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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워즈 에피소드 9: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Star Wars Episode 9: The Rise of Skywalker, 2019) B평

불규칙 바운드/영화와 B평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20. 2.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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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타워즈 시퀄 트릴로지(새로 만들어진 에피소드 7, 8, 9)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이 전설적인 스페이스 오페라가 더 이상 미래의 신화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는 부분에 있다. 오프닝 시퀀스의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로 시작하는 시그니쳐 크롤을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이 작품은 내내 인류의 과거이자 현재이자 동시에 미래의 이야기로 존재해왔다. 하지만 사족처럼 더해진 이 새로운 세 편이 독자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영역은 넓게 잡아야 미래 정도에 국한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나마도 앞서 완성된 이야기로부터 간접 측량이 가능한 미래다. 새로운 타임라인에서 벌어지는 거의 모든 사건은 기존 타임라인의 자장 위에서 작동하고 새로운 캐릭터들은 기존 캐릭터들의 세레 속에서 움직인다. 조금 거칠게 말하자면 팬픽 수준이라고 해도 변명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신화성의 상실은 여러 층위에서 문제를 발생시킨다. 먼저 과거로의 거울. 물론 원작이 내재하였던 인류사의 특정 사건들을 (세계 대전, 나치 독일, 베트남전, 리처드 닉슨, 냉전 시대 등) 연상하게 만드는 알레고리들의 힘이 오리지널 트릴로지가 개봉했던 시점으로부터 40년 이상 흐른 오늘에 이르러 감쇠할 수 밖에 없음은 감안을 하여야 할 것이다. 다만 새로운 고민 없이 역사와의 절연 상태를 방치했다는 점은 애초부터 이 시퀄 트릴로지의 기획이 작품의 깊이에 크게 염두를 두지 않았다는 의심을 거두기 어렵게 만든다. 다음은 현재로의 거울. 고전적인 선악관, 유전 형질의 맹목적 발현, 계통 발생적 기억, 과도한 우연, 논리적 비약, 연출된 비극, 데우스 엑스 마키나 등은 현대적 극의 관점에서 보면 사실 형편 없는 요소들이다. 여기에 아우라가 부여되는 것은 그것이 신화이기 때문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가 공통의 뿌리를 발견함으로써 카타르시스와 울림을 경험할 수 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만약 그런 아우라가 빠진 채로 이런 이야기를 전개한다면 그저 ‘설탕 가득 포스 제로’의 가벼운 오락거리가 아님을 과연 부정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마지막으로 미래로의 거울. 만약 어떤 사이언스 픽션이 오직 미래만을 비추는 기능을 수행한다면 그건 가장 좋지 않은 경우다. 과거를 탐색하고 현재를 분석하는 본래적 목적을 상실한 채 떠벌이 예언가로의 허풍 혹은 미래적 기믹만 가득 열거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이렇게 언급하기는 정말 가슴 아프지만) 이 전설적 스페이스 오페라가 오늘에 소환되어 계급장을 떼고 슈퍼 히어로 영화 따위들과 나란히 비교되어야 하는 초라하기 그지 없는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이다.

  루카츠 필름을 집어 삼킨 디즈니 스튜디오의 계획이 처음 발표되었을 때 가장 먼저 들었던 생각은 이것이다. 단기 수익 장기 손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스스로 가르는 격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단기 수익에 대한 부분은 틀렸다. 확실히 돈을 버는 정도가 아니라 어마어마하게 버는 정도였으니까. 그러니 그 기회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디즈니와 루카츠 필름을 탓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논란의 와중에서도 ‘스타워즈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 (J.J. 에이브람스, 2015)’는 월드 와이드 20억 달러를 넘겼고 ‘스타워즈 에피소드 8: 라스트 제다이 (라이언 존슨, 2017)’는 월드 와이드 13억 달러를 넘겼다. 그렇지만 이 작품 ‘스타워즈 에피소드9: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가 월드 와이드 10억 달러(7주차 기준)를 간신히 넘긴 것으로 봐도 뭔가 처음 예상과는 다른 묘한 흐름이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을 감지할 수 있다. 그 열광적인 북미 시장에서조차도 9억 3천만 달러, 6억 2천만 달러, 5억 8백만 달러(7주차 기준)로 서서히 식어가는 경향을 보이고 있으며, 흥행을 떠나 무엇보다 슬픈 것은 서서히 추억이 부식되어가는 듯한 분위기다. 그리고 아무래도 이 작품이 쐐기를 박은 것 같다. ’스타워즈 에피소드 7: 깨어난 포스’의 경우 남아있는 추억을 더듬는 맛이라도 있었지만 이 마지막 편은 벌려놓은 이야기를 수습하기에만도 급급하고 몇몇 장면은 너무 어설프게 처리되어 실소를 자아낼 정도다. 심지어 리부트 전문가 J.J. 에이브람스가 다시 메가폰을 잡았음에도 팬들의 마음을 움직일만한 교통정리가 불가능했다는 점은 충격적이다. 이건 ‘하우 아이 멧 유어 마더 (CBS, 2005~2014)’의 비정한 애비 테스 모스비가 (그 놀랍도록 긴 사연을) ‘쉬 이즈 유어 마더!’로 마침내 마무리한 이후에 다시 그 다음 이야기가 더 있다고 우기는 정도에 비할 바가 아니다. 다름 아닌 '스타워즈'다. 미국 대중문화에, 그리고 나아가 세계 대중문화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프랜차이즈를 놓고 이런 식으로 난장을 벌이는 꼴은 상당히 통탄스럽다.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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