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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 정치같은 건 믿지 않지만

낙농콩단/Season 6-10 (2006-201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0. 1.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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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산박은 지난 13일 오락유희부 장관으로 지명을 받았다. 정계에 소문으로만 떠돌던 일이 끝내 사실로 드러난 셈이었다. 만약 그가 성공적으로 장관자리에 앉게 된다면 장차관 주요 요석을 모두 절친 측근으로 채우는 데 성공한 문사철 총리는 향후 국정 운영에 탄력을 받게될 것이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사실도 있었다. 총리만큼이나 이 지명 건을 민감하게 생각하고 있는 이들이 또 존재한다는 것 - 바로 코와붕가족 외계인들이다. 인류로부터 38억광년 떨어진 은하계에서 살던 이들은 자신들 행성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게 되어 종족의 명운을 걸고 새로운 행성을 물색하던 중이었다. 그때 듣게 된 것이 바로 지구에 대한 소문. 상태가 썩 좋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반쯤 썩어버린 자기들 행성보다는 낫다고 판단한 이들은 국민투표를 거쳐 지구를 새 보금자리로 지명하는데 합의했다. 이른바 '지구 접수 10개년 계획'의 시작이었다. 방법은 간단했다. 하지만 확실했다. 그리고 조용했다. 주요 요직의 인물을 제거하고 자신들 중 하나를 대신 집어 넣기만 하면 되는 일이었다. 따지고 보면 인류가 유사 이래 내내 권력 교체 시기마다 해오던 방법 그대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일이 제대로 진행되어 조만간 모든 사회 지도층을 바꿔치기 할 수 있게 된다면, 올레! 모든 코와붕가족이 특권 귀족층이 되어 미개 지구인을 노예처럼 부리며 사는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그 옛날 코와붕가족의 아버지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께서 천명하셨던 만민평등시대의 개막이 이제 목전에 있었다.

 

*

 

  양산박이라는 남자는 (당연히) 모두가 알고 있는 양산박이라는 남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 안에 실제 자리잡은 존재는 코와붕가 출신 외계인 '달하 노피곰 도다샤'였다. 단지 겉모습만 양산박처럼 보일 뿐이었다. 진짜 양산박은 우주 밖으로 던져버린지 오래다. 올해 초 뉴스에 보도되었던 우주편도선 '배틀스타 허브갈릭티카'의 C열 78번 에어락 개폐 사고는 괜히 심심해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당시에는 낡고 오래된 짐짝과 그만큼 오래된 엔지니어 몇 명, 그리고 망가진 빵셔틀 두 개만이 날아가 버린 것으로 알려졌지만, 바로 그 망가진 빵셔틀 바닥면에 6개월 후 오락유희부 장관 후보로 지명될 남자가 반용접 상태로 묶여있었던 것이다.

  진짜 양산박이 우주 미아가 되어 정처없이 별무리 사이를 떠도는 동안, '달하 노피곰 도다샤'은 양산박으로의 완벽한 변신을 꾀했다. 양산박의 얼굴을 본따 자신의 얼굴을 만들었고 양산박의 키와 몸무게에 맞춰 자신의 몸뚱이를 늘이고 줄였다. 미리 저장해두었던 양산박의 지문과 족문과 장문을 자신의 손과 발에 임플란트하였으며 양산박의 목소리 지문을 자신의 발성기관에 다운로드하였다. 양산박의 지식과 경험과 기억 역시 자신의 500 기가 바이트 용량 씨게이트 하드 디스크에 옮겨 담았음은 물론이다. 마지막으로 내추럴 하드 타입의 왁스를 발라 헤어 스타일을 조금 만져주니, 감쪽같이 양산박처럼 보였다. 누가 봐도 의심없이 양산박이라 생각할 것이 확실했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가, 아니 '지구 접수 10개년 계획'을 추진하는 코와붕가족 지도부가 양산박을 타겟으로 선정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인간들 세계에 소문이 돌기 훨씬 전부터 코와붕가족 외계인들은 차기 오락유희부 장관에 양산박이 지명될 줄을 알고 있었다. 심지어 전임 오락유희부 장관 초대졸이 멀쩡히 출퇴근을 하던 시절에도 말이다. 현재 시인과농부, 닥터이라부, 슈퍼차부부, 어린가정부 등 4부 12처를 이미 장악한 코와붕가족 외계인들의 입장에선 마지막 주요부처 중 하나인 오락유희부를 반드시 손에 넣어야만 했다.

  처음에 그들은 초대졸 장관을 직접 바꿔치기 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빵셔틀 바닥에 묶여 영원한 편도 여행을 떠날 남자는 양산박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초대졸 장관의 수행비서를 가장하여 심어놓은 또다른 코와붕가족 '님하 제발 매너염'의 보고에 따르자면 장관이 정기적으로 최소 수 명의 (어쩌면 최대 수십 명의?) 상대와 외도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자웅동체로 진화한지 10억년이 지난 코와붕가족의 관점에서는 문자 그대로 '충격과 공포'였다. 물론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조용히 지나가면 다행이겠지만 일단 터지고 나면 그 책임을 누가 진단 말인가? 만약 초대졸 장관의 몸을 강탈해 그 자리에 코와붕가족을 꽃아넣었다가 정말 스캔들이 비화되기라도 하면 동족을 위해 희생한 누군가의 인생을 어찌한단 말인가? 그래서 그들은 그 옛날 코와붕가족의 아버지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께서 내려주신 보석같은 잠언에 따라 ("네 동족에게 고초를 겪게하지 말라") 새로운 전략을 세웠다.

*


  그런 이유로 그들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확실한 길을 택했다. 초대졸 장관을 포기하고 차기 후보자의 몸을 강탈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코와붕가 정보기관을 총동원해 알아낸 결과, 가장 유력한 후보가 바로 전 국민오락처장 양산박이었다. 3대 정보기관장이 모두 양산박을 지목했다. 여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아래와 같이 크게 네 가지로 요약 가능했다. 

 

① 양산박은 잘 생긴 정치인으로 신망이 높았다. 지구인들은 잘 생긴 정치인을 지나치게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KBI 보고서, 38쪽). 
② 결혼 20년 동안 한 번도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가정적인 남자다. 전임자가 성적 스캔들에 연루되어 물러나게 될 예정임을 (물론 음지에서 물밑 작업을 하는 주체는 우리일 것이다) 감안할 때 이는 차기 후보자 선정에 결정적 요소로 작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같은 보고서, 48쪽).
③ 시시껄렁한 푼돈 뇌물을 받기에는 너무 잘 사는 집안 출신이다. 지구인들은 재산을 5억으로 신고한 후보자는 분명 삥땅쳤을 거라 생각하면서 반면 50억으로 신고한 후보자는 굉장히 솔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독특한 경향이 있다 (같은 보고서, 62쪽).
④ 가장 결정적으로 문사철 총리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동기다. 지구인들이 상당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인연의 개념에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같은 보고서, 88쪽).



  양산박은 이런 사람이었다. (잘 사는)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소일거리로) 풀빵을 팔며 (어렵지 않게) 고등학교까지 마쳤다. 이후 (지역 유지인) 아버지와의 갈등 끝에 (별 이유없이) 검정고시를 거쳐 최고 엘리트만 들어갈 수 있다는 서울대 호텔조리학과(김치 발효 전공)에 차석 입학했다. 이때 수석 입학생이 지금의 문사철 총리. 학부를 졸업한 이후 양산박은 풀뿌리 장학생(빈농의 아들 전형)으로 독일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 뜻밖에 그곳에서 독일 코미디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된다. 그는 유학에서 돌아와 남다른 오락 감각을 발휘, 인기와 명성을 쌓았다. 물론 덤으로 부도 쌓았지만 워낙에 잘 사는 (빈농) 집안의 자식이라 티가 나진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국가의 부름을 받게 된다. 당시까지 오락부라고 불리던 현재의 오락유희부에 들어가서 말단직에서부터 차근 차근 승진을 거듭, 절친 문사철이 총리직에 오르던 해 오락유희부 제 3차관까지 올라갔다. 하지만 이듬 해 'OECD 국가 중 국민 우울증 1위'라는 참담한 결과에 책임을 지고 "못 웃겨드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사퇴. 현재는 학계로 돌아가 후진 양성에 힘쓰는 중이었다. 

 분명 자수성가 타입에 말단 공무원 신화까지 갖췄으므로 매력적인 인물임은 확실했다. 물론 자격도 충분했다. 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사직서를 수리할 수 밖에 없었던 문사철 총리가 그를 다시 불러낼 기회를 벼르고 있었다는 점도 긍정적인 요소였다. 사생활 깨끗하지, 잘 생겼지, 집안 좋지, 학벌 좋지, 능력 있지, 뭐 어디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인물로 총리가 애닳아할 카드인 것만은 확실했다. 다만 유감스럽게도,
 
  그게 다는 아니었다.

 

*


  '달하 노피곰 도다샤'에겐 안 된 일이지만, 양산박 또한 코와붕가 사람들 생각만큼 흠결없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인사 청문회 직전 공개된 자료에 따르자면 그랬다. 야당인 무가당의 역세권 의원실에서 배포한 보도자료에 명기된 양산박 장관후보자를 둘러싼 이슈는 비단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첫째가 위장전입, 둘째가 논문중복게재, 셋째가 병역비리. 넷째가 뇌물수수. 이쯤되면 누구 말마따나 '의혹 풀코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었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도대체 이게 다 뭐란 말인가. 은하계 최고의 쌍끌이 정보망을 자랑하는 코와붕가 3대 정보기관이 어떻게 이걸 다 놓쳤단 말인가? 이제 다가올 인사청문회의 맹공을 어떻게 견뎌야한단 말인가? 눈 앞이 캄캄했다. 당연히 이쯤되면 의혹 백화점인 양산박을 포기하고 빨리 '플랜 B'를 생각해야겠지만 문제는 우주 공간을 떠다니고 있는 진짜 양산박을 데려올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렇다고 냅다 발을 빼서 갑자기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후보지명자가 사라지는 소란을 일으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괜히 여기서 일이 잘못 틀어지면 코와붕가족의 지구 강탈 계획 전체 그림마저 어그러질 수도 있을 것이다. 때문에 코와붕가족 지도부는 '달하 노피곰 도다샤'에게 계속 양산박으로 연기하며 청문회에 참여할 것을 요구했다. 참으로 무심하다 못해 잔인한 요구였다. 그 옛날 코와붕가족의 아버지 '얄리얄리 얄랑셩 얄라리 얄라'께서 내려주신 보석같은 잠언 따위는 어디다 엿 바꿔 먹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


  인사 청문회가 시작되었다. 여당과 야당을 막론하고 맹공이 쏟아졌다. 하지만 기억이 날 리가 없었다. 그건 양산박의 기억이지 '달하 노피곰 도다샤'의 기억이 아니었으니까.

  위장전입, 논문중복게재, 병역비리, 뇌물수수. 젠장맞을. 도대체 뭘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감이 서지 않았다. 일전에 다운로드 받아두었던 양산박의 기억을 검색해보아도 당최 걸리는 것이 없었다. 전입을 여러 차례 신청하기는 했는데 그게 위장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었고, 논문을 펌프질하듯 쏟아냈는데 그게 중복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었다. 이래 저래 받은 게 워낙 많기는 한데 더대체 그 중에 뭐가 뇌물이고 뭐가 선물인지 구분이 가지 않았다. 어쩌면 너무 암묵적으로 다들 공공연히 하는 일이라 기억의 주름에 미처 새겨지지 않았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병역비리 역시 그랬다. 양산박이 면제를 받은 것은 확실한데 '강직성 척추염'이 진짜 있었는지 '달하 노피곰 도다샤'가 도대체 무슨 수로 알겠는가. (잠깐! 몇 달 전까지 포천에서 스노우보드 타고 날아다닌 기억은 뭐지?)

  아오! 이 망할 자식은 지금쯤 은하계 어디쯤을 떠다니고 있으려나!

  운이 좋아 기억을 뒤져 진술을 찾아냈다고 치자. 그래도 문제 아닌가? 솔직히 실토하기도 껄끄럽고 기억이 났음에도 계속 모른다고 잡아떼기도 찝찝했다. 코와붕가족 지도부에서 그런 세세한 지침까진 내려주지 않았단 말이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그의 아버지가, 또 아버지의 아버지가, 또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가르쳐왔던 정직의 미덕에 따라 있는 그대로 답했다.

-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불행하게도 그 말에 청문 위원들은 흥분하기 시작했다. 이제 양산박은 단순히 결격사유가 있는 장관 후보자가 아니었다. 파렴치한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그것도 거짓말을 하지 않기 위해 기억을 선택적으로 조절하여 거짓말을 하는 악랄한 인간으로 전락했다. 코와붕가족이 일찍이 심어두었던 여야 의원 몇몇이 교묘하게 쉴드를 쳐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테면 "큰 일 하며 바쁘게 사시다보면 그런 사소한 일은 깜빡 잊을 수도 있겠죠?" 등등) '달하 노피곰 도다샤'는 궁지에 몰렸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속된 말로 탈탈 털렸다. 

  너무 억울했다. 양산박은, 아니 '달하 노피곰 도다샤'는 정말로 그 이유를 모르기 때문에 모른다고 했을 뿐이다. 어쩌다 양산박의 신체를 강탈하여 양산박이라는 남자로 행세를 하고는 있지만 '달하 노피곰 도다샤'는 정말로 깨끗하고 올바르고 도덕적인 코와붕가 외계인이었다. 평생 남에게 흠 잡힐 일이라고는 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처럼 '지구접수 10개년 계획'의 일선에서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코와붕가족의 고위 공무원 선발 기준을 말할라치면 변태적으로 엄하고 변태적으로 꼼꼼해 어설피들은 명함조차 내보기도 어려웠다. 그 바늘구멍을 뚫고 당당하게 이 자리에 오른 '달하 노피곰 도다샤'다. 코와중가족에게 위장전입이나 논문중복게재같은 개념은 없었지만 뇌물수수 따위는 평생 근처에도 가본 일이 없었다. 특히 병역. 빌어먹을 병역. 여러분은 이걸 아셔야 한다. 인구가 적고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내내 외세의 침입에 시달렸던 코와붕가족의 의무복무기간은 무려 84개월에 달했다. 그 시간을 용케 참아낸 자랑스러운 코와붕가 육군 병장 '달하 노피곰 도다샤'다. 다른 건 모르겠으나 그것만큼은 굉장히 자존심이 상했다. 본명 갔다 온 걸 자꾸 안 갔다왔다고 몰아세우니,

이런 칸첸중가같은 일이 있나.

 

*


  21일 인사청문회가 끝났을 때 그의 체중은 1.5킬로그램이 줄어있었다. 꼴에 또 장관직이라고 내일 22일에도 2차 인사청문회가 또 계획되어 있었다. 죽을 맛이었다. 술이 생각났다. 독한 놈이 필요했다. 주위를 물리고 사무실에 들어가 스카치를 따르는데 벽장에서 누군가 나와 백허그를 했다.
- 오늘 고생 많았지? 자기야. 수고했어. 

  놀랍게도 이 나라의 지도자, 문사철 총리였다. 총리께서는 양산박 후보자의, 아니 '달하 노피곰 도다샤'의 얼굴에 대고 당신의 얼굴을 부비부비하셨다. 양산박은, 아니  '달하 노피곰 도다샤'는 잠시 고민했다. 이윽고 그런 총리의 행동이 무척 친한 친구 사이에 벌이는 장난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는데 자기 입술에 총리의 입술이 와 닿는 감촉을 느꼈기 때문이다. ('어머머! 둘이 그냥 동창에 그냥 절친에, 그냥 교회 친구일 뿐이라더니!) '달하 노피곰 도다샤'는 몸을 뒤로 빼어 어색한 상황을 피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번에는 총리의 손이 그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이마에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총리는 끈적한 목소리로,
- 여론이 나쁘기는 하지만 잘 될꺼야. 난 선거 출마했을 당시 상대 후보에게 '의혹 코스트코' 소리까지 들었지만, 봐! 지금 멀쩡히 총리 일 잘 하고 있잖아.
라고 말했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가 느끼는 감정은 쾌감과도 거부감과도 거리가 멀었다 (앞서 언급했다시피 코와붕가족은 수 억년 전에 이미 자웅동체로 진화하지 않았는가). 그가 염려하는 것은 오직 임무였다. 코와붕가족의 명운이 걸린 임무.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의혹 코스트코'는 그의 귀에 뜨거운 숨을 불어넣으며 이렇게 속삭였다. 
- 난 정치 같은 건 믿지 않지만 그게 너라면 믿는단 말야. 

  '달하 노피곰 도다샤'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하는데 너무도 당혹스러운 나머지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참 심상찮은 하루다. 아 글쎄, 총리와 오락유희부 장관후보자가 그렇고 그런 사이일 줄을 누가 알았겠냐는 말이다. 이건 뭐 양산박 후보자 하나 '뻥카'로 판명되며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총리가 남자를 좋아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건 둘째 치더라도 결정적으로 연인을 장관직에 지명한 셈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 이 정부는 한 방에 안드로메다 은하까지 날아가버릴 것이다. 당장 들고 일어나 부글부글 끓을 기관 단체 이름을 단숨에 오십개는 떠올릴 수 있었다. 그럼 코와붕가족이 지난 10여년간 꾸준히 기울여오던 지구 접수의 노력도 물거품으로 돌아갈테지.

  '달하 노피곰 도다샤'의 마음이 착잡해졌다. 어떻게 이 놈의 나라에는 무난한 놈들이 없어요. 죄다 버라이어티야. 또한 우주 최고의 정보력을 가졌다면서 그걸 또 잡아내지 못하는 코와붕가 3대 정보기관은 또 뭐하는 놈들인가. 어느 놈 신체를 강탈하면 좋을지 그거 하나 딱딱 못 맞추니 한심한 일이 아닌가. 막말로 애초에 인사 검증 시스템 자체가 글러먹은 게 아니냐는 말이다. 

  그러니 여러분, 

행여 앞으로 온갖 의혹을 안고 인사청문회에 불려나가 힘들어하고 괴로워하며 눈물마저 글썽이는 내정자를 보시거든, 불쌍한 코와붕가족 외계인이 억울하게 독박을 썼구나 하고 너그러이 이해해주시길 바란다. '달하 노피곰 도다샤'의 경우에서 보듯, 보이는 그 사람이 꼭 그 사람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순진한 외계인들이 자기가 저지르지도 않은 일 때문에 고초를 겪는다면 얼마나 억울한 일이겠냐는 말이다. 그들은 그저 지구를 정복할 의도 밖에는 없었는데.

(2010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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