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Miracle, 2004) B평
by 김영준 (James Kim)개빈 오코너의 '미라클'이 가진 문제는 상징성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사실 그것이 스포츠 영화로의 순수한 에너지를 압도한다. 오프닝에서 1960-1970년대의 대내적으로 대외적으로 미국이 처한 어려운 상황들의 나열하고 있다는 것이 단적인 증거다. 스태그플레이션, 오일 쇼크, 닉슨의 워터게이트, 소련에게 역전당한 우주항공기술, 핵의 공포, 전쟁과 반전 시위, 방사능과 환경 오염, 색깔을 잃어가는 젊은 세대의 문화……. 몰락해가는 초강대국 미국의 다큐멘터리가 페이드 아웃되며 떠오르는 것이 바로 'Miracle'이라는 제목 - 바로 이 것이 아이스하키 영화를 소개하고자 준비된 오프닝이다. 도대체 어째서 스포츠 영화가 그런 액션을 취해야 했을까? 온당한 질문이지만 이상하게도 멋쩍다. 애초부터 이 작품은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굳이 부인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미국의 아이스하키 대표팀이 1980년 레이크 플래시드 동계올림픽에서 어떻게 세계 최강 소련을 꺽은 사건을 따라간다. 소련은 1964년 이후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네 번이나 딴 강팀에 1968년부터 올림픽 무패 행진을 이어오고 있었다. 반면에 미국은 잇따른 패배와 좌절로 아이스하키 팀이 공중분해되어 있었고 프로에서 밀려난 선수들과 대학 선수들이 팀의 대부분이었다. 소련은 고사하고 동구권 팀들만 만나도 고전하던 미국 아이스하키팀의 승전은 당시 미국인들에게 말 그대로 '미라클'이었다. 1980년 2월 22일 금요일. 미국은 아이스하키때문에 난리가 났다. 당시 미 대통령 카터는 선수들에게 곧바로 격려전화를 날렸고 외신들은 일제히 이변이라는 용어로 승전을 보도했다. 미국 사회는 이 사건을 냉전시대에 있어 하나의 의미있는 '이념적 승리'로 보았을 정도다. (사실 이 사건이 극화된 것도 처음이 아닌데 1980년대 초 스티븐 할라스턴 감독에 의해 텔레비젼용 영화 'Miracle on Ice'로 제작된 바 있다.)
이 작품의 정치성은 허브 브룩스 대표팀 감독을 제외한 대표팀 선수들에게 개성을 부여하지 않는 부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심지어 클라이맥스에 이르러서는 의도적으로 선수들의 얼굴이 아닌 가슴의 U.S.A. 세 글자를 비춘다.) 또한 준결승전인 소련 대 미국의 경기가 전체 러닝타임의 무려 4분의 1가량 되는 반면 (약 30여분이다) 소련을 이기고 난 다음 정작 '결승전'은 자막으로 처리해버리는 과감한 선택은 이 작품이 애초부터 그저 순수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었을 가능성을 의심하게 만들기에 충분하다.
(200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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