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이트번: 뒷유리 차량용 스티커
by 김영준 (James Kim)아이가 사라졌다고 아내가 그를 흔들어 깨웠을 때 그는 조금 짜증이 났다. 한창 깊은 잠에 빠져있었고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아주 중요한, 그래서 그 다음 전개가 궁금한 내용의 꿈을 꾸고 있었던 것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아내의 호들갑을 타박했고 사라진 아이에 대해서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을 했다.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 자기 방에서 잠들어 있던 아이가 가면 어딜 가겠는가. 필경 집 안 어디에 있을 것이다. 아내의 걱정처럼 설마 밖에 나가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나가봐야 동서남북 10 마일 내에는 밀밭과 옥수수밭 외에는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겨우 열두 살 짜리 아닌가. 나이답지 않게 영악한 아이라 가끔씩 그들 부부를 깜짝 놀라게는 하지만 캔자스 주 시골 한 복판 외딴 농가에서 밖에 나가 얻을 것이 없으리라는 판단력은 있을 것이다. 부부는 집과 농장을 샅샅이 뒤져 아이를 찾기 시작하였는데 마침내 마지막으로 들여다 본 헛간에서 찾아내고야 말았다. 아이는 어둠 속에서 손전등을 물고 부부의 자동차 뒷유리에 차량용 스티커를 붙이고 있었다. 얼마나 열중하여 작업하고 있는지 아빠와 엄마가 뒤에서 다가오는 것도 모르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위급 상황시 아이 먼저 구해주세요 (남아, 혈액 RH+ O형)'라고 적혀진 스티커였다.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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