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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9. 진화의 한 장면

낙농콩단/Season 6-10 (2006-2010)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8.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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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주주 동물원>의 A3-27 우리입니다. 뉴스를 꼭 챙겨보시는 분들이라면 아마도 우리 동물원의 이름을 아침 뉴스에서 들어보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네, 그렇습니다. 바로 며칠 전 큰 화재가 있었다는 바로 그 동물원입니다. 문제의 화재로 우리 <주주 동물원>은 인간 돈으로 약 1억 3천만원 가량의 피해를 입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발화지가 여기 바로 옆옆 방인 A3-29 우리였습니다. 맞습니다.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A3-29는 오랑우탄 우리, A3-28은 고릴라 우리, A3-27은 우리 침팬지들의 우리입니다. 사람 눈에는 그 놈이 그 놈이지 뭐가 다르냐 하실지 몰라도 그게 그렇지가 않습니다. 오랑우탄과 고릴라 사이에 졸졸졸 작은 실개천이 흐른다면, 고릴라와 우리 침팬지들 사이에는 콸콸콸 커다란 강이 하나 흐르는 셈이라고도 볼 수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 제발 저 사이비 유인원들과 우리를 비교하지 마시길!) 


  아무튼 전문가들은 A3-29 오랑우탄 우리에서 화재가 발생한 원인으로 동물원 조명 시설 노후화에 따른 누전을 지적하였습니다. 듣기로는 오랑우탄 세 마리가 심각한 화상을 입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 내 시설 대부분이 심각하게 훼손되었다고 합디다. 뿐만 아니라 바로 옆의 A3-28 우리와 우리 A3-27 우리까지도 나무를 타고 불이 번졌습니다. 인간 소방관들이 재빠르게 출동해 불길을 잡아주지 않았다면 우리 침팬지 식구들까지 모두 훈제 통구이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일로 우리들의 인생, 나아가 동물계 척상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침팬지속 침팬지종의 명운에 결정적 터닝 포인트가 찾아오리라고는 과연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요?


*


    사건은 며칠 전 화재 과정에서 길 잃은 비둘기 한 마리가 불길에 휩싸여 우연히 우리 우리 안으로 떨어지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우리는 가엾은 비둘기를 살려주고 싶었지만 (오호, 통재라!) 이미 숨이 끓어진 다음이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깃은 모두 (깨끗하게) 타버리고 살은 완전히 (알맞게) 익어버린 상태였습니다. 쯧쯧쯧. 우리는 안타까운 마음에 혀를 찼습니다. 관리인들이 볼 수 있도록 잘 거두어 우리 가장자리에 가지런히 놓아두었습니다. 그런데 관리인들은 화재가 발생한 A3-29 오랑우탄 우리에 신경을 쓰느라 정신이 없어 비둘기 따위에는 관심도 없더군요. 아니, 비둘기는 고사하고 우리 침팬지들에게도 눈길 한번 주지 않더군요. 그래서 일이 커진 것입니다. 


  관할 소방서의 공식 발표에 따르면 최초 발화 시점이 17시 07분. 동물원 관리인들이 화재를 발견한 시각이 17시 15분. 신고 시점이 17시 18분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진압이 완료된 시점이 21시 36분이었다고 합니다. 여기 공식 발표에 포함되지 않은 중요한 시각 하나가 있는데요. 바로 우리 동물원의 저녁 식사 시간입니다. <주주 동물원>에서는 17시 30분부터 18시까지 동물들에게 저녁이 배급되거든요. 우리 침팬지 우리에는 17시 42분에 정확히 밥차가 도착합니다. 그런데 정신이 홀랑 달아났던 관리인들이 우리 동물들에게 저녁을 넣어주는 일을 깜빡 잊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당시 우리 침팬지들은 불에 타 죽을 확률보다 굶어 죽을 확률이 더 크다고 보았습니다. 한 끼만 굶어도 하늘이 노래지는 건 어느 동물에게나 마찬가지일 겁니다. 특히나 하루도 빠짐없이 같은 시각에 같은 식사를 규칙적으로 해오던 동물원 동물들에겐 더더욱 힘든 고통입니다. 다른 우리의 다른 동물들이 어떻게 그 위기를 넘겼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순간 우리 침팬지들의 눈에는 잘 익은 비둘기 친구가 보였습니다. 아아! 하필 녀석이 우리 침팬지들의 우리로 떨어져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설령 그렇더라도 이렇게까지 잘 익어 내려오지 않았더라면!


  지리한 윤리적 논쟁이 있기는 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중 수컷 침팬지 다섯은 비둘기 친구라도 목구멍에 밀어넣어야 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했습니다. 우리 외 다른 누구의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암컷들은 배고프다고 울고 짜는 아기 침팬지들을 데리고 잠이든지 오래였으니 말입니다. 밖은 어둡고 A3-28 고릴라 우리도 A3-26 보노보 우리도 조용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든 우리 우리 안에서 벌어진 일은 우리 다섯 안에서 묻힐 것입니다. (아무도 모를꺼야. 누가 무슨 수로 어떻게 알겠어?) 우리는 가엾은 비둘기 친구를 으슥한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개중 날카로운 돌을 골라 비둘기 친구의 몸을 여러 조각으로 찢어 나누었습니다. 그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아마도 생략해야 옳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천벌을 받고도 남을 짓이라는 걸 말입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우린 배가 고팠고 침팬지는 원래 잡식성인걸요. 오랑우탄이나 고릴라와는 다릅니다. 아무리 태어나서 한번도 육식을 해보지 않은 동물원 버젼의 침팬지라고 하더라도 본능이란 원래 그리 농염한 것인 걸요. 우리는 본능을 이기지 못했음에 치욕스러워하며 서둘러 가엾은 비둘기를 먹어치웠습니다. 뭐랄까요. 굉장한 허기에도 불구하고 그리 맛있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약간 비리기도 했고요. 살짝 욕지기도 올라왔고요. 다시 먹고 싶단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습니다. 그냥 당장 급한대로 배를 채우는 데만 의의를 두었지요. 마지막으로 뼈를 한데 모아 바닥에 묻어버림으로써 완전 범죄로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그 날 밤에는 무거운 죄책감에 잠을 설쳐야 했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우리 수컷 침팬지 다섯은 종일 위로는 노란 위액을, 아래로는 묽은 변을 쏟아내었습니다. 영문을 모르는 암컷 침팬지들은 끼욱 끼욱 거리는 소리를 내며 우리를 이상하게만 바라보았지요. (아무래도 정말 천벌 받은 것 같아!) 너도 나도 참회의 눈물을 흘렸습니다. 다시는 다른 동물을 잡아 먹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인간) 어린이들의 친구 침팬지이자 <주주 동물원>의 영리한 재롱둥이로 주어진 사명에만 충실하겠노라 맹세에 맹세를 거듭했습니다. 우리가 위 아래로 토해내고 싸낸 생명 활동의 흔적 때문에 어제 하루 동안 A3-27 우리 주변에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상하고 망측한 냄새가 진동을 했습니다. 우리 스스로도 알아챌 정도이니 다른 동물들이 느끼기에는 훨씬 심각했을 것입니다. 어제 하루동안 암컷 침팬지들과 아기 침팬지들은 우리 수컷들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습니다. 후각을 마비시키는 끔찍한 냄새에 A3-28 우리의 고릴라들은 가슴을 치며 울부짖었고 A3-26 우리의 보노보들은 코를 싸쥐고 미친듯이 뛰어다녔습니다. 인간 어린이들도 우리 우리 근처로는 다가오기를 꺼려했습니다. 오래간만에 엄마 아빠 손 붙잡고 동물원에 놀러온 인간 어린이가 우리 우리 앞으로 접근하려다가 순간 그 날 점심을 모두 바닥에 게워내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걸 치우려 긴급 투입된 동물원 관리인들마저 그 냄새에 놀란 나머지 순간 어제 저녁상을 소환해내어 바닥에 푸짐하게 차려버리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그 끔찍한 냄새에 지쳐버린 A3-28 우리의 고릴라들은 말 없이 눈물을 흘렸고 A3-26 우리의 보노보들은 지쳐 신음하며 바닥에 널부러졌습니다. 면목이 없었지만 우리 코가 석 자니 별 수가 없었지요. 감각이 사라진 목구멍과 빨갛게 불타오른 항문을 다독거리며 (체면 불구하고) 큰 대자로 누워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때는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답니다. 정말로 신이 내리는 천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혹시 우리 우리로 떨어진 비둘기 친구에게 지병이라도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러다 내장이 모두 밖으로 빠져나오는 것은 아닐까? 우리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 침팬지 식구들은 누가 책임지지? 진작에 그 흔한 변액유니버셜보험이라도 하나 들어놨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던 중에 문득 몽글몽글 허기가 피어 올랐습니다.


  놀랍게도 뭔가 먹고 싶다는 신호였습니다. 염치라고는 어디에 팔아먹었는지, 동물의 식욕이란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사그라드는 법이 없나봅니다. 우리는 밥차가 실어다놓은 먹이 바구니에 조심스럽게 접근했습니다. 바나나처럼 부드러운 과일부터 천천히 조심스럽게 먹으면 괜찮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영 맛이 없는 겁니다. 사과, 복숭아, 코코넛, 망고까지 먹어보았는데 그냥 그랬습니다. 셀러리와 야자나무 잎은 맛대가리가 없었습니다. 평생 이렇게 먹고 살면서도 항상 만족스러웠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습니다. 배가 고프긴 한데 아무리 먹어도 그냥 그랬습니다. 우리는 우리 몸이 뭔가 다른 것을 원하고 있단 사실에 몸서리를 쳤습니다. 뭔가 부정해야 할 것만 같은 진실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지금 먹고 싶은 건, 지금 먹고 싶은 건, 지금 먹고 싶은 건…… 아아, 거짓말이야!


  고기. 


  그렇습니다. 그제 먹었던 비둘기 친구의 야들야들하고 비린 살코기가 그리웠던 겁니다. 다시 또 구토를 하고 다시 또 물똥을 싸게 될런지 몰라도, 고기. 고기가 먹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더는 부정할 수 없는 엄연한 사실이었습니다. 뭐랄까, 육식 유전자에 스위치 같은 것이 (만약 그런게 있다면 말입니다) OFF에서 ON으로 전환된 느낌이랄까요? 어떻게 설명해야 이 고통을 이해받을 수 있을까요? 동물원의 인간들이나 A3-29 우리의 오랑우탄, A3-28 우리의 고릴라, A-26 우리의 보노보 등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과연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요? 아니 저 멀리 오랑우탄 너머 A3-30 우리의 긴팔원숭이, A3-31 우리의 긴꼬리원숭이, A3-32 우리의 안경원숭이, A3-33 우리의 여우원숭이 등 모든 영장목 동물들의 입방아에 오를 것이 확실합니다. 본래 잡식동물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순식간에 마성이 깨어날 수도 있는 걸까요?


  많은 논의를 거친 끝에 우리 수컷 침팬지 다섯은 육식 클럽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일종의 비결단(비밀 결사 단체)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암컷과 아이들 몰래 일주일에 한번이라도 고기를 먹겠다는 것이 우리의 목표였습니다. 겸사 겸사 싸나이들의 단합도 다지고 말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인간들은 참 좋겠습니다. 밤 열두시에도 전화만 하면 잘 익은 닭이나 푹 익은 돼지고기를 한달음에 배달해주니 말입니다. 매일 불타는 비둘기가 우리 안으로 날아들어오길 바랄 수도 없고, 인간 사육사에게 '이봐, 우리가 요즘 고기에 맛이 들렸는데 말야'라고 고백할 수도 없고, 답답한 노릇이었습니다. 우리는 야생의 침팬지들이라면 이런 때 어떻게할까 곰곰히 생각해보았습니다. 걔네들은 팀 플로 아기 새나 아기 영양이나 아기 원숭이를 잡아먹기도 한다는 얘기를 어디서 들은 것도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사냥을 한다는 말입니다. 


  사냥?


  사냥! 어쩌면 본능이 우리를 그렇게 이끌어갔는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적극적 사냥만이 유일한 방법이었습니다. 어떻게 동물원에 갇혀 사는 주제에 사냥을 하느냐고요? 다 방법이 있었습니다. 우리 침팬지는 생각보다 영리한 동물이거든요. 일단 사육사의 주머니에서 열쇠와 라이터를 슬쩍했습니다. 암컷과 아이들을 일찍 재우고 우리는 우리 문을 열었습니다. 살금 살금 뛰어나가서 날짐승들의 우리로 향했습니다. 인간들의 문자를 몰랐지만 다행히 친절하게도 그림이 함께 표시되어 있어 어려움 없이 찾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 안쪽을 보니 비둘기 닮은 것들이 새근 새근 잠들어 있었지요. 족히 3미터는 되어보이는 철망을 바람처럼 타고 넘어가 우리 위쪽에 구멍을 만들었습니다. 우리 침팬지들이 자유롭게 들어가고 나갈 수 있을 정도의 크기로 말입니다. 그리로 잠입하여 잠들어 있는 비둘기 친구(나중에 알고보니 청둥오리라더군요) 하나의 목을 확 돌려 꺾었습니다. 찍 소리도 못내고 축 늘어진 녀석을 들쳐업고 우리는 다시 철망을 넘어 빠져나왔습니다. 이쯤되면 게임 끝 아니겠습니까. 매점 창문을 떼고 들어가 오붓하게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중 둘은 마른 장작을 모아다 (슬쩍한 사육사의 라이터로) 불을 피웠고 우리 중 셋은 오리 친구의 털을 뽑았습니다. 그리고, 여러 조각으로 찢었습니다. 막대에 끼워 구웠습니다. 얼마나 익혀야 '그 때 그 맛'이 날진 몰랐지만 아무렴 뭐 어떻습니까. 대충 핏물만 가시게 하여 주둥이에 밀어넣었는데도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이제까지의 허기와 이제까지의 고통이 한 달음에 달아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채소 따위, 과일 따위를 먹을 때와는 달리 속이 든든했습니다. 우리 중 누군가가 이렇게 외쳤습니다.

- 끽끽끽끽끽끽! (아따! 뇌가 커지는 느낌이야!)


  그 말은 참말인지도 몰랐습니다.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육식과 뇌용량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다고 합디다. 700만년 전에는 인간도 400cc에 불과한 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우리 침팬지들의 뇌가 300cc정도의 용량임을 감안하자면 큰 차이가 없었던 셈입니다. 관건은 식사였다고 합니다. 침팬지보다 10배 이상 동물성 식사의 비중이 높고 불을 사용해 익혀먹을 줄 알았던 인간은,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있었기에 인간이 소화기관의 부피를 줄이고 뇌의 용량을 늘이는 쪽으로 진화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혹시 아나요. 우리 침팬지들도 이렇게 동물성 양분을 즐기다보면 몇백만년쯤 후에는 인간처럼 잘난 동물이 될지요. 그럼 다른 종들을 철장 안에 가둬두고 전시할 권능을 누리는 날이 올 수 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문득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걸 알면서도 인간들은 우리 침팬지에게 채소와 과일만 먹이며 키웠다는 뜻이니까요. 쉬쉬하며 지들만 홀랑 진화의 지름길을 정복하고 사다리를 걷어차버리다니! 인류는, 그리고 <주주 동물원> 당국은 치사하게도 우리에게 육식의 진실을 숨겼던 것입니다. 이 모든 게 다분히 의도적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 잊지 않을 겁니다. 자식에게, 또 그 자식의 자식에게 우리가 깨달은 비밀을 전달해 줄 것입니다. 육식의 마법을 가르칠 것입니다. 두고 봅시다. 다시 700만년이 흘렀을 때 과연 어느쪽이 '동물원'에서 눈요깃거리가 되고 있을지 말입니다.


  배를 두드리며 우리 A3-27 우리로 향하는데 A3-26 보노보 우리가 우리 눈에 띄였습니다. 보노보 (인간들의 시푸드 레스토랑 아닙니다). 동물계 척상동물문 포유강 영장목 사람과 침팬지속의 보노보 말입니다. 같은 침팬지속으로, 따지고 보면 우리와 가장 가까운 동물인데도 저 짜식들은 어쩐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특히 그 "고릴라와 침팬지 사이에 졸졸졸 작은 실개천이 흐른다면 침팬지와 보노보 사이에는 깊고 커다란 강이 하나 흐르는 셈이니, 저 사이비 유인원들과 비교하지 말아달라" 고 주장하는 순혈주의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러고보니 저 놈들 맛은 어떨까요? 쪼그맣고 온순한 게 고기도 야들야들하지 않을까 싶어 심히 궁금해집니다. 침팬지 된 도리로 어찌 그럴 수 있느냐고요? 뭐 어떻습니까. 우승열패고, 적자생존이고, 프로는 못하면 까이는 게 맞습니다 (응? 이건 아닌가?). 진화의 자격이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제 알고 있습니다. 이건 어떻습니까. 어느날 일제히 A3-26 우리를 습격해서 수컷 보노보놈들은 몽땅 잡아먹고 암컷 보노보들을 보쌈해 오는 겁니다. 사실 암컷들은 침팬지보다 보노보쪽이 아담하고 귀엽긴 합디다. 프렌치 키스를 좋아한다는 얘기도 어디선가 들은 것 같습니다. 수컷을 지배하려는 괘씸한 성향만 고쳐놓으면 데리고 살기에 나쁘지 않을 것도 같습니다. 보노보를 정복하면 그 다음에는 언젠가는 오랑우탄, 고릴라 등 야만종들과 싸워서도 이길 수 있을 겁니다. 걔네들 덩치는 크지만 머리가 비어서 그렇게 어려운 상대도 아닙니다. 시간이 해결해 줄 것입니다. 정말 많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언젠가 벌어질 일입니다. 일단 지금은 여기까지만 생각하기로 합시다. 이만큼의 상상이 가능한 것도 모두 육식 덕분입니다. 고기를 먹어 뇌가 더 많은 욕망을 꿈꾸게 되었으니, 이 어찌 행복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2008년 0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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