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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사이드 (The Upside, 2017)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9. 7.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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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엔터테인먼트 섹션의 기사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표현이 하나 있다. 바로 ‘만약 지금이 90년대라면’이라는 가정이다. 만약 지금이 90년대라면 ‘보슈 (아마존, 2014~Present)’는 시청률 1위의 공중파 드라마일 것이고 타이투스 웰리버 또한 드라마 시리즈 부문의 에미상 남우주연 후보일 것이다. 만약 지금이 90년대라면 ‘A.P. 바이오 (NBC, 2018~2019)’는 평균 시청자 수 1.2백만 정도 찍으며 최소 다섯 시즌 이상 장수했을 것이고 글렌 하워턴 역시 에미상의 코미디 시리즈 부문에서 호명되었을 것이다. 뭐, 이런 식으로 말이다. 이는 90년대를 마지막으로 시대가 크게 변화했으며, 그 변화가 전에 없이 크고 급격함을 암시한다. 여기에는 크게 세 가지 주목할만한 요소가 있다. 첫째, 대중들은 더이상 산타할아버지와 ‘정직하고 정의로운 (혹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악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의 존재를 믿지 않는다. 조금 더 과장을 보태자면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그 시절 명작의 반열에 올랐던 ‘포레스트 검프 (로버트 저메키스, 1994),’ ’제리 맥과이어 (카메론 크로우, 1996),’ ’굿 윌 헌팅 (구스 반 산트, 1997)’이나 ‘그린 마일 (프랭크 다라본트, 1999)’조차 뭔가 간이 덜 맞아 심심한 느낌이다. 둘째, 언제부턴가 선악과 시비의 경계는 모호해졌고 미추와 호오를 언급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졌다. 요즘 모든 영화들이 성과 성적 지향, 그리고 인종과 종교와 장애에 대해 균형을 맞추는데 전력을 다한다는 것은 크게 노력하지 않아도 눈치챌 수 있는 사실이다.

  같은 맥락에서 닉 버거의 2017년작 (그러나 2년 늦게 개봉한) ‘더 업사이드’를 두고도 이런 가정을 해볼 수 있다. 만약 지금이 90년대라면 ‘더 업사이드’는 아마데미 작품상과 각색상 후보일 것이고 (물론 위너라고까지는 하지 않았다) 브라이언 크랜스턴과 케빈 하트는 각각 남우주연상과 남우조연상 후보에 나란히 이름을 올릴 것이다 (물론 이들 중에는 위너가 나올 수 있다). 또한 과장되지 않게 두 주연을 서포트하는 슈퍼스타 니콜 키드먼의 차분하고 절제된 연기는 좋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다. 관객 평점도 긍정적인 리뷰 85% 수준에 평점은 별 네 개 부근을 오갈 수 있을 듯 하다. 아울러 월드 와이드 박스 오피스 흥행은 2억불에서 3억불 정도 기대해 볼 수도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지금은 2019년이고 이런 일들이 일어날 가능성은 대단히 낮아 보인다. (음, 그래도 브라이언 크랜스턴은 모르겠다 - 왜냐하면 그는 브라이언 크랜스턴이니까!)

  그렇다면 거꾸로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올리비에르 니카체와 에릭 톨레다노의 ‘더 인터처블스 (The Intouchables, 2011)’를 영어판으로 리메이크한 이 작품이 2019년에 걸맞는 작품이 되려면 어떻게 만들어졌어야 했을까. 몇가지 떠오르는 것들이 있을 것이다. 배역의 조합이라던가 (알리 마하셜라와 애런 폴의 조합은 어떤가? 아니면 니콜 키드만과 민디 칼링은? 아니면 바이올라 데이비스와 메이 휘트먼은?) 정치적으로 공정한 조크로 안전선을 그린다던가. 혹은 주인공 필립과 델을 보다 복잡하고 경계적이며 다분히 회색적인 인물로 묘사한다던가, (니콜 키드만이 연기한) 비서 이브를 독자적인 스토리 라인을 가진 주체적인 (여성) 인물로 다시 각색한다던가. 물론 당연히 너무 뻔하게 보이는 해피엔딩 또한 지양되어야 마땅할 것이고 말이다. 그럼에도 이 작품은 프랑스판 원작을 각색하는 과정에서 요즘 분위기의 헐리우드에서 당연히 고려했을 법한 일들 중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이 지점에서 신기한 일이 일어난다.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속이 다 시원한 것이다. 이제 간신히 숨을 좀 쉬겠다. 이 작품은 불필요한 바리게이트로 사방을 둘러싸지도 않고 이것저것 눈치 보느라 구질구질하게 굴지도 않는다. 필립과 델, 그리고 이브는 전형적인 인물들이지만 그렇지 않게 보이려고 필요 이상으로 애쓰지 않는다. 무엇보다 좋은 사람들이고 인간적인 사람들이다. 그렇기에 때로는 위악적으로 행동하는 것이고 그건 판타지 속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파라노이아에 시달리지 않는 영화를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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