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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 인터뷰: 소리에 민감해진 사람들

낙농콩단/Season 1-5 (2000-200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3.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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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런 일을 하다 보면 응당 남들과는 다른 조금 독특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어쩌면 독특함이란 표현은 어쩌면 옳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그건 그들과 다른 우리의 눈으로 규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권리가 우리에게 있다고 감히 말할 수가 있는가? 난 없다고 본다. 단지 우리는 수가 많을 뿐이고 그들은 수가 적을 뿐이다. 우리는 종종 다수는 옳고 소수는 그르다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니 나는 이런 일을 하고 있다. 모두가 독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한다. 배를 잡고 웃는다. 너희는 우리처럼 정상이 아니고 그래서 재미있다고 여긴다. 그리고는, 까맣게 잊어버린다. 기억 저 편에 어디 잘 닿지 않는 뇌의 케케묵은 골방에 처박아두고 두 번 다시는 꺼내어보지 않는다. 내가 취재한 소수의 이야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하루 저녁의 안주감에 지나지 않는다.

  '소민사'라는 그룹을 처음 알게 된 것은 2000년의 여름이었다. 소민사? 처음에는 새로 나온 그룹의 이름인 줄 알았다. 그러니까 이를테면 '노찾사'처럼 말이다. 물론 새로운 세기로 접어드는 지금 그런 이름을 달고 나오는 그룹은 없다. 요즘 가수들이라면 뜻도 알 수 없는 영어 약자로 그럴듯한 이름을 붙일 것이다. 그럼 소민사가 뭐랍니까? 내가 물었을 때 T국장은 "소리에 민감해진 사람들"이라고 짧게 답했다. 소리에 민감해진 사람들? 그게 무슨 뜻입니까. 또한 나의 이 일과는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이랍니까? 나는 재차 되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T국장은 쓰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 상관이야 없을 수도 있겠지. 
  T국장은 그로부터 5주 뒤 회사를 그만 두었다. 풍문으로는 그가 중이 되었느니, 보증을 잘못서는 통에 집안이 넘어갔느니, 심지어 늦바람이 나서 가정을 내팽개치고 잠적했느니, 말이 많았지만 나는 알고 있었다. 그는 2000년 팔월의 어느 여름날 내게 이야기했던 공동체, 그러니까 '소민사'에 들어간 것이다. 떠나기 직전에 그는 내게 편지를 하나 남겼다. 언제고 '소민사'에 관심이 생기거든 연락하란 내용이었다. 그걸 읽고 난 그가 '소민사'라는 곳에 들어갔음을 짐작하였다. 그로부터 몇 년 동안 나는 까맣게 그의 편지를 잊고 살았는데 마침 우연히 그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말로 자기들을 취재해 볼 생각이 없냐는 것이다. 


*

 

  인터뷰는 2003년 12월 17일 18시경에 시작되었다. '소민사'측에서 요구하는 조건이 까다로웠기 때문에 나는 누구도 대동하지 않은 채 녹음기를 챙겨들고 혼자 청운마을로 향했다. 그들은 자가용을 가져오지 말 것을 요구했고 녹음기 하나 외에는 그 어떤 전자기기도 허용할 수 없다고 일방 통보했다. 휴대전화마저도 직업이 직업인지라 꼭 필요하다고 사정 사정하여 그나마 가지고 갈 수 있게 되었다. 지금 내 전화는 무음모드로 맞춰져 있으며 인터뷰가 끝날 때까지는 계속 이 상태로 있을 것이다. 청운마을은 가장 가까운 버스 정류소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에 있는 외진 마을로 가는 도중에 사람이라고는 흔적조차 구경하기 힘들었다. 인터뷰는 청운마을 중앙의 노인정에 마련된 회의실에서 진행되었으며 T국장을 비롯, 세 사람의 남자와 한 사람의 여자가 참석했다. T국장과 다른 한 남자를 제외하면 나머지 남자들은 모두 서른 몇 살쯤 되어 보였고 여자만은 채 서른이 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인터뷰에는 약 두 시간 남짓이 소요되어 20시를 조금 넘겨서 끝났다. 다음은 그날 '소민사' 사람들과 가졌던 인터뷰를 나름대로 정리한 것이다. 

  나는 녹음기의 빨간 REC버튼을 눌렀다. 
- 안녕하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 안녕하세요? 
- 먼저 '소민사'가 무슨 뜻인지부터 여쭤 보아야 하겠습니다. 
  50대로 보이는 초로의 남자가 먼저 나섰다. 그 자리에서 유일하게 T국장과 비슷한 연배로 보이는 사람이었다. 
- 아시다시피 '소민사'는 '소리에 민감해진 사람들'의 준말입니다. 그게 어떤 뜻이냐고 물으신다면, 소리에 민감해진 사람들, 이라는 뜻이라고 밖에 드릴 말씀이 없겠습니다. 
  일동 웃었다. 나도 분위기를 맞추기 위해 따라 웃었다. 
- 이거, 너무 설명이 인색하신데요. 독자분들도 '소민사'에 대해 아셔야하니 구체적으로 좀 말씀해 주십시오. 
- 소리에 민감해졌다는, 말 그대로 입니다. 우리 주변에서 들리는 갖가지 소음들로부터 견딜 수 없을 만큼 괴로워진 사람들이 이 그룹을 찾아옵니다. 그들은 대개 말할 수 없는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어요. 
- 우리 주변에서 들리는 소음이라면, 가령 어떤 것이 있겠습니까? 
- 모두 다 입니다. 자연에서 태어나지 않는 나머지 소리 모두가 소음이라고, 우리는 봅니다. 가령 지금 기자 선생께서 가져오신 녹음기를 보시오. 거기서 나오는 소리는 자연의 것입니까? 아닙니다.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입니다. 억지로 비자연적인 것을 돌리는 소리입니다. 솔직히 지금 이 방 안에 있는 우리들은 그 소리 때문에 굉장히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습니다. 기자 선생은 어쩌면 느끼지 못하고 있겠지만, 그 윙윙거림이 우리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녹음기를 끄고 인터뷰를 할 수는 없지 않은가. 
- 자연의 것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소민사는 일종의 기계문명을 거부하는 단체입니까? 
-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거창한 의미를 가지고 모인 그룹은 아닙니다. 

  보다 세밀한 이해를 위해 네 사람과 차례로 질문과 답변을 주고 받기로 했다. 그 자리에 있던 젊은 남자 중 한 사람이 부담감을 이기지 못해 (그들은 녹음기가 내는 소리를 견디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먼저 자리를 피하게 된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T국장이 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이제 방 안에는 나를 제외하고 세 사람이 남았다. 먼저 대화를 나누게 된 사람은 짧은 스포츠 머리를 한 건장한 체격의 30대 청년이다. 
- 뭐랄까, 어떻게 생각하실진 모르겠습니다. 멀쩡한 젊은 놈이 이 산골에 처박혀 도대체 뭘 하고 있느냐, 그렇게 생각하실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얼마 전까지 전 그냥 평범한 직장인이었습니다. 남들처럼 군대를 다녀오고 남들처럼 대학을 졸업해서 G물산에서 5년 간 근무를 했습니다. 차츰 일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올 시월에는 결혼도 할 예정이었습니다. 모든 게 영화처럼 순조로웠달까요. 
  그는 잠시 말을 멈추고 생수병을 만지작거렸다.
- 딱히 언제부터라고는 말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어느날부턴가 갑자기 전 제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소리들이 두려워지기 시작했어요. 온갖 소리가 귓바퀴에서 맴맴 맴돌았어요. 예전보다 열 배쯤, 아니 그 이상으로 크고 악랄하게 들렸습니다. 마치 절 괴롭히려고 작정한 것 같았어요. 자동차 소리, 전화기 소리, 컴퓨터 소리……. 혹시 아십니까? 우리 인간은 단 한순간도 소음 스트레스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밖을 나가면 말할 것도 없지만 집에 처 박혀 있는다고 달라질 건 없어요. 제가 해봐서 압니다. 
- 구체적으로 어떻게 말입니까? 
- 당시 저는 집 밖으로는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었습니다. 나가는 순간 도저히 견뎌낼 수 없을만큼 많은 소리들이 제 귀로 쏟아져 들어왔으니까요. 제 방 안에서 혼자 죽은 듯 고요히 누워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땠는 줄 아십니까? 그래도 머리가 깨질 만큼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냉장고가 위이이잉, 울었습니다. 텔레비젼도 위이이잉, 울었습니다. 전기를 켜면 으으으으,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아 불도 켜지 않고 살았습니다. 컴퓨터나 휴대폰은 말할 것도 없었죠. 더구나 저희 집은 아파트였는데 계단식이어서 바로 옆에 엘레베이터가 붙어있었죠. 엘레베이터가 움직일 때마다 육식공룡이 먹잇감을 찾는 것처럼 우우우웅 하는 소리가 들리더란 말입니다. 윗집 다용도실에서 세탁기를 돌리면 항상 쏴아아아 물소리가 났습니다. 돌아버릴 것 같았습니다. 며칠을 그렇게 시달리니 집에 있는 것도 결코 안전하지 않음을 비로소 알겠더군요. 

  보다 구체적으로 어떤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느꼈는지에 대해서는 소민사의 홍일점이라는 20대 아가씨의 이야기에 잘 드러났다. 
- 예, 맞아요. 제가 느끼는 수치를 정량하여 표현한다는게 애초에 불가능하죠. 따라서 우린 어떻게도 남들에게 이 고통을 이해시킬 수가 없는 거예요. 가령 오늘 세상을 떠도는 모든 소리들이 당신의 귀에 어제보다 몇 배쯤 더 크게 들렸다고 가정해 보세요. 그걸 어떻게 설명할 것이며 무슨 기준으로 그 고통에 대해 남들에게 설명할 수 있겠어요. 처음에 제가 이런 이야기를 꺼내었을 때, 저희 엄마와 언니들은 전혀 이해를 하지 못했죠. 그저 생리 때문에 예민해진 건 아니냐고 대수롭지 않게들 넘겼죠. 저도 처음엔 그러길 바랐는데요.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결국에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어요. 너무 괴로웠거든요. 정상적인 생활을, 직장생활은 물론이고 일상생활까지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어요. 
- 실례지만 하셨던 일이……. 
- 선생님이었어요. 초등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죠. 스트레스가 워낙 많은 일이긴 한데 그렇다고 초등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사람들이 종소리에 고통을 느끼지는 않아요. 예, 맞아요. 저는 수업 시작 종, 그리고 끝 종이 울릴 때마다 뒤통수가 시큰해질 정도로 머리가 아파왔어요. 마치 세상에서 제일 큰 종을 제 머리에 대고 울리는 것 같았어요. 짐작하실런지 모르시겠지만 교무실은 소음의 덩어리와 같은 공간이에요. 일 분에 한번 꼴로 전화가 걸려오고 십 분에 한 번 꼴로 팩스가 작동해요. 남선생들은 딱, 딱, 소리 나게 슬리퍼를 끌고 다니죠. 복사기는 철컥, 철컥, 거리면서 끝도 없이 인쇄물을 뽑아내요. 복도에선 애들이 웃고 떠들고 장난하는 소리가 창을 타고 넘어 들어와요. 특히나 초등학생이면 한참 말썽 부릴 나이잖아요. 혹시 한 반 사십 명의 아이들이 일제히 금붕어처럼 조잘거리는 걸 본 적 있으세요. 그 소리가 만약에 모두 생생히 빠짐없이 제 귀로 미끄러져 들어온다면, 상상이나 가세요? 그제야 전 병원에 갔죠. 그런데 의사도 똑같은 이야기를 하더군요. 직업적 특성 때문에 예민해졌을 것이다, 불규칙한 생리주기가 정신적 압박이 되었을 것이다, 뭐 그런 식으로 말이에요. 약을 처방해 주었지만 큰 도움은 되지 않았어요. 
- 어떤 약이었고 이후 어떤 증상이 나타났습니까? 
- 약은 잘 모르겠어요. 두통약 계열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밖에는……. 효과가 없어 일주일만 먹고 내버려 두었죠. 체중은 한 달만에 5킬로그램이 빠졌어요. 원래 좀 마른 체형이었는데 완전 이쑤시개가 되어버렸죠. 밥맛은 없고 불면증이 찾아왔어요. 정말 불면증인지는 모르겠어요. 잠을 청할 수 없는 이유 역시 온갖 소리로부터 도망칠 수 없었기 때문이거든요. 밤에는 본래 낮보다 소리가 더 크고 울려서 들리잖아요. 길 건너 도로에서 쌩쌩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옆 집 개가 컹컹 짖는 소리, 어디에선가 주정뱅이가 고함을 치는 소리, 하나도 빠짐없이 제 귀엔 또렷하게 들렸어요. 수면제도 먹어보았고 펜잘, 타나센, 타세놀, 뭐 그런 이름의 두통약도 한아름 사다가 먹어보았는데 아무 소용이 없었어요. 경국 5주를 버티다가 포기를 했지요. 학교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왔어요. 

  다시 처음의 그 중년 남자가 바톤을 이어받았다. 이런 증상들을 어떻게 극복하고 또 어떻게 '소민사'를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 이런 그룹을 만들고 도시 생활을 피해 살아보기로 마음먹었던 것은 누구의 생각이었습니까? 
- 내 생각이었습니다. 나 역시 저 젊은 친구들처럼 어느 날 갑자기 주위에서 들려오는 소리들을 감당하지 못해 속을 썩었습니다. 그래도 난 좀 나은 편이었을 겁니다. 기자 양반도 잘 아시겠지만 나이를 먹는다는 건 숨기고 싶은 일이 많아진다는 뜻이기도 하고, 대신 그만큼 숨길 수 있는 지위와 권한도 주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난 K광고회사의 중역이었습니다. 미팅이나 업무보고 때야 피할 수 없었지만 그 이외의 시간은 내 사무실에 숨어있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 때면 난 방 안의 모든 전자기기를 끄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눈을 감고 어떻게든 소음으로부터 도망쳐 보려고 애를 썼답니다. 당시 내가 쓰던 사무실은 말입니다. 사방이 모두 계란판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답니다. 남몰래 그런 짓을 했었습니다. 누구에게도 난 그런, 뭐랄까 내가 약한 사람이 되어간다는 사실을 들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순전히 그런 이유였다는 말입니다. 
- 약한 사람이라는 말씀입니까? 
- 그렇습니다. 밀림의 생물이 밀림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밀림의 기후와 조건에 불평하지 않고 맞출 수 있어야 합니다. 도시의 생물도 마찬가집니다. 도시란 그 자체로 커다란 소음의 공장입니다. 소음을 견뎌내지 못하는 생물은 도시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습니다. 도태란 문자로 느끼는 어감보다 실제 살갗에 와닿았을 때 훨씬 더 차가운 단어입니다. 사실은 만인이 만인을 도태시키기 위해 존재하는 곳이 도시입니다. 내가 만약 노트북이 돌아가면서 내는 따닥따닥, 소리조차 견디지 못해 신경쇠약에 걸렸다고 한다면 누가 안타까워하겠습니까? 업무를 견딜 수 없으면, 하루 예닐곱 번씩 이어지는 미팅을 이길 수 없으면, 그대로 도태되는 겁니다. 그건 내 자리를 노리는 또 다른 나의 무리들에게 약한 사람이라는 의미나 다름없었다는 말입니다. 
- 이해합니다. 하면 결정을 내리기도 쉽지 않으셨을 것 같습니다. 
- 맞습니다. 나이 오십이 넘어서면 하나를 결정하는데도 예전보다 한번 더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물며 평생 일해온 직장에서 물러난다는 것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습니다. 두 번째 기회가 없을 가능성이 크니까요. 결정하기까지 일 년 남짓을 나는 소음들과 전쟁을 벌였고 결국엔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이곳에 마을을 세웠습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이 근처는 땅값이 그리 비싸지 않습디다. 몇 사람이 뜻을 모아 서울에 있던 아파트 세 채만 처분했는데도 여기선 하나의 마을을 세우고도 남을 돈이 되더군요. '소민사'가 지금 이 마을에 사는 우리들을 지칭하는 말은 아닙니다. 그건 마을을 세우기 이전에 인터넷 동호회에 붙였던 이름입니다. 지금 여기 사는 친구들은 대부분 당시 그곳의 멤버들이었습니다. 조만간 우린 이 마을에 우리만의 이름을 붙일 생각입니다. 세상의 행정구역이 어떻든지는 관심 밖입니다. 우린 세상의 그 소음으로부터 벗어나야만 살아남을 수 있고, 또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앞으로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 공룡 같은 도시에서의 삶을 감당할 수 없는 사람들이 앞으로도 떨어져 나올 것입니다. 우린 그들을 얼마든지 받아들일 용의가 있습니다. 그들과 얼마든지 함께 할 용의가 있습니다. 

-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여쭙겠습니다. 행복하십니까? 
- 예, 행복합니다. 믿으실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음이 없는 곳에는 인위(人爲)가 없습니다. 그런 공간에는 욕심이 개입할 틈이 없습니다. 욕심이 없는 곳에서 인간이 얼마나 행복해질 수 있는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릅니다. 


*


  인터뷰를 마치고 그날 밤은 청운마을에서 신세지게 되었다. 이렇다 할 교통수단도 없이 돌아나가기엔 길이 너무 멀었고 밤이 너무 깊었기 때문이다. 가장 가까운 버스정류소가 걸어서 삼십 분 거리라는 강원도 어느 산골의 밤은 잘 닦아놓은 은쟁반처럼 맑고 고요했다. 이따금 귀뚜라미가 울었고 이따금 바람이 풀숲을 헤집는 소리가 들렸지만, 그건 뭐랄까, 좀 색다른 기분이었다. 어쩌면 방금 마친 인터뷰의 영향이었을는지도 모른다. 우리의 인지 체계는 가까이 있었던 자극을 조금 더 쉽게 기억한다는 얘기도 있지 않은가. 아마도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에 유독 더 그러할 수 밖에 없었지 싶다. 가만히 눈을 감고 소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삶을 상상해 보았다. 나도 그들처럼 살아갈 수 있을까? 이런 곳에 내려와서? 귀뚜라미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렸다. 그리고 사뿐사뿐 발소리가 들렸다. 내가 머물고 있는 방 쪽으로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한 사람이 움직이는 소리가 아니었다. 둘? 셋? 어쩌면 다섯! 한 밤의 고요 속에서 모든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다. 숨을 참으며 새어 나오는 소리도, 옷섶이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뭔가 딱딱한 것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도, 그림자가 일렁거리는 소리도, 그리고 마침내 방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도.  

 

(2003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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