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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브스 아웃 (Knives Out, 2019)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19.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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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스테리 장르의 문제는 작가와 독자의 정보 차이를 바탕으로 완성된다는 점에 있다. 다르게 말하면 독자에게는 미스테리이면서 작가에게는 미스테리가 아닐수록 완벽에 가까워진다고도 할 수 있겠다. 사실 다른 어떤 장르도 이런 극단적인 방식으로 동작하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미스테리는 어렵고 까다롭다. 같은 이야기도 작가가 독자에게 정보와 근거를 공유하는 정도와 속도에 따라 좋은 작품이 되기도 하고 나쁜 작품이 되기도 한다.


  리안 존슨의 ‘나이브스 아웃’은 유명 미스테리 소설가가 자신의 85번째 생일날 자신의 저택 밀실에서 사망한 사건을 다룬다. 하지만 역시 중이 제 머리를 깎지 못하는 건지 미스테리 대가 자신의 죽음에 얽힌 사연은 전혀 미스테리하지 않다. (아마 그 자신이라면 절대 이런 내용을 소설로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사건의 큰 얼개도 흥미롭지 않을 뿐더러 수사극과 사회풍자극 중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출지도 분명하지 않아 산만하다. 일단 수사극이라고 전제하고 보자면, 무엇보다 결정적인 단서와 정보가 등장하는 과정이 치명적으로 허술하다. 장르적 특성상 의도에 따라 적당히 정보를 숨기는 건 당연한 기술이지만 상식적이고 논리적인 순서에 어긋난 무리수는 오히려 관객들을 피로하게 만들 뿐이다. 가령, 가장 먼저 이 사건에 대해 특정해야 하는 것은 미스테리 작가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에 대한 부분이다. 그것은 기본적인 현장 감식과 전문가 소견, 그리고 부검 결과로 당연히 진작에 나왔어야 하는 정보처럼 보이는데 그걸 분명하게 밝히지 않는다. (심지어 담당 수사관들도 모르는 듯 하다.) 대신 사건 일주일 후 가족과 주변 사람들 진술을 듣는 과정으로 시작한다. 가족 사이의 갈등을 감지하면서 본격적으로 범죄 동기에 대한 가능성을 흘린다. 그 과정에서 물적 증거들은 가장 마지막 순위로 밀려있다.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탐정물이 아니고서는 이럴 수가 없다. 굳이 더 따지자면 사회적 명사의 죽음을 두고 달랑 두 사람의 형사와 사립탐정 한 사람이 수사를 하는 것도 이상하고, 제 멋대로 휘젓고 다니는 사람탐정을 법집행기관과 유족들이 그냥 두는 건 더 이상하다.


  의아했던 단서와 정보는 (영화가 전개상 필요로 하는 순간에) 제공된다. 그러니 순서가 잘못되었고 정도는 이상하며 속도는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아마 많은 관객들이 상식적, 논리적, 법적, 의학적, 혹은 법의학적 의문을 느끼거나 진작에 내용을 앞서 나가고도 남았으리라 짐작된다. CSI:KFC가 아니어도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단서에 대한 정보를 지연시키고 현대 범죄 수사의 여건을 100년쯤 후퇴시킨 의도는 너무 뻔하게만 보인다. 당연히 반전과 깜짝쇼를 위한 포석이다. 하지만 김은 진작에 빠진 상태라 별로 놀랍지는 않고 곳곳에 허술하게 드러난 구멍들만이 눈에 거슬릴 뿐이다. 결말은 관객에게도 흥미로운 설명이 아니고 작가에게도 완벽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그저 우연의 넝마주를 무리하게 꿰어낸 것에 불과하다. 이런 방법으로는 미스테리 장르가 줄 수 있는 순수한 즐거움을 기대하기 어렵다. 그나마 제이미 리 커티스, 돈 존슨, 마이클 새넌 등 관록있는 배우들의 안정된 연기는 볼만하지만 정작 가장 큰 티켓 파워를 보유한 다니엘 크레이그가 연기한 사립탐정 브누아 블랑은 전혀 매력이 없다. 이 족보를 찾을 수 없는 탐정 캐릭터의 목표는 불분명하고 의도는 독특하며 악센트는 진정으로 해괴하다.

(201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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