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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밍웨이 따라잡기: 한 줄 소설 콘테스트

쇼트 펀트 포메이션/쇼트 펀트 포메이션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2.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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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호회 정기 모임에서 그는 저마다 잘난 척 아는 척 하는 자칭 ‘예술가’들에게 둘러싸여 꽤나 피곤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다 좌중의 이야기가 갑자기 소설의 길이에 대한 내용으로 넘어갔는데 그러다 급기야 한 문장만으로도 소설이 성립할 수 있냐는 논쟁으로 이어졌다. 그는 속으로 ‘잠시 후 누군가 헤밍웨이를 들먹이겠군’ 하는 생각을 했다. 그러니까 헤밍웨이의 그 유명한 여섯 단어 한 줄 소설에 대한 일화가 있지 않은가.

 

"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예상보다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기는 했지만 예상대로 누군가 헤밍웨이를 들먹였다. 뒤이어 너도 나도 잘난 척 아는 척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꼴 보기 싫었는지 그는 그곳을 빨리 빠져나가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러다 우리도 한 줄 소설을 써보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내친김에 일종의 콘테스트처럼 우열을 가려보자는 제안이 나오며 분위기가 돌연 달아올랐다. 뜻밖의 상황이었다. 먼저 나가려던 계획을 잠시 미루고 어디 한 번 돌아가는 상황을 보기로 했다. 누군가 모자를 뒤집어 내놓았다. 한 뼘 크기의 종이를 나누어주었다. 사람들은 저마다 대단한 예술가처럼 고뇌하더니 종이 쪽지에 한 줄을 적고 반의 반으로 접어 모자 안에 던져 넣었다. 그도 한 줄 적어 반의 반으로 접어 모자 안에 던져 넣었다. 누군지 모르지만 처음으로 콘테스트 이야기를 했던 사람이 사회자처럼 앞으로 나가 무작위로 섞은 종이를 하나씩 펼쳐 큰 소리로 읽어주었다. 그 망할 놈이 "여러분의 박수 소리로 장원을 뽑겠다"는 백만년전 감성의 멘트를 날리는 바람에 그는 일찍 자리를 뜨지 않고 남은 결정을 뼈저리게 후회했다. 


  회원들이 제출한 한 문장은 대개 형편이 없었다. 미안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다. 절반은 아무 말이나 갖다 붙여서 웃길려고 하는 것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헤밍웨이를 흉내내는데 그쳤다 (물론 우리말로). 죄다 한 번도 안 쓴 걸 판다고 하는데 무슨 당근 마켓인줄 알았다. 감정을 건드리는 요소가 없었다. 상상하게 만드는 힘도 없었다. 모두 다 그런 수준이었다. 그런데 자기들끼리 좋다고 박수를 치고 있으니 한심한 노릇이었다.

 

  그러다 거짓말처럼 그가 던져 넣은 쪽지가 사회자의 손에 걸렸다. 사회를 보던 남자가 큰 목소리로 내용을 읽었다.

 

“육백육십육동 천삼백십삼호,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은… 칠십팔점오 킬로그램입니다.”  

 

  순간 좌중은 조용해졌다. 단 한 사람도 박수를 치지 않았다. 대부분 이해를 못한 표정이었다. 그러다 하나 둘씩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고 뒤이어 몇몇 사람들이 화를 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누가 저딴 걸 써냈냐는 분노와 성토가 이어졌다. 그는 전혀 모르는 일인양 입을 다물고 있다가 조용히 자리를 빠져나왔다. 집으로 돌아가며 그는 빨리 집에 가서 냉장고 안에 있는 걸 먹어치워야 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번처럼 상해서 그냥 다 버릴 수는 없지 않은가.

 

(2022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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