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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멘탈 (Elemental, 2023)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3. 8.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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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픽사에도 암흑기가 다가올 가능성이 있을까?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질문을 던지기는 쉽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높은 퀄리티의 작품을 지속적으로 발표해 온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는 말 그대로 창의와 혁신의 상징과도 같았다. 모기업의 심장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고질적인 소재 리스크를 달고 다니는 점과 비교하면, 픽사는 모든 면에서 훨씬 안정적이고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작동했다. 오히려 한동안은 특유의 경이적인 창작 프로세스가 너무 철저하게 돌아가서 혹여 오버클럭 상태는 아닌지 염려해야 할 정도였다. 성인 취향 소재에 극단적으로 세공된 플롯까지. 때로는 과연 어린이 관객이 쉽게 따라갈 수 있을지도 의문이었다. 


  그렇기에 올 여름 등장한 ‘엘리멘탈(피터 손, 2023)’은 상당히 낯선 느낌을 준다. 픽사의 작품 같으면서도 어쩐지 픽사의 작품 같지 않기 때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상태의 스크린플레이가 어떻게 그들의 엄격한 프로세스를 통과했을까 싶다. 이야기는 헐겁고 캐릭터는 밋밋하며 심지어 구성까지 산만하다. 유머 감각 역시 내내 ‘스윙 앤 어 미스(swing and a miss)’다. 영상이야 늘 그랬듯 훌륭하지만 경쟁사들과의 기술 격차가 좁혀진 지금에 이르러서는 크게 두드러지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캐릭터 디자인이 몰입을 방해하지 않나 하는 의구심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파이어 엘리멘트’족을 표현하는 방법인데 가짜 벽난로(Fake Fireplace)처럼 일렁거리는 모습이 아무래도 몰입을 방해하는 역효과를 내는 것 같다 (차라리 2D 셀 애니메이션 시절이었으면 귀여웠을 수 있겠다). 한 마디로 총체적 난국이다. 어느 스튜디오에서나 범작이 나올 수는 있지만 픽사에서 범작이라면 거의 바닥권의 작품이 나왔다는 이야기나 다름이 없다. 이 작품은 위대하신 전임 CCO님께서 개인적으로 집착했던 ‘탈 것 프랜차이즈’ 정도를 제외하면 명실 공히 픽사의 커리어 로우로 기록될 가능성이 크다.


  이런 문제는 어느 날 터져 나오지 않는다. 사실 위험 신호는 이미 너무 안전한 길만 택했던 ‘루카 (엔리코 카사로사, 2021)’에서 울리기 시작했다. 한 번은 우연이겠지 했는데 정체성이 모호했던 ‘터닝 레드 (도메이 시, 2022)’가 뒤를 이었다. 작년에 ‘라이트이어 (앤거스 맥클레인, 2022)’가 간신히 더 이상의 추락을 막기는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아직까지도 우디와 버즈 없이는 안된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전에 없이 시퀄 프로젝트가 많아지는 현상 자체도 그리 긍정적이지 않은 징조이기도 하였다.) 그리고 ‘엘리멘탈’에는 수많은 불안 요소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드러난다. 과거 그들은 단순히 아이템을 잘 잡는 것이 아니라 그 아이템에 대한 통찰을 함께 가져갈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니다. 네 가지 엘리멘트가 구성하는 흥미로운 세계를 제시하기는 하나 이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결여되어 있다. 단순히 인종 문제, 이민자 스토리, 그리고 성장물의 조합이 위닝 샷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은데, 사실이라면 그들답지 않게 안이했던 셈이다. 물론 서로 다른 모습의,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며 살아가야 한다는 메세지는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이민자 정서에 대한, 정확히는 이민 2세대 사연에 대한 과도한 이입은 오히려 핵심 메세지를 흐트러뜨린다. 더구나 그나마 조화와 관용을 이야기함에 있어도 남녀 간의 로맨스에 한정하여 묘사하면서 치명적인 한계를 노출하고 만다.

 

(2023년 0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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