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록색 세이렌 로고가 달린 커피샵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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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세이렌 로고가 달린 커피샵에 관하여

by 김영준 (James Kim)

  스타벅스 직원이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포스 단말기 화면을 두드리면서 “프리퀀시는 본인한테 넣을께요.” 라고 말했을 때, 당황하지 않았다면 아마 거짓말일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지나치게 까탈스러운 사람처럼 보이겠지만 아무래도 문제가 있는 표현처럼 느껴져 혼란스러웠기 때문이다. 뭐를 뭐 한다고? 잠시 내가 무슨 실수를 했었나 하는 생각마저 했는데 그냥 까페 아메리카노 한 잔을 주문했을 뿐이다. 그것도 아주 정확하게. 서로 간에 주고 받은 말은 그게 전부다. 직원이 그 전에 내게 한 말은 단 한 마디 밖에 없다. 인사도 악수도 없이, “카드 꽂아 주세요.” 그러니 내가 직원 분의 심기를 건드릴 일은 없었다고 장담할 수 있다. 그래, 다시 생각해 보면 별 것 아닌 일에 과민반응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그 직원의 태도라던가 표정이라던가 어조와 단어의 선택을 종합적으로 보면 이건 조금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여러 감정이 교차했지만 피차 월급쟁이인 마당에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 싶어 조용히 나왔다.

 

  초록색 세이렌 로고가 달린 이 커피샵에 대한 기억은 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텔레비젼에서 ‘The Simpsons’의 몇 번째 시즌 몇 번째 에피소드에서인가 스프링필드 쇼핑몰의 모든 가게가 스타벅스로 바뀌어가는 그 유명한 장면을 보았을 때였다. 커피샵이 정말로 저렇게 매장이 늘어날 수 있는 건지 조금은 놀랐고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년 후 한국에 첫 번째 스타벅스 매장이 들어왔는데 지금은 한국에 거의 2천 개에 육박하는 점포가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커피 가격을 두고 말이 많았다. 당시 막 태동하기 시작한 인터넷 신문들은 외국 기업의 폭리를 운운하며 군불을 지폈고 스타벅스에 가는 사람들에 대한 조롱과 혐오를 부추겼다. 그런데 사실 개인적으로 인상적이었던 것은 커피의 맛도 가격도 아닌 서비스였다. 까페에서 직원이 손님과 개인적 유대감을 형성하려고 ‘시도’라도 한다는 것이 당시 한국에서는 충격적일 정도로 낯선 일이었던 것 같다. 눈을 마주치고, 안부 인사와 스몰 토크, 음료가 나오면 이름을 불러주고, 나중에 오면 얼굴도 기억하고. 나중에 해외에서 생활하다 보니 사실 대부분의 커피하우스에서 그게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지금 한국에서의 스타벅스는 과거의 그 스타벅스와는 너무 다른 느낌이다. 실제로도 지금은 본사 지분이 없고 로열티만 지불하는 상태라고 알고 있다. 조금 과장을 보태면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은 극대화된 버전인 것 같다. 지나치게 매장 수를 늘려간다고 욕을 먹었던 본사보다도 더 극단적인 확장 (이 작은 나라에 이렇게 많은 지점이 있다는 것이 말이 되는지 모르겠다). 텀블러 장사로 눈총을 받았던 본사보다도 극단적인 상품 장사 (언젠가 여행용 캐리어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아주 좋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나쁘지도 않은 살짝 쓰고 꽤나 탄 맛은 당연히 같은데 값은 미국보다 비싸다. 리워드 역시 훨씬 박하고 또 비합리적이다. 브루드 커피조차 리필도 안된다. 베이커리와 푸드는 기본에 충실하지도 않거니와 퀄리티까지 좋은 편이 아닌데 (공장 크로와상에 공장 머핀은 진짜 할 말이 없다) 값은 또 상대적으로 비싸기까지 하다. 낮에 가도 아수라장이고 밤에 가도 아수라장이다. 급기야 진동벨을 쓰는 지점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당연히 예전과 같은 높은 스탠다드는 찾아볼 수 없다. 너무 많은 점포가 생기고 모든 점포가 알아서 손님으로 가득차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가끔 보면 직원들은 과부하가 걸려서 손님과의 관계 형성은 꿈에서조차 생각도 하지 않는 분위기인데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해도 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친절한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고 이제는 그냥 개인 차이가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은 다른 커피 브랜드와 특별한 차이가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본래 스타벅스를 특별하게 만들었던 철학이라던가 이상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로맨스도 없다. 저렴한 사치도 아니다. 도심 속 오아시스로 기능하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거의 가지 않게 되었는데 어쩌다 우연히 방문한 날 이렇게 새삼 다시 깨닫고 보니 씁쓸한 기분만 남는다.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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