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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 (Napoleon, 2023)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3. 12.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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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들리 스콧의 신작 ‘나폴레옹’은 여러 가지 면에서 예상을 빗나간다. 영화가 역사적 인물을 다루는 방식에 있어 ‘위인전’이나 ‘일대기’ 혹은 ‘영웅담’과 같은 접근이 이제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음은 익히 알고 있지만, 스콧과 같은 노장이 너무 간단하게 (혹은 너무 쿨하게) 이런 흐름을 받아들이고 있음은 사실이 일단 의외로 다가온다. 이 작품에서는 불과 십여 년 전만 하더라도 전기 영화의 표준처럼 받아들여지던 공식들에서 많은 부분을 찾아볼 수 없다. 대신 현대적인 시각과 관점이 반영된 에피소드의 취사 선택 혹은 가공이 그 자리에 위치한다. 다만 이 대목에서 갸우뚱한 부분은 스콧이 하필 영국인이라는 사실. 그러니까 왜 굳이 영국인 감독이 하필 당시 프랑스와 나폴레옹 이야기를 전통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혹은 도전적인 방법으로) 다루려고 했는지에 대한 점이다. 물론 가장 유명한 나폴레옹 전기 중에는 영국의 작가 앤드류 로버트의 저술도 있고 또 영국 출신 애덤 자모이스키의 저술도 있으니 감독의 국적만을 문제 삼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위인전’ 혹은 ‘일대기’ 혹은 ‘영웅담’과 같은 접근을 너무 쉽게 포기한 지점에서 드러나는 접근법이 오해의 여지를 남긴다. 실제 이 작품은  군인, 전략가, 정치가, 외교관, 통치자, 개혁가, 저술가 등 나폴레옹을 평가하는 다양한 앵글 중에서 오로지 군인으로의 야망과 전략가로의 재능만을 강조한다. 이는 영화의 홍보 카피(“He came from nothing. He conquered everything”)와 그리 부합하지 않거나 (혹은 다른 의미에서) 지나치게 부합하는데, 사실 어느 쪽이든 문제라 하겠다.


  한편 (157분의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역사적 디테일을 세밀하게 다루지 않은 점 역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작품은 프랑스 대혁명과 로베스 피에르의 공포 시대에서부터 나폴레옹 시대가 저물기까지의 격렬한 사회적 변화가 있었던 28년 동안을 무대로 삼고 있지만 그 흐름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아 따라가기가 쉽지 않다. 국내 정세에 있어서는 왕정과 공화정을 둘러싼 혼란, 국제 정세에 있어서는 유럽 각국과의 이해관계 변화를 마치 역사책의 연표처럼 무미건조하게 열거해 놓았다. 불친절한 설명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그것이 인물의 생각, 판단, 결정, 행동과 서서히 분리되며 드라마를 약화시키는 점은 문제가 된다. 다시 말해서 그 시대의 가장 역동적 플레이어였던 나폴레옹이 이러한 시대상에 반응하여 움직이는 것이 과연 맞는지 의구심을 들게 만든다는 것이다.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항 한 상징적 인물을 (요즘 취향에 맞는) 복잡한 심리를 가진 개인으로 환원하려는 무조건적인 접근은 이래서 조금 위험하다. 그런 와중에 나폴레옹과 조세핀 사이의 사이코 드라마에는 (서로를 가스라이팅하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조커와 할리퀸의 병적인 관계를 연상하게 한다) 과도하게 에너지를 부여하는 점 역시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야 매력적이지만 이런 불분명한 작품의 의도와 결합하면 오해를 증폭시키고도 남을 치명적 결과가 나온다. 코믹스 영화의 빌런 혹은 첫 번째 적그리스도 혹은 예고편 히틀러를 연상하게 만드는 결과 말이다. 실제로 프랑스 쪽 여론이 좋지 않고 평단의 심기도 불편한 모양인데, 한편으로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비단 프랑스 사람들만이 에필로그에서 제시되는 짧은 노트의 내용과 그 전달 방식을 당혹스럽게 느끼는 것은 아닐 것이다.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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