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1. 희재를 사람으로 만드는 방법
by 김영준 (James Kim)Q: 안녕하세요? 선생님. 다름이 아니고요 제가 요즘에 친구 때문에 고민이 많아서요. 그래서 연락드리게 되었어요. 제 친구 이름은…… 그냥 희재라고 하죠. 희재라는 남자앤데요. 아무튼 얘가 좀 그래요. 똥인지 된장인지 찍어 먹어보고도 분간을 못하는 애라는 걸 예전부터 알긴 했는데 최근 몇 년 사이에 점점 더 심해진 것 같아요. 희재의 문제는 말이에요. 자기가 정말 괜찮은 놈이라고 착각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싶어요. 그래서인지 태평양만큼 넓은 오지랖으로 '껴야 할 때'와 '껴선 안될 때'를 통 가리지 못하고 있어요. 그냥 집에 가서 혼자 거울 보면서 자뻑 놀이를 한다면 누가 뭐라고 한답니까? 그런데 툭하면 친구들 사이에 끼어들어 토를 달고(스스로는 이런 '막말'을 '독설'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더군요) 다툼을 일으키고야 마니 하는 이야기지요. 관심 한 번 받아보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을 흐려대니 하는 이야기지요. 특히나 최근 들어서 힘에 대한 집착이 대단해진 것 같아요. 반장이나 반장 주변에 있는 아이들을 졸졸졸 쫓아다니며 엉덩이를 핥아 보더니만 그 맛에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어요. 자기는 남의 인격을 밥 먹듯 모독하는 주제에 반대로 누가 자기를 깔본다 싶으면 여지없이 발끈하여 명예훼손을 운운하고(초딩 주제에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을까요?) 나서는 것도 자기에게 힘이 있다고 자부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싶어요. 솔직히 학급 친구들도 다 그 앨 싫어하고요. 사실 담임 선생님도 반쯤은 포기한 것 같아요. 어쩌다가 이런 병맛이 우리 반에 들어왔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제발 우리 희재, 사람 만드는 방법 좀 알려주십시오.
A: 우리 양산박 어린이가 참 착하네요. 친구를 걱정할 줄도 알고요. 다만 친구를 '병맛'이라고 부르는 것은 옳지 않은 일이에요. 아무리 그 친구가 평균 이하의 저질 됨됨이를 가졌다고 해도 말이에요. 아무리 그 친구가 제 주제도 모르고 설쳐댄다고 하더라도 말이에요. 그런 딱한 친구들까지 너그럽게 끌어안을 수 있어야 나중에 양산박 어린이도 희재 친구와는 다른 '큰 사람, 큰 사발' 신(辛)라면적 어른이 될 수 있는 것이랍니다. 그 점만큼은 우리 산박 어린이도 진심으로 반성해야만 한다고 선생님은 생각해요. 알았죠? 약속해요. 그리고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마음을 놓아도 될 것 같아요. 선생님은 희재 친구 같은 '병맛' 친구들을 치료하는데 풍부한 경험을 가진 스페셜리스트니까요. 희재처럼 위태로운 아이들을 어엿한 사람으로 만들었던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답니다. 이 분야의 검증된 전문가이자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권위자의 입장에서 선생님은 다음 여섯 가지 방법 중 하나를 강력 추천하고 싶어요. 최종적으로 어떤 방법을 택하느냐는 물론 산박 어린이와 친구들에게 달린 것이겠지만 말이에요.
1. 신경 끄고 그냥 냅둡니다: 염치없는 이야기처럼 들릴 것을 압니다. 양산박 어린이는 제게 희재를 사람으로 만들 방법을 일러달라고 메일을 주셨는데 그냥 냅두라니요. 염치가 없어도 참으로 염치가 없는 소리처럼 들릴 것을 압니다. 양산박 어린이의 입장에서는 "아니 그러면 당신이 희재랑 다를 게 뭐있어?" 라는 생각을 하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차원에서 이 방법이 가장 사회경제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임을 고려하지 않을 수가 없겠습니다. 네, 분명한 사실입니다. 그냥 냅두는 것입니다. 영어로는 레리삐고 일어로 시마이입니다. 희재 친구와 같은 유형의 어린이들은 전적으로 남들 관심을 먹고 삽니다. 혹시 엄마가 봐줄 때까지 벽에 머리를 박아대는 무섭게 집착적인 꼬마들을 본 적이 있는지요? 바로 그런 것입니다. 희재 친구의 삽질은 관심을 받을 수 있다는 희망이 있는 한 계속될 것입니다. 이 병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말이에요. 자신의 전략이 틀렸음을 온몸으로 절실하게 느끼는 것이랍니다. 애가 벽에 머리를 짓찧으며 무언의 시위에 나섰다고 엄마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한달음에 달려간다면요? 다음번에도 자기 의사를 관철시키려 똑같은 뻘짓을 반복하는 겁니다. 이때 그냥 놔둬야 해요. 마치 보이지 않는 것처럼,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그냥 놔두는 겁니다. 이마가 깨지거나 제 풀에 지쳐 실신하면 어떻게 하냐고요? 적어도 하나 깨닫는 것은 있겠지요. 애를 사람으로 만드는 데 이마 하나면 싸게 먹힌 것이 아니겠습니까.
2. 사람이 될 때까지 엉덩이를 맴매합니다: 세계 공통의 사람 만들기 방법입니다. 무릎 위에 뒤집어 엎어놓고 때리고 때리고 또 때리는 것이지요. 춘하추동, 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일이 지나도록 때리고 때려서 사람 아닌 것이 사람이 되길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 사이 엉덩짝에 푸른 멍이 들고, 그 멍이 다시 원숭이 거기처럼 빨개지고, 그것이 다시 피가 죽어 까맣게 변할 것입니다. 또 물집도 생기고 그 물집이 터지고 다시 또 물집이 생기는 일도 반복되겠지요. 아무래도 팔에 무리가 가서 혼자 때리기 버겁기도 할 텐데요. 국민노예 정현욱이나 선상노비 정재복처럼 어깨에 무리가 가면 큰일이니, 두세 명이 교대조를 이루어 365일, 24시간 내내 비는 시간 없이 희재 친구 엉덩짝에 불이 꺼지지 않도록 이어가기를 권합니다. 이처럼 힘도 많이 들고 시간도 오래 걸리는 방법을 왜 쓰느냐. 그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희재 친구가 사람답지 못한 까닭은 아직 인성이 함양되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거든요 (미안합니다. 그건 양산박 어린이의 잘못도 희재 친구의 잘못도 아닙니다.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우리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인성이란 얼마 전 한 영화에서 엉덩이를 드러내어 화제가 되었던 배우가 아니에요. 인성(人性)이란 사람의 성품을 두고 하는 말이지요. 이 방법이 정말 효과가 있느냐고요? 아 글쎄, 일단 한번 맞아보시라니깐요.
3. 동굴에서 백일 동안 쑥과 마늘을 먹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 민족 고유의 사람 만들기 방법입니다. "백일동안 동굴에 갇혀 쑥과 마늘만으로 '투-푸드 다이어트'를 감행하면 곰도 사람이 되고 호랑이도 사람이 된다." 아직 확신할 단계는 아니지만 이 방법을 통해 희재 친구도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혹시 그가 한낱 금수들보다도 못하다면 또 모르겠습니다만). 과연 백일을 견딜 끈기가 있느냐가 관건이기는 하지만, 산박이 어린이가 묘사하는 희재 친구의 성정에 비추어 볼 때 "누구누구라면 충분히 해냈을 것" 따위의 말로 살짝 호승심만 자극해 준다면 우리가 굳이 강요하지 않아도 제 오기에 못 이겨 백일을 견딜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방법의 가장 큰 효과는 일단 백일 동안은 희재 친구를 볼 일이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세상이 한결 깨끗하고 맑고 자신 있어지는 '클린 앤 클리어 모이스쳐 라이징 앤 폼 클렌징'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요. 단 한 가지 문제는 물가가 이렇게나 오른 마당에 백일치 쑥과 마늘값을 누가 댈 것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농수산물유통공사의 농산물유통정보 사이트에 따르면 2009년 5월 기준 깐 마늘 상품 1킬로그램의 도매가는 3,213원이고 소매가는 5,950원이라고 해요. 사람 아닌 것이 사람 되는 데 깐 마늘과 쪽마늘 간에 효과 차이가 있을까요? 또한 상품(上品)과 중품(中品) 사이에 효능 차이가 있을까요? 아직은 연구 중에 있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부분입니다. 하지만 백일동안 처먹이려면 어쨌든 돈이 들어가겠지요. 그 돈을 어떻게 충당하느냐가 이 방법의 관건이 될 것입니다. 다른 학우들의 귀중한 급식비가 단 1원도 함부로 유용되어서는 안 될지니, 불쌍한 인생 하나를 사람으로 만드는 숭고한 일에 쑥값 마늘값 정도는 대수겠냐는 대인배 호걸 오빠들의 쾌척이나 있기를 기대해야 할 것입니다.
4. 하민역씨와의 만남을 주선합니다: 여기서 하민역씨는 양산박 어린이가 생각하는 그 사람이 아닙니다. 이 글에서 말하는 하민역은 천안 삼거리에서 '하민역의 만두통신'이라는 만두집을 운영하는 만두집 주인이십니다.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닥치고' 돌아간다고 단단히 자부하는 이 분은 만두 속으로 부추, 당근, 양파, 대파, 두부, 숙주, 쇠고기, 김치, 마늘, 생강, 계란 대신에 남들의 관심과 분노를 모아 모아서 넣으십니다. 말하자면 이런 식입니다. 손님 중에 김치 만두가 좋다는 사람이 아홉 명이고 고기 만두가 좋다는 사람이 네 명이라고 해봅시다. 그럼 그는 김치 만두와 고기 만두를 반반씩 잘라 붙여 하나의 괴물 만두를 만듭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닥치고 먹어봐. 이게 중립의 맛이야." 그런 무서운 분과 함께 하는 만큼 희재 친구에게도 모쪼록 유익한 시간이 되리라 기대합니다. 프로젝트명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이 되겠습니다.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란 이 둘이 서로 뜨거운 애정을 주고 받게 된다면 더없이 바람직한 일이겠습니다만, 솔까말 서로 싫어할 확률이 대단히 높습니다. 다만 우리 조상들이 이이제이(以夷制夷)라고 오랑캐는 오랑캐로 견제했었던 것에서 배우잔 말이죠. 하민역씨를 만나고 희재 친구가 그나마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더란 한 가지만 알게 된다고 하더라도 얼마나 값진 일이겠습니까.
5. 사회봉사로 1,500시간쯤 선고하여 미운 일곱살짜리 유치원생들을 멘토링하게 합니다: 2008년작 영화 '사람 만들기(Role Models, 데이비드 웨인)'을 두고 하는 이야기예요. 어떤 영화냐고요? 우연히 사고를 낸 두 명의 세일즈맨이 사회봉사명령을 받습니다. 불법 주차로 견인되어 가는 차를 훔쳐서 달아나려다가 문제가 생긴 것인데요. 법정은 감옥에 가던지 사회봉사로 문제아들의 멘토가 되어주는 가던지,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하라고 요구했던 것이지요. 당연히 그들은 후자를 택합니다. 그리고 뻔한 도식이지만 며칠 만에 "차라리 감옥에 가는 게 나을 뻔 했다"는 푸념이 절로 나올맨치로 개고생을 합니다. 왜냐고요? 아무리 제 구실을 못하는 오사리 잡것이라고 하더라도 자기 같은 잡것들을 스스로 견딜 수는 없는 법이거든요. 어디 한번 찐하게 당해보라죠. 아무리 지금의 희재 친구가 미운 일곱 살만도 못한 철부지랄지라도, 아무 이유 없이 울고 불고 싸고 짜고 화내고 열내고 소리 지르고 생떼 부리는 진짜 미운 일곱 살들을 돌보다 보면 깊이 느끼는 바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6. 묶어서 지하 창고에 가둬놓고 대역 희재를 세운다: 프로젝트명 '세상에 너를 소리쳐'가 되시겠습니다. 사람 아닌 것을 사람 만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그렇다고 깔끔하게 포기하고 도인처럼 초탈하는 것도 마음 먹은 대로 되는 일은 아니잖아요. '사람'을 바꿀 수 없다면 '사람'이라도 바꿔야죠. 투입되는 노력 대비 가장 효과가 확실한 방법입니다. 삼백육십오일 내내 엉덩이를 맞아도 사람이 되지 못할 확률이 있습니다. 백일동안 쑥과 마늘을 먹여도 사람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민역씨를 만나고도 그 독한 자뻑 기질이 고쳐지지 않을 수가 있습니다. 미운 일곱 살 애들이 할퀴고 물어 뜯는다고 자기도 나서서 애들을 물고 뜯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희재 친구를 '새로운 희재 친구'로 아예 바꾸어 버린다면, 더 이상 문제는 생길래야 생길 수가 없는 것이지요. 덜 거만하고, 더 교양있고, 덜 까불고, 더 배려하고, 덜 나서고, 더 사려깊은, 덜 깝치고, 더 진지한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울만치 정말 괜찮은) 희재 친구의 대역이라면 학급을 보다 맑고 깨끗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하실에 묶어 가두어 놓은 진짜 희재 친구가 극적으로 탈출만 하지 않는다면 이 방법은 효과 백프롭니다. 고로 희재 친구를 꽁꽁 묶어두시길 바랍니다. 포승, 수갑, 사슬, 안면보호구 등 4종 계구세트는 물론이고 공업용 케이블(전기줄)과 청 닥트 테이프를 추천합니다. 또한 작죄구나 다름 없단 희재 친구의 입을 막아야 할 테니 따로 재갈도 필요할 것입니다. 다만 "힘 있는 친구들의 엉덩이를 그렇게 좋아한다더라"는 양산박 어린이의 증언에 비추어 볼 때, 희재 친구에게는 '특정 차원 및 특정 개념에서의 복종적 기질'이 다분한 것으로 보이니 재갈은 꼭 가운데 고무공 따위가 달리지 않은 정통 말재갈을 사용하기를 권합니다. 이유는…… 어린이들은 몰라도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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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약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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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작죄구(作罪口)를 가진 희재 친구를 위해 - 정말 그의 이름이 희재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그 밖의 무슨 이름을 가진 친구던 말입니다 - 천수경(千手經)에 나오는 진언 하나 외우면서 이만 상담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정구업진언(淨口業眞言)이라고 입으로 지은 죄를 깨끗이 하는 진언이에요.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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