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계에 잡히지 않고 댓글을 다는 방문자들의 존재에 관하여
by 김영준 (James Kim)사람들은 말한다. 초자연적 현상에 대한 인류의 호기심은 이제 사그라든지 오래라고. 아마 맞는 말일 것이다. 그렇게 과학적으로 이성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현상’들에 대한 소문들은 우연한 기회에 누군가에게 불완전한 일부를 (어쩌면 약간의 과장이 섞인 상태로) 전해 들었을 때 흥미를 돋우는 것이었다. 혹은 색이 바래고 곰팡이 냄새가 나는 책을 숨어서 읽을 때 궁금해 밤잠을 이루지 못할 만한 것이었다. 정확하게 확인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유령을 만나면 도망쳤다. 지금은 스마트폰을 꺼내 들며 백만 구독자를 거느린 유튜버가 된 자신의 미래를 그려본다. 조회수라는 무의미한 명예와 달콤한 금전적 보상이 급기야 원초적인 본능마저 압도하는 시대다. 상상력이 말라 비틀어진 끔찍한 시대가 도래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해할 수 없는 현상들이 정말 모두 사라진 것은 아니다.
이 자리를 빌어 최근 경험한 한 가지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이를테면 당신의 블로그에 댓글이 달렸는데 그 날 해당 포스트에 조회수가 0이라면 어떨까? (벌써부터 기분이 으스스하지 않은가!) 그 전 날에도 그 다음 날에도 조회수가 0이라면? 작성 후 이제까지 아무도 한 번도 읽지 않은 글에 (자랑이다!) 댓글이 달렸다면 과연 그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저 단순한 조회수 집계 오류일까? 누군가 읽지 않고 댓글만 달았다는 뜻일까? 하지만 어떻게? 그 내용을 보면 댓글 작성자는 본인이 내 글을 읽었다고,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좋은 정보를 많이 얻었다고, 흥미로웠다고, 즐겁게 읽었다고, 서로 소통하며 지내고 싶다고, 제 블로그에도 한 번 놀러와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본인은 분명 읽었다고 주장하는데 통계에는 잡히지 않는다. 티스토리 블로그 통계만이 아니라 구글 애널리틱스에도 잡히지 않으니 이상한 일이다. 여전히 아무도 읽지 않은 글이다 (자랑이다!). 심지어 이 기이한 현상은 비단 한 번에 그치지 않는다. 여러 이름 모를 방문자가 흡사한 내용의 댓글을 남긴다. 급기야 같은 포스트에도 여러 번 같은 댓글이 거듭 등장한다. 심지어 몇 초 간격으로도. 몇 초 간격으로 모르는 사람에게 잘 읽었다고 말해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 심한 경우에는 한 포스트에 한 사람이 이런 내용의 댓글을 여덟 개 달았다. 심지어 은밀한 상호 호혜적 거래마저 제안한다. 내가 너를 위해 그렇고 그런 짓을 해줄 테니 너도 나를 위해 그렇고 그런 짓을 해달라는, 만약 구글님이 아신다면 크게 경을 칠 소리다 (혹시 노파심에 분명히 해두자면 그 혹은 그녀가 했다고 하는 주장하는 행동이 실제로 이루어진 바 없음을 역시 통계를 통해 정확히 확인했음을 밝혀둔다). 아무도 모르게 읽었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데, 아무도 모르게 할 수 있는 일이 그 밖에 더 있다는 사실은 나를 전율하게 만든다.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고 어떤 기록도 없이 나의 블로그에 드나들며 통계에도 잡히지 않는 방문자. 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가. 그러니 나는 이 실체가 있으나 실체가 없는 존재를 의심하는 고약한 상상을 할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이 현상의 실체를 온전히 파악할 방법은 이렇게 기록을 남김으로써 당사자가 다시 나타나기를 유도하는 것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의 무모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이 실험이 우리의 인식 범위를 넘어선 어떤 존재들을 부디 화나게 하지 않고 마무리될 수 있기를.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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