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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라딘 (Aladdin, 2019)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9. 5.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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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니메이션으로 성공한 작품의 라이브-액션 리메이크가 굳이 필요한가?’라는 근본적 질문에 대한 답은 여전히 명확히 제시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거의 씬-투-씬 수준의 이식을 시도할 수 밖에 없었던 ‘미녀와 야수 (빌 콘돈, 2017)’의 사례에서 보듯이 새삼스러운 라이브-액션 리메이크는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이미 15여년 전에 완벽에 가까운 작품을 만들었다는 증거 이상으로 기능하지 못할 뿐이다. 더구나 ‘알라딘’의 각색은 크게 두 가지 면에서 보다 난이도가 있는 작업이다. 첫째, 애니메이션이라는 포맷에서는 꿈과 상상의 영역의 이야기가 부드럽게 녹아들지만 그것을 현실로 소환하면 느낌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는데, 그런 면에서 전체 이야기가 주술과 마법에 의해서 추동되는 ‘알라딘’은 상당한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둘째, 서양 문화권을 무대로 하지 않는 경우 애니메이션에서는 이국적으로 보였던 것이 라이브 액션으로 옮겨 놓으면 뜻밖에 이질적으로 보일 수가 있다. 간접 체험을 통해 막연하게 환상을 갖고 동경하던 이국적인 세계에 직접 가보면 크게 실망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2019년 라이브-액션 ‘알라딘’은 상기 위험 요소들이 모두 문제가 된 경우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고 여러번 다시 봐도 이질감이 든다. 제작비가 무려 1억 8천만 달러인데 B급 코미디 영화처럼 보이는 기적의 순간들이 있다. ‘미녀와 야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클래식 애니메이션의 상징적인 장면들은 재현했지만 그 외 새로 채워넣은 나머지 부분들은 죄다 좋지 않다. 오히려 개봉 전 논란의 대상이자 심각한 마이너스 요소로 지적받았던 윌 스미스의 지니가 이 작품에서 가장 안정감있는 요소다. 한 가지 의아한 것은 브로드웨이 버전에서 보강된 부분은 거의 배제하였다는 점인데 이 부분은 알라딘이라는 캐릭터의 역할이 축소된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으로 보인다. 역사상 가장 노래를 못하는 알라딘이라는 점은 차치하더라도 (그렇다. 인종 원 툴이다) 이 리메이크 작품 자체가 정작 정직과 선의라는 주인공 알라딘의 가치와 상징성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그의 개인적 배경을 묘사하거나 언급하는데 거의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그런 부분을 상징적으로 집약하는 넘버였던 ‘Proud of Your Boy’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반면 쟈스민의 역할과 목소리는 젠더 롤에 대한 의식 때문인지 의아할 정도로 확대되었고 새삼스럽게 쟈스민 솔로의 파워 발라드가 (그렇다. 이쪽은 노래 원 툴이다) 새로 만들어져 삽입되는 이상한 결과가 나왔다. 이러한 혼란은 모든 컨텐츠에서 젠더와 인종과 문화에 있어 디즈니가 균형을 의식하는 한 앞으로도 반복될 것이 자명해 보인다. 그간 서양 위주 관점과 성 역할 묘사에 대한 비판으로 달달 볶였던 걸 생각하면 이런 태도를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지만 이 작품의 사례에서 보듯이 억지로 균형을 잡으려고 하면 한도 끝도 없을 뿐더러 또 굳이 의식한다고 해서 제대로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닌 듯 하다.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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