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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4. 조금은 복잡한 사랑이야기

낙농콩단/Season 1-5 (2000-2005)

Written by Y. J. Kim    Published in 2005.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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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조금은 복잡한 사랑 이야기가 있다. 카렐린 가문의 쌍둥이 두 아들,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과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이 사랑에 빠진 이야기이다. 로스토프 가문의 쌍둥이 두 딸,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와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가 사랑에 빠진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러니 여러분! 믿을 수 있겠는가. 카렐린 가문의 쌍둥이 두 아들과 로스토프 가문의 쌍둥이 두 딸이 서로의 짝이 되었다는 이 거짓말처럼 복잡한 이야기를!

  니콜라이 이바노바치 카렐린의 고백에 따르자면, 그들 카렐린 형제는 자신들의 애인이 형제의 애인과 자매 사이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한편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의 고백도 이와 일치한다. 그들 로스토프 자매 역시 자신들의 애인이 자매의 애인과 형제 사이일 것이라고는 꿈에도 상상해 본 적이 없다고 한다.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은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와 7년을 사귀었다. 여러분이 혼동하실까봐 부연하자면,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은 카렐린 형제의 형이고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는 로스토프 자매의 동생이다.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 역시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와 7년을 만났다. 여러분이 혼동하실까봐 또다시 부연하자면,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은 카렐린 형제의 동생이고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는 로스토프 자매의 언니다. 고로, 카렐린 가문과 로스토프 가문은 겹사돈 중에서도 형제 자매가 서로 엇갈린 굉장히 독특한 형태의, 이걸 뭐라고 부르더라? 찌겹사돈? 아니 그건 종로에 있는 가정식 백반집 이름이고!

  하지만 솔직히 믿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들이 사는 마을, ‘코클로마 마트로시카’는 마음 먹고 뛰면 두어시간에 한 바퀴를 돌아올 수 있을만큼 코딱지만한 곳이다. 옆 집 주방에 숟가락이 몇 개이고 옆 집 욕실에 샴푸가 몇 통인지도 속속들이 꿰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런 마을에서 두 쌍둥이의 그렇고 그렇고 그런 사이가 밝혀지지 않았을 리가 없다. 비밀 유지 및 관리를 아무리 잘했다고 한들 7년은 너무 긴 시간이다. 하지만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은 강하게 의심을 부정한다. "정말로 나는 몰랐으니 그럴 리가 있는 셈이다." 어떻게 몰랐을까? 자기 아우의 애인이 자기 애인의 언니인 줄 말이다. 그에게 물었다. 그럼 언제 처음 알게 되었는지 말이다. "올해 사순절 축제 기간에서야 알았다." 다시 그에게 물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말이다. "항상 그랬듯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와 만나 불타는 허수아비를 구경하며 팬 케이크를 먹는데, 반대편에서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바로 아우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이었다. 그런데 그 때 자기 옆에 있던 여자친구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가 아우의 옆에 있던 숙녀에게 손을 흔드는 거다. 나중에 알고보니 자기네 언니라는 거다. 얼마나 황당했는지 모른다." 이 증언은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의 그것과도 일치한다. "사순절 축제 마지막 날, 그러니까 허수아비 태우던 날이었다. 건너편쪽에 동생이 애인으로 추정되는 남자와 함께 있길래 손을 흔들었다. 내 애인인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이 당시 그 자리에 있었는데 팬 케이크를 먹다가 말고 '형님이 여긴 웬일이지?'라고 웅얼거리는 것을 똑똑히 들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여러분 모두가 아시다시피, 사순절이 무슨 7년마다 돌아오는 행사도 아니고 매년 그렇게 같은 자리에 있었을 그들이 지난 6년 내내는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에게 물었다. 매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 맞냐고. 그의 대답은 분명했다. "그렇다." 그때마다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와 함께였냐고도 물었다. "당연하다. 혹시 어디 가서라도 그런 소리 하지를 마라. 나는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 외의 다른 여인과 만나본 적도 없다." 그의 애인의 동생인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 역시 매년 그 자리에 있었다고 말한다. "당연하다. 우리 또한 매년 빠짐없이 그 자리에 있었다. 꽃샘추위가 물러가며 허수아비를 태우는 그 자리에서 어김없이 팬 케이크를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믿지 못하겠다면 증거도 있다. 나는 매일 일기를 쓰기 때문이다."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의 이야기를 듣고보니 더더욱 미스테리가 되어가는 것 같다.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과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 그리고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과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 이들 두 쌍둥이 형제 자매들은 어떻게 만나고 사랑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일까? 부디 여러분, 이들의 이름이 어렵고 복잡하더라도 혼동하지는 말아주시길 부탁드린다. 누가 형이고 누가 언니인지, 누가 누구의 연인인지를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숙지해 주십사 하는 조심스러운 당부다. 

 

*

 

  어쨌든 오늘은 기쁜 날이다.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과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 그리고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과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 이렇게 두 쌍의 쌍둥이 남녀가 합동 결혼식을 올리는 역사적인 혼례가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코클로마 마트로시카’의 지역 방송국과, 그보단 작은 또 다른 지역 방송국과, 그보단 작은 또또 다른 지역 방송국과, 그보단 작은 또또또 다른 지역 방송국에서 취재를 하고싶노라 요청해왔다. 쌍둥이 겹사돈이 다시 나타나길 바라느니 2062년에나 돌아올 헬리 혜성을 기다리는 것이 빠르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듣고보니 맞는 말이다. 다시금 이런 겹사돈이 나오려면 76년보다는 훨씬 더 긴 시간이 필요할 가능성이 클 것이다. 

  카렐린 가문의 사람들과 로스토프 가문의 사람들은 아침부터 부산을 떨었다. 아마도 이 사건은 그들 평생 잊지 못할 굉장한 이야기 거리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 보통은 아들 하나만 장가 보내도 정신이 없는데, 같은 날에 둘이나 장갈 보내다니! 카렐린 가문 사람들은 정신이 없다 못해 빠져나갈 지경이었다. 보통은 딸 하나만 시집 보내도 기둥뿌리가 들썩이는데, 같은 날에 둘이나 시집을 보내다니! 로스토프 가문 사람들은 기둥뿌리가 흔들리다 못해 빠져나갈 지경임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이윽고 웨딩 케이크가 배달되었다. 무려 삼단짜리가 두 개 나란히 배열된, 평생 한 번 구경하기 어려운 케이크의 웅장한 모습이 모두가 감탄을 내뱉었다. 신랑들이 그렇고 신부들이 그런 것처럼 케이크도 똑같이 잘생긴 한 쌍의 모습으로 완성된 것이었다. 그처럼 그 날 예식장의 모든 것이 그렇게 꼭 닮은 한 쌍으로 준비되었다. 심지어 수백 킬로는 족히 떨어진 마을에서 공수해 온 들러리까지 쌍둥이였다. 카렐린 가문 사람인지 로스토프 가문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누군가에게 한 방송국의 기자가 물었다. "그런데 신랑 두 분이 똑같이 생겼고, 신부 두 분도 똑같이 생겼는데 구분할 수 있겠어요?" 그 질문에 로스토프 가문 사람 혹은 카렐린 가문 사람인가는 이렇게 대답했다. "솔직히 못하겠는데요." 주변 사람들이 와하하, 소리내어 웃었다. 더없이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주례로는 올해로 여든아홉이 되신 ‘코클로마 마트로시카’ 마을의 촌장님이 나섰다. 백발이 성성한 수염을 드리우고 그는 신랑들과 신부들에게 물었다. "신랑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신부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를 사랑하겠습니까?"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이 답했다. "예." "그럼 신부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도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신랑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을 사랑하겠습니까?"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가 답했다. "예." 신랑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은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신부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를 사랑하겠습니까?"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이 답했다. "예." "그럼 신부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도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신랑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을 사랑하겠습니까?"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가 답했다. "예." 촌장님은 마지막으로 좌우를 둘러보며 엄숙하게 선언했다. "여기 이 결혼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바로 지금 나서도록 하시오." 당연한 이야기지만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이로써 신랑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과 신부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의 아름다운 한 쌍, 그리고 신랑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과 신부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의 또다른 아름다운 한 쌍, 이렇게 두 쌍의 성스러운 부부가 탄생했음을 나에게 주어진 촌장의 권위로 선포하는 바입니다." 친지, 하객들의 박수가 폭포수처럼 쏟아져 예배당을 가득 메웠다. 쌍둥이와 쌍둥이 커플이어서 그런지 박수소리마저 평소의 곱절이었다. 

 

*

 

  쏟아지는 박수와 흩날리는 꽃가루 사이에서 하객 중 누군가가 누군가에게 물었다. "이봐, 그런데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 옆에 있는 아가씨가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가 맞아? 내 생각에는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 같은데 말이야. 아! 오해는 마시고, 내가 로스토프 자매들과 어려서부터 쭉 같이 자라온 사이여서 그래. 누가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고 누가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인지 정도는 구분할 수가 있다고." 질문을 받은 누군가가 답했다. "그럼 자기가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이라고 생각하는 총각이 사실은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이 아닐까?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의 짝은 우리 모두 알가시피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인데,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가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와 식장에서 나란히 서있을리가 없잖아. 내 생각에는 자기가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과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을 헷갈린 것 같아. 저 총각들, 정말 판박이처럼 똑같이 생겼잖아." 머쓱해진 누군가가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가? 정말 내가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과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을 구분하지 못하는 건지도 모르겠군. 아무튼 나는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와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는 귀신같이 알아낼 수 있단 말이야. 가족들도 혼동할만큼 똑같이 닮은 자매라지만 옛날부터 내 눈만은 속일 수가 없었거든." 다시 그 누군가의 말을 받아주는 누군가가 그 말도 받아주었다. "그레게 말일세. 신랑 신부들 당사자는 서로 구분이나 할 수 있을지 몰라. 그러니까 내 말은,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은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와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을 구별할 수 있겠지? 또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는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와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을 분간할 수 있겠지? 너무 닮아서 하는 말이야. 거짓말 좀 보태서 서로 방을 잘못 찾아 들어가도 깜빡 속을만큼 닮았다니까." 누군가들의 잡담을 잠자코 듣던 노인 하나가 나서서 그들을 제지했다. "여보게들, 아무리 그래도 오늘이 날은 날인만큼 지나친 농담은 자제하게나. 그리고 정말 진실된 기쁜 마음으로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과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 형제, 그리고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와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 자매의 결혼을 축하해줍세. 그리고 카렐린 가문과 로스토프 가문 사람들에게도 축하를! 이런 경사가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그러자 누군가들은 얼굴을 붉히며 고개를 숙여 잘못을 인정했다. "어르신 말씀이 백번 맞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기쁜 마음으로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과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 그리고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과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의 축복된 결혼식을 축복하였다. 그들 쌍둥이 형제 자매의 두 쌍 부부는 오래도록, 정말 검은 머리가 파뿌리가 되도록, 행복하게 잘 살았다고 한다. 

  여러분! 어떻게, 이제 좀 분간이 가시는가. 누가 니콜라이 이바노비치 카렐린이고 누가 엘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인지, 또 그리고 누가 이리야 이바노비치 카렐린이고 누가 안나 스톨라바인스카야 로스토바인지. 누가 형이고 언니며 누가 아우고 동생인지. 혼동하지 않고 이 조금은 복잡한 사랑 이야기를 이해하실 수 있겠느냐는 말이다.

 

(2005년 0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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