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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페이블맨스 (The Fabelmans, 2022)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4.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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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라는 예술 형식에 바치는 러브레터라는 점에서 ‘더 페이블맨스’는 몇 달 앞서 개봉한 '바빌론(데이미언 서젤, 2022)'과 공통의 분모를 가지고 있다. 다만 한 소년의 개인적이고 매우 특수한 가족사가 직접적으로 세기적 변혁을 묘사하는 에픽보다 오히려 더 주제를 잘 전달하더라는 사실은 다소 뜻밖이기는 하다.


  이로서 네 번째 협업하게 되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극작가 토니 쿠슈너는 시대의 보편적 정서를 공유하는 파트너로 어김없이 훌륭항 궁합을 자랑한다. 그들의 교과서적 스크린플레이는 샘 페이블맨이라는 소년의 유년기에서부터 청년기까지를 따라가며 어떻게 이 소년이 영화라는 마법에 매료되게 되었는지를 탐색한다. 그 과정에서 부모로부터의 영향, 형제자매들과의 관계, 자아의 형성 과정, 학창 시절, 첫사랑, 졸업 무도회 등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더해지며 아름다운 성장물로 완성된다. 이미 잘 알려진 대로 상당 부분의 에피소드가 스필버그의 자전적인 경험에서 출발하였기에 소년 샘 페이블맨은 곧 어린 스필버그이기도 하다. 페이블맨이라는 소년의 라스트 네임, 즉 패밀리 네임 또한 (애너그램은 아니다) 스토리텔러를 의미하는 어원을 가지고 있으므로 어떤 의미의 설정인지 짐작할만하다.


  사실 ‘더 페이블맨스’를 극장에서 첫 관람했던 소감은 (즐거우면서도) 조금은 심심하다는 것이었다. 물론 요즘 영화들이 워낙에 간이 세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다름 아닌 스필버그의 작품이라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꿈의 공장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아이콘으로 그는 놀라운 상상력을 지닌 이야기와 당대 가장 혁신적인 영상 기술을 성공적으로 융합한 결과들로 한 시대의 역사를 만들어왔다. 하지만 모두가 (아무나?) 슈퍼 컴퓨터를 들고 다니는 오늘에 이르러 백전 노장의 선택이 가장 개인적이고 가장 소박한 아날로그 추억담이라니 문득 당혹스러운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위대한 마법사에게 위대한 수련생 시절도 없었다는 점에서 김이 새기도 한다 (요즘은 전기 영화를 만들 때 인물의 유년기/청년기를 악동 슈퍼 히어로 영화의 프리퀄처럼 만드는 짓도 서슴지 않는데 말이다). 하지만 두 번째 보았을 때 조금 느낌이 달라졌다. 가족사가 스토리의 정중앙에서 다루어지는 이유를 알게 되었고 지나치게 불안정한 탓에 거슬리게만 느껴졌던 소년의 어머니(미셸 윌리엄스) 캐릭터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 (스필버그는 이 역에 윌리엄스 외의 다른 배우를 생각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세 번째 감상을 마친 지금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후일 이 작품이 스필버그 후기 걸작 중의 하나로 거론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과거 그가 마법 같은 이야기들을 스크린 위에 펼쳐 놓을 수 있었던 이유는 ‘흥행의 보증수표’로 메이저 영화사로부터 빅 버짓을 받아 제작할 수 있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런 이유로 00년대 초반까지도 상업적이라 평가절하를 받는 경우도 많았지만 사실 이 전설적 스펠마스터의 가장 강력한 마력은 다름 아닌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주 기본적인 지점에 있었다. 너도 나도 빅 버짓을 장착하고 하이엔드 기술을 총동원하는 일이 너무 흔해졌지만 영화의 퀄리티는 하향 평준화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오늘의 현실이야말로 위대한 마법사가 왜 위대한지를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수준 미달의 영화들이 매주 스트리머를 통해서 수십 개씩 쏟아지고 더 이상 영화도 극장에서의 경험도 마법이 아니게 되어버린 오늘에 이르러 이 작품은 다음 세대의 ’페이블맨’을 꿈꾸는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한 번쯤 복기해 볼만한 기회를 제공한다. 

 

(2024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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