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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9. 우리 동네 오줌싸개 대장 미시타 리

낙농콩단/Season 1-5 (2000-200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5. 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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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건 정말이지,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폭포는 태고적 신비를 그대로 간직한 채 쏴아아아. 맑고 힘찬 물줄기를 아래로 흘려보냈고 신비로운 중력에 이끌려 호수로 떨어진 물은 천둥소리와 함께 우유같은 포말을 이루며 산산히 부서졌다. 내 평생 이런 장관을 직접 보게 되다니. "어때요? 만족스러워요?" 삼십육-이십사-삼십사의 그녀가 긴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대오며 속삭였다. "그러엄, 물론이지,” 라고 나는 대꾸했다. 바싹 다가온 그녀의 숨소리와 오데코롱 향기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져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아니, 어쩌면 다른 이유 때문일런지도 모르겠다. 그깟 오데코롱 때문에 온 몸의 피가 칠렐레 팔렐레 끓어올라 요동치지는 않을게 아닌가. 나는 침을 꼴깍 삼키고 용기를 내어 슬며시 그녀의 허리를 끌어 안았다. 그녀는 피하지 않았다. 아아, 정말이지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렸다. 그토록 간절히 보고 싶어했던 나이아가라 폭포의 절경이 눈 앞에 있는데다가 바로 옆에는 은하계 최고의 미녀가 아양과 교태를 부리며 비비적대고 있으니. “쌀쌀해요. 이제 안으로 들어가아요." 그녀가 귀에 대고 콧소리를 내었다. "조금만 더 보고. 이건 그냥 폭포가 아니야. 나이아가라 폭포란 말이야,” 라고 나는 대꾸했다. 나이아가라 폭포. 세계에서 제일 유명한 폭포. 우라지게 멋진 장관. 매분 1,400만 리터를 낙하시키는 물줄기는 여전히 쏴아아아, 하는 힘찬 소리를 내었다. "아이잉. 미시타 리이이. 그러지 말고오 들어 가아아요. 둘이서어만, 우리 둘이마안 있고 싶어서 그래애요." 그녀의 우주적 유혹이 조금 더 진해지고 약간 더 심해졌다. ‘아주 사람을 살살 녹이는구나!’ 하지만 나는 꼭, 반드시, 결단코 나이아가라 폭포를 계속 보고 싶었다. 질릴 때까지. 그건 뭐랄까,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일생의 숙원이랄까. 저 쏴아아아, 귀청이 떨어질 것만 같은 소리를 듣고자 이제껏 무려 열아홉 해를 살아온 느낌이랄까. 폭포를 보라. 빙하기 시절부터 오늘 이 순간까지 저 자리를 지켜왔던 역사의 증인을 보라. 쏴아아아. 쏴아아아. 쏴아…….

  어이구, 따뜻하다. 갑자기 사타구니 근처에서부터 허벅지에 이르기까지 아주 따뜻하고 촉촉한 느낌이 들었다. 그 느낌은 서서히 등쪽으로 번져 나갔다. 온도가 딱 맞았다. 아주 뜨겁지도 않고 아주 차지도 않고. 아주 친숙하고 익숙한 온도. 좋구나. 그런데, 나이아가라 폭포는 어디로 갔지? 이상하다. 어랍쇼? 삼십육-이십사-삼십사의 그녀는? 번쩍, 

눈을 뜨고 나니 내 방 천장이 어지럽게 돌았다. 백년은 묵은 듯한 촌스러운 꽃무니 벽지가 눈에 들어왔다. 누런 얼룩도 보였다. 잠시 시차를 두고 판단력이 돌아왔다. 꿈이었구나. 아쉽다, 나이아가라 폭포도, 은하계 최고로 아름다운 그녀도. 아쉬움에 입맛을 쩝쩝다시며 돌아 누울려는 순간 불길함이 엄습했다. 언젠가 따뜻하고 포근했던 것이 우주의 법칙에 의해서 샤르르르 열을 빼앗기고 날아가며 비참하고 절망적인 축축함만을 남겨둔 것이 아닌가 싶은 느낌. 아뿔싸, 아뿔싸, 아뿔싸. 나는 벌떡 일어나 황급히 이불을 걷었다. 독한 지린내가 헐레벌떡 올라오며 후각 중추를 마비시켰다. 흰 요 위에 남은 것은 자랑스럽게 새겨진 오렌지색 대한민국 전도다. 한반도가 아주 선명하다. 남한과 북한, 조선 팔도가 빠진 곳이 없다. 쓸떼없이 살아있는 디테일에 나는 다시 한 번 절망했다. 

*

학교에서 주워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시인 윤동주는 방년 19세에 이미 시를 썼다고 한다. 이름하야 '오줌싸개 지도' 

빨래줄에 걸어논 
요에다 그린 지도 
지난 밤에 내 동생 
오줌싸 그린 지도 
꿈에 가본 엄마 계신 
별나라 지돈가? 
돈 벌러간 아빠 계신 
만주땅 지돈가? 

  널리 알려진대로 이 시는 천지분간 못하는 아우의 야뇨증을 구박하는 내용이 아니라고 한다.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불행의 단면을 넌지시 내비치는 내용이라고. 물론 잘 납득은 가지 않는다. (위대한 시인의 작품에 토를 달 수야 없지만 이 또한 전형적인 꿈보다 해몽 격의 갖다 붙이기 아닌가?) 하지만 이 시를 볼 때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누구는 19세에 이렇게 뜨거운 역사의식을 가지고 있었는데, 누구는 같은 19세에 이처럼 뜨겁고 축축한 잠자리 위를 뒹굴고 있는 꼴이라니 말이다. 이거,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민망하고 남사스럽다. 정말 쪽팔려 죽겠다.

*

  의학적으로 야뇨증은 이렇게 정의된다. 만 5세 이상이, 한 달에 두 번 이상, 연속해서 소변을 못 가리는. 그러니까 표준어의 정의와도 비슷하게 두루뭉실하다.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사용하는, 현대 서울말. 

  아무튼간에 핵심은 이거다. ‘다섯 살 이하에는 해당사항이 없다.’ 즉, 다섯 살 이하의 경우엔 오줌을 지리든, 지려서 뭉개든, 지려서 뭉개서 발개든, 지려서 뭉개서 발갠 다음에 먹든, 야뇨증이 아니라는 뜻이다. 왜냐고? 얼라들한테는 당연한 일이니까. 통계적으로 세 살 어린이의 절반 가량이 밤 사이에 이불에 오줌을 싸는 증세를 보인다고들 한다. 하지만 네 살이 되면 26퍼센트까지 줄어든다. 확률론적으로 보자면 네살배기 백명을 나란히 한 방에서 재우면 틀림없이 그 중 스물하고도 여섯명이나 밤에 오줌을 지린다는 얘기가 된다. (아이고, 지린내가 진동을 하겠구나!) 다섯 살이 되면 남자 어린이의 7퍼센트, 여자 어린이의 3퍼센트 정도를 제외하고는 자연적으로 야뇨증이 사라진다. (남녀간의 비율 차이는 아마도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한 동물이란 뜻일 것이다.) 다시 시간이 흘러 18세가 되면, 거의 모든 사람의 사전에서 '야뇨증'이라는 단어가 깨끗하게 지워진다. 여성의 경우에는 거의 모두가 자유로워진다. 남성의 경우에도 오직 1퍼센트만이 아직도 이뇨증으로 고통받을 확률이 있다. 역시나 여자가 남자보다 우월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열여덟도 아닌 열아홉. 생일을 땡겨보고, 음력으로 양력으로 다 따져봐도 이제는 빼도 박도 못하는 열아홉. 만으로도 열아홉. 그러면 그 1퍼센트도 안되는 범위에 포함되었다는 이야기다. 참마로 대책 안 서는 일이다. 고등학교 3학년이,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연속해서 소변을 못 가리는, 경우를 의학적으로 도대체 뭐라 설명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

  아차! 눈이 번쩍 떠졌다. 꿈이었구나. 꿈에서까지 야뇨증에 대한 고민으로 뒤척이다니. 오죽 스트레스를 받았으면 그랬을까? 가까스로 안도하며 이불 속으로 손을 넣는데… 아, 슬프다. 여전히 축축하다. 꿈 속의 꿈 속에서도 쌌고, 꿈 속에서도 쌌고, 현실에서도 쌌다. 답이 없다. 그래, 쌌다. 이제 인정하는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일단 창문부터 열었다. 사촌형이 사용하는 향수와 (머스크 계열?) 사촌누나가 사용하는 향수가 (시트러스 계열?) 각각 탑 노트와 바텀 노트로 섞인 느낌이었다. 그러면 미들 노트는? 음식물 쓰레기 냄새. 아니 도대체 뭘 처먹었길래 소변에서 저렇게 과일 썩은 냄새가 난단 말인가. 동물원 원숭이 우리에서 맡았던 악취보다 더 하다. 아랫도리가 여전히 축축한 것을 볼 때 내 몸에서 나온 것이 분명하건만, 내 몸에서 나왔으리라고는 도저히 믿고 싶지 않다. 젠장할. 실수로 오렌지 주스를 엎질렀다고 할까?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모르겠다. 일단은 옷부터 갈아입었다. 잠옷과 속옷을 벗고 벽장에서 뽀송뽀송 마른 것을 꺼내입었다. 일단 축축함이 가시자 불안한 마음이 한결 나아졌다. 덩달아 기분도 조금은 나아졌다. 모든 일이 (작금의 이 불행한 사태를 포함하여) 잘 풀릴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 ‘이래서 애기들이 오줌을 싸면 빨리 기저귀 갈아 달라고 엉엉 우는 거구나.’ 이제야 그 심정 십분 알겠다. 마음이 놓이니 열아홉에 걸맞는 이성적 판단 능력이 돌아왔다. 돌아오나 마나 손 놓고 파국을 기다릴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엄마 아부지한테 들키면 그 날로 끝장이다. 생각해봐라. 열아홉이다. 옛날이었음 장가가서 애가 둘 정도 되는 나이일텐데, 밤마다 소변을 못 가려서 이불을 적신다니. 그것도 한 달에 두 번 이상, 연속해서 - 오늘로 엿새 째다. 아마 난 뼈도 못 추릴거다. 어쩌면 키 쓰고 소금이나 얻으러 다녀야할런지도 모른다. 진짜다. 우리 엄마 아부지는 그러고도 남을 양반들이다. 순진한 마음에 이실직고 했다가, 어제도 욕먹었고 그제도 욕먹었고 그그제도 배부르게 욕먹었다. 다섯번 속았으면 이제 노땡큐다. 이제부턴 내가 알아서 할란다. 한숨이 나온다. 참나, 인터넷을 찾아보니 야뇨증의 치료에는 부모의 역할이 절대적이라던데. 우리 아줌씨 아저씨는 도움은 커녕 오히려 스트레스에 스트레스를 곱빼기로 안겨주니. 백번 양보해서 집에서만 망신당하는 것은 괜찮다. 두들겨 맞아도 좋다. 설마 정말로 문자 그대로 뼈도 못 추릴까. 그런데 키를 뒤집어 쓰고 동네에 소금을 얻으러 다니면 그건 집안 망신 아닌가? 막말로 어차피 당신들 얼굴에 침뱉기인 것을!

  나 미시타 리가 걱정하는 것은 이 일이 밖으로 새나가는 것이다. 어제 분명히 우리 아저씨가 내게 엄포를 놓았다. 
- 난 또 고3이라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고 생각했었다. 하루나 이틀, 뭐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거고. 그런데 닷새동안 스트레이트로 매일? 무려 열아홉살이나 처먹어서? 이건 좀 경우가 아니지 않냐? 네 안의 양심은 어디다 가져다 팔아 먹은거야? 지난 밤 홍수에 같이 떠내려간 거야? 내일부턴 얄짤없다. 무조건 키 쓰고 동네 한 바퀴 돌면서 소금 얻어와. 
  난 최대한 불쌍한 표정을 지으며 우리 아줌마를 바라보았는데, 
- 나도 이제 지쳤다. 오십 먹은 에미가 매일 아들 오줌 싼 요나 빨고 앉아있어야 겠나? 

  만약 이 일이 동네로 퍼져 나간다면 얼굴도 들지 못하고 살아야 할 것이다. 코찔찔이 동네 꼬마들이 내 뒤를 쫓으며 날 놀려댈 수도 있겠다. (“미시타 리는 마을에서 제일 가는 오줌싸개래요.”) 미시타 리 19년 인생에 이제껏 그런 굴욕은 없었다. 특히 무엇보다 우리동네에서 제일 예쁜 남성여중 2학년 영이. 나의 짝사랑. 절대 그 애만은 알아서는 안된다. 만약 그 애까지 알게 되면 난 콱 혀 깨물고 죽어버릴테다. 그 모든 비극을 막으려면 방법은 하나다. 내 선에서 반드시 일을 마무리지어야 한다. 일단 오늘은 어떻게든 넘기고 보아야 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낡은 신문지를 가져다 축축한 요 위에 놓고 힘을 주어 눌렀다. 신문지가 젖어들어가며 소변 냄새에 잉크 냄새와 종이 냄새가 묘하게 섞여 퀘퀘한 악취가 올라왔다. 코가 마비되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은 기분이었다.

*

  사람의 소변은 콩팥에서 걸러져 요관을 따라 방광에 모이게 된다. 보통 350 밀리리터 정도가 들어차게 되면 요의를 느끼게 되고 700 밀리리터에서 800 밀리리터면 맥시멈이라고 한다. (우리 아저씨가 동네 주유소에서 즐겨쓰는 용어로 설명하면 ‘만땅’이 되겠다.) 방광에 소변이 찼다는 신호가 뇌에 전달이 되면 다시 뇌는 소변을 내보내자는 신호를 아래로 내려보낸다. 골반근육이 순간적으로 수축하면서 방광을 쥐어짜고 요도 조임근이 이완하면서 소변이 바깥으로 나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나의 어느 부분이 문제라는 말인가. 내 허락도 없이 신호를 보내는 뇌의 역모인가, 아니면 아침까지 기다리라는 신호를 무시하는 방광의 태만인가. 그야말로 난감한 일이로다. 애기들은 좋겠다. 아직 다섯살이 되지 않은 애기들은. 이런 복잡한 고민도 하지 않고, 싸고 싶으면 싸고 울고 싶으면 울고. 역시 옛 말 그른게 하나 없다. 모르는 게 약이요 아는 게 병이다. 한자말로 식자우환. 정말 그렇지 않은가!

*

  아차! 눈이 번쩍 떠졌다. 또 꿈이었다고?  꿈에서까지 야뇨증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밤 사이 이불에 실례하고 또 그걸 뒷수습하느라 동분서주하는 꿈까지 꾸었다고? 이쯤되면 그냥 슬프다는 말로는 이 사태를 충분히 설명할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무거운 마음으로 이불 속으로 손을 넣는데… 오, 여전히 축축하다. 꿈 속의 꿈 속의 꿈 속에서도 쌌고, 꿈 속의 꿈 속에서도 쌌고, 꿈 속에서도 쌌고, 현실에서도 쌌다. (이번은 진짜 현실이라고 한다면 말이다.)

  다시 자리에서 일어나 처음부터 같은 작업 반복을 시작했다. 우선 잠옷과 속옷을 벗었다. 책상 서랍 속에서 비닐 봉지를 꺼내어 잠옷과 속옷을 넣고 그 끝을 단단히 묶었다. 그리고 다시 책가방 안에 넣었다. 등교길에 빨래방에 맡겨두었다가 하교길에 다시 찾아올 속셈이다. 이제 남은 것은 요와 이불. 여기서부터가 큰 문제다. 일단은 일차 진압이 필요했다. 책상 아래에서 신문지 뭉치를 꺼내와서 요와 이불이 위에 놓고 힘을 주어 눌렀다. 누르는 곳마다 노란 물이 번져 올라왔다. 악취에 코가 마비될 지경이었다. 지금 시각이 오전 3시 30분. 엄마 아부지가 6시 30분쯤 일어나시니 내게는 아직 세시간이 남았다.  

  방문을 열고 좌우를 살폈다. 안방과 내 방은 5미터정도 떨어져 있다. 아직까지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우리 집'이다. 다시 슬그머니 방문을 닫았다. 만약을 대비하는 차원에서 헤어 드라이어를 책상 밑에 숨겨 두었던 것은 정말 잘한 일이었다. 앞으로 세 시간 동안 열심히 말린다면 충분히 이 비극적 사태를 해결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 노란 얼룩이 빠지지 않고 남아있겠지.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요와 내 이불은 순백처럼 하얗지는 않다. 이미 무수한 실수로 이력이 쌓인 탓에 세월의 얼룩으로 가득하다. (참 자랑이다!) 바싹 말라있기만 한다면 우리 아저씨와 우리 아줌마를 감쪽같이 속여 넘길 수도 있을 것이다. 드라이기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밖으로 새나가지 않도록 약풍으로 스위치를 맞추었다. 그러고도 마음이 놓이지 않아 낡은 수건으로 드라이어를 감쌌다. 조심스럽게 전원을 올렸다. 위잉 거리는 소리와 함께 따뜻한 바람이 요의 젖은 부분으로 향했다. 열기와 함께 조금 전과는 또 다른 의미에서의 불쾌한 냄새가 피어올랐다. 제발! 제발! 제발! 빨리 말라서 축축한 느낌만 사라졌으면 좋겠다. 빨리 말라야 다시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잠자리에 들 수 있다. 고요한 새벽을 울리는 헤어드라이기의 소리.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아! 정말! 의도치않게 피곤한 밤이었다. 어쩌면 학교에 가서 꾸벅꾸벅 졸게 될런지도 모르겠지만, 이런 비상 시국에 그깟 수업이 대수랴. 

  내가 알기로 야뇨증이라는 것의 주요한 원인 중의 하나는 스트레스다. 두려움과 분노의 억압된 감정이 소변조절 기능의 퇴행적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때 자신감 결여나 우울증, 사회장애, 행동장애 등의 정신적 측면의 증상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고들 한다. 당연한 일이다. 엿새를 연속으로 일을 벌이다 보니까 부끄럽기도 부끄럽거니와 그에 따르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매일 밤이 고통스럽다. 자신감이 급격히 떨어지고 우울해졌다. 평소와 다름없이 친구들과 어울리다가도 문득 어젯밤에 오줌을 쌌더란 사실이 기억나면 괜히 주눅이 든다. 멀쩡히 문제집을 풀다가도 문득  오줌을 쌌더라는 사실이 기억나면 집중이 되질 않아 손발이 어지러워진다. 괴롭다. 정말 괴로운 일인 것이다. 물을 마시는 게 두렵고 밤이 무섭다. 잠들기가 겁이 난다. 그렇다고 스트레스를 피해서 살 길이 있을까. 고등학교 삼학년이. 우리 아줌씨 아저씨한테 그런 얘길 꺼냈다가는 괜히 쥐어 터지기나 할 것이다. 

  엿새나 계속되었으면 나도 나름의 대책을 세울 때가 되었다. 아니, 헤어 드라이어 따위를 준비하는 것 말고.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말이다. 듣자하니 현삼이 콩팥에 좋은 삼이라 그걸 달여 먹으면 좋다는 말도 있고, 사마귀 알집이 야뇨증엔 직빵이라는 소리도 들었다. 허나 당연한 얘기지만 고등학생이 구하기엔 둘 다 좀 수월치가 않은 것들이다. 그렇더라도 뇌의 역모를 때려 잡던가, 방광의 태만을 응징하던가, 둘 중 하나는 반드시 오늘 중에 해결하여야 한다. 열아홉살이나 먹어서 일주일씩이나 밤에 오줌을 쌀 수는 없는 일이다. 정 안된다면 오늘 밤에는 하기스든 팸퍼스든 뭐든 구해다가 입고 잠자리에 드는 수 밖에 없다. 이 노력과 스트레스에 비하면 기저귀값이 더 싸게 먹힐 것이다.

*

  "일어나지 못해!" 아득히 멀리에서 무슨 소리가 들린다. 일어…… 가 어쩌고 라고 한 듯한데. "어서 일어나지 못해?" 도대체 누구야? 누가 감히 이 미시타 리의 단잠을 방해해? 번쩍, 

  눈을 뜨고 나니 내 방 천장이 어지럽게 돌았다. 거기까지도 다 꿈이었구나. 천만에 다행이다. 아니다. 꿈 안의 꿈 안의 꿈이라니. 이게 도대체 몇 겹짜리 악몽의 지옥이란 말인가. 원래 꿈에서의 오줌, 아니 소변은 좋은 의미라고들 한다. (동네 도서관에 가서 열심히 찾아보았다.) 바랐던 일이 이루어지는 걸 뜻하기 때문이다. 남이 처다보는 것 같아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꿈은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남이 소변을 보는 것을 지켜보는 꿈은 남의 소원이 충족되거나 남이 유명세를 타게 됨을, 소변이 가득한 구덩이나 비료통에 시원하게 소변을 보는 꿈은 바랐던 일이 크게 성공하게 됨을 각각 의미한다. 오줌이라고 꼭 나쁜 건 아닌 셈이다. 그런데, 아뿔싸. 

  아줌씨 아저씨, 아니 엄마 아부지가 날 노려보고 계신다. 바로 내 코 앞에서. 아랫도리는, 젠장할, 축축하다. 참 많이도 쌌다. 한강이라도 범람한듯 흥건하구나. (어쩌면 이 또한 꿈이 아닐까? 꿈 속의 꿈 속의 꿈까지 나왔으면 꿈 속의 꿈 속의 꿈 속의 꿈이 없으리라는 법도 없다. 그렇지 않은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떴다. 힘껏 볼을 꼬집었다. 양쪽 머리도 때렸다. 그걸 지켜보는 부모님은 한심스럽다는 표정이었다.
- 오늘로 정확하게 6일째다. 하루 더 싸서 일주일 채울 셈이냐? 
- 안되겄다. 오늘은. 당장 가서 소금 얻어 와! 부끄러운 줄을 알아야 알아서 고치지. 
  엄마가 키와 바가지를 건네어 준다. 집 구석에 이런게 정말 있었단 말야? 대체 뭐하려고? 
- 하루만 더 기회를 줘요. 무슨 부모가 아들에게 이렇게 야박해? 내가 키 쓰고 소금 얻으러 다님, 그게 내 망신인가? 엄마 아부지 망신이지……. 
- 우린 망신 당해도 좋다. 열아홉 아들이 오줌도 못 가리는데, 더 망신 당할게 뭐 있냐? 
- 앞으로 우린 널 '오줌싸개 미시타 리' 라고 부르기로 했으니 그렇게 알아. 

  오줌싸개 미시타 리, 라니…… 이 양반들 센스하고는. 

*

  쭈삣쭈삣 초인종으로 다가간다. 돌담집 할머니네다. 어렷을 때부터 친할머니처럼 여겼던 분이니 여기서 재빨리 한번 창피 당하고 집에 돌아가는게 나을테다. 지금 내 꼴이 어떻느냐고?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다. 급히 쫓겨 나오느라고 반바지에 슬리퍼, 머리에는 키를 썼고 손에는 바가지를 들고 있다. 저울을 끼고 앉은 아부지는,
총 100그램 이상 얻어오지 못하면 무효로 치겠다
라며 엄중히 경고하셨더랬다. 누가 구두쇠 아니랄까봐. 소금이 필요하면 마트가서 사면 되잖아요. 부끄러운 건 순간이다. 그래 미시타 리, 넌 할 수 있어. 빨리 누르고 빨리 소금을 얻어 빨리 돌아가는 거야. 숨을 크게 들이 마시고 그 까짓 거, 남자답게 부딪쳐 보는 거야. 

  초인종을 누르려는 찰나에 뒤에서 부스럭 인기척이 느껴졌다. 돌아보니, 세상에, 우리동네에서 제일 예쁜 신성여중 2학년 영이다. 차림을 보니 아침 운동 가는 길인가 보다. 말도 안돼. 어쩜 세상에 이런 일이. 오! 신이시여! 이것도 꿈이겠지. 얼른 깨라. 제발 깨라. 당장 깨야 돼. 영이는 위 아래로 날 이상한 듯 쳐다보더니만 고개를 갸우뚱하며 인사를 건넨다. 
- 안녕? 미시타 리 오빠. 그런데 지금 뭘 하는…… 어머머, 큭.

아 정말 미치겠다. 미시타 리 인생, 꽈배기도 아닌데 왜 이렇게 꼬이냐?

(2005년 0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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