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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Killers of the Flower Moon, 2023)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3. 11.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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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월의 만월에 ‘플라워 문’이라는 별칭은 더없이 합당해 보인다. 하지만 작은 꽃들에게 오월은 도리어 시련의 시기가 되기도 하는데 큰 식물들이 자리를 잡고 볕과 물을 독차지하면 작은 꽃들은 봄의 절정에서 이내 이울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세이지족은 이 오월의 달을 ‘플라워 문’이 아니라 ‘플라워-킬링 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것이 비단 자연의 현상을 가리키지만은 않음은 충분히 짐작 가능한 일. 저술가 데이비드 그랜은 1921년 오클라호마 오세이지 카운티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을 다룬 논픽션 ‘킬러스 오브 더 플라워 문: 더 오세이지 머더스 앤 더 버스 오브 더 에프비아이 (2017)’를 통해 그 음울한 알레고리에 주목한다. 그리고 거장 마틴 스콜세지는 이 이야기를 3시간 26분 분량의 장편 영화로 옮겨내었다.


  오세이지 족은 (다른 인디언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선조의 땅에서 쫓겨나 백인들이 쓸모없는 땅이라고 여기던 지역에 정착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곳에 석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드러나며 부족은 ‘검은 축복’으로 부유해지지만 곧이어 ‘검은 저주’도 함께 그들을 찾아온다. 오일 머니와 그 권리를 노리는 사람들에 의해 이유를 알 수 없이 실종되거나 살해당한 오세이지 족과 그 주변인들이 최소 스물 네 명. 큰 식물들이 다시금 볕을 따라 고개를 디밀고 물을 찾아 뿌리를 뻗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네이티브 아메리칸에 대한 미국의 원죄는 오클라호마의 작은 카운티를 둘러싸고 다시 한번 변주된다. 현대사의 증인인 동시에 위대한 예술가로 마틴 스콜세지는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와 더불어 미국 백인 사회의 뿌리를 성찰한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파이팅이 넘칠 뿐 아니라 여전히 지구전에도 능하다. 특히 원작이 특수요원 톰 화이트를 중심으로 오세이지 카운티의 범죄와 연방 수사국의 태동을 연결짓는 구성을 취하고 있는 반면, 이 작품은 이야기의 중심을 오세이지 족 여성 몰리 카일 (릴리 글래드스톤)의 가족적 비극으로 어느 정도 옮겨 왔다 (註1). 이는 '오세이지의 왕' 윌리엄 K. 헤일 (로버트 드 니로)와 화이트 요원의 대결이라는 아주 손쉬운 접근법을 포기하는 선택이다 (註2). 이를 위해 스콜세지와 각본가 에릭 로스는 수 차례 스크린플레이를 뒤집었다고 하는데, 백인 중심의 내러티브 혹은 영웅적 사가를 지양하기 위한 이러한 노력은 주목할만하다. 또한 네이티브 아메리칸 사회와 충분한 소통과 협업을 바탕으로 완성한 사실상 첫번째 메이저 영화라는 점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다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어느 정도의 논란은 피할 수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상당 수의 네이티브 아메리칸들은 이 작품 역시 백인에 시선에서 문제를 바라보고 있으며 피해자들을 존중하지 않는다며 곱지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또한 약 한 세기 전의 이야기로 한정하면서 오늘날에 이런 차별이 계속되고 있음을 지적하지 않은 점도 한계로 지적받고 있다. 결정적으로 몰리의 남편 어니스트 버크하트(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의 복잡한 감정을 다루는 부분이 (디카프리오에게는 행운이었지만) 정작 이 작품에는 저주가 된 여지가 있어 보인다. 이는 민감한 소재 앞에서 영화의 균형을 잡는다는 것이 얼마나 까다로운 일인지를 보여준다. 물론 수 세기에 걸친 차별과 억압의 역사의 경우 당사자가 아닌 입장에서 말을 꺼내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 모든 민감한 이슈를 담아내면서 누구의 감정도 건드리지 않는 것이 과연 가능한 작업이기는 한지, 오랜 세월 누적된 문제를 한 편의 영화가 모두 해결하기를 요구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도 든다.  

 

(2023년 11월)

 

(註1) 그랜은 이후 마지막 3부에서 현재로 무대를 옮겨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은 사건들을 조사한다. 스물 네 명 이상의 희생자가 있을 가능성, 그 시절 수많은 헤일이 존재하며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재산을 노린 범죄를 저질렀을 가능성에 대하여 기술한다. 

(註2) 사실 원작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사실 문제의 ‘인디언 비즈니스’를 편견이나 차별을 갖지 않고 수사하고 정의를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특수요원 톰 화이트였다. 원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그 역할을 연기할 예정이었는데 이야기의 방향이 수정되면서 디카프리오는 몰리의 남편 어니스트 버크하트 역할을 맡기로 결정되고 대신 화이트 역은 제시 플레몬스에게 돌아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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