고 경호원을 따돌린 다음에, 훌쩍 뛰어올라 가볍게 청와대 담을 치고, 효자동이나 삼청동 근처에서 지나가던 오토바이를 하이재킹하고, 흰머리를 휘날리며 강원도까지 쉬지 않고 내달려서, 수목이 보기 좋게 우거진 적당한 야산에 도착한 다음에, 마른 낙엽을 모아놓고 성냥을 꺼내어 불을 당기는 그림 말이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고 어떤 이를 지지하느냐의 문제를 떠나서 이런 건 아무리 생각해도 우스꽝스럽다.
그러다 (다들 아시는 것처럼) 임기가 끝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했다. 집권당이 바뀌었으니 달렉 어르신은 덩실덩실 춤을 추셨다. 공산당으로부터 나라를 되찾았다고. 이제 경제도 살아나고 모든 게 다 좋아질 거라고. 한동안은 기력이 솟아나시는지 하루에 진지도 네 끼를 드시고 근린 공원을 돌면서 동네 어르신들과 어울려 파워 워킹도 하셨다. 2023년 4월 현 정부 들어서 첫 봄에 산불이 나기 전까지 말이다. 이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인데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산불은 대개 건조한 날씨와 부주의한 인간의 합작품이다) 어르신은 아무래도 이 사실이 혼란스러우셨던 것 같다. 나는 살짝 대통령이 누구냐인 것과 산불 발생은 별 상관이 없는 문제라고 다시 한 번 말씀을 드려보았다. 하지만 어르신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이를 박박 갈으시며 이런 산불은 현 정부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전 정부와 불순반동세력의 획책이라고 주장하셨다. 불 같이 화를 내시며 네가 또 빨갱이 편을 들겠다면 ‘엑스터미네이트’ 시키겠다고 건스틱까지 서서히 들어 올리셨다. 그러더니만 결국 분을 이기지 못해 그 자리에 멈추셨고 논리적 오류를 감당하지 못하여 오작동이 시작되었다. 스파크가 튀기고 연기가 났다. 삐삑 삐삐삑 소리를 내며 전진과 후진을 반복하셨고 건스틱을 세웠다 내렸다를 반복하셨다. 이윽고 아무 데나 레이져를 쏘아대기 시작하셨다. 재빨리 피하지 못했다면 아마 나도 맞았을 것이다. 나는 더 큰 충격을 드리고 싶지 않아서 (물론 데스 레이를 맞고 소멸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무조건 잘못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드러나듯이 나는 달렉 어르신을 진심으로 염려한다. 그깟 정치가 뭐라고 당신 주위의 소중한 사람들과 끝장 승부를 본단 말인가. 아무 쓸모없는 짓이다. 우리가 그 사람들을 두고 서로 치고받든 말든 대개 그들은 아무 지장 없이 잘 먹고 잘 산다. 우리가 정말로 화를 내야 하는 건 이런 어처구니없는 현실이다.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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