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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6. 대신지내드립니닷컴

낙농콩단/Season 1-5 (2000-200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4. 10.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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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사(祭祀)란 신령이나 조상님의 넋에 음식을 바치며 정성을 표하는 의식이라는 뜻이다.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자면 그렇다. 영어로는…… 잘 모르겠다.

  방유만 (Bang, You Man, 42)씨는 제사 덕분에 먹고 산다. 그렇다고 그가 조상님의 넋, 혹은 귀신으로 자손들이 바친 음식을 얻어 먹고 산다는 얘기는 아니다. 제사를 지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댓가를 받아서 먹고 산다는 뜻이다. 그는 제사대행 서비스 ‘대신지내드립니닷컴'의 사장이다. 사장이라고는 하지만 직원이 달랑 한 명이니, 뭐 어차피 사장이나 아니나 큰 차이는 없다고 봐야 옳을 것이다. 하지만 법적으로는 그가 대표이고 직함도 사장이니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한다. 방씨는 운전 중이다. 어디론가 바삐 가고 있다. 단 한 명 뿐인 조수이자 그의 유일한 피고용인인 유석미 (You Suck Mee, 39)씨와 함께다. 그들은 스테이션 웨건에 제기와 제수음식을 가득 싣고 일산으로 향하는 중이다. 취재를 위해 실례를 무릅쓰고 그들과 동행하기로 한다. 

- 오늘은 일이 일산에서 있으신가보죠? 

- 네, 그렇습니다. 

  방유만씨는 올해로 마흔두살이다. 하지만 이십대 대학생이라고 해도 믿을만큼 어려보이는 편이다. 특히 약간의 금빛을 띠는 머리칼이 인상적이다. 가을 들판의 곡식을 닮은 그 머리칼은 차창 밖에서 바람이 쏟아져 들어올 때마다 출렁거리며 휘날린다. 분명한 모양으로 잘 정돈된 이목구비는 흡사 고대 그리스의 조각상을 보는듯 하다. 금발의 백인으로 태어났더라도 어느정도 어울렸을 것 같은 얼굴이다. 무엇보다 여지껏 저렇게 코가 크고 오똑한 동양 남자를 본 일이 없었지 싶다. 

- 어머니가 미국인이셨어요. 지금은 한국으로 귀화하셨죠. 

  어떻게 눈치를 챘는지 방씨가 먼저 말을 꺼낸다. 어째 속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민망스럽다. 

  뒷 자석을 밀어놓고 쌓아놓은 제수용품을 구경한다. 커다란 박스 안에 하나씩 에어캡으로 싸여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는데, 매일 사용하고 다시 이렇게 정리하려면 보통 바지런해야 하는 일이 아니겠구나 싶다. 지방틀, 촛대, 향로, 정편틀, 직어틀, 퇴주그릇, 숭늉그릇, 소접시, 중접시, 대접시, 심지어 교자상에 병풍까지 종류 별로 몇 벌씩 있다. 맙소사. 나 역시 제사 모시는데 목숨깨나 거는 빡빡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이렇게 많고 다양한 종류의 제기를 구경해 보기는 처음이다. 한 쪽 구석에는 아이스박스가 세 개 자리잡고있다. 아마도 상에 올릴 제수음식들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게 다 들어가고도 사람이 앉을 수 있다는 것도 놀랍다. (스테이션 웨건이 이렇게 넓은 줄은 물랐다.) 방유만씨가 운전 중이니 계속 말을 시킬 수 없어 옆 좌석의 유석미씨에게 질문을 던졌다. 

- 보통 일이 얼마나 있습니까? 주문 건수가 많습니까? 

- 하루에 한 건이에요. 우리는 철저히 스케줄을 관리하여 움직이기 때문에 하루에 한 건 이상 접수를 받지 않아요. 

- 주문 자체는 그 보다 훨씬 많다는 얘기군요. 

- 맞아요. 하루에 보통 너댓 집, 많을 적에는 열 집까지 겹쳐요. 하긴 왜 안 그렇겠어요. 제삿날이라는게 집집마다 피해서 있는 건 아니잖아요. 

- 그렇겠죠. 명절에는 어떻습니까? 명절에도 다들 차례를 지내잖아요. 

- 명절엔 예외를 두고 있어요. 이런 말을 하면 좀 그렇지만, 저희한텐 대목인데 딱 한 건만 받아들이고 나머지 일을 버릴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명절에는 여섯 탕을 뜁니다. 다섯시, 여섯시, 일곱시, 여덟시, 아홉시, 열시, 그리고 열한 시. 물론 시간 안에 저희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주문을 받아야 스케줄대로 움직일 수 있겠지만요. 

  방유만씨와 마찬가지로 유석미씨 역시 앳띤 기가 가시지 않은 동안에 꽤 미인이다. 다만 이쪽은 전형적인 동양적 미인상이다. 다소 새침한 목소리와 웃을 적마다 보이는 덧니, 그리고 약간씩 바람이 새는 발음이 더 그런 어린 인상을 주는 지도 몰랐다. 방씨와 유씨는 이 제사대행 사업을 하면서 만나 삼 년동안 함께 일하다가 결혼하게 된 부부라고 들었다. 꽤 잘 어울리는 한 쌍이라는 생각을 뜬금없이 한다. 

- 그럼 두 분은 명절에 어떻게 하십니까? 

- 못 지내죠. 우리 조상님 차례는. 

 

*

 

  오후 여섯시. 그들의 웨건은 일산 K마을로 들어가 어느 아파트 앞에 멈춘다. 부부는 아주 숙련된 동작으로 짐을 챙겨 들고 차에서 내리는데 머쓱했던 나도 재빨리 나서 좀 나누어 드는 시늉을 한다. 

- 뭘요, 원래는 우리 둘이도 충분히 하던 일인데. 

  부부는 A동으로 들어가서 1008호의 문을 연다. 

- 열쇠가 있었습니까? 

- 네 아침에 퀵으로 받았어요. 

  퀵이라면 오토바이 퀵 서비스를 말하는 것이다. 

- 이 댁 분들은 없습니까? 어디 간 건지 혹시 아십니까? 

- 어디든 갔겠죠. 아님 안 왔던가. 

  부인 유씨의 말이다. 거실 쪽에서 병풍을 펴던 방씨가 추가 설명을 한다. 

- 남편은 출장 중이랍니다. 부인은 애들 데리고 해외 친척집에 있어서 제사에 맞춰 돌아오가 곤란한 상황이고요. 열한시까지 제사만 끝내고 문만 잘 잠궈주면 된다고 연락받았어요. 

- 뭡니까? 그럼 정작 이 집 주인들은 제사에 참석하지 않는 겁니까? 

- 아마도 그런…… 셈이겠죠. 뭐, 특별하게 이상한 일은 아니에요. 

  그는 정말로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 들어 보인다. 

- 이상하지 않다고요? 그럼 절은 누가 합니까? 술은 누가 올리고요? 

- 저희가 합니다. 그 분들 대신에. 

  맙소사. 부부는 약간은 민망한 듯 얼굴을 붉힌다. 

- 이런 일이 자주 있습니까? 

- 네. 흔한 일이에요. 바빠도 제사는 지내야 하니까요. 하지만 제사 때문에 바쁜 걸 바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없죠. 그래서 요즘엔 이런 분들 많아요. 그래도 이 집 분들은 양반 중의 양반이에요. 제가 이 바닥에서 일한 게 5년째인데, 별의 별 인간들을 다 만났습니다. 스키장엘 가면서 저희한테 제사를 부탁하는 집도 있어요. 하필 제삿날이 스키 시즌이랑 겹쳤다는 거죠. 그런데 여기서 재미있는 건 제삿날은 매년 정해져있고 스키시즌도 매년 정해져있단 사실입니다. 결국 그 집 제삿날은 매년 스키시즌일 것이 아닙니까.

- 명절 연휴에는 주문이 더 많이 밀려들어요. 조상님한테 차례는 올려야겠는데 그렇다고 황금연휴를 절대 포기할 수 없다, 뭐 그런 분들이 저희한테 많이 전활하세요. 

- 그런 분들을 만나면 어떤 생각이 듭니까? 

- 글쎄요. 저희는 그렇게 꽉 막히고 고지식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제사라는 것이 백퍼센트 모든 사람이 지내야 하는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저 생각하기 나름인거죠. 좀 솔직해져 볼까요? 전 상관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응당한 댓가를 지불하기만 하면 되는 겁니다. 청구서에 적힌 금액 그대로 송금했다, 그럼 알 바가 아닌 겁니다. 그 사람들이 좋은 놈이건 나쁜 놈이건 이상한 놈이건. 

  그는 말을 하는 중에도 쉬지 않고 상자에서 제기를 꺼내 에어캡을 벗기고 마른 걸레로 닦는 작업을 반복한다. 꽤 부드러운 동작이어서 보통 손에 익은 것이 아님을 한 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넋을 잃고 한참동안 쳐다 본다. 나는 잠시 잊었던 질문을 입에 올린다.

- 솔직히 전 ‘제사대행 서비스'이라고 하시길래 제례용품을 제공하고 제수음식을 대신 마련하는 그런 일이라 생각하였습니다. 거기서 끝인 줄 알았죠. 설마 제를 올리는 것까지 서비스에 포함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히 상식적으로 올리기는 자손들끼리 올려야 하는 게 아닙니까? 

- 대부분은 그렇죠. 하지만 그렇지 않은 분도 있다는 뜻이에요. 

- 그렇다면 정말……. - 맞아요. 때로는 정말 ‘제사대행 서비스'인 셈이죠. 

 

*

 

  방씨가 제기를 닦는 동안에 부인 유씨는 가져온 제수음식을 풀기 시작한다. 100리터 들이 아이스박스 세 개 가득 음식이다. 가장 바쁜 시간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대화를 나누지 않을 수가 없다. 그녀는 가져온 조기를 쩌내려고 준비하는 중이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조기 세 마리에 고명을 얹어 찜통에 넣는다. 

- 죄송합니다. 한참 바쁘실 타임인데……. 

- 괜찮아요. 천천히 한다고 뭐라 할 사람도 없잖아요. 

  하긴 그렇다. 주인이 없으니까. 그렇다면 제사가 정말로 계약대로 지내졌느냐의 여부를 어떻게 판단하는지도 궁금해진다. 막말로 이런 경우라면 제사를 지내지 않고서 청구서만 보내 비용을 요구한들 알 길이 없을텐데. 집에 가족이 한 사람도 없으니까. 물론 올리지도 않을 제를 남에게 지내달라 맡기는 인간들이야 그렇게 당해도 싸겠지만. 

- 이런 질문 드려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상대 쪽에서 확인을 요구하는 경우는 없습니까? 그러니까 정말로 제사를 지냈는지, 의뢰한 사람들도 궁금할 것이 아닙니까? 

- 그래서 저흰 몇 가지 자료를 준비해요. 제사를 준비하고 지내는 과정을 사진으로 몇 장 찍어 두죠. 나중에 오해가 생길 경우를 대비해서요. 사실은 캠코더로 찍는 것이 가장 좋아요. 확실하잖아요. 사진이야 조작도 가능하지만 영상으로 찍었으면 할 말 없는 거죠. 

- 아무리 바빠서 직접 제사를 못 지내도, 제대로 지내졌는지가 궁금해서 확인할 시간은 있나들 봅니다. 

- 사실은...... 전혀 안 그래요.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죠. 저희가 사진을 드리면 대개는 그냥 흩어보고 돌려줘요. 한 번 보지도 않고 그냥 버리라는 분들도 종종있었고. 그런데도 사진을 남겨두고 캠코더로 찍는 이유요? 일종의 보험이죠. 재수가 없으면 언제 문제가 될 지 모르니까요. 아무튼 그 분들에게 진짜 제사를 지냈느냐의 여부는 그렇게 중요한게 아닌가봐요. 

- 그렇다면 어떤 것이 중요합니까? 

- 의무를 다했다는 만족감이랄까요? 안도감이랄까요? 마음의 평화랄까요? 어쨌든 우리는 제삿날을 잊진 않고 있었다, 조상님을 잊지 않고는 있었다, 적지 않은 돈을 들여 넉넉히 제사상을 마련해 드렸다, 뭐 그런 자기 만족이 아닐까 싶어요. 아예 모른 척 넘어간 것 보다는 낫지 않느냐, 마음이 편한거죠. 

  그러는 사이에도 그녀는 바쁘게 고기양념에 재운 산적을 밀폐용기에서 꺼내 이글거리는 불판 위에 올려 놓는다. 

- 미리 재워왔어요. 여기서 처음부터 준비하기엔 시간이 좀 촉박하잖아요. 

- 음식은 다 손수 준비하십니까? 집에서? 그녀는 사과와 꼭 닮은 색으로 얼굴을 붉혔다. 

- 사실 혼자 하진 못해요. 당연하죠. 자기 제삿날만 차려도 허리가 휘청이는데 그걸 매일 한다니요. 말이 안되죠. 친정 쪽 식구들이 바로 옆집에 사는데 많이 도와주세요. 특히 어머니가요. 어머니께서 대가 종부로 삼십년이 넘게 사셔서 그런지 솜씨가 무척 좋으세요. 

- 일종의 패밀리 비즈니스라고 봐도 되겠습니다. 

- 맞아요. 그런 셈이죠. 

  그녀는 또 다른 밀폐용기에서 고기 국물을 냄비로 따라 낸다. 그리고는 아이스박스 안에서 다시마와 두부, 그리고 무우가 든 봉지를 각각 꺼내, 다시마를 똑각똑각 썰고 두부를 스물스물 썰고 무우를 쓱싹쓱싹 썬다. 역시 냄비 안으로 쏟아 넣는다. 역시 미리 양에 맞게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 눈치를 챘는지 그녀가 먼저 말을 꺼낸다. 

- 오늘 같은 경우면 저희 세 사람 몫만 만들면 될 것 같네요. 

- 탕국 재료도 사람 머릿 수에 맞춰 준비해두시는가 봅니다. 

- 그럼요. 정작 와서 모자라거나 남으면 곤란하니까요. 

- 제사상에도 가격 별로 종류가 있습니까? 그렇담 오늘은 어떤 상입니까? 

- 물론이죠. 저희도 장산데. 한 가지 서비스만 가능하다면 손님들이 싫어하겠죠. 가능한 상차림을 세분화를 해서 가격에 맞춰 다양하게 고르실 수 있도록 준비를 합니다. 종손상(宗孫床)이라고 서른 다섯 종 음식을 올리는 상이 가장 좋은 거예요. 그 밑으로 대가족상, 중가족상, 소가족상이 있고 명절용으로 설날차례상, 추석차례상, 특별차례상이 있죠. 간혹 특별히 '우리집은 대대로 제사상에 뭘 올렸어요'하고 주문이 따로 들어오는 경우가 있어요. 고인께서 오징어나 문어나 백숙을 좋아하셨으니 추가해달라는 거예요. 그런 경우가 아니라면 맞춤형으로 다들 하나 골라 택하시죠. 참, 오늘 이 집은 종손상이에요. 이 댁 아버님이 전화로 신신당부를 하시더군요. 가장 좋은 상으로 올려달라고요. 만약 종손상보다 더 좋은 게 있었다면 비용이 얼마가 들어도 그걸로 하실 분위기였다니까요. 

 

*

 

  그 사이 방씨는 거실에서 지필묵(紙筆墨)을 꺼낸다. 지방을 쓰려는 것이다. 

- 지방까지 쓰십니까? 

- 어쩔 수 없죠. 이런 경우엔 말이에요. 

  그의 붓은 막힘없이 술술 내려간다.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 붓글씨도 배우셨나봐요. 명필이십니다. 

- 요즘은 지방도 제대로 못 쓰는 양반들이 천지에 널렸는걸요. 저희가 이 정도까지는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해요. 물론 인터넷 사이트에 성씨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크기까지 맞춰서 출력이 되는 세상이죠. 하지만 기왕에 해드릴 것, 제대로 해야지 않겠어요? 좋은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도록요. 그래야 고객들이 또 저희를 찾아 주시죠. 오해하진 마세요. 지방 써드리는 것까지 돈을 받진 않습니다. 그게 저희 룰이에요. 

- 한 번 이용하신 분들이 다음에 다시 이용하시는 경우가 많습니까? 

- 거의 다섯 중 넷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저희가 잘해서가 아니라 한 번 대행 서비스를 이용하신 분들 대부분이 그래요. 한 번 건너뛰고 다음에 다시 제사 준비를 하시려면 배로 힘들고 귀찮거든요. 옛날 우리 어머니들이 힘들어 하시면서도 때마다 준비하셨던 건 당연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죠. 한 번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면 말이에요. 정말 다시 하긴 어려워요. 특히 제사처럼 손이 많이 가는 일은 말이에요. 그래서 이 바닥이 그렇습니다. 큰 잘못이나 컴플레인이 없는 이상 오늘의 고객이 내일도 고객입니다. 모레에는요? 아마 모레에도 고객이겠죠. 

 

*

 

  아홉시. 거의 모든 준비가 끝났다. 주방에선 유씨가 거진 준비해 온 재료를 재빠르게 손봐 제수음식이 완성되었고 방씨가 그걸 제기에 담아 거실로 가져와 상을 차린다. 삼색실과가 아주 탐스럽고 실하다. 나만 가만히 앉아 손 놓고 구경만 하는 것 같아 머쓱하다. 어느새 휘황찬란한 제사상이다. 거 뭐라더라? 종손상. 맞다. 종손상. 서른 다섯 가지 음식이 올랐다. 상다리가 휘어질 지경이다. 방씨가 성냥을 당겨 촛불을 붙이고 향을 피운다. 은은한 향 내가 쉰 여섯 평 아파트 안을 감돈다. 향 하나를 새로 꽂고 술을 받아 올린다. 흔히 강신이라고 부르는 절차다. 방씨와 유씨가 나란히 절을 하려고 한다. 전혀 망설임이 없다. 괜찮을까? 아무리 그래도 남의 조상인데…… 망설이다가 얼결에 나도 따라 한다. 

- 오히려 더 편하네요. 우리끼리 하니깐. 

  차근차근 빠짐없이 모든 순서에 따라 제사를 지내고 난 방씨가 땀을 닦으며 처음 뱉은 말이다. 

- 어떤 면에서 그렇습니까? 

- 제사상을 차리는 법이나 제사를 지내는 법에 대해서 하나부터 열까지 일러드려야 할 경우가 있어요. 항상 지내왔다고들 말씀하시지만 막상 지내려고 하면 주먹구구식인 적이 많거든요. 가족들끼리 순서를 두고 논쟁을 벌이기도 하고. 주방에선 또 주방대로 무슨 음식이 왼쪽으로 가야하느냐 뭐가 오른쪽으로 가야하느냐, 의견들이 분분하죠. 다들 홍동백서, 조율이시는 아는데 실제로 제삿상을 차리려면 감을 못 잡으시는 경우가 많지 않아요. 그러다가 결국 저한테 진행을 맡아달라 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 제사란게 강제성을 지닌 것도 아니고 상당 부분 개별적으로 관습화되었는데 집집마다 지내는 스타일이야 다를 수도 있는 것은 아닙니까? 

- 그래도요. 뭔가 불안들 하신거죠. 원래 제를 올리는 순서라는 게 할 때마다 헷갈리는 것이 아니겠어요? 

- 그게 불안한 사람들이라면 남의 손에 제사상을 맡기겠습니까? 제수음식이야 바빠서 그럴 수 있다고 치더라도, 솔직히 오늘과 같은 케이스는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결국엔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어떻게든 지내기만 하면 되는게 아니냐, 로 끝나지 않습니까? 

  방씨는 엄지와 검지로 가볍게 촛불을 잡아 끈다. 뿌연 연기가 가늘고 어지럽게 하늘로 올라간다. 

- 저희 어머니가 미국인이었기 때문에 아버지에겐 항상 불안감이 있으셨어요. 어머니가 애를 미국식으로 키울까봐서요. 그게 왜 불안할까요? 결국 제사 문제 때문에 그랬던거죠. 어렸을 적엔 몰랐어요. 한국인으로의 핏줄, 혹은 자존심이 아닐까 생각했었는데, 따지고 보면 다 제사가 문제였던 거죠. 

- 제사가 문제였다는 말씀이 어떤 뜻인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 제가 조상님 제사도, 또 나중에 아버지 제사도 모시지 않을까봐 두려우셨던 거죠. 당연한 얘기지만, 사실 두 분은 여러가지 면에서 가치관이 달랐어요. 단적인 예로 어머니는 크리스천인데 아버지는 아니셨죠. 아버지는 저를 붙잡고 제사상을 차리는 법과 제사를 올리는 법을 끈질기게 가르치셨어요. 덕분에 열 살이 되기도 전에 전 제사에 관해 줄줄줄 욀 수가 있었죠. 아머닌 절 교회에 데려갔어요. 목사님은 제사가 우상숭배라고 말씀하셨죠. 제 1계명,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있게 하지 말라. 제 2계명, 우상을 숭배하지 말라. 명절이 되면 어떻게 제사를 피해가야 하는지 지침도 내려주셨어요. 두 분이 제사를 놓고 싸우게 된 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릅니다. 

- 그랬던 것이로군요. 

- 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영원성 때문이죠. 사람들은 누구나 죽음을 두려워하고 그만큼 삶을 두려워합니다. 그걸 벗어나 영원의 안식을 얻고자 하는 마음에서 생긴 것이 종교죠. 어머니에게 그것은 신과 영접하고 충실히 교인 생활을 할 때 가능한 것이었고요. 아버지에게 그건 후대에 기억됨으로써 가능한 것이었죠. 제사란 말입니다. 결국 조상의 정신과 흔적을 기억하게하는 형태의 행위입니다. 영원을 말하지만 사람의 생명은 유한하죠. "나는 유한하지만 내 아들이 나를 기억하고, 또 그 아들의 아들이 나를 기억한다면, 유한의 계속은 무한이다." 이게 제사의 본질입니다. 

- 방씨 생각은 어떻습니까? 어느 족에 더 가깝습니까? 

- 어머니와 아버지, 둘 중에 누가 옳다고 생각하느냐고요? 전 둘 다 틀렸다고 생각합니다. 또 틀리지 않았다고 한들 상관없습니다. 

- 아무튼 제사에 대한 이중적 태도의 근저에는 불안감이 있을거란 말씀이군요. 

- 맞습니다. 솔직히 시간도 없고 귀찮은데, 안 지내면 그만입니다. 하지만 결국은 지내죠. 사람들은. 그렇다고 정말 마음속으로 조상을 그리워하고 기릴까요? 딴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겁니다. 그런에도 시간과 비용을 들이는 이유는 딱 한가지죠. 불안감입니다. 조상이 더 이상 우릴 돌보아주지 않을까봐, 나중에 자손들이 날 기억해주지 않을까봐. 아무리 바빠도 지내자. 아무리 바빠도 아이들에게 제사의 당연함을 보여주자. 처음엔 그렇게 시작된 것이 제수음식 대행업인데, 이제와서는 본말이 완전히 바뀌었죠. 돈이면 뭐든지 다 되는 세상이니까, 음식만이 아니라 전부 다  말입니다. 제사도 서비스처럼 우리 대신 좀 지내주쇼. 그리곤 아파트 관리비를 내듯이 휴대전화 요금을 내듯이 돈만 툭 내는거죠. 그러니까 몇 백씩 내고 아예 삼십년동안 제사를 위탁하기도 하잖아요. 전문업체에. 

- 아까는 상관없다고 하셨지 않습니까? 말씀하시는 것을 보면 상관있으신 듯 합니다. 

- 상관없습니다. 제수음식만 마련해두리면 정가대로만 받습니다. 상까지 차려드리면 비용이 5퍼센트 추가됩니다. 여기에 제까지 저희가 올려드리면 20퍼센트 추가입니다. 저희는 청구서대로 꼬박꼬박 임급만 된다면 아무 상관없습니다. 

 

*

 

  그는 잠시 숨을 돌리려는지 베란다로 나간다. 어느새 밖은 어두워졌다. 유씨는 음식을 세 사람 분만 남기고 모두 치웠다. 남는 음식은 다시 차곡차곡 아이스박스에 담는다. 간단히 식사를 마치니 벌써 열한시다. 오전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부부는 가져온 물건들을 남김없이 다시 포장한다. 역시 일에 속도감이 있다. 돌아갈 땐 짐이 좀 줄어들 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거의 그대로다. 하긴 대부분 그대로 가져가야 하니 그럴 수 밖에 없을 것이다. 

- 남는 음식은 가져가서 저희 식구들이 먹어요. 

- 우린 일년 내내 남의 제사 음식만 먹는다니까요. 우습고도 슬픈 일이죠.

  주방은, 그리고 거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깨끗하고 조용해졌다. 청소도 깔끔하게 끝났다. 마치 누구도 다녀가지 않은 곳 같았다. 바리바리 짐을 싸들고 1008호를 나서는 길에 부인 유씨가 돌연 눈시울을 붉힌다. 

- 참 이상한 일이죠? 마치 내내 비어있었던 집 같아요. 

  나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한다. 무슨 대꾸를 하겠는가.

- 안됐어요. 사진 속 그 노인분. 일년에 딱 한 번인데 가족 한 사람 없이 제사상을 받다니……. 

  방씨가 유씨를 달래는 동안 나는 괜히 민망스러워 다른 곳을 쳐다보며 딴청을 부린다. 엘레베이터는 오층에서 사층, 삼층으로 내려와 일층에 멈추었고, 다시 이층, 삼층, 올라오는 중이다. 

- 괜찮아, 자기야. 우리가 잘 지내드렸잖아. 이제 가자. 빨리가서 쉬어야 내일 또 일하지. 

  방씨가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한다. 

- 오늘 하루, 정말 고생하셨어요. 

- 아닙니다. 제가 취재를 한다고 되려 방해만 된 것 같습니다. 

  딩동. 바로 그때 엘레베이터가 십층에 멈춘다. 문이 열린다. 난데없이 다섯 가족이 우리를 비껴 내린다. 엘레베이터가 계속 올라가는 중이라 우리는 타지 않는다. 그런데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다섯 가족이 1008호 앞에 선다. 분명히 1008호다. 문을 열려는 그들을 보며 나는 의문이 들었다. 남편은 출장 중이고 아내는 애들 데리고 해외 친척집에 있다고 하지 않았나? 기자의 취재 정신 비슷한 것이 돌연 발동을 하여 나는 그들에게 말을 걸고 말았다.

- 안녕하세요? 혹시 1008호 주민 되십니까?

- 예, 그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 일찍 돌아오셨군요? 출장가셨다더니.

- 출장이요? 무슨 출장? 그런데 당신들 나 알아요? 뭐하는 사람들인데 남의 집 앞에서……. 

- 아, 그게 그러니까 말이죠. 

  나는 감전이라도 된 사람처럼 뒤를 돌아 문을 확인하였다. 분명 1008호가 맞다. 도대체…… ‘대신지내드립니닷컴’의 방씨와 유씨에게 자초지종을 물으려고 다시 뒤를 돌아본다. 아뿔싸. 그들은 이미 쏜살같이 계단을 내려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무거운 짐을 양손에 가득 들고 어쩜 저렇게 빠를 수가 있는거지?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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